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경매장 (2)
무척이나 넓은 창고엔 수많은 마물들이 우리에 갇힌 채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냄새가 지독하다. 코를 찌르는 악취의 정체는 마물들의 똥과 오줌이겠지. 이곳은 마치 밀수선처럼 단지 마물들을 모아 놓기만 했다. 마물 콘테스트 때와 같았다. 욕심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저 마물은 비싼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난 미리 원장님이 크루즈에 실어 놓은 빈 우리를 찾았다. 이곳에서 작업할 동안 들키지 않게 몸을 숨길 곳이었다.
‘원장님은 쉬운 일을 괜히 어렵게 간단 말이야.’
우리를 확인하고 작업을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경계 중 이상 무, F-2, D구역 확인.”
“확인.”
마침 우리를 찾자마자 창고의 문이 열렸다. 난 후다닥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남자, 이어 마이크와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체격과 영어를 사용하는 걸 보니 서양인 같았다.
‘총 대신 칼, 그것도 마도구야.’
평범한 경비원이 아니다.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무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창고에 들어온 순간, 시끄럽게 울던 마물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마물들의 생태계는 약육강식이다. 포식자와 피식자를 구별하는 본능이 강하다. 즉, 저들은 마물들에게 있어 포식자라는 것이다. 자유 용병들보다 훨씬 강하겠지. 어쩌면 카르마 길드의 창을 다루던 헌터, 그놈처럼 강할지도 몰라.
내 앞을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혹시 들킬까 봐 잔뜩 긴장했다. 젠장, 조금 다르긴 해도 첩보 영화긴 첩보 영화군. 그들이 보기에 난 물개 마물이야. 쫄지 마.
“이상 무.”
마물들을 둘러보던 헌터들이 나가고 충분히 시간에 여유를 둔 후, 우리 문을 열고 나왔다.
“좋아, 사람들이 들어오면 우리에 갇힌 척 연기하고, 나가면 작업하자. 조심하면 들키지 않아.”
원장님은 경매장의 슈퍼 바이저로 위장했다. 난 원장님이 경매에 올린 마물로, 차례가 올 때까지 일을 끝마쳐야 했다.
원장님은 마물 크루즈 경매에 잠입하기 위해 신상을 조작하여 범죄 조직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작 잠입은 공간 이동 마법으로 별 탈 없이 쉽게 해결했다.
‘의심스럽긴 해도, 어쩔 수 없다니까 뭐…….”
의문이 들었다.
그럴 거면 진작 마법으로 마물부터 옮겼으면 되는 게 아닌가?
공간 이동을 하기 전에 원장님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무리’라고 대답했다. 원장님의 공간이동 마법은 언뜻 만능으로 보이나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출산을 앞둔 어미 샐러맨더, 포근이의 어미도 원래 살던 양해의 바다로 옮기면 해결되는 문제였으나 원장님은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반발심이 큰 존재, 혹은 ‘거대한 마나’를 가진 자들에게는 강제로 이동하지 못하는 등 공간 이동 마법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며, 용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더 이상 캐묻지 말라고 했다.(난 평생 부리를 달고 살고 싶진 않았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자신이 전 차원에서 가장 뛰어난 공간 마법사라서 이 정도 일도 할 수 있다고 했던가? 분명 마물원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대단하긴 하다. 차원마저 슝슝 이동하는 판이니.
어쨌든 내가 하는 일은 간단명료했다. 난 알몸에 유일하게 찬 팔찌를 매만졌다.
턱시도와 ‘도장’이 나타났고, 턱시도는 다시 팔찌로 돌려보내고 도장은 손에 쥐었다.
평범한 도장 같았으나 사실 용의 보물이다.
“이걸로 마물의 몸에 각인을 찍으라는 거지?”
원장님이 내게 부탁한 일은 마물들에게 원장님의 각인, 표식을 새기는 것이었다.
저번에 마물 콘테스트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때는 거리가 가까워서 구슬을 터트리는 것만으로 마물을 옮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직접 모든 마물의 몸에 표식을 새겨야 했다. 각인은 원장님이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할 때 구별하는 일종의 신호기였다.
난 도장을 들고 마물들에게 향했다. 잔뜩 겁에 질린 녀석들은 날 사납게 위협했다. 두려움, 무서움, 배고픔, 절망 등의 감정이 내게 흘러들어 온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교감의 끈을 던지나 받아 주는 마물은 없었다. 더더욱 깊은 교감이 필요했다.
‘이곳에 살 애들이 아니야. 그래서 더더욱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육지 마물이 아니다.
이곳에 갇힌 마물들은 대부분 ‘해양’에서 서식하는 마물들이었다. 고래와 상어처럼 생긴 녀석들도 있다. 동물과 달리 바닷물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분명 소금을 뒤집어쓴 달팽이처럼 괴롭겠지.
“난 널 해치지 않아.”
가까운 곳에 있던, 범고래처럼 생긴 마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범고래처럼 생겼으나 덩치는 더 크고, 몸에 줄무늬가 있다. 범고래의 상징인 눈가의 얼룩은 검지 않고 빨간색이다.
쾅-!
몸부림치며 꼬리로 우리를 내려친다. 하지만 마법 우리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괜찮아.”
날 경계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 솔직히 무섭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건 녀석이 느끼는 저 감정이다. 죽음을 앞둔 절망적인 감정, 내게도 느껴졌으니까.
그에 맞서 내가 할 일은 어미처럼 부드럽게 달래 주는 것. 절대 긴장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않다고 된다고, 이 절망에서 구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
사나운 몸부림은 다가갈수록 점점 잦아든다. 나 같은 건 한입에 양단할 뾰족한 이빨, 그러나 내게 보이는 건 처량한 눈망울.
손을 뻗어 녀석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도장을 찍어 각인을 새겼다. 녀석의 피부에 기이학적인 무늬가 깃든다.
녀석은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그 뒤, 다른 마물들에게도 내 전부를 보여 주며 확신시켰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각인이 새겨지는 마물들이 늘어날수록 비통한 절망으로 가득했던 창고는 점점 조용해져 갔다.
*
“젠장.”
원장님의 매뉴얼에 기록된 녀석의 이름, 메갈로돈. 고대의 상어의 이름을 딴 거대한 상어 마물.
유독 흉포한 마물, 마물의 바다에서도 최상위 포식자.
하지만 지금은 약에 절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불쌍한 녀석.
“이건 단순히 잠재운 게 아니야.”
사타리언 부인의 회사이자 마물원에서도 사용하는 윙바레산 마취약이 아닌 싸구려 마취약을 들이부은 이유는 마물의 생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다.
역시 물품 취급하고 있는 거야.
너무한다.
교감의 끈을 던져 위로해 주고 싶어도, 내 힘으로는 죽음의 문턱에서 허우적대는 녀석을 깨우지 못했다.
표식을 새기며, 부디 버텨 주길 바랐다.
*
작업을 하던 난 창고의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로 뛰어 들어갔다.
“F-1, 이상 무.”
“이상 무.”
“경계조 집합.”
헌터들은 주기적으로 창고를 순찰했다. 경매의 메인 코스가 보관된 곳이니 경계가 철저한 듯했다.
얼마 후, 골렘(인간이 만든 듯 조잡했다. 마치 에일리언에서 나왔던 이족 보행 기계와 닮았다.)들이 앞에서부터 적재된 마물 우리를 하나씩 끌고 가기 시작했다.
곧 바깥이 시끄러워진다.
‘경매가 시작되었구나.’
대부분의 마물에게 각인을 찍었으나 아직 못한 마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매가 시작되자, 창고 문을 개방하고 헌터들이 밖에서 경계를 섰다. 복도까지 시끄러운 걸 보니 창고와 경매장을 잇는 모든 구간에 경비가 배치된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오가는 마물 우리와 헌터들 때문에 각인을 새길 여유가 없었다.
‘끝나고 해야겠어.’
난 우리에 갇힌 채 물개 마물인 척 굴며 경매가 끝나길 기다렸다.
몇 개의 마물 우리를 옮긴 골렘들이 내 앞에 멈추어 섰다.
‘젠장.’
예상 못한 건 아니다. 내가 이곳에서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매 대상인 ‘마물’로 있다는 것은 당연히 팔려 나가기 위해 경매장의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녀석들에게 난 마물 우리에 갇힌 물개 마물에 불과하다.
위이잉-!
골렘들이 내가 갇힌 우리를 들어 옮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이다. 창고를 나가 복도를 지난다. 젠장,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일단 경매일은 뒷전으로 생각하고 주변을 살폈다. 과연 복도에도 수많은 헌터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규모로 따지면 한국에서 열렸던 마물 콘테스트 때와 비교할 수도 없다. ‘총’을 든 헌터들이 한 명도 없어, 졸병들도 마도구를 들고 있는 꼴이라니!
‘카르마 길드인가?’
녀석들에게 난 마물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꼼꼼히 놈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헌터들의 복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통일성이 없다. 어느 한 세력만이 엮인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대부분 복장만으로 소속을 유추하지는 못했는데 유일하게 ‘카르마’ 길드만큼은 길드를 상징하는 윤회 문양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
더러운 일에 관해선 업계 최고다.
굳이 감출 필요 없다. 카르마 길드라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가치다. 뭐 그런 자랑인가?
끼이익!
마침내 복도를 지나고, 경매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처음 느낀 건 눈이 시리도록 비추어 대는 조명.
천장에서 쏘아 대는 조명은 끝까지 날 따라왔다. 슈퍼스타급 대우구만.
‘역시 선상 파티를 하고 있었잖아.’
무대에 오르자 경매장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파티다. 참가한 사람들, 혹은 이종족들은 마물에게 흥미에 찬 눈빛을 보내며 샴페인 따위를 홀짝였다.
마물 경매, 혹은 부자들의 여흥거리, 젠장! 얼굴이 달아오른다. 시선이 집중되나 손으로 거시기를 가릴 수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 앞에서 홀딱 벗은 채라니, 노출증이 있다면 흥분했을 상황이나 내겐 창피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마물인 척해야 해서 거시기를 손으로 가리지도 못했다. 비록 놈들의 눈에 난 물개 마물이지만,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보면 매끈한 피부와 돌출된 생식기가 보였다. 쪼그라들어서 평소보다 작네. 망할!
사회자가 마물들을 소개한다. 마물이 가진 힘, 섭취 시 효과, 가공 방법 따위를 소개하더니, 재주를 보여 준다며 몇 가지 괴상한 행동을 취했다.
내 앞의 마물은 조개 마물이었는데 어디에도 없는 붉은 진주, 적진주를 생성한다며 살아 있는 돼지 한 마리를 녀석의 입에 집어넣었다.
조개의 입이 닫힌다.
그러자 비명을 내지르던 돼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이내 도르래에 의해 강제로 열린 조개의 입속엔 녹아내린 돼지의 사체와 피가 고여 붉게 물들어 가는 적진주가 보였다.
난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돼지의 고통, 그리고 강제로 먹이 활동을 당하는 조개 마물의 괴로움이 동시에 느껴져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조개는 인기리에 경매되었다.
원장님의 밑에서 일하며 나름 거액의 돈을 만져 봤지만,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에 조개 마물은 팔려 나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이번 마물은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강한 마물입니다. 댄싱 씨얼! 일명 춤추는 물개!
소개와 동시에 거대한 스피커로부터 귀청이 터질 듯한 클럽 음악이 재생되었다.
둥둥둥-!
시끄러운 하우스 비트에 관람객들이 열광하기 시작하자, 난 멍청하게 서 있다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하필?’
진짜?
하필 이런 마물이라고?
원장님의 재치 있는 장난이 분명하다. 어쩐지 변신한 마물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더라니.
“음악 소리 더 키워 봐! 노래만 나오면 춤추는 놈인데 왜 저래?”
여기서 내가 춤을 추지 않으면 의심받는다. 사실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아직 각인을 찍지 못한 마물들이 남아 있었다.
‘이런 경험.’
마물원에서 일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젠 심지어 맨몸으로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덜렁거리며 힘차게 춤췄다.
최대한 물개가 춤추듯 행동했지만 거시기의 덜렁거림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춤사위에 소리 높여 환호하는 관중들. 먹히고 있는 것 같다.
‘수백 명 앞에서 알몸 스트립쇼.’
둥둥둥-!
하우스 비트가 내 심장을 때릴 때마다 인간의 존엄성(내 존엄성)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도 같이 받았다.
한참을 춤추고 나서, 내 경매가는 500만 원이었다. 앞선 조개 마물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젠장.
*
경매가 끝나도 크루즈가 부두에 정착하기 전까진 마물들은 창고에서 대기한다. 차례가 끝나고 다시 창고로 돌아온 난 나머지 마물들에게 각인을 새겼다.
마침내 모든 마물의 몸에 원장님의 표식을 새겼다. 팔찌를 두들겨 턱시도를 입고, 옷깃에 장착된 통신 장치를 통해 원장님에게 알렸다.
“끝났습니다.”
잠시 후,
쾅-!
배가 순간 뒤집어질 만큼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적색 비상등이 켜지고 시끄러운 알람이 울린다.
“센터, 센터! 보고 바란다!”
보고를 받으며 당황하는 헌터들.
-갑판에 이상 발생, 공중 공습, 전투기? 아니, 저건… 대체?
“정확한 상황 보고 바란다.”
-지… 집합! 모든 가용 인원, 갑판으로 집합하라!
창고와 복도에서 경계를 서던 헌터들이 모두 우르르 빠져나가고, 난 여유롭게 우리를 나와 기지개를 폈다.
내 할 일은 끝났다.
“봐 봐, 날 믿으랬지?”
이제 마물들과 함께, 돌아올 원장님만 기다리면 된다.
쾅-!
폭발이 또 울린다.
갑판 위의 상황이 내심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확실한 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원장님이면 30초면 충분하겠지?”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 건 이제 헌터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