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47화 (47/258)

# 47화 갈등

인터넷 뉴스에 종족 갈등에 대한 기사거리가 하루라도 올라오지 않은 날은, 내가 알기론 없었다.

난 밥은 걸려도 인터넷 서핑은 거른 적이 없기에 확실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엔 그랬다.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다 보면 항상 종족 갈등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예전엔(불과 몇 년 전) 대서특필하던 내용의 기사가 요즘은 광고란 옆, 작은 글씨로 쓰인 한 줄 기사가 되어 버렸다.

종족 갈등으로 인한 피살이나 구타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듯했다. 적어도 건물이 무너지거나 수백 명이 죽는 테러 정도는 돼야 ‘좋아요’나 ‘화나요’가 100개 이상씩 찍힌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으슥한 밤거리, 뒷골목에서 오우거를 마주친다면 난 분명 녀석을 살인마라고 생각하겠지.

종족 갈등의 기사가 편견은 만들어 내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까?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마물과 지내며, 특히 편견 덩어리 ‘드래곤’과 지내며 때론 직접 경험하는 게, 스스로가 더 나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세간의 편견처럼 드래곤을 무서워하며 ‘실습’ 기간이 끝났을 때 미련 없이 마물원을 그만두었다면, 난 아직까지도 골방에서 가래침이나 뱉으며 살고 있었겠지.

어쩌면 오우거라고 하더라도 착한 녀석이 있을지도 몰랐다. 오물 썩는 내가 나지 않는 오우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전이 이전의 세계에선 인간 사이의 혐오가 만연했던 모양이지만 이젠 종교 갈등, ‘백, 흑, 황’만이 존재했던 인종 차별, 남녀 차별 따위는 아무런 감흥도 없게 되어 버렸다.

옆집의 샨족이 새벽마다 귀뚤귀뚤 우는 것과 작은 난쟁이들이 몰래 구두에 압정 따위를 넣지 않았을까, 그딴 것들을 걱정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점차 나아졌다고 해도 갈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갈등이 해결되고 풀리더라도, 어느새 다른 갈등이 새로 곪아 버릴 테니까.

그리고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지고 곪아 버린 갈등은 ‘인간’과 ‘이계인’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지구로 전이당한 다른 ‘이계인’들끼리의 갈등이었다.

아프리카에 정착한 어느 이계종, ‘늑대 인간’쯤으로 불리는 종족들은 서로 ‘이빨’의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하룻밤 사이 다른 무리를 멸살했다. 인간이 보기엔 털이 복슬복슬 난 같은 괴물들인데도 말이다.

이계인들 간의 갈등은 아직까지 지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류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요즘 특히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이계인들 간의 갈등이 있다.

바로 ‘드워프’라는 이계인과 ‘레프러콘’이라는 이계인의 갈등이다.

녀석들은 같은 세계에서 온 같은 종족이다. 하지만 서로 ‘믿는 신’이 달라, 같은 종족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와 문화, 관념, 부르는 이름까지도 달랐다.

드워프와 레프러콘은 원래 살던 세계에서부터 깊은 갈등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 배척하며 3,000년 동안 전쟁을 이어 왔다고 하니 말이 필요할까?

다행히 지구에선 갈등이 완화된 편이다. 녀석들은 지구에 정착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깃든 물건을 가공하는 특이한 손재주를 가진 드워프와 레프러콘은 지구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이계인 세력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오리하르콘’ 광산이 지구에 나타나며 잔잔하던 두 종족 간의 갈등은 화산처럼 폭발해 버렸다.

지중해에 생겨난 오리하르콘 광산, 알고 보니 두 종족이 지구로 전이당한 이유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오리하르콘이라는 전설의 금속이 소실되어서란다.

오리하르콘은 신의 금속이며 그들이 믿는 신의 헌신이니, 종교의 지독한 하수인들인 드워프와 레프러콘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오리하르콘을 가공하여 도구를 만드는 게 자아실현의 최종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뜬금없이 나타난 오리하르콘 광산은 그들에게 있어, 종족을 멸망시킬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꼭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두 세력은 오리하르콘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는 두 종족의 전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쉽게 말하면 ‘스마트폰’처럼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기술력이 응집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두 회사가 전력을 다해 맞붙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는 가에 따라 막대한 이윤과 손실이 오고 가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될 법도 하지.

광산의 금속을 독점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드워프와 레프러콘.

사실 내겐 그다지 상관이 없다.

전쟁이 일어나든 세계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이든 말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열렬한 두 광신도 무리의 전쟁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오리하르콘 금속을 발견하기 위해선 어떠한 방법만이 유일하며, 그 방법이 마물에 의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마치 송로 버섯을 찾는 돼지처럼 오리하르콘은 마물에 의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물은 지구엔 단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라졌단다.

오리하르콘 광산이 나타나기 전, 마물을 소유하고 있던 드워프는 레프러콘이 도둑질하였다고 생각했다.

레프러콘은 드워프가 오리하르콘을 독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마물을 항시 데리고 다니던 드워프 종족의 공주였으나, 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정 씨가 그녀를 설득해서 마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거예요.”

그리고 내 임무는 ‘오리하르콘 돼지’를 찾아내는 것.

아침부터 원장님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 정신이 없던 난 원장님의 마지막 말만은 확실하게 귓구멍에 새겼다.

“아니, 제가요?”

종족 갈등,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전쟁 지대, 광신도, 전설의 금속 오리하르콘… 내가 들은 내용이 맞는다면 단순히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수준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다면서요? 그 마물이 두 종족의 운명을 결정한다면서요? 제게 맡기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에이, 호들갑 떨지 마요. 겨우 마물 한 마리 찾는 건데.”

그녀는 대수롭지 않아 했으나 생각할수록 불안했다. 결국 마물 돼지 한 마리를 찾는 걸로 귀결되었지만 범상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리 단순하게 끝날 리가 없잖아?

“원장님이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그녀는 섬뜩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에 뒤로 발라당 자빠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토 달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난 의자 뒤에 숨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꼴사나운 모습이지만, 그녀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에 이건 합리적인 처세술이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손을 내밀어 날 일으켜 세웠다. 다행이다. 방금 전은 장난이었구나.

“보세요. ‘공포’는 해결 방법이 아니에요. 내가 해결한다면 빠르고 간결하겠지만,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거라고요. 난 쓸데없는 희생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건 단순히 드워프와 레프러콘의 갈등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

그녀는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 그려지는 지도,

세계지도를 3D화 하여 홀로그램으로 자세히 그려진다.

지도엔 유독 ‘붉은 점’들이 많았다. 그녀는 붉은 점들을 ‘계기’라고 표현했다.

“현재 지구는 부풀어 오르는 풍선, 바늘 같은 작은 계기만 있더라도 펑 터지고 말겠죠. 붉은 점을 보세요. 계기들을 하나씩 점으로 표시한 거예요.”

원장님의 손짓에 따라 붉은 점은 하나로 이어졌다. 그러더니 붉은 점은 물감이 번지듯 퍼져나가 이내 지구는 새빨개졌다.

“돼지 마물 한 마리가 어쩌면 지구를 휩쓸 대전쟁의 시작점이 될지도 몰라요. 과장을 보태면 전란이 일어날지, 막을지는 다정 씨의 손에 달린 거예요.”

부담감을 팍팍 주는 원장님이다.

젠장, 나보고 호들갑 떨지 말라면서 갑자기 말을 바꾼다.

뭐지? 내가 이런다고 막대한 책임감이라도 느낄 줄 알았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산이다.

하지만 꼭 책임감만이 사람을 투철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욕심은 어떨 땐 책임과 사명보다 더 진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종족 갈등, 전쟁, 드워프 공주.’

혹은,

‘부자, 오리하르콘, 어쩌면 귀중한 인맥.’

‘부정적인’ 단어를 빼자 그럴듯한 대박 상품이 되어 버렸다.

좋다.

떨어지는 콩고물을 노리자.

*

이탈리아 반도의 서쪽 바다, 티라니아 해의 어느 섬.

이 섬은 드워프와 레프러콘의 섬이며 그들의 하나이자 둘인 신의 이름을 따 야누스 섬이라고 부른다.

야누스 섬은 중앙이 갈라진 두 개의 섬을 말한다. 왼쪽은 드워프가 생활하는 섬, 오른쪽은 레프러콘이 생활하는 섬이다.

전이 전엔 시칠리아 섬이 지중해 최대의 섬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야누스 섬은 전이로 생겨난 지구의 새로운 환경이다. 이탈리아가 국토로 지정했으나 사실상 드워프와 레프러콘의 전유가 된 섬이다.

당연하게도 일반인(사람을 포함한 다른 이종족)들은 야누스 섬에 발을 딛지 못하나, 난 용의 공간 마법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비유가 아닌 정말로) 야누스 섬에 도착했다.

원장님은 내게 일을 맡긴다며 몇 가지 정보를 건네고 떠나 버렸다. 난 원장님이 알려 준 대로 야누스 섬의 해안가를 따라 비밀스럽게 이동했다.

야옹!

“쉿, 들키면 안 돼. 난 지금 로미오라고.”

마치 줄리엣의 저택으로 몰래 침입하는 로미오가 된 기분이다.

요란해선 안 되는 임무다.

포근이는 데리고 오지 못하고, 존재감이 없는 야옹이의 힘은 필요할 것 같아 데리고 왔다.

야옹이는 내가 조용하라고 말하자 척척 알아듣곤 나를 따라 등을 숙이고 걸었다.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는 녀석인데 기척을 숨기자 바로 옆에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두 그루의 떡갈나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숲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500걸음. 정말 귀찮게 해 놨네.’

원장님의 말에 따라 해안선을 걷던 난 그녀의 말처럼 떡갈나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숲으로 걸어갔다.

‘어디 보자, 암구호가…….’

500걸음 정도 거리에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다. 난 오두막집의 문 앞에 서서 ‘야누스의 심장은 왼쪽에 존재한다.’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얼마 후, 오두막집 안에서 누군가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누스 신은 왼쪽을 편애한다.’

그리고 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 야누스는 왼쪽의 면이 진리이다.’

마치 스파이 접선처럼 정해 둔 암구호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끼이익-!

원장님이 가르쳐 준 대로 대답하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그냥 노크를 하면 편할 텐데 이런 짓까지 해야 되나 싶었다.

오두막집 안에서 들어오라 손짓하는 자는 늙은 드워프였다.

드워프는 키가 작다. 1m 남짓, 초등학생보다 작은 키다. 하지만 생긴 건 정말 대단하다. 마치 멧돼지와 오래된 죽을 반죽기로 섞은 다음에 사람 모양 과자 틀에 찍어낸 것같이 생겼다.

듣기론 레프러콘도 드워프와 생김새가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사회 관념과 의식주 등 생김새를 제외하곤 모든 게 정반대의 성질을 가졌다.

우스운 건 섬기는 신은 사실 ‘야누스’라는 신으로 같았으나, 그 신은 문의 이면과 같아서 드워프는 안쪽을 섬기고 레프러콘은 바깥쪽을 섬긴단다.

아무튼 이종족들이란. 쯧쯧, 이해 못할 녀석들이야.

“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위대하신 분의 충성스러운 가디언이시여.”

“전…….”

순간 어색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원장님은 앞으로 대외적으로 날 소개할 땐(특히 이종족과 관련되어 있다면) 용의 가디언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했다. 어디가도 무시는 안 당하는 명함이라나.

“드래곤의 가디언이자 위대하신 분의 대리자인 정다정이라고 합니다.”

“영광입니다. 소인은 드왈로프가의 집사이옵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늙은 드워프는 내게 상당히 깍듯했다. 집사라는 직위를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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