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경매장 (1)
카르나와 교감한 후유증은 알게 모르게 나타났다. 그날 이후로 샤워를 해도 개운하지 않았고 이유 없이 피곤했다.
왠지 질척이고, 더럽고, 텁텁한 냄새가 나는, 그러니까 진흙 같은 곳에 몸을 뉘이고 싶어졌다. 밥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했다.
병에 걸린 게 아니기에 병원을 찾아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녀석이 해안 동굴의 질척한 곳을 좋아한다는 걸 생각해 내고, 이 찜찜하고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강남의 ‘머드 스파숍’을 찾았다.
“주차 자리 양보하는 거 봐. 오크들도 고급차를 무서워하네.”
전이 이후, 이계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생겨나는 등, 이계인들을 타깃으로 한 특수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머드숍도 그중 하나다. 주로 오크들에게 수요가 높다고 들었는데, 과연 건물의 주차장에서부터 오크들이 잔뜩 보였다.
‘오크들이 한가롭게 머드숍이나 다닐 줄 누가 알았겠어?’
오크는 강인한 전사다.
즉, 현대와 동떨어진 이계인이었다. 전이 이후, 녀석들은 가장 많은 말썽을 일으키던 이종족이었다.
하지만 점점 영토 분쟁 지역의 용병 집단, 해결사, 헌터 등으로 자리를 잡더니, 지금은 오우거 따위보다 훨씬 높은 대접을 받고 있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평일 낮, 1회 40만 원에 다다르는 고급 머드숍을 즐기러 다니고 있다니, 정말 격세지감이로다.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크들이 아무리 착해졌다고 하더라도, 같이 머드 스파를 즐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돈을 열 배나 더 주고 개인룸을 빌렸다.
터키 아피온카라히사르산 머드가 담긴 고급스러운 마호가니 원목 욕조에 발을 담그자, 모세혈관을 관통하는 시원한 느낌이 찌르르하고 왔다.
“좋구나.”
체한 것처럼 불쾌하고 어지러웠던 지난 며칠, 이 순간 모든 고통은 해방되었다.
역시 원인은 카르나와의 교감이었다. 진흙에 몸을 모두 담그자 내장에 기름이라도 찬 듯 메스꺼웠던 속이 가스 활명수를 마신 듯 뻥 뚫렸다. 너무 좋았다. 온천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나른해지는 기분, 흐려지는 의식을 굳이 잡지 않았다. 굉장하다. 단지 진흙에 몸을 담구는 것만으로도 이런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주기적으로 카르나를 찾아가 녀석의 진흙이 묻은 발바닥에 뽀뽀라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겠어.
점점 몽롱함에 빠져든다.
진흙에 머리까지 담갔다.
콧구멍이 막혔지만 숨 쉬는 데엔 지장이 없다.
진흙 목욕, 좋다.
게다가…….
맛있다.
음, 맛있어.
잘 익은 자두보다 더!
“손님, 수건 가져다드리… 까악!”
내 즐거움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있었다. 스파숍의 직원은 수건을 가져다주다가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는지 비명을 질렀다. 할 수 없이 진흙에서 고개를 추켜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다른 일이 발생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날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고… 고객님!”
왜 저러지?
난 입안 한가득 물고 있던 진흙을 뱉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그녀의 시선이 내 입가를 타고 흐르는 진흙을 따라간다.
문득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머드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내가 다 처먹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카르나! 녀석의 먹이는 진흙이었구나.’
지금까지 불쾌하고 속이 꽉 막히고 답답했던 이유는 머드 목욕 따위가 아니라 배고픔 때문이었어.
소동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경호원들도 대동한 걸 보니 오크들을 고객으로 하는 숍이라서 그런가 보다.
“소… 손님, 대체……. 머드는 드시면 안 되는데…….”
매니지 직함을 달고 있는 직원이라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 듯 말을 더듬다가 결국 뒤로 물러났다.
난 서로 속닥거리는 직원들을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봤다. 황당하겠지. 나도 황당한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 정도는 줘야겠지.
“저 손님, 인간이 아니었던 거야?”
“무슨 종족이지? 진흙을 먹는 종족이라니, 들어 본 적 있어?”
결국 다시 최고참 직원이 나와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머드는 원래 드시는 게 아니나 원하신다면 식성에 맞는 머드를 따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과연, 이계인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구나. 날 진흙 먹는 어떤 이종족으로 생각하고 재치 있게 대응한다. 졸지에 머드숍이 식당이 돼 버렸다.
난 친절한 응대에 어깨를 으쓱하며, 욕조에 담긴 머드를 마저 집어 먹었다.
그리고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말했다.
“터키산이 맛있네요. 하지만 이탈리아랑 보령산도 줘 보세요. 돈은 다 계산할 테니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마물원에서 일하며 몇 번을 되새겼던가?
예전이라면 당황하며 뛰쳐나갔겠지만 난 제법 뻔뻔해졌다. 정말 진흙 먹는 이종족을 흉내 내며, 자리에 앉아 원산지별로 모든 머드를 맛봤다.
인간의 존엄성?
이제 와서 그딴 걸 챙길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그래도 진흙을 맛있게 먹는 건, 똥구멍으로 거미줄을 뱉어 내는 다른 마물의 후유증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식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다행히 몸 상태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꺼억-!
트림을 하자 진흙 찌꺼기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한참을 토해야 했지만.
*
“조금 힘든 작업이 될 수도 있어요.”
역시나 한가롭다 싶을 때쯤,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제법 커진 포근이를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공사하는 중이던 난, 원장님의 말에 ‘용암 생성기’를 내려놓고 대답했다.
“사람인가요, 마물인가요? 설마 원장님의 위대하신 다른 동료분들은 아니겠죠?”
그나마 마물과 관련된 일이 낫다. 다소 예측할 수 없으며 기괴한 경험을 해야 하지만, 직접적인 목숨의 위협은 덜한 편이니까.
사람과 관련된, 즉 헌터와 관련된 일. 마물 콘테스트 때는 팔이 잘렸고, 대륙 거북이 땐 구속구에 칭칭 묶였었지. 그때처럼 헌터와 엮이는 일들은 사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원장님의 ‘동료’, 즉 드래곤과 엮이는 건 그 어떤 일보다 난해하고 두려운 일이 될 테니, 부디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번에 대륙 거북이의 알을 훔치려던 자유 용병들 기억하세요?”
어찌 잊을까,
내가 거인으로 변해서 장난감 가지고 놀듯 끝장내 버린 헌터들이다.
“그들이 기록하고 있던 장부들의 파악이 끝났는데, 제법 거래처가 많은 용병들이었어요. 은밀한 뒷거래를 많은 곳에서 하고 있었더군요.”
원장님은 마법으로 지도를 생성했다. 해양 지도였다. 태평양으로 보인다. 지도는 점점 확대되며 하와이 근방을 가리켰고, 이내 붉은 점이 생겨났다.
“조만간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마물 경매장이 열릴 거예요.”
“바다 위에서요?”
“22만 톤급 대형 크루즈에서 열리는 바다 위 경매장, 몬스터 인터내셔널 옥션. 은밀하게 운영되어 저조차도 이제 알게 된 최대 규모의 마물 경매장 중 하나죠.”
원장님은 항상 그러하듯 압도적인 힘을 가졌으면서 ‘나로선 무리’라고 엄살을 떨며 내게 말했다.
“혼자서 하면 소탕은 할 수 있더라도 혼란을 틈타 빼돌리는 마물이 생겨날지 몰라요. 확실하게 하고 싶으니 다정 씨가 도와줘요.”
“원장님은 볼수록 참 너그러우세요. 항상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해 주시네요.”
그냥 선의에서 한 말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내게 일을 시킬 때 부탁한다고 말했다. 드래곤이며 상사인데도 불구하고, 말버릇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점이 존경스러웠다.
원장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부탁 같아요?”
하지만 말투만 그렇다.
당연히 나도 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인 걸.
“제가 뭘 하면 되죠?”
“경매에 참가해서 마물들을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일을 벌이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도망치게 만들어 주세요. 다정 씨의 능력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뭐, 마물을 지키는 헌터들이야 당연히 있겠지.
그러나 경매가 열리는 곳이 대형 크루즈임을 들었을 때, 어릴 때 내가 선망하던 한 장면이 떠올라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꼭 해 보고 싶었어요. 크루즈 선상에, 부자들이 몰리는 경매이니 럭셔리한 파티도 열리겠죠?”
크루즈 선상 파티!
부자들의 경매!
본드걸!
난 중요한 임무를 숨긴 채 몰래 럭셔리한 크루즈 파티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마치 첩보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
“다정 씨,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다정 씨는 경매 ‘참가자’가 아녜요.”
하지만 이어진 원장님의 말에,
“다정 씨가 경매에 참가하는 거예요.”
제임스 본드가 되는 상상은 무참히도 깨져 버리고 말았다.
“판매되는 마물로서.”
젠장.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괴상망측한 영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전에, 이거 받으세요.”
시무룩해 있는 내게 원장님이 무언가를 건넸다. 옷깃에 끼우는 금속 브로치처럼 보였다.
용 모양의 브로치, 하지만 투박스럽지 않다. 만든 이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는 재질이 브로치의 가치를 훨씬 높여 주고 있었다. 황금과도 같으나 광택이 보석처럼 빛나고, 보는 각도에 따라 무광이 되니, 분명 지구의 금속은 아닐 것이다.
“설마 이거…….”
카르나와 교감하지 않아도, 원장님이 건넨 브로치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눈치를 챘다.
“이게 그 전설의 금속, 오리하르콘이죠?”
“눈썰미가 좋네요. 맞아요.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마도구예요.”
원장님은 날 보며 손목을 툭툭 두들겼다. 난 그녀의 신호를 알아듣고 손목에 낀 팔찌를 두들겨 턱시도를 입었다.
그러자 원장님이 다가와 직접 브로치를 옷깃에 끼워 준다.
“오리하르콘이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건, 마법적인 저항력이 무척 뛰어나기 때문이죠.”
설명을 해도 귀에 들리진 않았다. 너무 가깝다. 원장님의 빨간 눈동자가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
브로치를 끼우고 나서 원장님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지은 턱시도는 물리적인 방어력이 뛰어나지만 마법엔 취약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용의 가디언으로서 그럼 안 되죠.”
브로치를 선물한 이유를 들으며 앞으로 다난해질 내 앞날을 예상했다.
“이 브로치가 주술적이고 마법적인 공격으로부터 다정 씨를 보호해 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조금 감동하고 말았다. 어쩌면 드래곤이기에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쓸 거라고 지레짐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값진 선물을 받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정말 난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로구나.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럼 이 브로치가 원장님의 마법도 막을 수 있는 거예요?”
“하하하. 당연히 못 막죠. 그걸 질문이라고 해요? 한번 용의 마법에 당해 볼래요? 특별히 평생 동안 주둥이 대신 부리를 달고 살게 해 줄 수도 있어요.”
“어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난 물개가 되었다.
물론 마물 물개다.
선상에서 거래되는 마물이 주로 해양에서 서식하는 마물이라, 날 물개 마물로 만들었다는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난 코를 찡긋거렸다.
물론(다행히도) 진짜 마물이 된 건 아니다.
“옷은 꼭 다 벗고 있어야 됩니까?”
“환영 마법에 불과하니까요. 이질감이 있으면 제 마법이라도 풀릴 수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용의 마법으로 남들에게 ‘마물’처럼 보일 뿐이다. 문제는 팬티도 벗어야 된다는 것과 내가 보기엔 난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원장님의 시선에 손으로 거시기를 가렸다. 하지만 원장님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선 그러지 말라며, 미리부터 당당하게 굴라고 했다. 즉, 난 사람들 앞에서 거시기를 내놓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너무 뚫어지게 보지 마세요.”
“이제 보면 인간의 암수 구별은 꽤 쉬운 것 같아요. 확실하게 돌출된…….”
원장님의 장난에 화를 내려다가, 그녀가 드래곤임을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 그럼 다정 씨. 수고해 주세요~!”
이내 원장님은 마법을 사용했고, 난 공간이 무너지고, 재정립되는 상황 속에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젠 공간 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적응했는지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판매용이라더니.’
그곳은 창고였다.
온갖 마물이 우리에 갇힌 채 울부짖고 있는 꺼림칙한 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