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0화 (60/258)

# 60화 게르반 형제 (2)

이제 이 싸움에 협상이나 항복 따윈 없음을 헌터들은 모두 알았다.

게르반 형제의 진영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일어나더니, 누군가가(똑같이 생긴) 또다시 뛰어왔다.

“실드 전개!”

헌터 대장은 또다시 자폭 공격일 거라고 생각하고 ‘실드’를 펼쳤다.

실드는 다양하나 대부분 이계의 마도구로 총알 따윈 쉽게 막는다.(뛰어난 헌터들이 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다.)이제 내가 아니라도 헌터들 중 한 명이 능력을 사용했다. 세차게 날아가는 철봉이 달려오던 게르반 형제의 분신을 우지끈 부러트린다.

하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푸쉬쉬-!

대신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순식간에 연기로 뒤덮여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시야를 차단하는 게 목적이었다.

“스모그 탄이다! 전방 주시, 모두 뭉쳐라!”

수십 명의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난 따로 빠져나왔다. 내게 시야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느껴진다.

포근이의 감각은 인간과 다르다.

마물의 날카로운 감으로 몰려오는 게르반 형제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붉게 달아오른 총을 조준한다.

이윽고 연기 속, 달려드는 남자에게 발사했다.

“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놈,

하지만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뭐야?”

첫째로 당황한 건 놈의 내구성, 육체의 내구성 때문이다. ‘2등급’ 헌터라기에 무척 강하리라 생각했으나 너무 약했다. 5등급의 헌터도 버티는 포근이의 탄환을 맞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피를 흩뿌리는 꼴이 여간 징그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이어 나타난 놈의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총탄에 꿰뚫려 상체, 하체로 찢어진 놈이었다. 하지만 나눠진 상체에서 ‘하체’가 돋아나고, 하체에선 ‘상체’가 돋아났다.

“워메, 진짜 플라나리아냐?”

내 공격에 의해 둘로 분리된 게르반 형제,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며 다시 덤벼든다.

포근이의 기운을 품어 날카로운 절삭력을 가진 붉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쉽게 찢어지더니, 또다시 분열했다.

“망할, 네가 이곳의 호카게라도 되냐?”

물론 그림자 분신술은 죽으면 연기만 나고 말지만, 현실은 만화에 비해 대단히 끔찍했다.

“열은 스물, 스물은 두 배. 크크큭.”

윙바레사의 헌터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상황이 벌어졌다. 놈들은 2등급 헌터치곤 대단히 약해서 쉽게 죽일 수 있었으나, ‘확실하게’ 죽이진 못했다. 죽이자마자 분열해 버리는 것이다.

순식간에 분열하여 어느새 습격해 오던 수보다 더 늘어났다.

난 총과 검을 놓았다.

더 이상 의미가 없어.

화르륵!

분열, 그렇다면 태워 버리면 어떨까.

일반인에겐 불처럼 뜨거운 포근이의 기운이다. 이전이라면 큰 해를 끼치지 못했지만 마나가 늘어난 지금은 성체 샐러맨더만큼 불을 뿜어낼 수 있었다.

상처를 입고 분열하는 게르반 형제에게 뛰어가 양손으로 잡았다.

왼손에 머리,

오른손엔 머리가 잘려 나간 몸.

“어엉?”

“어엉?”

그리고 양쪽의 두 놈에게 포근이의 기운을 전력으로 주입했다.

화르륵!

끄아악!

기름을 잔뜩 머금은 장작처럼 활활 타오른다. 불에 휩쓸린 채 발버둥 치던 두 명의 게르반 형제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었다.

‘죽인 건 아니지.’

똑같은 놈들이 수백 명이 있으니.

젠장.

난 올리비아와 연구원들을 우선으로 지키며 게르반 형제들과 상대했다. 다행히 놈들은 ‘백신’이 우선인지, 민간인들에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한차례 격돌 후 놈들은 물러났다. 내가 불태워 죽였으나, 분열하는 속도가 훨씬 우위였다.

처음보다 세 배는 머릿수가 늘어난 게르반 형제들은 이제 도로뿐만 아니라 시야 전체를 메웠다.

“오호라. 이보게들!”

[오호라~ 이보게들~]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그러자 함성처럼 들려왔다.

난 와글거리는 탁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성가신 놈이 있군.”

[성가신 놈이 있군.]

수천 쌍의 눈이 날 향한다.

난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위압적이긴 하나, ‘미라 마물’이나 ‘케르베로스’에 비하면 무섭지도 않다.

“백신을 내놓고 도망가라!”

[백신을 내놓고 도망가라!]

헌터들이 움찔거린다.

그들은 도망가길 허락한다면 두말없이 도망칠 생각인 것 같았다.

비록 첫 번째 격돌에 부상자만 생겼어도, 희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물론 살려 주는 건 아니지. 키킥, 도망치는 걸 사냥하는 게 재밌어.”

[물론 살려 주는 건 아니지. 키킥, 도망치는 걸 사냥하는 게 재밌어.]

하지만 이어진 말에 모두 표정을 굳힌다. 게르반 형제의 악명을 상기한 거겠지. 도망칠 수도, 항복을 할 수도 없다.

이제 남은 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밖에 없다.

난 놈에게 들키지 않게 시선은 앞으로 보며 헌터 대장에게 말했다

“그런…….”

“쉿. 시선을 끌 테니까 당황하지 말고 무전기로 모두에게 내 말을 전달해요.”

헌터 대장은 내 말에 놀라며 반문했으나, 곧 알아듣고 천천히 무전기를 들었다.

난 홀로 나서며 외쳤다.

“이게 어떤 백신인 줄은 아냐?”

“알지.”

[알지.]

그들이 외쳤다.

“겁나 비싸잖아.”

[겁나 비싸잖아.]

역시 천박한 이유였다.

“그래서.”

난 일부러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도발했다.

“2등급은 개뿔, 약해 빠져 가지고. 어떻게 하게? 단순히 머릿수만 채우는 능력 가지곤 아무것도 못해.”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는 내가 불태워 죽인 게르반 형제의 분신뿐이다.

“그리고 난 니들을 죽일 수 있지.”

한 번 싸워 봐서 알겠다.

2등급?

아니다. 놈들의 악행에 의해 부풀려진 소문이다. 분열의 능력 때문인지 정확한 마나는 측정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마나로 보면 나보다 약했다.

놈은, 놈들은 약하다.

계속해서 머릿수를 늘리는 능력은 성가시나 그뿐이다. 총알과 폭발마저 막는 턱시도의 방어력을 뚫진 못한다.

불안한 요소는 더러 있으나 나 혼자라면 문제없다. 헌터들과 연구원들을 피신시키고 포근이의 힘으로 태워 죽이다 보면 언젠가 끝이 나겠지.

“하하.”

내 도발은 녀석을 자극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웃기만 할 뿐이다.

“그래, 우리들은 마나양이 작아서 2등급은커녕 5등급 근처도 못 가. 좆 같은 국제 표준 검사에 의하면 말이야.”

놈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한 놈이 나서서 말했다.

도발이 통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저 열 받을수록 침착해지는 부류였던 것이다.

놈은 정신 빠진 목소리로 함성을 내지르던 방금 전과 달리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우린 마나 등급제를 맹신하는 고위 헌터들의 잘난 대갈통들을 잘랐지. 애송아, 마나 등급은 전부가 아니다. 아라비아에서 천 명의 헌터들을 몰살시켰을 때, 우린 기껏해야 7등급이었어.”

지금까지 난 그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광기 서린 눈빛을 마주하며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내 능력이 정말 분열하는 것뿐이라면 어떻게 ‘옷’과 들고 있던 ‘무기’까지 분열되는 거지?”

놈이 날 비웃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아하하. 내 능력이 머릿수만 채우는 거라면 어떻게 천 명의 능력자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바닥에서 ‘2등급’이라며 위명을 떨쳤을까?”

난 능글맞은 놈의 표정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르반 형제는 마치 흉포한 맹수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가 아닌 맹독을 지닌 독사를 보는 것 같았다.

젠장, 놈들은 지금까지 장난에 불과했던 거야.

“분열은 내 쌍둥이 동생의 능력, 그리고 내 능력은… 그래, 투영이라고 부르더군. 분열한 개체에 내 모습을 투영시킨다. 따라서.”

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분열된 수백 명의 분신 또한 품에서 같은 것을 꺼냈다.

“한 개의 수류탄은 천 개의 수류탄.”

씩 웃는 놈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난 예상하고 말았다.

“피해!”

소매에 장착된 발사기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발사했다. 그물 형태로 뻗어 나간 거미줄 트랩은 수류탄을 던지던 놈들을 휘감으며 넘어트렸다.

콰앙-!

하지만 모든 분신을 막을 순 없었다. 수십 개의 수류탄이 동시에 폭발한다.

크윽-!

포근이와 턱시도, 또한 왼쪽 팔목에 장착된 실드에 의해 난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비교적 가까이 있던 군용 트럭과 탑승을 준비하던 헌터들은 휩쓸렸고, 손 쓸 새도 없이 죽었다.

“젠장.”

그나마 다행인 건,

아라크네의 거미줄 트랩 덕에 잠시 놈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틈을 타 뒷줄의 헌터들이 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미리 귀띔한 대로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이곳을 벗어나고자 한다.

올리비아와 연구원들도 무사히 트럭에 올라탔고, 난 그들이 도망치는 동안 홀로 천 명의 적과 맞섰다.

“혼자서 우릴 막을 셈이냐?”

[혼자서 우릴 막을 셈이냐?]

“거미줄이나 풀고 말해 병신들아.”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놈을 상대하기에 최적의 무기였다. 죽이지 않고 무력화시키는 것, 분열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쾅-!

쾅-! 퍼엉-!

그러나 홀로 천 명의 적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놈들이 가장 성가신 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류탄을 품고 자폭 테러를 가하는 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미줄 트랩과 실드를 발동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놈들도 날 죽일 수 없다.

수류탄을 백날 던져 봤자, 놈들은 마법사처럼 날 죽일 만큼 강력한 공격 수단이 없었다.

바위에 계란 치기다. 헌터들이 무사히 도망칠 때까지만 버틴다면 나도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어.

“우습게 보였냐?”

실드에 기대어 상대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화기 따위를 사용하며 날 공격해 오던 게르반 형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러며 한 놈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내게 속삭인다.

“우습게 보였냐고.”

악수라도 나눌 만큼 가까이 다가와 히죽 웃는 놈.

“당연히 퇴로는 차단했지, 애송아!”

펑-!

그때, 트럭이 폭발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폭발한 트럭이 있었다.

“매복…….”

어느 틈에 퇴로에 심어 놓은 ‘분열체’, 스스로 분열하여 한 명에 불과하던 놈은 순식간에 불어나 퇴로를 막아섰다.

펑-!

무기도 다르다.

수류탄 따위가 아니다.

아마 마도구.

아껴 놓은 것이다.

최적의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서.

도망치던 다섯 대의 트럭 중,

백신 견본을 수송하는 트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연달아 마도구에 의해 폭발했다. 백신 차량을 구별할 수 있었던 건 오스틴의 짓이겠지.

“안 돼.”

마지막 트럭도 폭발했다.

그리고 그 트럭엔 올리비아가 타고 있었다. 튕겨져 나간 올리비아는 관절 인형처럼 맥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다행인 건, 올리비아를 비롯하여 연구원들 모두 방호복을 입은 덕에 폭발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으하하!”

하지만 게르반 형제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목적은 명백했다. 백신이 아닌 것엔 관심이 없다. 귀찮은 인간들은 마땅히 죽여야 할 것, 게르반 형제들에겐 그러한 것이겠지.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올리비아한테 휘둘러지는 게르반 형제의 칼.

약하디약한 그녀의 하얀 목을 순식간에 동강 낼 칼이다.

비명을 질러도, 당장 전력을 다해 뛰어가도, 내 힘으론 결코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내 힘으론.

…….

수십 번이나 깊게 연결되었다.

사실, 지금도 느껴진다.

놈과 첫날, 교감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 느낌, 교감의 힘은 유선(有線)이 아니다. 황소 마물과 교감했을 때처럼 공간을 넘어 전해 온다.

난 교감을 깊게 받아들였고, 그 순간 황소 마물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 모든 게 느려졌다.

아니,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나 내가 느리게 느껴지고 있는 거겠지.

강력한 마물만이 느끼는,

인간을 뛰어넘은 감각의 급류에 휩쓸린 것이다.

두근두근-!

격해지는 심장 박동.

사실 녀석은 게르반 형제가 나타났을 때부터, 날 부르고 있었다. 다만 난 애써 무시했다.

놈이 내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

하지만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걱정하던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단지 놈과 교감한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두근-!

죽여 준다고?

그래, 죽여 줘.

그 순간, 고막을 때리던 시끄러운 심장 박동이 멈추었다.

난 천천히 손을 들었다. 평소의 맨들맨들 한 살가죽의 손이 아니다. 생물이 아닌 망자의 손처럼… 새하얀 백골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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