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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4화 (54/258)

# 54화 경매장 (4)

놈의 능력은 염력과 흡사했다. 아니, 염력이었다. 다가가니 밀어내고 멈추어 서니 염력으로 내 몸을 비틀어 버린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두 손과 싸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안 돼.’

포근이의 힘을 빌려 화염탄이라도 쏠 수 있으면 모를까, 지금 난 녀석의 힘 앞에서 무력했다.

‘포근이? 아!’

마물의 힘,

문득 생각났다.

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의 힘을 떠올렸다. 즉, 산성액이다. 두 손을 선체의 벽에 갖다 대고 산성액을 뿜었다.

치치직-!

강력한 산성액은 순식간에 선체를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부식성이 강한 바닷물에 끄떡없는 소재라도 마물의 힘은 특별했다.

더군다나 원장님에 의해 뚫린 선체의 구멍을 산성액을 통해 넓히자, 창고가 바닷물에 침수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뭣 하는 짓이냐?”

놈은 염력으로 날 쥐고 흔들었으나, 나는 피를 토하면서도 산성액을 사방에 흩뿌렸다. 부식당한 구멍이 넓어질수록 바닷물은 세차진다.

“같이 죽자는 건가? 머저리놈!”

내 의도를 눈치채고 놈은 날 끌어 내렸다. 밧줄에 묶인 듯, 무형의 기운에 돌돌 묶인 난 저항할 수 없이 놈 앞까지 끌려갔다.

놈은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마치 잔뜩 흔들어 버린 콜라처럼 몸 안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크악!”

내장이 뒤집어지는 고통.

눈깔이 터질 것 같다. 삐- 소리가 심해지더니 고막은 이미 터져 버렸다.

…….

원장님과의 훈련으로 산성액을 어디로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똥구멍이 아니라도.

크아아악-!

이제 비명을 내지른 건 놈이었다.

난 정수리로부터 산성액을 흘려보냈다. 염력으로 내장을 흔들던 놈은 즉시 손을 뗐으나, 산성액이 이미 놈의 손바닥 가죽을 다 녹이고 난 후였다.

하지만 처음 비명이 다일 뿐, 놈은 다시 표정을 굳히고 날 바라봤다.

“더러운 능력이군.”

“독종 새끼.”

콸콸콸-!

산성액으로 부식시킨 구멍에 의해 마침내 내 허리까지 바닷물이 차올랐다.

난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바라봤다. 힘을 잃었던 녀석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 같겠지.

“죽어라.”

하지만 놈은 모르는 듯했다.

마물들이 도망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날 죽이기 위해서만 살의로 가득한 눈을 부릅뜬다.

다시 한 번 염력에 의해 끌려갔으나, 난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어떻게 안 웃겠어?

느껴지는데.

녀석들이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 너무 기분이 좋아서 고통마저 잊을 만큼 상쾌했다.

염력으로 헌터의 장도를 추켜세워 날 찌르려던 남자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렇게 물었다.

“왜 웃고 있는 거지?”

난 대답했다.

“느꼈기 때문이야.”

남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엇을?”

“넌 들리지 않니? 이 조그마한 크루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이 넓은 바다에서 자유를 느끼는 마물들을, 그리고 착실하게도 내게 은혜를 베풀고자, 혹은 복수를 하고자 몰려오는 녀석들의 아우성을.”

콰앙-!

도망쳤던 마물들이 다시 선체를 부수고 비집고 들어온다. 이미 선체엔 놈들이 활보할 만큼 바닷물이 충분히 가득했다.

“바다에서 사는 마물들이야. 지금까진 우습게 보였겠지. 하지만 상어를 맨땅에서 가지고 논 것에 불과해. 어디 한번 진정한 공포를 느껴 봐.”

우습게도, 마물들이 창고에 들어오자마자 바깥 복도에서도 헌터들이 몰려들어 왔다. 아마 원장님을 피해 마물들을 훔쳐 ‘한몫’ 잡으려던 하이에나겠지.

마법사 유저는 염력으로 검을 내게 쏘았으나, 바닷물로부터 ‘거북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대신 막아 줬다. 내가 각인을 찍으며 안정시킨 마물 거북이였다.

산성액으로 되도 않는 공격을 계속한 건 침몰 따위를 유도한 게 아니라 이를 노린 것이다.

헌터와 마법사, 적밖에 없는 전장.

하지만 사실 내 편이 더 많았다.

마물들은 처음부터 날 응원하고 있었다. 그에 응답하여 난 해양 마물들이 힘을 쓰도록 크루즈에 구멍을 뚫어 줬을 뿐이다.

사태를 파악한 놈이 염력을 통해 도망가려고 했다. 난 굳이 놈을 잡지 않았다.

놈도 보았다.

가득 찬 검은 바닷물로부터 드러난 거대한 지느러미를.

화르륵!

내게 쳐 맞는 동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놈이 몹시 두려워한다. 마법을 사용하나, 바닷물에 그딴 게 통할 리가 있나?

‘딥 블루 씨를 보는 것 같군.’

마취약에 절어 굴욕을 당하던 바다의 포식자가 움직인다.

그 모습에서 고전 영화가 생각났다. 거대하고 똑똑한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인간들.

마침내,

메갈로돈이 아가리를 벌렸다.

크악-!

마법사는 한 입이었다.

허무하게 그는 메갈로돈에게 삼켜졌다.

그가 아무리 독종이라고 하더라도, 몸이 씹어 먹히는 순간에는 분명 지독한 공포를 느꼈겠지.

마물들의 분노는 몹시 흉악스러웠다. 이곳의 헌터들은, 카르마 길드를 포함하여 강한 자들이었으나 힘을 되찾은 해양 마물들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어느덧 바닷물로 가득 찬 크루즈, 헌터들은 도망칠 곳을 찾으나 망망대해 위에서 기댈 곳은 없겠지.

포식의 현장을 담담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수고하셨어요.”

원장님이 나타났다.

그녀의 주변은 바닷물이 침범하지 않았다. 대륙 거북이 무리를 찾으러 갔을 때 사용했던 비눗방울 마법인가?

난 원장님을 바라보다 넌지시 말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원장님은 애매한 대답을 했다.

“잘하면요.”

난 헌터들의 생존 따위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크루즈의 평범한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자 원장님은 방금 전과 달리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인간도 보호해요. 남은 인간들은 업보를 감당해야 할 자밖에 없어요.”

“아…….”

업보.

참 무서운 말이구나.

잠시 후, 원장님은 침몰한 크루즈에서 잠잠해진 마물들을 데리고 마물원으로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

해양 마물들을 만들어 놓은 우리에 집어넣고 돌아온 원장님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피곤은 느끼는구나.

‘그러고 보니 난 그녀에게 아무것도 선물해 준 게 없네.’

턱시도, 과할 만큼 높은 연봉, 특별 수당금, 그리고 내 목숨을 구한 오리하르콘 브로치까지.

그녀에게 받기만 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드래곤이었기에 어떤 비싸고 값진 선물을 줘도 감흥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난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물을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이라는 꼬리표를 떼면 감사할 게 너무나 많다.

‘선물이라…….’

생각나는 게 하나가 있긴 있었다.

*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베이킹 재료를 구입했다. 청소년기를 고아원에서 보내며,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일찍이 학업보다 생계 유지를 위한 수업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물이 되면 가차 없이 쫓겨나기에 고아원에서 지낼 때 많은 기술을 배웠다. 베이킹도 그중 하나다.

내 실력이 쓸모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나, 내겐 코쿠라차 여우원숭이와 교감한 이후로 극도로 발달한 ‘미각’이 있었다.

하는 방법도 알고, 재료도 충분하니 맛있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 남은 건 이제 시행착오밖에 없다.

과자를 굽고, 맛본다.

맛이 없으면 과감하게 버렸다.

누구한테 주는 거라고, 맛없게 만들겠어?

그럴 생각은 없었으나, 맛있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 애쓰다 보니 날을 새 버렸다. 새벽녘에 동이 트자 그럴싸한 쿠키 세트를 만들 수 있었다.

홈베이킹치고는 상당한 맛이었다.

사실 원장님이 좋아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냥 먹어 주기만 해도 성공이다.

캣 맘에게 초대받았을 때 맛있다며 과자를 잔뜩 먹거나, 드워프 공주를 위해 곧바로 맛있는 과자들을 준비한 걸 보면, 원장님은 무척이나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자 관리실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난 무심하게 책상에 과자 세트를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드세요.”

그녀가 드래곤이든, 원장이든, 직장 상사든 사실 생각해 보면 여자에게 선물을 준 적은 처음이었다. 괜히 쑥스러워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어머.”

검은 비닐봉지에 볼품없이 싸인 쿠키 세트, 하지만 그녀는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쿠키? 홈베이킹 같은데 혹시 직접 만든 거예요?”

내심 반응을 살피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제가 그동안 받은 것도 있는데 뭐, 사소한 답례 차원으로… 맛없으면 안 드셔도 되요.”

와작!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내게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선물하는 이유를 말이다.

이 맛이구나.

*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원장님이 말했다.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실 테니, 오면 내 방으로 안내해 줘요.”

손님을 원장실까지 모시고 오라는 원장님의 부탁을 받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야옹이와 장난치고 있을 때, 고급 세단 한 대가 들어왔다.

“어라, 저 차?”

난 기억을 더듬으며 저 특이한 고급 세단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했다.

끼익!

차가 멈추고, 난 손님을 맞이하러 가다가 차에서 내리는 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침부터 마물원을 찾은 손님은 내가 아는 자였다.

굳이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실루엣만으로도 그녀가 ‘리자드맨’, 아니 ‘사타리언’임을 모를 자들은 없을 것이다.

차에서 내린 자는 사타리언 부인이었다. 여전히 날카롭고 뾰족한 비늘과 파충류의 특징인 세로 동공이 아름답구나.

“어머, 다정 씨 오랜만이에요!”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인.”

마물원에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사타리언의 공주는 마취약을 포함하여 뛰어난 약들로 제약계를 꽉 쥐고 있는 굴지의 제약 회사, 윙바레의 사모님이시다.

저번에 아이들에게 고향을 알게 해 주고 싶다며 마물 사막 투어를 요청했었지. 인간과 이종족의 종을 넘어선 사랑이 꽤 인상 깊었는데.

사타리언 부인은 경호원(우락부락한 사타리언)을 돌려보내고, 나와 같이 관리실까지 걸어갔다.

“뭔가 좀 달라졌는데요?”

“에이, 왜 그래요. 잘생겨졌다고요?”

“아뇨. 얼굴은 여전히 평범한데요? 오히려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죠.”

“아…….”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태연하게 악담을 해서 무어라 대꾸하기도 이상했다.

“하지만 확실히 힘이 강해졌어요. 흐음, 위대하신 분의 은총인가요?”

사타리언 부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명함이 내 자부심이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도, 괜스레 뿌듯했던 것이다.

“원장님이 저더러 가디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구요. 크흠, 뭐 대단할 것 없이 그저 ‘용’에게 인정받는 남자 정도는 되죠.”

“와우!”

사타리언 부인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넙죽 엎드리기까지 했다. 난 당황하며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어유, 왜 이러세요. 갑자기.”

부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가디언은 드래곤의 대리자, 예의를 표하는 게 당연하죠. 다정 씨, 그때 제가 내건 제의를 받지 않으신 게 다행이셨어요. 제가 아무리 다정 씨를 아껴 줘도 ‘가디언’만큼의 대우는 못하니까요.”

“하하…….”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확실히 용의 가디언이라는 건 내 생각보다 더 삐까뻔쩍한 명함인 것 같다.

“남편분하고 애들은 잘 있나요?”

사타리언 부인은 홀로 마물원을 찾았다. 전에 열댓 명(기억도 안 난다.)의 아이들과 남편하고 같이 왔을 때에 비하여 한적했다.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 가고 있고, 남편이랑은 별거 중이에요.”

으잉?

마물 사막에서 아이들을 위해 몸을 던지던 남편, 진심으로 사타리언 부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부인도 보잘것없던 인간 남자와 결혼한 이유가 사랑이 아니었나?

별거라는 말을 들은 순간, 대체 뭣 때문인지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동네 미용실 아지매들의 수다처럼 물어볼 수는 없었으므로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잘… 되실 거예요.”

하지만 내 말에 되레 어색해졌다.

사타리언 부인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애초에 난 별거할 부모도 없는데 알 리가 있나!

쩔쩔매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술을 깨물 때였다.

“푸흡, 역시 다정 씨는 사람이 참 좋아요.”

사타리언 부인은 피식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별거라고 해도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남편이 우릴 지켜 주겠다고 ‘수련’하러 갔거든요. 어유, 생각할수록 정말! 내가 못산다니까요.”

“수련이요?”

“네. 진짜 우리들을 지켜 주기 위해 힘을 기르는 육체적인 수련.”

남편, 인간 남자로서 사타리언 부인과 아이들을 위해 항상 노력했지. 아이들을 지켜 주고 싶다고 말을 하긴 했어도, 설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단어 뜻대로 힘으로 지켜 준다는 것이었나?

“제법 수준 높은 무인을 영입해서 사부로 두고 어디 백두산 어귀에 들어가서 수련 중이라더군요. 하아, 저런 고지식함에 반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친 거 아닌가요?”

“맞아요. 생각보다 너무하셨네.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요? 보통 사람이면 그럴 생각조차 못 할 텐데.”

“오호호, 그렇죠?”

부인이 남편을 욕할 땐, 맞장구를 치되 심한 욕은 해선 안 된다. 과연 인터넷에서 본 찌라시 정보 글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대화를 하다 보니 원장실 앞까지 도착했다.

“그럼 다정 씨, 이번 일 잘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요?”

“위대하신 분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사타리언 부인과 관련된 일인가? 또다시 마물 사막을 투어하는 건 아닐 테고, 뭐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타리언 부인은 원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마물원을 떠났다.

원장님은 날 회의실로 불렀다.

뒤따라가며 넌지시 물어봤다.

“이번엔 무슨 일인가요? 헌터? 마물?”

“아뇨, 지금까지 못 해 본 분야.”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언제나 그랬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꽃 모유, 스트립쇼, 출산, 마물 보육, 내가 못 해 본 분야가 뭐가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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