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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5화 (45/258)

# 45화 편식

“네?”

당황스러워하며 되묻자 원장님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떤 마물이 말썽인데 아무래도 부먹과 찍먹 때문인 것 같거든요.”

원장님의 질문은 마물에 관련된 것이었다.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다. 혹시라도 세계의 난제인 ‘탕수육을 찍어 먹느냐, 부어 먹느냐’를 드래곤으로부터 듣게 되었다면 난감할 뻔했다.

난 찍먹파인데 그녀가 부먹파라면, 내 신념을 접어야 했겠지.

원장님이 말했다.

“최근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물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녀석들은 마츄와 비슷한 성격이라서 걱정하지 않았거든요.”

원장님의 근심은 이러했다.

마물을 위한 환경을 조성했는데 며칠 동안 괜찮다가 최근 들어 두 무리로 나눠지더니 서로 박 터지게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두면 분명 죽는 개체도 나올 건데, 도무지 뭣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녀석들이 불편해하는 게 있을 터인데 꼭 집어내기 힘드네요.”

“어떤 마물이기에 부먹, 찍먹이랑 연관된 거예요?”

“훔바바다 기억하시죠?”

“네, 그 잘난 척하던 원숭이들.”

녀석들이 일제히 허리를 내밀며 자신만만해하던 모습을 어떻게 잊을까? 사람으로서, 남자로서 패배한 날이었는데.

“녀석들과 같은 세계에 살던 마물인데 보다 기괴한 습성을 지닌 녀석들이죠. 되도록 비슷한 환경을 조성했으나 난항을 겪고 있네요.”

원장님이 부먹, 찍먹이라 말한 이유가 있었다. 녀석들의 이름은 ‘코쿠라차 여우원숭이’, 매뉴얼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

크기: 몸길이 80cm~1.1m, 꼬리 길이 2.1m

몸무게: 10kg ~ 15kg

서식 장소 : 울창한 밀림

먹이: 작은 벌레나 과일

관리 난이도: ? [데이터가 부족하다.]

훔바바다가 고릴라였다면, 녀석들은 얄상하게 생긴 여우원숭이들이다. 꼬리의 길이는 제 몸의 두 배고, 항상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작은 벌레 따위를 잡아먹는다.

훔바바다와 마찬가지로 살던 세계가 멸망하고 강제로 지구로 전이당한 마물이며, 원장님에게 발견되어 세간에 알려지기 전에 마물원으로 들어오게 된 녀석들이었다.

언뜻 평범한 동물 같았으나 원장님의 이어진 설명에 과연 마물은 마물인가 싶었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은 잡식이지만 모든 음식을 특별한 나무의 수액과 같이 먹어요. ‘코쿠라차’라 불리는 나무죠.”

그래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라고 이름을 지은 건가?

“왜 그런데요?”

“녀석들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킬 때 강한 산성액을 항문에서 뱉어 내요. 하지만 정작 음식물을 녹이는 위액은 분비하지 못해서 코쿠라차 수액이 아니라면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죠.”

마물답게 기괴한 녀석들이다.

“코쿠라차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은 강산성, 하지만 유기체는 녹이지 않아요.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은 나무의 수액을 위산 대신 이용하고, 나무는 배설물로부터 양분을 얻어요. 신비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이죠. 하지만…….”

원장님의 말을 듣지 않아도 왠지 ‘부먹, 찍먹’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 코쿠라차 나무 수액을 탕수육 소스라고 치자. 그리고 코쿠라차 원숭이들이 먹는 음식은 탕수육 고기다. 서로 뗄래야 뗄 수 없겠지. 문제는 먹는 방법이다.

“하지만 먹는 방식에 따라 두 무리로 나눠졌어요. 그 모습이 지구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부먹’파냐 ‘찍먹’파냐의 차이 같아요.”

진짜다.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

그것 때문에 피터지게 싸우는 가련한 생물이 ‘인간’말고 또 있을 줄이야!

기이하게도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배척하고 싸운다고 하였다. 원장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며 진짜 원인이 식성 때문인지 나더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난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거참, 더럽게도 할 짓 없는 마물들이네.

*

이번에는 다행히 홀딱 벗고 덜렁거릴 필요가 없었다. 녀석들은 훔바바다에 비하여 배타적이지 않았다.

첫인상은 원장님의 우려와 달리 착하고 순한 느낌을 받았다. 마츄처럼 겁이 많아 하마터면 녀석들의 똥꼬에서 발사되는 산성액을 맞을 뻔했으나, 더럽고 아픈 꼴을 보기 전에 교감을 통해 내 무해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노력하지도 않아도 전보다 더 잘 들려.’

보다 쉽게 무리로 받아들여졌다.

녀석들이 가진 마나가 적고 순한 생물이긴 하지만 난 확실히 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장님이 추측하길, 마나가 늘어나면 보다 교감의 힘이 강해질 거랬지. 아직 확신할 수 없으나 정말인 것 같다.

녀석들과 같이 지내며 생태를 관찰했다. 원숭이들처럼 털을 골라 주거나 장난스러운 교미 활동(난 안 했다.) 등 평범한 행동들 중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녀석들을 항상 나무 위에서 지내며 벌레나 나무 열매 따위를 먹었다.

“나 주는 거야? 고마워.”

코쿠라차 원숭이 중 한 녀석이 고목에 붙은 매미를 잡아다가 내게 건넸다. 먹이 활동을 하지 않는 날 걱정하는 듯했다.

“이제 싸우는 걸 봐야 하나.”

내가 있는 무리는 ‘찍먹파’다.

먹이 활동이 끝났으니 숲 중앙에 자리한 코쿠라차 나무에 가서 사냥한 음식을 먹겠지.

코쿠라차 나무가 자라나는 곳은 이 숲에서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원장님 말로는 코쿠라차 나무는 대단히 희귀한 데다가, 번식할 수 있는 유일한 생태계가 멸망하는 바람에 단 한 그루만을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환경 조성이 성공하여 번식한다고 하더라도 수액을 뱉을 만큼 자라나려면 100년이 넘게 걸려, 지금으로선 찍먹파와 부먹파가 하나의 ‘소스’를 두고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감이 장난 아니야.’

점점 코쿠라차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원숭이들은 잔뜩 긴장하며 난폭한 기세마저 풍겼다.

‘저 너머에서도 느껴지는군.’

서로 식사 시간을 달리하면 마주치지 않아서 괜찮을까 싶었으나, 워낙 자주 밥을 먹는 놈들이라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딱딱 정해진 시간에 기가 막히게 밥을 먹는다. 끼니는 정말 잘 챙기는 녀석들이야.

점점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마침내 눈으로도 ‘부먹파’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코쿠라차 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무리가 마주하며 폭풍 전야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장난이 아니다.

이 녀석들, 진심이다.

진심으로 같은 종족을 경계하고 적대하고 있다.

마침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한 마리가 무리에서 뛰어나와, 코쿠라차 나무 아래에 고인, 정말 탕수육 소스처럼 진득한 수액 웅덩이를 향해 손에 쥔 음식을 ‘담갔다.’

부어 먹기보다 담가 먹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그 모습이 ‘찍먹파’의 심기를 상당히 건들인 것 같았다.

꺄꺄꺅-!

꺅꺅-!

찍먹파, 꼬리를 찰싹찰싹 지면에 내려치며 불편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부먹파의 원숭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액이 잔뜩 묻은 먹이를 꿀꺽 삼켰다.

그 뒤로, 이제 찍먹파에서 두 마리의 원숭이가 은밀하고 긴장된 몸놀림으로 수액 웅덩이를 향해 기어갔다.

녀석들은 손에 쥔 벌레를 웅덩이에 살짝 찍어 먹었는데, 과연 두 무리 간의 차이가 있었다.

한 마리는 괜찮아도,

두 마리는 아닌가 보다.

끽끽-!

마침내 폭발한 원숭이들은 성난 나머지 똥구멍으로 산성액을 뿜어 대며 서로서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밥상머리 교육도 못 받은 것들아!”

당연히,

받았을 리가 없다.

마물인데 어떻게 받아?

“먹을 땐 좀 조용히 먹자!”

하지만 녀석들을 뜯어말리며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찍어 먹든가 부어 먹든가 뭔 차이가 있다고 서로 못 잡아먹어 지랄들인가?

그 뒤로 두 시간마다 먹이 활동이 벌어졌는데 설득하고, 협박하고, 때려도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원장님을 부르면 ‘드래곤’ 앞에서 잔뜩 겁에 질려 아예 먹지를 않았다.

후우, 골치 아픈 녀석들이다.

*

전쟁 같은 식사 시간이 끝나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다. 녀석들은 생물의 본능에 충실했다.

먹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어쩌면 이지를 가진 종족과 그 외의 생물의 차이점을 따지자면 이 물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교감한 동물과 마물들은 먹기 위해서 살았다.

특히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은 식생활에 투철했다. 녀석들은 대부분 먹이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벌레나 열매 등을 채집하는 먹이 활동 후, 코쿠라차 수액과 같이 먹는다. 몇 시간마다 반복되는 식습성은 무척 단조로웠다.

어쩌면 그렇기에 단순히 먹는 방식의 차이에 이처럼 열렬히 반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성해야겠어.’

이제 탕수육에 소스를 붓는다고 하더라도 무어라 하지 않으리.

“또 주는 거야? 고마워!”

깊은 깨달음을 얻은 내게 또다시 코쿠라차 원숭이 한 마리가 잡아온 매미를 내밀었다. 내가 어지간히도 무능해 보였나 보다.

녀석이 건넨 매미는 아직까지 살아 있어 맹렬하게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껍질의 촉감이 무척이나 딱딱했다.

‘이런 게 맛있나?’

지금 난 녀석들과 교감하고 있었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식성이 발휘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내가 인간임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는 수준이기에 먹음직스러운 매미라도 입에 가져가진 않았다.

하지만 군침이 돈다.

무척이나 바삭바삭할 것 같아.

“아!”

순간 번뜩 생각났다.

애초에 부먹파와 찍먹파로 나뉜 이유, 사람들은 왜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지? 왜 난 부어 먹는 탕수육을 싫어했지?

정답은,

‘눅눅하기 때문에.’

녀석들의 먹이 활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매미, 풍뎅이, 딱정벌레 등 단단한 갑각을 가진 곤충들을 잡는다. 열매로는 잘 익은 바나나는 손에 대지도 않고 사과와 비슷하게 생긴 딱딱한 열매만을 딴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모습을 숨기고 ‘부먹파’ 무리를 염탐했다.

이미 난 녀석들에게 적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식감이 부드러운 것들이야.’

물컹거리는 과일, 녹진녹진한 액을 내뿜는 애벌레, 잘 익은 바나나…….

찍먹파와 전혀 반대되는 먹이들이다.

난 당장 원장님에게 연락했다. 무리마다 한 마리씩 잡아다가 원인을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똑같은 소화기관과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즉, 신체 기관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바나나와 사과.”

실험은 간단했다.

교감을 하며 ‘찍먹파’ 무리의 원숭이에게 부드러운 과일을, ‘부먹파’ 무리의 원숭이에게 딱딱한 과일을 먹으라고 건넸다.

하지만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하는 녀석들이 지금 상당히 배를 굶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가지를 싫어하는 것처럼 먹을 수는 있으나, 먹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단지 맛이 없어서. 혹은 맛없다고 생각해서.

“정말 단순히 식성 차이였구나.”

세상에, 편식 때문에 드래곤을 골탕 먹이다니 대단한 마물이라고 생각했다.

*

‘편식이라…….’

내키지 않은 방법이 떠올랐다.

주로 엄한 부모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만약 내 아이라면 절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고아원에서, 김치를 안 먹는다고 열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던 경험 때문이다.

먹을 것과 관련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필히 죽어 나가는 개체가 생길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장님에게 부탁해서 두 무리의 식사 시간과 먹이를 강제로 조절했다. 급식제를 시행한 것이다.

녀석들이 즐겨 먹던 음식들과 반대로 지급했다. 찍먹파에겐 물컹한 먹이를, 부먹파에겐 단단한 먹이를.

처음엔 먹이를 혐오스러워 하며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무를 옮겨 가며 지내는 놈들이라 대사량이 높았다. 그렇기에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하는 터라 하루가 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찔끔찔끔 먹기 시작했다.

‘김치를 강제로 먹던 내 어린 모습이 저랬을까?’

여전히 싫어했으나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먹는다. 녀석들 중에 무난하게 먹이를 섭취하는 개체도 있었다. 대부분 어린 개체들이다. 아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다른 먹이를 먹고자 시도해 보지 않았던 거겠지.

그러나 대부분의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번갈아 가면서 좋아하는 먹이, 싫어하는 먹이를 급식했으나 오히려 식성의 양극화는 줄어들지 않았다.

난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

몇 주후,

합사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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