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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0화 (50/258)

# 50화 새삼

꿀-!

[아야!]

그러자 제시가 화들짝 놀라 뛰어왔다. 소녀는 비싼 드레스가 더럽혀지는 걸 상관치 않으며 냄새나고 진흙투성이의 돼지 마물을 꾹 안았다.

“왜 갑자기 때려요?”

당황하는 제시.

소녀에게 안긴 채 날 멀뚱히 바라보는 카르나.

“봐 봐.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잖아. 단 한 명이라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잖아, 돼지 새끼야.”

뭐가 존재 가치야?

애초에 제시는 저 녀석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등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다. 제시는 절대 전쟁으로 발생할 피해를 모르는 애가 아니다. 하지만 전전긍긍하며 카르나를 숨겨 줬다.

“제시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이해 못 해? 네가 진흙에 머리를 처박고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제시의 골치는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을 거야. 이 녀석아, 널 좋아해 주는 아이 하나만으로도 네 존재 가치는 충분한 것 같은데 안 그러냐? 네가 생각하기에 이 아이의 사랑만으론 불만족스러워?”

[난… 난…….]

교감의 힘.

한국어(용의 번역 마법으로 제시가 듣기엔 드워프어겠지.)로 말하나 마물도 알아듣는다.

그러니 제시와 카르나는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다.

제시가 카르나를 쳐다보자, 카르나는 코를 실룩거리며 외쳤다.

[그렇지 않아! 미안해! 내가 생각을 못 했어! 익숙해서, 이 아이의 사랑이 너무 익숙해서 미처 몰랐던 거야. 난 제시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해.]

“제시, 카르나가 말하길… 음.”

굳이 번역해 줄 필요가 없었다.

제시는 카르나를 꾹 안았고, 카르나도 제시에게 몸을 기댔다.

나처럼 대화를 할 수 없더라도, 분명 둘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겠지.

*

카르나가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전달하지?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 내가 말해도 드워프와 레프러콘은 모를 거야!]

“괜찮아. 내가 대신 말해 주마.”

이제 남은 건 ‘사실 오리하르콘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습니다.’라고 결말을 짓는 것이다.

용의 가디언으로서 말하면 알아듣겠지. 물론 못 알아먹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내겐 무엇보다 압도적인 수단이 있으니까.

“자, 나가자.”

동굴을 나서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앙-!

해안 동굴이 진동할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근원지는 가까운 곳 같았다.

“안 돼, 전쟁이 시작되었어.”

와들와들 떠는 제시를 진정시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시간이 없다.

난 팔찌를 매만졌다.

그러자 팔찌가 어떤 신비한 입자로 변하더니 내 몸을 감쌌고, 이내 턱시도처럼 변했다. 용의 마법이다.

“야옹아.”

녀석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제시의 침대에서도, 통로에서도, 동굴에서도. 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고양이는 내게 힘을 빌려줬다.

“너희들은 여기 남아.”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는 왔던 곳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난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뛰어가며 재빨리 동굴을 나가려고 했다.

“저도요!”

하지만 제시가 막아섰다.

이어서 카르나도 같이 가고자 했다.

“위험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이렇게 된 건 제 책임이잖아요. 제가 영주들에게 말씀드려야 해요.”

‘확실한 보험은 있어. 괜찮겠지.’

난 제시와 돼지 마물을 업고 달려 나갔다. 왠지 마나가 늘어난 이후로 더 빨라진 느낌을 받으며, 순식간에 해안가로 나가 폭발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

다행히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다. 난 드워프 군대가 사열해 있는 곳을 찾았다. 드워프 섬의 끝, 그리고 ‘레프러콘’ 섬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군대가 사열해 있다.

규모는 작으나 느껴지는 마나가 심상치 않다.

‘모두 마도구를 입고 있어. 들고 있는 무기도, 저 기괴하게 생긴 대포들도, 모두 마나를 이용한 무기.’

그들은 설마 뒤에서 누군가가 올지 몰랐던 것 같다. 밤의 어둠을 이용해 순식간에 영주들이 있는 막사까지 도달했다.

‘역시 착각이 아니야. 더 강해진 것 같다.’

혼자라면 모를까, 제시와 돼지 마물을 안은 상태에서도 드워프들은 날 발견할 수 없었다. 야옹이가 가진 은밀한 힘, 더 강해진 것 같다.

막사 안에는 한창 바쁘게 떠드는 드워프 영주들이 있었다. 천막의 앞에서 제시는 심호흡을 하며 준비했다.

“괜찮겠니?”

“괜찮아요.”

제시는 당돌했다.

그녀가 앞장서서 천막을 열었다.

“제시?”

갑작스레 등장한 제시의 모습에 한 드워프가 당황한다. 그는 펼치던 작전 지도를 도로 놓은 채 제시를 향해 다가왔다.

제시의 아버지이자 영주들의 대표자, 대영주 드왈로프겠지.

표정을 구긴 채 무언가를 말하려던(아마 호통이겠지.) 그는 이내 나와 카르나를 발견하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카르나! 제시, 역시 네가 숨긴 거였더냐?”

움츠린 제시는 대답조차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무서워 숨지는 않았다.

“제가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됐다. 변명은 필요 없다. 오히려 잘된 일이니.”

“잘된 일이라니요?”

드왈로프는 날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쩐지 크게 당황하지 않더라니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대는 용의 가디언이겠지. 카르나를 찾아 주어 정말 고맙소.”

원장님은 분명 영주들 몰래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가 어떻게 알았지?

표정에 의문이 드러났는지 묻지 않아도 드왈로프가 대답했다.

“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난 알고 있소. 다만, 위대하신 분의 판단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방관했을 뿐이오.”

만만찮은 남자로군.

“카르나가 우리 쪽에 있다면 얘기는 더욱 쉬워지지. 좋다. 기수들이여! 전군에게 알려라. 전쟁을 시작한다고!”

“안 돼요!”

“제시…….”

대영주 드왈로프의 호령에 그의 딸, 제시만이 반발하며 외쳤다.

드왈로프는 표정을 잔뜩 구긴 채 거친 손길로 제시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호위병을 붙여 줄 테니 곧바로 성으로 돌아가거라!”

“그게 아니라,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이 전쟁은 무의미하다고요! 사실 오리하르콘은 없으니 싸울 이유 자체가 없다니까요!”

제시의 말에 드왈로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뭣이? 제시,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느냐? 확신할 수 있느냐?”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루링이 압니다.”

드왈로프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어 간다. 난 멀뚱히 부녀 간의 대화를 지켜봤다.

“카르나가 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지중해에 나타난 오리하르콘 광산은 우리 고향의 산과 완벽하게 같았다. 하지만 아직 카르나는 그곳에 가 보지도 못했어. 찾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오리하르콘이 없다는 걸 안단 말이더냐?”

드왈로프의 말에 발끈한 건 카르나였다.

[아니,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진짜 없다니까!]

꿀꿀꿀!

“그만해. 저들이 듣기엔 돼지 먹 따는 소리에 불과하니까.”

난 카르나의 머리를 쓰다듬곤 부녀 사이로 나섰다.

“제가 들었으니 확실합니다. 카르나는 오래전부터 오리하르콘을 찾는 일을 해 온 걸로 압니다. 녀석이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하니, 분명 사실일 겁니다.”

“가디언…….”

용의 가디언이라는 직책은 꽤 대단한 듯싶다. 드왈로프는 진정하며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려는 듯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셨다.

“후우, 좋소.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궁금한 게 있소. 어떻게 카르나의 말을 마치 직접 들은 것처럼 말하시오?”

“직접 들었으니까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내 능력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용의 가디언이라는 직책 때문에, 내 요상한 능력은 그에게 쉽게 용인되었다. 제시가 그랬지, 용의 가디언들은 마녀도 놀랄 만큼 기괴한 재주를 가졌다고.

“그렇군. 하아. 오리하르콘은 없었던 거군.”

허무한 웃음마저 지으며 허탈해하는 드왈로프,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나 정녕 그게 사실이더라도 레프러콘은 믿어 주지 않을 거요. 어쩌면 오리하르콘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이 기회를 틈타 우릴 멸하려 들지도 모르지.”

오리하르콘이 없다고 하여 전쟁이 멈추는 건 아니었다. 드왈로프는 충분히 사실을 인지했으나 ‘레프러콘’들을 믿지 않으며, 이대로 안일하게 군대를 해산한다면 분명 레프러콘의 공격을 받을 거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콰아앙-!

천막 바깥에선 눈 먼 폭격이 계속하여 터진다. 아직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지만 상황은 급박하다.

그래도 뭐, 난 걱정하지 않았다.

난 더 이상 드왈로프를 말리지 않았다. 제시는 태평스러운 내 모습에 발을 동동 굴렀으나, 난 히죽 웃으며 날 믿으라고만 말했다.

마침내 분위기가 고조되고, 전쟁이 시작되려고 할 때였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두 섬을 두고 마법 대포들이 불을 뿜으려던 그때, 난 그 사이에 서서 공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참 전에 말씀드렸는데 굳이 이 타이밍이라니, 분명 노리신 거죠, 원장님?”

드워프들도 하늘을 바라본다.

레프러콘들도 하늘을 바라본다.

두 종족은 격렬한 전쟁을 앞두고 모두 멍청하게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완벽한 보험!

원장님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해야 멋있다잖아요?”

그러며 거대한 용으로 헌신했다.

난 붉은 날개의 아래서, 드워프와 레프러콘에게 소리쳤다.

“모두 들으시오! 오리하르콘은 없소. 그러니 싸울 필요도 없소. 전쟁 NO, 평화 LOVE! 러브 앤 피스, 오케이?”

양쪽 진영에서 술렁거린다. 사실대로 말해도 드왈로프처럼 곧바로 믿는 자는 없어 보인다.

난 할 만큼 했다.

[모두 들어라.]

내 말과는 파급력 자체가 다른,

[드래곤이 언약하니, 오리하르콘 광산은 그저 빈껍데기일 뿐, 광산에 오리하르콘은 존재하지 않음을 공표한다.]

드래곤의 언약이란 인간의 주둥아리로 내뱉는 구두 계약과 차원이 다르다. 드래곤, 그 고귀한 존재의 약속.

전쟁의 열기는 순식간에 식어 들었다. 원장님의 강제적인 명령으로 두 군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산당했다.

‘새삼 느낀다.’

역시 전이를 대비하기에, 드래곤의 밑만큼 안전하고 확실하고 대단한 곳은 없을 거야.

일은 끝났다.

더 이상 있어 봤자 드워프들의 따가운 눈총만 받을 테니, 난 곧바로 원장님과 마물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 맞다.

약속은 지켜야지.

“원장님, 부탁드릴 게 있어요.”

*

공주는 집사를 따라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퀴퀴한 냄새의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 대신에 과자로 만들어진 집이 있었다.

공주는 집사가 건넨 편지를 읽었다.

[아껴 먹어. 못생겨지기 싫으면.]

약속을 지켰구나.

제시는 초콜릿 문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

마물원으로 돌아온 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말하기로 했다.

“원장님, 그거 우리 쪽에 있는 거죠?”

그녀는 괜히 빨간 셔츠를 추슬러 입으며 시치미를 뗀다.

“네? 뭐가요?”

“신의 금속이라는 거요.”

내가 원장님의 마법으로 꽁꽁 감춰진 오리하르콘의 냄새를 맡은 건, 분명 카르나와 깊게 교감했기 때문이겠지.

침묵하던 원장님은 이내 무안하듯 아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교감 때문에 알았구나. 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아하하.”

드래곤은 욕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원장님은 마물들을 구하며 이종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대단한 자원봉사자 같았지만, 결국 드래곤이었다.

그래도 원장님의 도둑질이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사실 오리하르콘이 광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처럼 원만한 결과로 절대 흘러가지 않았겠지.

그래, 그녀의 말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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