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4화 (44/258)

# 44화 거북 (3)

저놈의 주둥이가 나보다 크다.

한 번 쭉 빨면 내 피는 단번에 한줌 남기지 않고 빨릴 거야.

“어떻게 해요! 휩쓸리겠어요!”

원장님을 대차게 불렀으나 묵묵부답이다.

드래곤이기에 그녀를 믿긴 하지만 점점 날벌레 무리와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상상은 증폭되고, 비명은 절로 새어 나왔다.

“꺄아아악!”

가까이서 보니 더 잘 보인다.

녀석들 생긴 것 좀 봐!

둥그런 빨판 같은 주둥이에 물린다면 젤리처럼 먹히고 말 거야.

눈을 찔끔 감고 충돌을 기다렸다.

마침내 휩쓸렸다고 생각할 때였다.

화르르!

귓가에 들리는 무언가가 타는 소리, 그리고 지독한 냄새.

날벌레 무리는 순식간에 화염에 삼켜져 재가 되어 흩날렸다.

역시 드래곤이다.

잠시 비행을 멈춘 원장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레들을 해치웠다.

“원장님?”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녀, 고개를 쭉 빼 표정을 살피던 난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이 세계에서 기괴하고 거대한 몬스터들을 많이 봤으나, 단연코 지금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그녀였다.

평소에 온화하던 원장님은 온데간데없었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살벌함은 기세만으로 날 죽일 것 같았다. 심지어 저 타오르는 적의가 날 향한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치스럽네요.”

가끔씩 느꼈다.

‘만약 화내면 엄청 무섭겠다.’

진짜다.

지금까지 내 처세술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짜 무섭다.

“아무리 잊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감히 날 먹잇감으로 여기다니.”

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덤벼든 이곳의 생명체들에게. 비록 어떠한 상처도 주지 못했으나 그 자체만으로 수치스러운 것 같았다.

“오래 있을수록 점점 건방지고 오만한 녀석들이 덤벼올 거예요. 난 이곳을 멸하러 온 게 아니니, 단번에 격파할 겁니다. 준비하세요, 다정 씨.”

뭘 어떻게 준비하라고?

오들오들 떨리는 몸으로 발톱에 찰싹 매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원장님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복부가 풍선처럼 부풀었고, 이윽고 그녀는 입으로부터 ‘불’을 뱉었다.

드래곤 브레스다.

드래곤이 지구인들에게 용의 공포를 단단히 각인시킨 건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충분했다.

후에 드래곤 브레스라고 불리게 된 사건, 화난 드래곤이 숨결만으로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린 사건.

콰카캉-!

평범한 ‘불’이 아니다.

마치 공상 과학 애니메이션에나 볼법한 ‘레이저’ 같았다. 순식간에 불꽃은 끝없이 뻗어나가 그녀를 가로막은 모든 걸 불태웠다.

산이 대체 몇 개나 날아간 거지?

“저래도 되나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진짜 저래도 되는 건가?

“어차피 이 세계에선 별일 아니에요. 그저 건방지게 ‘매복’하고 있는 놈들을 혼내 줬을 뿐.”

‘아니, 저런 힘을 어떻게 내뿜냐고.’

난 다른 의미로 물어봤으나, 그녀는 어림잡아 여섯 개의 산에 구멍을 낸 것에 대해서 대답했다.

원장님의 말대로 매복하고 있는 괴물들이 있었다. 불타는 산에서 아직까지 파닥파닥 거리는 괴생명체들이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에게 덤빈 대가는 참혹했다.

‘처음 봤어.’

용이 가진 진정한 힘을 목도했다.

난 앞으로 그녀 앞에서 더 겸손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소문으로 듣던 것과, 실제로 마주본 것은 달랐다. 오히려 소문이 축소된 거였다.

거수들의 세계에 처음 넘어왔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드래곤조차 방심해선 안 되는 세계라고 했던가?

‘농담도 참.’

뭐가 방심하면 안 돼?

혼자 다 패 버리고도 남을 것 같은데.

*

산중호걸山中豪傑, 호랑이가 포효하면 백 리 밖의 산짐승들도 두려움에 떤다.

원장님의 경고는 확실히 먹혔다.

밀림을 지나 마침내 푸른 바다의 수평선이 보일 때까지 거수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거수들의 세계에서도 호랑이는 그녀였던 것이다.

바다에 도착하고 나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며 쉬고 있을 때, 빨간 머리카락의 미녀로 돌아온 원장님이 다가와 내 등을 툭툭 두들겨줬다.

“그래도 ‘큰 놈’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큰 놈이요? 그럼 지금까지 마주친 놈들은 작은 놈이었어요?”

고층 빌딩만 한 크기의 괴물들이 큰 놈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까 지나쳐온 밀림은 이 세계에선 작은 풀숲에 지나지 않아요. 정말 큰 놈은 ‘바다 너머’에 있죠.”

대체 이 세계의 ‘크다’의 기준은 뭐지? 궁금하긴 하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주둥이가 내 키만 한 모기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으니까.

해안선의 모래사장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당연히 원장님은 멀쩡했으나 내가 너무 힘들었다.

앉아서 멍하니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진정하고 있을 때, 품 안의 새끼 거북이가 아등바등 거리며 기어 나왔다.

녀석은 고개를 쭉 빼더니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나도 녀석과 같은 곳을 바라본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가족을, 무리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날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저 딱 한 번, 녀석이 태어났을 때 말을 걸었다. 그 이유로 날 엄마라고 생각하며 차원을 넘어 찾아왔다. 분명 녀석은 진짜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네 엄마 아니라니까.”

내가 부정하자 그 순간, 녀석에게서 가슴이 시큰거릴 만큼 슬픔과 비참함이 느껴졌다.

진짜 어미가 아니더라도,

녀석에겐 난 유일한 어미였다.

그런데 난 밀어내기만 하니 녀석은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와 같구나.’

지금 녀석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 나에겐 익숙한 것이다. 고아, 태어날 때부터 가족도 없는 외톨이.

“외로워하지 마. 내가 엄마가 아니더라도, 넌 혼자가 아니야. 진짜 가족을 만난다면 나 같은 건 곧바로 잊어버릴 거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나와 다르다.

그래, 난 찾을 가족이 없지만 녀석은 있다.

“자, 가자. 네 엄마 찾으러.”

그 사실이 살짝 부럽기도 하네.

*

“바다 안에는 어떻게 가죠?”

원장님에게 묻자, 별일 아닌 듯 내게 삿대질을 하더니 이내 난 거대한 물방울에 갇히게 되었다.

“아, 이렇게요? 근데 바다 안에는 육지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지 않을까요?”

내 걱정에 원장님은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듯 날 붙잡고 바다로 질질 끌고 가며 대답했다.

“오히려 안전해요. 불가지해의 바다는 한때 마담의 보금자리였거든요.”

“마담이라면…….”

“고양이 아줌마요.”

그렇다면 안전한 거겠지.

바다는 역시나 깊고, 넓고, 웅장했다. 산호는 육지의 산만큼 크게 자라났고, 언뜻 보이는 조개들은 인어공주의 궁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크고 웅장했다.

원장님은 대륙 거북의 귀소 본능을 이용해서 녀석의 무리를 찾아 나섰다.

‘장관이야. 무섭다기보다 경이롭네.’

대륙 거북의 무리는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구에 알을 낳기 위해 스무 마리가량 대륙 거북이 왔을 때, 그 여파로 발생한 해일로 지구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대륙 거북은 어림잡아 수십 마리,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깊은 바다를 헤엄치는 대륙 거북이들이었다.

엄청나게 가파른 해류가 생겼으나 원장님의 마법으로 인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원장님과 난 조용히 무리를 따라갔다.

[엄마?]

품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새끼 거북이가 고개를 내민다.

원장님은 새끼 거북을 조심히 안아들더니, 무언가를 읊조리며 무리를 향해 부드럽게 밀었다.

그 순간, 새끼 거북은 다시 거대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대륙 거북 무리들은 헤엄을 멈추고 일제히 우릴 바라봤다.

[엄마!]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거대해진 새끼 거북은 지느러미 같은 다리를 세차게 놀리며 제 무리를 향해 헤엄쳤다. 무리 중에서도 한 마리가 이탈해 새끼를 마중한다. 아마 녀석의 어미겠지.

다행이야.

[엄마.]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녀석은 다시 뒤돌아봤다. 여전히 날 향해 엄마라고 부른다.

끈질긴 녀석이야.

“바보 녀석아, 네가 찾던 엄마가 저기 있잖아. 빨리 가 봐.”

머뭇거리더니, 이내 다시 무리를 향해 헤엄친다.

하지만 제 어미와 마주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뒤돌아봤고, 그때마다 난 교감을 최대로 발동하여 외쳤다. 저기 있으니, 빨리 가 보라고.

마침내 제 어미와 마주한다.

서로의 냄새를 맡는 듯 가까이 붙어 둥글게 헤엄치던 그들은 이내 같이 헤엄치며 무리로 돌아갔다.

더 이상 녀석은 뒤돌아보지 않았고, 날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대륙 거북 무리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봤다.

거북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원장님이 말했다.

“돌아가죠, 다정 씨.”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새끼 거북이가 가족을 찾아서?

아니면 내겐 돌아갈 가족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아서?

모르겠다.

“다정 씨.”

원장님이 불러도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할 수 없었다.

“…가슴 주머니에 행커치프가 있어요.”

난 한참 동안이나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

휴일을 앞두고, 난 원장님에게 마나 검사를 위한 검사 비용을 청구했다. 가디언이 되는 조건으로 드래곤의 재량에 의한 사내 복지를 약속했으니 뭐라 하지는 않겠지.

“그건 안 돼요.”

“네.”

설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이야. 하지만 난 군말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직까지 브레스를 쏘던 장면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수들의 세계에서 돌아온 후 새끼 거북과의 교감은 완전히 끊겼으나, 여전히 몸은 이전보다 좀 더 ‘풍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마나 등급이 높아진 것 같아 검사를 받아보고자 했는데, 할 수 없이 내 돈으로 해야 될 것 같다.

“내가 해 줄게요.”

“원장님이요?”

얌전히 퇴근하려던 난 이어진 원장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직접 내 마나를 측정해 준다고 하였다.

그러며 날 그녀의 비밀 실험실 중 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엔 측정소의 검사 기기와 비슷했으나 보다 간결하고, 작아진 기계가 있었다.

검사도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검사는 마물원에서만 해요. 귀찮은 건 싫을 테니까요.”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요?

“인간이 정한 규격대로라면, 5급이네요.”

대륙 거북은 물론, 포근이와 교감하지도 않았다. 전에 쟀을 땐 내 순수한 마나의 양은 기껏해야 9등급, 최하였다.

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거지?

마나 등급은 전이 이후 지구에서 인간의 가치를 정하는 가장 편하고 확실한 등급표였다. 그러니 기쁘긴 하나, 이유가 궁금했다.

“그릇이 확장되었어요.”

물어보지 않아도 원장님이 궁금증을 풀어 줬다.

“잠시나마 대륙 거북의 마나를 가지고 거수들의 세계에서 지냈으니 마나가 확장된 거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마나가 늘어난 건 좋다. 하지만 마나가 늘어남에 따라 내 능력, ‘교감’은 어떻게 변하는 거지?

“마나가… 보통 능력자들은 마나가 늘어나면 고유 ‘능력’이 강해진다고 하잖아요? 전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글쎄요. 다정 씨의 마나가 가지는 특징이 마물들의 힘을 빌려 오는 것이니, 앞으로 더 강한 마물들에게서 더 많은 힘을 빌려올 수 있게 된다던가? 어쨌든 축하할 일이네요. 제 가디언으로서 점점 격을 갖추고 있는 거니까.”

*

어느 날, 원장님이 내게 물었다.

“다정 씨.”

“네.”

“부먹? 찍먹?”

…….

뭐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