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게르반 형제 (1)
노랗게 때가 탄 백의를 입고 곱슬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연구원들이다.
당연히 그들이 너드일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에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난 맥주에 나초 따위를 먹으며 다 같이 그동안 밀린 상업 영화나 볼 줄 알았다.
하지만 편견이었다.
그곳은 따분한 영화관이 아닌 들썩거리는 파티장이 되었다.
저녁이 되자 하나둘씩 모였다.
연구원이라 생각하지 못할 복장들을 입고서 말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짧은 드레스를 입었고, 남자들은 평상복이었으나 촌스럽지 않았다.
스크린은 영화 따위를 상영하지 않았다. DJ들과 신나는 음악,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의 녹화본이 재생되었다.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오히려 어울리지 못하는 건 나였다. 순식간에 클럽처럼 되어 버린 곳에서 난 뻘쭘하게 서서 박수만 쳤다.
“나 그 모습 알아요. 하우스 파티에 처음 초대 받은 너드 같잖아.”
올리비아가 다가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기대에 배신한 건 당신들인데요. 아이비리그 출신 연구원들이라기에 난 당연히 점잔 빼며 맥주나 홀짝일 줄 알았지.”
“이리 와 봐요.”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하우스 비트에 맞추어 발을 동동 굴렸다. 저게 춤인 건 알았으나, 난 목석처럼 서서 그녀가 흔드는 대로 팔만 까딱거렸다.
“재미없게! 그냥 음악에 몸을 맡겨요. 막 춰요! 신나잖아?”
난 사람 따라 맞춤복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난 너드라서 이런 분위기와 음악보다 PC방과 ‘더블 킬’ 소리가 어울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뭐,
알게 뭐야.
“아하하-!”
그녀 말대로 음악에 몸을 맡겼다. 나도 안다. 그 모습이 영 꼴사납겠지. 하지만 정말 알게 뭐야.
“bangarang!”
뀨앙-!
내 영향을 받았는지 구석에서 시무룩해 있던 포근이가 갑자기 신나하며 소리 지른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난 정열적으로 몸을 흔들었고, 그럴수록 올리비아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마침내 음악이 끝났을 땐 올리비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아아, 내가 이 무대를 뒤집어 놓았다.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다시 생각했다. 뭐 어때?
*
다음 날 오후,
군용 트럭들이 도착했다. 윙바레에서 ‘백신’을 본사까지 싣기 위해 준비한 차량들이었다.
경호가 삼엄했다.
군용 트럭은 현금 수송 트럭처럼 방탄에다가, 크기만 하더라도 대형 덤프트럭보다 컸다.
윙바레에서 파견 나온 경호 병력도 상당했다. 트럭마다 일곱 명의 헌터가 붙었는데, 느껴지는 마나가 적어도 5등급 이상의 고급 인력들이다.
완성된 백신은 출하된다.
이 백신은 미라 마물의 치료제였으나, 샐러맨더의 기운을 응용한 백신의 프로토 타입으로 다른 마물 병을 치료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내 임무도 여기서 끝이 났다.
우선 윙바레 본사에 들른 후에 한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원장님은 일을 치르고 있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연구소에 있는 것도 좋지만 더 이상 컵라면을 먹는 건 지겹다.
다니엘 소장과 친해진 몇몇 연구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올리비아와 마주했다.
“잘 가요. 포근이도 잘 지내!”
“잘 있어요, 올리비아 씨.”
“받아요. 내 연락처예요.”
올리비아가 건넨 명함,
릭스틴 연구소의 총괄 팀장이라는 직함과 이메일과 연락처 따위가 적혀 있다.
릭스틴 연구소는 원장님이 후원하는 마물 연구소다. 올리비아가 이곳에서 계속 연구원으로 남아 있다면 분명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라, 난 안 줘요?”
명함을 받기만 하자 올리비아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머리를 긁적이다가 지갑에서 한 장의 명함을 꺼냈다.
“사실은요.”
내가 건넨 명함을 받자 올리비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물원… 직원? 윙바레의 헌터가 아니었어요?”
“네. 그쪽에서 부탁을 받았긴 했는데 사실 뭐라 할까, 제가 좀 복잡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마물원은 뭐 하는 곳이래요?”
“글쎄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예요. 언젠가 초대할 테니, 놀러 오세요.”
마물을 좋아하는 그녀라면,
분명 우글거리는 마츄와 코쿠라차 여우 원숭이들, 샐러맨더와 다른 마물들도 좋아하겠지.
올리비아하고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군용 트럭에 타려던 그때였다.
처음 눈치챈 건 포근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내게 경고했다. 나 또한 포근이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서 놈들을 발견했고, 즉시 팔찌를 두들겨 턱시도를 입었다.
이내 출발하려던 다른 헌터들도 모두 트럭에서 내려 놈들을 쳐다봤다. 놈들은 자신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기습이라고 하기엔 너무 당당하여 마치 나들이라도 나온 듯했다.
“안으로 피신! 피신하십시오!”
헌터들을 지휘하는 경호 대장,
그는 눈치가 빨랐다.
곧바로 어떤 상황인지 깨닫고 민간인부터 챙겼다.
차르륵!
하지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연구소로 돌아가던 연구원들은 다급한 경호 대장의 외침에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릭스틴 연구소는 대단히 패쇄적이다. 평범한 건물과 다르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면 헌터들이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강철 문을 부술 수 없었다.
“오스틴?”
유일하게 마중 나오지 않는 남자가 연구소의 문을 닫는다. 오스틴이라는 의사였다. 그는 닫혀 가는 문 안에서 우릴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난 아주 비열한 미소라고 느꼈다.
“문을 왜! 당장 열게, 오스틴!”
“오스틴, 비상사태에 무슨 짓을…….”
첫 번째 문이 닫혔다.
강화 유리였다.
눈치를 챈 내가 곧바로 달려갔으나, 이미 두 번째 문이 닫히고 있었다.
즉시 포근이의 기운을 빌려 붉은 권총을 겨눴다. 강렬한 화염의 탄이 발사되며 문을 직격했으나, 두 번째 문이 찰나의 순간에 닫혀 버려 폭발에도 멀쩡했다.
[아아, 들립니까?]
마침내 모든 문이 닫혔다.
당황하는 연구소 직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인터폰에서 오스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0억이야.]
놈의 목소리, 무척 신나하고 있다고 느꼈다. 비열한 개새끼 같으니.
[당신들의 목숨값, 30억이라는 거야. 하하하. 물론 내 몫이 되겠지만. 이봐, 병신들. 게르반 형제들은 멍청해. 그래서 인질이 쓸모 있든 없든 우선 다 죽이고 봐. 그러니 잘 죽어. 멍청한 샌님들아. 특히 올리비아, 이 개년. 감히 내가 누구라고 히스테리를 부린 거야? 어쨌든 잘됐어. 잘 뒤지라고. 하하하.]
이내 콘트리트 철근으로 이루어진 외벽까지 닫히고 말았다.
‘배신.’
난 겨우 일주일밖에 릭스틴 연구소에 안 있었다. 전후의 사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오스틴 의사라는 비열한 놈이 배신을 했다는 건 알겠다.
난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서 있는 연구원들에게 소리 질렀다.
“다니엘 소장님! 모두를 데리고 뒤로 피해요!”
지금 당장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습격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워졌던 것이다.
처음엔 두 명이었다.
도로 끝에서부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윙바레 헌터들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오는 놈들. 난 쌍둥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이 생긴 두 남자였다.
거리의 부랑자처럼 형편없는 몰골에, 70년대 폭주족처럼 삐죽 세운 모히칸에 분홍색 머리카락을 한 두 남자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생김새, 걸음걸이, 심지어 풍기는 마나까지.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점점 달라졌다.
늘어났다.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놈들은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변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릿수가 늘어났다.
마침내 100m 내외로 가까워지자 200명이 훌쩍 넘었다.
“무슨 능력이 저따위야?”
안 그래도 역겹게 생긴 놈들이다.
200명이 되자 단순 계산법으로 역겨움은 200배가 되었다.
“맙소사, 게르반 형제야.”
게르반 형제?
오스틴 의사도 우릴 조롱하며 그 말을 언급했었지. 놈의 협박을 생각해 보면 생긴 것만큼이나 정신 나간 무법자들일 확률이 높다.
“모두 대기, 상황을 주시하고 내 명령을 기다려라.”
윙바레의 숙련된 헌터들도 당황했다. 전투를 준비하긴 하나 겁에 질린 똥개들처럼 외치기만 할 뿐이었다.
‘오지 마, 우린 윙바레사의 헌터들이다. 더 이상 접근하면 발포한다.’
하지만 놈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헌터들은 놈과 점점 가까워졌음에도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우리 쪽이 힘이 우세하다면 진작 싸우고도 남았다.
즉,
저 못생기고 기괴한 능력을 가진 게르반 형제라는 놈들이 지금 전력으로도 제압하지 못할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게르반 형제가 뭐 하는 잡놈들입니까?”
헌터 대장에게 묻자,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유명한 무법자요. 아라비아의 악몽, 게르반 형제들.”
놈들은 헌터들 사이에선 유명한 모양이었다. 보이는 것처럼 몸이 분열하는 능력을 가졌다. 마치 플라나리아처럼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데, 인간이 저렇게 분열하여 몇 백 명으로 늘어나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꼴을 보아하니 찬물이나 얻어먹으러 오는 건 아니겠고, 역시 싸워야겠지요?”
“그렇소. 놈들은 협상 따윈 통하지 않는 잔인한 놈들이오. 젠장, 젠장!”
게르반 형제(혹은 200명의 못생긴 새끼들)는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서 멈춘 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놈들은 점점 늘어났고, 더 이상 머릿수를 세지 못할 만큼 많아졌다.
“확실하게 말해 주십시오. 우리 쪽 병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헌터 대장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구태여 변명하듯이 게르반 형제의 잔인함을 설명했다. 마치 전멸하더라도 자신의 무능함이 아님을 알아주라는 듯이 말이다.
“놈들은 자비가 없는 학살자요. 아라비아에서 천 명의 군인들을 학살했지. 문제는 군인들 모두, 5등급 이상의 능력자였다는 것이오.”
이쪽 세계에선 유명한 이야기 같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3세계의 권력자의 무력이 단 두 명의 인간에게 무너져 버렸지. 그 사건을 시작으로 놈들의 악명은 끝이지 않고 있소. 악몽 같은 놈들을 죽이기 위해 많은 현상금이 걸렸지.”
이어진 헌터 대장의 말에 난 놈들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그저 웃기기만 하는 병신들이 아니라는 게 확실히 와닿았다.
“그러나 현상범 사냥꾼들의 추적에도 유유히 살아남았지. 아니, 오히려 뛰어난 사냥꾼들의 목을 보란 듯이 전시하기까지 했소. 믿을 수 없으나 듣기론… 놈들은 ‘2’등급의 능력자라더군.”
잠깐,
그러면 크루즈에서 마주쳤던 ‘마법사’보다도 강하다는건가?
목적은 명백했다.
단순히 지나가는 길은 아니겠지.
배신자 오스틴 의사가 놈들을 불렀다.
이 타이밍에 습격했다는 건 단 하나의 이유, 릭스틴 연구소에서 그럴 가치가 있는 건 완성된 백신뿐이다.
긴장감이 피부를 찌른다.
하지만 헌터들과 달리 한눈에 봐도 게르반 형제들은 무척 여유로웠다.
‘압도적인 수의 공포감…….’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운 놈들.
확실히 공포스럽다.
똑같이 못생긴 놈들의 얼굴이 잔뜩 있는 건 둘째치더라도, 단순히 숫자에서 오는 공포감.
그때였다.
“이보게들~”
놈들 중에 한 놈(그놈이 그놈이지만)이 앞으로 나섰다.
“협상할 게 있…….”
그 즉시 난 포근이의 힘을 가득 머금은 탄환을 쏘았다. 기차게 발사된 총알은 놈의 복부를 관통하여 확실한 죽음을 선사했다.
“어……?”
“잠깐, 분명 협상이라고?”
“누가 쏴 죽인 거지? 왜?”
당황한 건 헌터들, 그리고 게르반 형제였다. 나 홀로 멀뚱히 선 채 집중되는 시선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 싸우는 거 아니야?”
잔뜩 악명을 들은 후다.
당연히 덤비는 줄 알았지.
솔직히 말하면 ‘2등급’ 능력자라기에 이처럼 허무하게 죽어 버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게르반 형제의 분열한 분신 중에 하나이니 죽였다고 하기에도 이상한데?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할 때 헌터 대장이 뛰어와 불같이 화를 냈다.
“이보게! 저자가 한 말을 듣지 못했소? 분명 협상이라는 말을…….”
아니, 언제는 협상 따윈 통하지 않는다며?
그때였다.
콰앙!
헌터 대장의 말을 끊는 폭발음.
폭발은 도로에 움푹한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검은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자리는 내가 총으로 쏴 죽였던 ‘게르반 형제’가 있던 곳이었다.
“폭탄을 설치했네.”
꼴을 보아하니 헌터들은 협상하는 척 다가오는 놈을 막지 않았을 테고,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겠지.
우하하-!
“우하하, 어떻게 알았지? 꽤 머리 좋은 녀석도 있고만!”
별일 아니라는 듯 호탕하게 웃고 마는 게르반 형제, 하지만 몇백 명이 다 같이 웃어 버리니 시끄러운 함성처럼 들려왔다.
‘분열한 자신의 분신을 미끼로 사용했어. 미친놈이다. 미친놈들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