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58화 (58/258)

# 58화 모르모트 (4)

올리비아의 혀가 나에게 닿았다.

“기록 D, F-4번째. 분열 시 시큼한 맛이 난다.”

그녀는 대단히 프로페셔널했다. 어떠한 장치 없이 구석구석 피부와 직접 닿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작업에만 열중했다.

“조금 더 강하게 힘을 내 봐요.”

“포… 포근아.”

화르륵!

교감이 깊어지자 눈에 보일 만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불의 기운이자 샐러맨더의 힘이었다. 올리비아는 그녀만의 능력으로 포근이와 교감한 내게서 정보를 뽑아냈다. 아무런 사적인 감정 없이 말이다.

앗-!

“거긴 안 돼요. 조금 민감한 부위라서.”

물론 난 사적인 감정 만땅이다.

포근이의 힘이 미라 마물의 힘을 억제시키는 성질을 지녔다는 게 확실시되었으나 포근이는 그녀를 거부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정말이다) 내가 대신 포근이의 기운을 품고 그녀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 이건 엄연한 연구 과정이었다.

“음, 거기도 안 돼요.”

“그래요? 그렇군요.”

그래, 솔직히 이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미녀와의 이런 경험은 꽤 괜찮았다.

어느 정도 그녀에게도 익숙해질 무렵, 난 새삼 그녀가 저명한 마물 병리학 박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실험 기계들(그녀가 직접 만든)로 그녀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는데, 연구 도우미가 있어도 잡심부름만 맡을 뿐 연구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연구를 거듭하던 그녀는, 마침내 불그스름한 알약 한 개를 만들어 내고 뿌듯하게 웃었다.

“정제된 기운.”

드디어 만든 건가?

“그게 치료약인가요?”

“아뇨. 이제 본래 만들었던 백신과 결합 과정을 시작할 거예요. 드디어 난해한 단계에 접어든 거죠.”

그 후로 그녀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쪽잠을 자며 연구를 진행했다. 가끔씩 몸을 내줄 때마다 올리비아를 관찰했는데, 정말 대단한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동시에 그녀의 술버릇이나 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를 다른 플라스크에 옮기는 반복 작업만 몇 번째야?

*

릭스틴 연구소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정 씨!”

깊은 밤, 한참 자고 있던 난 기상 외침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방금 일어나 부스스한 나보다 훨씬 더 몰골이 처참한 올리비아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완성했어요? 완성한 거예요?”

내 물음에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점점 미소가 사라지며 얼굴에 그늘이 진다.

“95%까진 완성했어요. 다정 씨, 난 걱정이에요. 100%가 아닌 약, 환자들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혹시 잘못되면…….”

타인인 내가 말하기엔 무책임할지도 모른다. 그녀 말대로 환자들이 버티지 못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난 그녀의 등을 떠밀어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올리비아 씨는 노력하셨잖아요. 그리고 이 약이 마지막 희망이잖아요. 괜찮아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누구도 올리비아 씨를 탓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니, 미라 괴물은 탓하겠죠. 백신을 만들었다고 화낼 거야. 그때 제가 놈하고 대화해서 말해 줄게.”

진짜 말할 생각이다.

꽤 통쾌하겠지.

“‘FUCK YOU’라고.”

시원찮은 격려가 통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입술을 깨물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니엘 소장을 찾아갔다.

“고마워요.”

난 부디 그녀의 노력에 좋은 결실이 맺길 바랐다.

*

긴급회의가 개최되었다.

미완성 백신을 투약하느냐, 마느냐의 간단한 의제.

회의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남은 희망이 올리비아가 만든 백신밖에 없었으므로 곧바로 투약이 결정된 것이다.

죽어 가는 환자들,

비틀리고, 오염되고, 붕괴된 육체의 환자들에게 신약이 투약되었다.

나도 간절한 연구원들의 곁에서 환자들의 경과를 같이 지켜봤다.

의료 기계(골렘)들이 환자들에게 약을 투여한다.

“제발, 제발, 제발.”

올리비아의 편집증적인 혼잣말에도 그 누가 무어라 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투약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환자들의 상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증상은?”

“비틀림이 완화되었고, 혈액의 피가 소량이지만 분명 움직입니다. 지금까지의 경과로만 본다면… 분명 호전되고 있는 겁니다!”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다섯 시간 째 되던 때.

크아악-!

비명.

상태가 호전되던 환자가 비명을 지른다. 1년 동안 끔찍한 상태에서 지내던 환자였다. 하지만 비명은 호전의 시작을 알리는 게 아닌, 단말마에 불과했다.

그 후, 호전되던 환자들은 일제히 발작을 일으켰다.

곧바로 투약은 중지되었다.

“젠장!”

그 모습을 애타게 보던 올리비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거칠게 의자를 발로 찼다.

“역시 버티지 못해! 1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어. 젠장! 병에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나았을 거야. 하지만 이미 상해 버린 육체가 버티기엔 신약은 너무 강해.”

그 후,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다.

실패 요인을 끊임없이 혼잣말하며 의자에 머리를 박는 올리비아, 다른 연구원들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인 것이다.

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머리를 박던 이마를 감쌌다.

그러자 올리비아는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사실, 난 방법을 알아요. 하지만 내가 떠올린 이 방법이 너무 역겨워서 차마 말하지 못하겠어요.”

포근이의 기운은 따뜻하다.

난 지금 느끼고 있는 녀석의 기운을 올리비아도 느끼기 바랐다.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포근이도 내 뜻을 알아주어 싫어하던 올리비아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비비적거렸다.

올리비아는 점차 진정되었다.

이들에겐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의는 그날 오후 늦게 시작되었다.

“백신은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약 강도와 배합 비율이 잘못된 겁니다. 100%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실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스스로를 혐오하며 차마 내뱉지 못한 말.

“환자들에게 임상 실험을 한다면 분명 수십 명 중 절반 이상은 죽을 겁니다.”

모두 말을 꺼내지 못한다.

인도적 차원, 그들이 지키고 있던 넘을 수 없는 선. 올리비아의 제안은 그 선을 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알았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거라는 걸.

환자들의 희생으로 백신을 완성시키겠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희생으로 다수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희생은 선택한 게 아닌 타인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죽은 자들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시체 위에서 생을 얻는다.

‘선택이라…….’

떠올렸다.

그 끔찍했던 경험을.

분명 지금 내가 할 일은 그보다 더 끔찍하겠지.

“내가 하겠어요.”

침울한 회의실에서 번쩍 손을 들고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난 다니엘 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마물과 깊게 교감하면 순식간에 전염병의 말기 증상까지 도달한다. 그래, 환자들과 똑같은 증상까지.

“모르모트가 되겠습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쩌자고 그러냐?

스스로의 질문에 난 애매한 대답만을 했다.

글쎄.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감동적인 자기희생?

혹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

물론 그렇다고 내가 죽음에 뛰어든 건 아니다. 난 본격적인 모르모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실험을 했다.

‘괜찮아.’

미라 마물과 마주하며 전염병에 걸린다. 붕괴되는 육체, 하지만 포근이와 교감하자 또다시 씻은 듯이 나았다.

‘할 수 있다.’

그 짓을 여러 번 반복했다.

확실한 답을 얻고 싶었다.

정말 괜찮아. 죽지 않아.

그런 믿음으로도 막상 쉬운 선택은 아니었었다. 그래도 난 하고자 했다.

일곱 번째,

놈과 교감을 나눈 후 병에 걸렸다. 하지만 곧바로 포근이와 교감하지 않고, 병에 걸린 채로 위생복을 입은 의료 골렘(원장님이 기증한)에게 옮겨져 연구실로 향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 당연한가?”

나는 모르모트가 되었다.

유리창 너머엔 올리비아와 연구원들이 보였다.

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의료 골렘이 새로 만든 신약을 가지고 왔다.

주사기를 팔에 꽂으며 생각했다.

“시발, 나 존나 멋있어.”

스스로 모르모트가 되어 백신 치료제에 도움을 보태다니, 존나 멋있잖아.

젠장, 이런 자기 위로가 없으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사기를 밀어 넣고 기다렸다.

두근-!

이내 그것이 온다.

무지막지한 고통, 환자들이 느꼈을 죽음에 이르는 발작이!

심장을 찌르고, 폐를 찌르고, 내장을 찌른다. 알 것 같다. 정화 작용이다. 자세한 건 몰라도, 내 몸은 약에 의해 정화되고 있다.

화르륵!

그리고 이어서 흘러들어 온 샐러맨더의 기운, 포근이의 기운과 흡사하여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포근이의 기운은 망가진 내 몸을 강제로 복구시켰다.

“아.”

다만,

방금 전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을 격통이 몰려왔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다행인 건 고통은 짧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알겠어. 이 약은 환자들은 못 버텨. 특히 약해진 환자들은 더더욱.’

준비된 수첩에 올리비아와 연구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을 기록했다. 샐러맨더의 기운을 낮추라는 것과 ‘정화’ 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를 더 투여하라는 것.

병은 치료됐으나,

난 또다시 지하로 향했다.

[…너.]

처음으로 놈이 ‘죽어’ 대신 다른 말을 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이내 날 또 죽이려는 듯 병에 감염시켰고 난 다시 의료 골렘에 올라타 연구실로 향했다.

*

이 고통스러운 짓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입니다. 이건 확실히 환자들이 버틸 겁니다.”

병에 완쾌된 난 연구실을 나서며 올리비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녀는 경악하며 말했다.

“다정 씨, 코가…….”

그녀의 말에 거울을 보니 코가 사라져 있다. 난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괜찮아요. 놔두면 자랍니다.”

쿨한 척했으나 재빨리 포근이를 안았다. 교감을 나누자 불꽃의 기운이 몸을 감돌더니 코가 서서히 자라났다. 휴우, 식겁했네.

곧바로 신약이 환자들에게 투약되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경과를 살피는 올리비아와 연구원들.

하지만 난 확신했다.

치료될 거라고.

전처럼 다섯 시간 만에 사망자가 나오진 않았다. 환자들의 상태는 서서히 호전되었다.

연구원들은 하나둘 지쳐 잠들었으나 올리비아는 몇 시간 동안이나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올리비아가 말했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잠에 빠져 있던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442일 경과, 63-F 테이크 보고.”

그녀의 말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맥박 정상.”

누군가는 기뻐했고.

“뇌압 정상.”

어떤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모든 게 정상인과 같아짐. 그럼으로 남수단 마물에 의해 발생한 전염병은… 완치되었음으로 판단함. 올리비아 스펜서가 릭스틴 연구소에서.”

그녀에게 다가가 축하를 건네려고 했다.

“올리비아 씨, 정말 대단한…….”

하지만 그녀가 내 말을 가로챘다. 그것은 이제 팔목이나 손등이 아닌 내 입술로 향했다.

‘괜찮은 포상이야.’

한 번의 선택, 그로 인한 결과들.

난 정말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포근이가 아닌 난 어떤 느낌이었어요?”

내 물음에 올리비아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착각하지 말아요. 이건 다정 씨가 말한 외국의 ‘정열’이니까.”

*

모두가 기뻐 서로를 격려하며 부둥켜안을 때, 축제와도 같은 현장에서 홀로 벗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오스틴 의사, 본 프로젝트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다.

그는 어디론가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연신 눈치를 살피며 마치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완성. 게르반 형, 내 몫은 확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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