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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3화 (53/258)

# 53화 경매장 (3)

“탈출한 마물을 발견했다. B 경계조, 지원 바란다.”

일을 무사히 끝마쳐 안심하던,

돌아가 받을 특별 수당금과 원장님의 칭찬에 벌써부터 뿌듯해지던 난,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온 헌터들 때문에 순식간에 냉수를 들이켠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헌터들이 원장님에게로 간 게 아니었다.

‘긴장하지 말자.’

예전의 내가 아니다.

대부분의 일은 그녀가 처리하겠지만 이런 사소한 어긋남은 나도 처리할 수 있다. 적어도 마물원에서 일하며 달라진다고 각오했으니, 이 정도 불상사는 감당해야겠지.

엉엉-!

그런 생각을 하며, 춤추는 물개 흉내를 냈다. 재빨리 원장님에게 연락해서 이곳에 헌터들이 있다고 알리면서.

야비해도 어쩔 수 없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귀찮은 것보다 편한 게 좋은 거다.

[그래요? 다정 씨가 해결해요. 아직 ‘구해야 할 걸’ 못 구해서, 도와주지 못해요.]

“원장님. 원장님. 원장님?”

대답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잠깐, 저 마물 이상하지 않아?”

“점점 모습이 마치 인간처럼… 릭스! 전투에 돌입한다!”

턱시도를 입은 상태라서 금방 들키고 말았다. 난 아무 말 없이 팔을 들어 올렸다.

‘선빵필승.’

헌터들이 당황하는 사이, 소매에 설치된 발사 장치로부터 구속구가 발사되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든 것이다.

한 명은 피했으나, 다른 한 명은 피하지 못했다. 피하지 못한 헌터는 순식간에 구속구에 묶였고,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난 다른 한 명에게 달려갔다.

검을 뽑았다.

검을 다루는 법은 모르나, 손톱처럼 휘두르는 방법은 안다.

헌터는 기다란 장검을 뽑아 맞섰으나, 마도구라고 하더라도 황소 마물의 괴력이 깃든 내 공격을 막아 내진 못했다.

내 힘에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헌터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가 나무를 도끼질하듯 검을 양손으로 쥐고 내려쳤다.

크악-!

남자는 간신히 막았으나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요령이라곤 쥐뿔도 없는 공격이나 담긴 힘은 무시무시했다.

내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자빠진 남자에게 구속구를 발사했다. 큰 저항 없이 남자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당했다. 하지만 혹시 지원을 부를까 싶어 윙바레산 마취약도 주입했다.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강화된 턱시도 기능의 도움을 제외하더라도 순수한 ‘힘’에서도 내가 이겼다.

마취 당하여 정신을 잃어 가는 두 명의 헌터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달라졌구나.

난 어릴 때 사건 이후로 다혈질이었고,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엔 싸움을 굳이 피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점점 ‘능력자’라는 괴물들이 늘어나며 절로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어쨌든 싸움은 정말 많이 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긴 적은 없었다. 특히 저들은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헌터들이다.

그런 헌터들을 마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확실히 난 달라지고 있었다.

구속구에 묶인 채 기절한 헌터들을 빈 우리에 집어넣었다. 마물 우리를 관리하는 역할이었는지, 우리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가 있었다.

우리의 잠금장치를 모두 해제시키며 마물들을 풀어 주던 그때였다.

마물들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뭐?”

공포와 두려움.

혹은 경고.

내게 말을 건다. 경고한다. 마치 까마귀가 미어캣에게 경고를 하듯, 자신들을 구해 주는 내가 ‘죽지 않게’하기 위해서.

[온다.]

[위험해.]

[천적.]

[우릴 가둔.]

[잡아 먹혀.]

[도망쳐.]

일제히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던 마물들은, 또다시 순식간에 울음을 멈추었다. 나 또한 숨을 죽이며 대비했다. 마물들이 저토록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이내,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순간, 굶주린 사자의 노란 눈을 마주한 듯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뭐냐?”

쾅-!

“크악!”

남자가 손을 멀리서부터 휘두르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날아와 내 몸을 강타했다. 저항할 수 없이 날아가 처박히고 말았다.

“버텼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남자를 바라봤을 때, 놈의 머리 위엔 거대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화염 방사기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난 불꽃이 점점 ‘화살’의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가 유저 ‘마법사’임을 깨달았다.

*

‘유저’라는 건 헌터들의 은어다. ‘이계의 힘을 사용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특별하다.

능력자들 중에서도 각별하게 이질적이다. 인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어긋난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법, 무공, 주술, 신력(信力)……. 어떤 이계의 힘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유저들은 다양하게 구분되어 고유의 명칭으로 불러진다.

무공을 다루는 유저들은 무인이라 부른다. 주술을 배운 자들은 샤먼이라 부른다. 또한, 마법을 배운 자들은 마법사라 불린다.

그도 마법사였다.

3등급의 마나를 각성한 인간이었으나, 늙은 마법사의 기연을 받아 마법을 다루게 된 남자의 이름은 타르다.

고아였기에 스스로 이름을 붙이길 담배 따위의 유해물질인 타르라고 이름 지었다.

남자는 스스로 정한 이름만큼이나 유해한 남자였다. 그가 머무는 곳엔 살인과 강도 사건이 일어난다. 스스로도 검은 독액처럼 주변을 오염시킨다.

그런 남자가 힘을 가지자 온갖 불법적이며 추악한 일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계의 힘을 이어받은 아주 드문 마법사 유저인 타르는 순식간에 암흑가의 주목을 받았고, 이제 그는 하루 고용비만 3억이 드는 거물 헌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게을렀다.

강한 힘을 가졌기에 누구도 그를 건들지 않는다. 일을 맡아도 책무는 무시하기 일쑤다. 하지만 고용인마저 그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암흑가의 세력은 그를 고용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달아 경호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그 이유,

지독한 잔혹성.

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그에게 맡긴다면, 만약 물건을 탈취하려는 자가 있을 시 그자는 반드시 죽었다.

경호하는 일을 맡기면, 경호 대상에게 해를 가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죽었다.

그의 잔혹성은 이런 세계에선 환영받았다.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선실에서 미녀와 뒹굴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타르는 소동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즉시 마물 창고로 향했다.

당연했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마물의 보호였기 때문이다.

만약 소동의 근원이 마물들이 아니라면 더 이상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소동이 일어났다면, 마물을 훔치려는 자들을 모두 죽이면 된다.

“뭐냐?”

창고엔 한 명의 동양인 남자가 있었다. 물었으나 대답을 바란 건 아니다. 그는 우선 마법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그를 던져 버렸다.

“버텼네.”

죽이고자 했다.

하지만 죽지 않자 그가 능력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법을 발동시켰다.

[광조의 화살]

다 죽어 가던 늙은 마법사가 전달한 마법의 기억, 그중 ‘광조’라 불리는 불의 마법은 절대적인 파괴력을 자랑했다.

자신과 같은 등급인 3등급의 헌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 마법은 3등급의 헌터라도, 일격에 죽일 수 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불의 화살을 쏘았다.

푸쉬쉬-!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법은 예상과 달리 무참히 그를 폭사시키지 않고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타르는 이내 남자의 능력이 방어에 치중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강한 마법을 발동했다.

[광조의 창]

화살 마법의 수배의 위력.

단순한 불의 마법이 아니라 일단 불이 붙으면 상대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절대 꺼지지 않는 신묘한 마법이다.

타르는 생각했다.

선실로 돌아가면 코냑 대신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겠다고.

분명 광조의 창에 의해 남자가 잿더미가 되어 사(死)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더 이상 저 남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깜짝 놀랐네, 뭐여 시벌.”

마찬가지로.

광조의 창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자, 그제야 타르는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대체 어떤 능력자지?’

더 이상 앞의 남자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마법사 유저가 펼친 불꽃의 화살은 내 몸을 휩쓸기 전에 사라졌다.

놈은 열 받았는지 더 강한 마법으로 공격해 온다. 피할 수 없어 눈을 찔끔 감았으나,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한 열기를 뿜어 대던 불의 창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깜짝 놀랐네, 뭐여 시벌.”

문득 붉은 빛이 나는 옷깃을 쳐다보니 용 브로치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내 잠잠해지는 브로치에 별안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오리하르콘.’

마법사는 전과 달리 경계하며, 멀리 물러나더니 다양한 마법을 시전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살, 창, 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독수리까지.

하지만 모두 막혔다.

“굉장하구먼.”

오리하르콘, 드워프와 레프러콘이 종족의 멸망까지 감수하며 가지고 싶어 했던 신의 금속. 드래곤이 욕심내던 금속, 마법적인 저항력을 가졌다는 금속.

그로 인해 마법사 유저의 마법은 날 전혀 해치지 못했다.

“새끼, 마침 잘 만났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사기 아이템을 받자마자 너 같은 놈을 만나는구나.”

다짜고짜 날 공격한 놈에게 날 죽이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당황하는 놈은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했으나, 난 그대로 황소처럼 들이박았다.

푸쉬쉬-!

역시 마법은 사라지고, 난 주먹을 휘둘러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코피가 터져도 이건 초등학생 싸움이 아니다.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남자의 이빨이 뽑히고, 턱이 돌아갔으나, 계속 쥐어 팼다.

놈을 기절시키는 데 마취약이라는 편한 방법이 있었으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쳐 맞아 기절해야지, 마취약은 너무 자비로운 방법이잖아.

‘질긴 놈.’

보통 이 정도 맞으면 기절한다.

몸이 버티더라도 고통에 정신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과연, 마법사 유저라서 그런지 질겼다. 하지만 육체적인 힘은 형편없었다. 마법도 안 통하니, 날 해칠 수단은 없다.

놈은 집어 던지고 깔아뭉개려고 할 때였다.

슈웅-!

내 몸이 난다.

한참을 날아가, 뒤로 처박히고 말았다. 크윽, 우리에 부딪히며 정강이뼈에 금이 간 듯하다. 엄청 고통스러웠으나 아픔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저 힘, 마법이 아니야.’

마법사 유저는 빠진 턱을 끼우며 태연스럽게 일어났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팔이 부러져 돌아간 상태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통 따윈 못 느낀다는 듯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대단한 독종이다.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가고자 했으나, 어떤 무형의 기운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브로치가 빛나지 않았다. 역시 저 힘은 마법이 아니다. 날 처음 공격했던 힘, 그래서 내가 나자빠졌었구나. 각성한 놈만의 고유한 능력인가?

가까이선 날 날려 버릴 만큼 강력했으나, 거리가 있으니 그만한 파괴력은 못 내는 듯했다.

난 기회를 엿보며 구속구를 발사할 준비를 했다.

콰아앙-!

대치하던 그때였다.

큰 폭발이 일어났다.

‘원장님.’

충격으로 인해 선체가 파괴되었는지 창고에 침수가 발생했다. 대형 크루즈인 만큼 피해는 적었으나 창고는 서서히 바닷물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곧 침몰하고 말겠지.

“시간이 없다.”

그래서인지,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치하고 있었던 놈이 달려들며 외친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값은 네놈의 목숨으로 받도록 하지.”

“뭔 개소리야?”

큭!

같이 덤벼들었으나 어떤 기운에 의해 날아간 건 나다. 젠장,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이 있어.

헌터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나타나는 각성 능력에 대해서 설명했었지. 그중에 ‘초능력’이 있으며, ‘염력’이 주로 발현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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