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김치를 강제로 먹이지 마
비참한 결과다.
스트레스만 잔뜩 쌓여 가던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은 심지어 금식 증상까지 일으켰다.
먹기 위해서 산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들에게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아 버린 거야.
원장님은 더 이상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대로 놔두고 싸우는 걸 최대한 막는 쪽으로 절충해야 되겠네요.”
…….
면목이 없다.
“괜찮아요. 다정 씨. 한 번의 실패에 울적해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빛바래지잖아요.”
지금까지 마물에 관련된 일들은 언제나 잘 풀렸다. 심지어 헌터들과 엮였던 일들조차.
쉽사리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는 건 괜한 고집일까? 그래도 마물원에서 일하며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사실 난 원장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제가 해결할게요.”
그녀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물고 눈썹을 찌푸리며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어떻게요? 타고난 식성을 바꿀 방법은 없어요.”
“제가 직접 마물 원숭이가 돼서, 녀석들이 원하는 먹이를 찾을게요. 부먹파와 찍먹파, 두 무리가 만족할 수 있는 먹이를요.”
원장님은 회의적이었다.
날 보는 그녀의 빨간 눈동자엔 걱정이 깃들어 있다.
“괜찮겠어요? 다정 씨, 깊은 교감을 나누면 변할 거예요.”
내 방법 때문에 녀석들이 괴로워했던 모습을 생각하자, 내게 강제로 김치를 먹이던 교사가 떠올랐다.
자기 편한 대로 해결 방법이라며 제시한 게 김치를 먹을 때까지 괴롭히는 거라니.
“감내해야죠.”
그때의 교사처럼 굴긴 싫다.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걸 다 해 볼 생각이다. 난 녀석들에게 가장 맛있는 김치를 찾아 줄 생각이었다.
괜한 고집이라고 하더라도,
내 인생에서 마물 원숭이의 식성 따윈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비겁하게 굴긴 싫었으니까 말이다.
*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어,
마물과 깊은 교감을 나누면 때론 스스로의 정체에 대하여 고민도 하기 전에, 지독히 강제된 본능에 휩쓸리곤 한다.
내장이 비틀린 것 같다. 녀석들의 굶주림은 믿을 수 없었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잡히는 대로 벌레를 쥐었다.
그리고 본능대로 코쿠라차 나무의 수액과 같이 집어삼켰다.
깊은 교감으로 인한 형질의 변화, 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처럼 스스로 위액을 생산하지 못했다.
녀석들과 같았다.
벌레나 열매 따위를 수액과 같이 먹는다. 하지만 목적은 잊지 않았다.
단단한 갑각충, 부드러운 애벌레, 나비, 사마귀, 콩벌레, 개미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 코쿠라차 수액에 찍어 먹고, 담가 먹었다.
‘확실한 차이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은 대단한 미식가였다. 찍어 먹거나, 부어 먹거나, 단단하거나, 물렁하거나. 그 식감의 차이가 섬세하게 혀를 자극했다.
그리고 난 섬세한 미각으로 부먹파와 찍먹파의 식성, 그 사이에 존재하는 먹이들을 골라냈다. 미묘하다는 건 둘 다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과와 같은 과일은 수분기가 많아 식감이 부드러웠으나 톡톡 터지는 맛도 있다.
내장은 부드럽고 껍질은 단단한 나비의 유충이나, 또한 이름 모를 곤충들에게서 양쪽 무리의 미각을 만족시킬 답을 찾았다.
그 외에 코쿠라차 여우원숭이, 대단한 미식가들을 위해 환경 조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느꼈다.
내가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라면 필요한 것들, 나무가 더 필요해. 먹이 활동 외에 관심을 둘 놀이가 더 필요해.
코쿠라차 나무도 문제였다.
원장님은 코쿠라차 나무가 시들지 않길 원했던 것 같았다. 유일한 나무가 없어지면 여우 원숭이들도 멸종할 테니.
하지만 단 한 그루의 나무에 과잉된 영양소 덕에 수액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탕수육 소스, 너무 맛있는데 자극적이라 계속 먹고 싶어진다. 왕성한 먹이 활동엔 ‘맛’도 중요했던 것이다.
며칠 동안 벌레나 과일 따위를 주워 먹으며 철저하게 녀석들이 되어 생활했다.
원장님은 내 의견을 즉시 수용했다. 코쿠라차 나무에 걸어 놓은 각종 성장 마법을 최소치로 제한하고 부먹, 찍먹파의 식성에 중간에 존재하는 먹이의 수를 늘려갔다.
그러길 며칠 째,
마침내 두 무리는 코쿠라차 나무 수액을 두고 싸우지 않았다.
아직까지 슬금슬금 눈치는 보나 식성에서 오는 적대감은 없었다.
녀석들은 본래 하나의 종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합사하겠지. 녀석들은 이 숲에서 유일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들이니까.
*
배가 쓰리다.
교감을 멈추어도 벌레와 열매를 먹으며 인간을 벗어난 삶을 며칠 동안이나 보낸 건, 꽤 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원장님은 항상 그렇듯, 내가 무언가를 해 냈을 때 보이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다정 씨. 제가 아무리 환경을 조율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생태를 만드는 건 무리였어요.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정 씨, 정말 최고야.”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용’에게 칭찬을 받는 건 기분이 좋다.
난 씨익 웃으며 지금이라면 100% 통할 제안을 했다.
“특별 수당금은 당연히 있겠죠?”
“에이, ‘우리’가 하루 이틀 지냈나? 당연히 먼저 입금했죠.”
*
그날 밤, 특별 수당금으로 작은 건물이나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잠에 들었던 난 지옥을 경험했다.
배가 아프다.
속이 이상하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봤다.
하지만 난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좌변기에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넘어지고 말았던 건, 내가 앉은 도자기 재질의 좌변기가 녹아내리고 말아서였다.
그리고 난 이내 깨달았다.
변기를 녹인 건 나였다.
젠장.
잠이 확 달아났다.
난 더럽고 수치스러워서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깊은 교감 후엔 반드시는 아니나,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남는다. 아라크네 때엔 거미줄을 토해 냈고, 황소 마물에게선 인간을 뛰어넘은 괴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로 인해서 똥구멍에서 산성액을 뿜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마물의 마나가 가진 특징 중 하나라지만, 생물의 특성을 완전히 벗어났지 않는가?
며칠 동안 똥도 제대로 누지 못하고 원장님으로부터 ‘마나 운용’에 대하여 강의를 받았다.
원장님은 결국 마물의 마나에 의해 각인된 힘이니 내가 그 마나만을 뽑아내어 다룰 수 있다면, 더 이상 산성액을 내뿜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어려웠다.
나는 마나라는 걸 평생 동안 모르다가, 마물원에서 지내면서 뜻밖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것과 조정하는 것, 모두가 힘들었다.
다행인 건 지구에서 가장 마나를 잘 이해하는 존재임에 분명한 드래곤이 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건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기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일단 난 원활한 배변 활동이 목적이었으므로 다른 거창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마침내 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의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산성액을 내뿜지 않아도 되었다. 변기를 녹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응용하여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산성을 깃들게 한다든가, 뭐 다소 전투적인 효율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쾌변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
그 후로도 마나의 운용법에 대하여 스스로 훈련하며 지냈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가 마지막이라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똥구멍으로 산성액을 내뿜던가, 거미줄을 내뿜던가 하는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했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원장님도 며칠 동안은 한가해 보였다. 헌터들로부터 마물을 수거하거나 지키는 일도 없었고, 말썽부리는 마물이나 전이당한 마물도 없었다.
“이곳이 마물원이라고 들었소.”
하지만 어느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아침에 출근하며 마물원의 허름한 대문을 열고 있던 내게, 어떤 늙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실례하오나 ‘정다정’이라는 젊은이를 찾고 있다오.”
“제가 정다정인데… 할아버님은 누구세요?”
“내 지인에게서 마물원이라는 곳을 소개 받았다오. 예고르 지질학자라는 자인데 젊은이도 아실 거요. 얼마 전, 사파리 투어에 참가했다지.”
“아…….”
기억난다.
그 꼰… 조금 깐깐하셨던 할아버지. 유럽 대학에 교수로 고용되시며 마물원에 대해 알리겠다고 하셨지. 소개를 받고 온 건가?
관람객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노인의 말에 난 황당함을 느꼈다.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는지…….”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네에?”
그가 말했다.
“젊은 나이에 마물원이라는 곳을 운영한다고 들었소! 존경하오. 비록 나보다 한참 어리나, 이제와 이 세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소? 날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오해가 있는 모양이네.
‘오늘은 원장님이 있으니까…….’
뭐,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가 잘 설명해 주겠지.
“들어오세요.”
난 그를 마물원의 관리실로 초대했다.
그러나 원장님은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반갑게 노인을 맞이하며 말했다.
“먼 길 오셨군요. 전 이곳, 마물원의 원장입니다. 또한.”
원장님은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다만 굳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드래곤이죠.”
첫 만남이 생각난다.
‘왜 이딴 동네 어귀의 허름한 마물원에서 용이 튀어 나와?’
이렇게 생각했지.
“으헉, 아니… 왜 용이… 이곳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닌가 보구나. 원장님은 용으로 변해 노인을 맞이했다. 붉은 비늘의 타오르는 빨간 동공, 거대한 날개.
압도적인 존재감.
기겁하며 뒤로 자빠진 노인은 충격에 말을 더듬다가, 원장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용… 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용 앞에서도 자기 의견을 피력하다니, 뭔가 단단히 마음먹고 온 모양이다.
하지만 노인의 간곡한 부탁에도 원장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절했다.
“싫어요.”
*
그는 마물에 관련하여, ‘교수’라고 불릴 만큼 해박한 자였다.
물론 원장님과 매뉴얼을 가진 내가 보기엔 무지한 수준이었으나, 생각보다 그는 꽤 대단한 사람이었다.
유일한 마물 보호 운동가다.
또한 마물과 관련된 지식은 이름 난 헌터들보다 더 많으며, 때문에 테러 단체나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으로부터 많은 협박과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구구절절 자기 사연을 설명하더니, 부디 마물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예고르로부터 들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크기의 사파리도 운영하시니, 아니 드래곤이신 것만으로도 저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가지신 분이시겠죠. 부디 절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침을 주십시오.”
“싫어요.”
원장님은 또다시 거절했다.
그러자 노인은 침울해져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드래곤 앞에서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난 놀라웠다.
대단한 결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감히 드래곤이 거절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진 못하겠지.
그 뒤 몇 가지 대화가 오고 갔다.
그가 ‘지식’을 원한 건,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마물들에 대해서 알고, 앞으로도 지켜 주고 싶어서였다. 마물 보호 운동가답게 숭고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마물을 위한 우리를 조성해 줄 수 있을까?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드래곤’처럼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가 아니고서야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원장님은 대신에 그가 보호하고 있는 마물들을 위탁받기로 했다.
원장님의 제안에 고민하던 노인이었으나 나와 같이 ‘마츄’와 ‘마물 사막’ 그리고 ‘훔바바다’의 우리를 직접 경험하고 나자 흔쾌히 마물들을 맡기기로 했다.
원장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물들을 찾아왔다. 꼬리 달린 마츄, 작은 포포코 쥐 등 비교적 관리하기 쉬운 마물들이었으나, 그래도 개인이 관리하기엔 꽤 많은 수였다.
노인이 떠나고,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던 내게 원장님이 말했다.
“그는 꽤 쓸모가 많을 거예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난 흠칫 놀라고 말았다. 노인의 뒷모습을 마치 탐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원장님의 시선이 대단히 음흉했기 때문이다.
*
종족 갈등.
전이 이후 지구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당연 종족 간의 갈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