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3화 (43/258)

# 43화 거북 (2)

사실 턱시도엔 원장님(드래곤)이 만든 강력한 기능들이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포근이와 교감하며 생기는 마나의 양이 기능을 사용하기에 많이 부족하여 지금까지 추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륙 거북의 새끼와 교감을 나눈다면 사용할 수 있을 거란다.

대륙 거북은 소량의 마나로도 제 몸집을 어마어마하게 부풀렸다.

원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대륙 거북의 마나는 매우 좋은 효율을 가진 고급 연료이며, 대륙 거북의 특징이 ‘거대화’일 뿐 자신이라면 마나를 가공하여 연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개량형 턱시도를 입고 새끼 거북과 교감을 나눴다. 녀석은 이미 날 어미라고 생각했기에 ‘깊은’ 교감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휘몰아치는 해일, 마치 폭풍우에 휩쓸린 배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것처럼 지독한 멀미를 느껴야 했다.

우엑-!

위장에서 올라온 게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내장이라도 토했을까 싶었다.

그러나 입으로 뱉은 건 토사물이나 핏물 따위가 아니었다.

“징그러!”

내가 무슨 안드로이드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검은색 액, 마치 기름처럼 보이는 오물을 뱉어 낸 것이다.

“지금까지 체내에 쌓여 있던 마나의 노폐물들이죠. 자, 다정 씨. 이제 곧 올 거예요. 준비하세요.”

원장님의 말에 멀뚱멀뚱 멍청하게 서 있던 난 이윽고 ‘온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살면서 가장 신비로운 느낌이다.

오물을 뱉어 낸 후 굶주림을 느낄 만큼 몸이 비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거대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내장과 뼈, 심장과 똥구멍까지 내 몸 구석구석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마나구나.’

들은 게 있어서 알 수 있었다.

몸 안 가득 차는 이 기운, 분명 마나일 것이다. 마나를 받아들인 각성자들이 TV 따위에 나와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다.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다.

풍만한 느낌. 혹은 몸 자체가 허파로 이루어진 듯 상쾌하고 맑은 느낌.

가슴에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는 듯하고, 머릿속에 높은 산이 떡 하니 자리한 듯하다.

황홀한 느낌에 취해 있을 때, 원장님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대화에 소모되는 마나를 모두 응축시켰어요.”

원장님은 친절하게도 내가 알기 쉽게 설명했다.

“다정 씨 체내에 쌓인 마나를 인간이 규정한 등급에 비유하자면, 아마 교감한 현재로서는 3급 정도는 될 거예요.”

“와우…….”

출세했네, 출세했어.

*

턱시도는 내가 가진 마나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혹시라도 잊어버리거나 뺏긴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사용할 수 없어 그야말로 ‘맞춤 양복’이다.

세속적이며 노골적으로 비유하자면 옛날 영화 ‘아이언맨’이 떠오른다. 토니의 심장엔 아크 원자로가 있지만 내겐 귀여운, 혹은 활활 타오르는 작은 마물 도마뱀이 있다.

계량 턱시도는 전체적으로 기능이 상승되었다. 더 강한 불꽃 탄알과 더 단단한 방패를 사용할 수 있었고, 내구도도 높아졌다. 또한 내가 간절히 주장한 탓인지 턱시도를 팔찌 형태로 바꿀 수 있어, 출장을 가도 계속 입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보타이가 가면으로 변하는 기능을 응용한 것이다.

변신 소녀다.

팔찌를 두들기면 턱시도가 짠-!

생각해 보면 이런 비슷한 만화 캐릭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건 내가 가진 몇 가지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추잡스럽게 입, 똥구멍, 혹은 신체의 어떤 구멍에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내뱉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헌터들이 사용했던 ‘구속구’와 비슷한 마도구로, 턱시도의 소매에 내장된 방출기를 통해, 닿으면 거미줄이 그물처럼 퍼져 나가는 구슬을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마취 기능도 추가할 수 있으니ㅡ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대상이 가진 마나의 양, 혹은 마물의 정보를 대략적으로 스캔하는 마도구(스카우터인가?), 옷이 찢어져도 스스로 복구하는 자가 복구 시스템 등등 유용한 기능이 많았다.

이마저도 프로토 타입이며 원장님은 내가 가진 마나의 특징에 따라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기능 확인 다 했죠? 준비하세요. 거수들의 세계로 갑니다. 너무 먼 곳이라 이동까지 꽤 오래 걸리니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해요.”

거수들의 세계는 위험하여 포근이와 야옹이는 데려가지 못했다.

차원을 넘나드는 게 처음은 아니나 여전히 이질적이고 감탄스러웠다. 공간이 무너지며, 온통 밤바다처럼 검어진 세계에서 나와 그녀만이 유영한다.

이내 버틸 수 없는 중압감과 박탈감이 느껴졌다. 따스한 손길, 즉 내 어깨를 감싼 그녀가 손이 아니었다면 진작 이 고통에 가까운 혼란스러움에 물들어 죽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이.

지구에 생겨난 공간의 균열을 통해 이계의 존재들이 침범하는 것.

어떤 이계의 존재들은 지구를 낙원이라 부르고, 날개 달린 사람들은 발할라, 아가미가 달린 자들은 아프수라 불렀다.

모두 파라다이스와 같은 뜻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지구는 그냥 지구다. 낙원 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왜 이계인들은 계속하여 지구로 넘어오는 걸까? 우딸리깔딸리와 오우거, 그리고 샨족 등은 지구에서도 최하층 서민에 불과한데.

전이는 더욱 커진다고 한다.

전에 원장님에게 물어봤을 땐, 그녀는 전이에 끝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전이가 끝나면, 결국 지구는 이계라 불리는 다른 세계들과 하나가 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전이가 끝난 후의 세계는 지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정 씨.”

애초에 전이는 왜 일어난 거지?

이계인들은 소수였다.

그러나 인류가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1,000년의 역사보다 더 많다. 하지만 전이가 계속 진행된다면…….

“다정 씨!”

지구는 정말 어떻게 되는 거지?

인류는 어떻게? 이계인들이 지구인보다 더 많게 된다면, 그때도 사람을 지구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니 만약 대비를 한…….

“으악!”

순간 골이 흔들려 뇌가 툭 떨어졌다고 착각할 만큼 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뜨자 날 보며 싱긋 웃는 원장님이 보였다.

“정신 차리세요. 도착했어요.”

“아우, 아파라.”

차원 이동의 여파를 이겨내기 위해 상념에 젖어든다는 게 그만 주변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의식 속으로 깊게 빠진 것 같다.

‘유치원 사건’ 이후 생겨난 안 좋은 버릇 중 하나다. 끝도 모르는 상념, 요즘엔 잠잠했으나 강렬한 의문 때문에 버릇이 도졌구나.

“…이곳이 이 녀석의 고향입니까?”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히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마치 장난스러운 소설가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다.

“전이가 계속되면 지구가 달라진다고 했잖아요? 만약에 이런 꼴로 변하면 어쩌죠?”

“걱정 마세요.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예요.”

“농담이라고 믿고 싶어요, 원장님.”

우선 거대한 새가 보였다.

그 새의 날개는 하늘을 덮을 만큼 컸다.

하지만 이윽고 또 다른 새에게 잡아 먹혔는데, 그 새는 또다시 다른 새에게 잡아먹히고, 잡아먹은 새는 유유히 하늘을 떠돌다 어딘가에서부터 솟구친 ‘촉수’에 의해 돌돌 묶인 채 순식간에 지하로 끌려갔다.

“축하해요. 인류 최초로, 무량성계無量星界의 중심에 발을 디뎠네요!”

앗, 원장님이 말하는 사이 산山이 움직인다. 알고 보니 달팽이였네.

*

조금은 기대했다.

내 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거수의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딴 능력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이럴 거면 굳이 내가 따라올 필요가 있었나?

“꼭!”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외쳐야 했다.

“이렇게! 가야만! 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가죽을 진동시키는 격한 기류에 정신도 차리기 힘들다.

난 드래곤으로 변한 원장님의 발톱에 붙잡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녀는 날 꽉 움켜쥔 채로, 마치 전투기같이 맹렬하게 비행했다.

멀미는 둘째치더라도 극한에 처한 상황이다. 그나마 턱시도 안에서 꿈틀거리는 새끼 거북, 녀석과 교감하여 늘어난 마나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이곳은 위험해서 따로 떨어지면 안 돼요.”

“아니! 다른 방법! 없어요?”

“설마 내 가디언을 등에 태우겠어요? 안 되죠. 절대 안 될 일이야.”

드래곤이 안 된다는데 어쩌겠는가.

고개만 숙일 수밖에.

어휴, 이곳은 개천도 이상하네.

왜 노랗고 거품이 일어나?

졸졸졸-!

앗, 개천인 줄 알았는데 괴물이 누는 오줌 줄기였네!

*

점점 익숙해질수록 이 세계가 확실히 지구와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니, 지구와 비교할 게 아니다.

전이 이후, 지구도 충분히 괴상망측했으나, 이 세계는 보다 기괴하며 몽환적이며 초현실적이었다.

거대한 초콜릿 공장이나 바다 속 파인애플 집, 혹은 단춧구멍 가족들처럼 기이한 상상력이 결집된 세계다.

숲처럼 보이던 곳이 무언가의 수염이었고, 거대한 호수는 어떤 짐승의 발자국에 고인 물웅덩이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태풍엔 고기 썩은 내가 진동을 했는데, 이내 짐승의 트림인 걸 깨달았다.

거대하고 신비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세계에 압도당하여, 처음엔 볼멘소리를 내던 난 시간이 지나자 원장님의 발톱에 스스로 매달리게 되었다.

거수들은 교감도 통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내가 들고 있는 ‘끈’은 작고 빈약한데, 녀석들의 담장은 너무 높고 커다래서 담장 너머로 던질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목적지는 이 넓은 세계, 어딘가에 있을 바다였다. 대륙 거북의 무리가 있는 곳은 원장님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만큼 빨리 비행해도 거대한 나무들로 빽빽한 울창한 밀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이동 마법을 쓰면 편하겠으나, 원장님은 이곳의 세계가 무척이나 넓고 방해물이 많아 쉽게 이동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마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만약 좌표가 어긋나면 미아가 되는데, 제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길을 찾는데 며칠은 걸린다며, 자기는 몰라도 난 확실히 죽을 거라고 경고했다.

‘아직까지 이런 세계가 지구에 전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대륙 거북, 녀석들의 존재만으로 지구는 재앙이라 부르며 시름시름 앓지 않았던가?

그런데 대륙 거북이가 작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마물들이 지구로 전이한다면, 세계 멸망이 그리 먼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

한참을 원장님한테 대롱대롱 매달려 날아가고 있을 때였다.

처음엔 먹구름인 줄 알았다.

“원장님! 저거, 저거!”

자세히 보니 날벌레다.

모기, 파리, 초파리.

비슷하게 생겼으나 크기는 100배… 1,000배… 모르겠다. 아무튼 무지막지하게 크다.

거대한 날벌레들의 무리 이동이 먹구름처럼 느껴진 것이다.

휩쓸리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간다. 잘은 몰라도 저 거대한 모기에게 물린다면 빨갛게 부어올라 간지러워 벅벅 긁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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