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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1화 (61/258)

# 61화 죽음에 가까운

뺨을 만져 보니 딱딱한 뼈의 감촉만이 느껴졌다.

뺨, 손, 발, 허벅지, 배. 모든 게 다 백골일 뿐.

‘이제야 녀석의 애타는 욕망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가진 게 없다.

그럼으로 가진 게 있는 자로부터 모든 걸 빼앗고 싶다.

미라 마물의 욕망은 일반 생물과 궤를 달리했다. 놈은 단지 허무하게 비어 버린 자신을 채우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이 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크악!”

[크악!]

올리비아에게 칼을 휘두르던 놈을 시작으로,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게르반 형제, 그리고 멀리 있던 게르반 형제들도 일제히 목을 감싸 쥐며 쓰러졌다.

쓰러진 채 발작하던 게르반 형제들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지 표정만 잔뜩 일그러트릴 뿐이다.

내가 한 일은 가만히 선 채 바라보는 것. ‘질병의 우두머리’의 힘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질병은 전염되어,

모든 게르반 형제의 분열체를 감염시켰다.

더없이 깊은 교감으로 하여금 깨달았다. 미라 마물, 놈의 힘.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난 바이러스를 심었다. 그저 가까이 있던 하나의 분열체에 바이러스를 심었고, 바이러스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공기, 접촉,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퍼져 나가 순식간에 모든 게르반 형제들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분열해도 소용없다.

투영해도 소용없다.

질병은 평등했다.

결국 천 명의 게르반 형제는 모두 동시에 썩어 문드러졌다.

난 우두커니 선 채 놈들을 내려다봤다. 천 명의 비틀리고 붕괴된 시체. 놈들을 죽이겠다고 생각만 하였을 뿐인데 발생해 버린 ‘몰살’.

“아직 아니야.”

난 천 구의 시체를 두고 아주 먼 곳을 바라봤다. 적어도 100km, 혹은 그 이상 떨어진 곳에서 놈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게르반 형제가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질병의 힘을 퍼트렸다.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바람도 없는데 멀리까지 흩날린다.

놈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놈들을 죽이겠다고 생각한 이상, 이 힘은 퍼져 나가 놈들을 감염시킬 것이다.

그 후,

묵묵히 기다렸다.

“끝이 났다.”

곧이어 게르반 형제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놈들을 감염시킨 검은 연기는 다시 내게로 돌아와 내 안으로 깃들었다.

‘뭐야, 이건…….’

이 힘이 가진 아득한 공포를 깨닫자, 난 저절로 몸이 떨려 왔다.

딸각-! 딸각-!

몸을 떨자 뼈마디가 부딪치며 비즈커튼 따위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단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거잖아.’

두려운 전염병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나, 14세기 흑사병의 참극을 개인이 재현할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인과를 벗어난 힘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달리 표현할 것도 없었다.

죽음.

이건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힘이잖아.

*

게르반 형제,

그들의 행보는 과히 광인이었다.

왜냐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게르반 형제들이 천 명의 헌터들을 상대로 일흔아홉 번의 전투를 치른 건, 단지 죽음이 자신들을 등한시하기 때문이었다.

세계 정부와 국가 전력급 헌터들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오로지 욕망만을 위해 살아가는 광인(狂人).

그 바탕엔 불사(不死)의 능력이 있었다. 죽지 않기에 무모했고, 죽지 않기에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어수룩하진 않았다.

그들은 불사의 힘을 감추고 숨겨야 했기에 어떤 헌터들보다 용의주도했다.

그들이 천 명의 헌터들을 상대로 일흔아홉 번이나 되살아나, 불사의 형제들이란 위명을 얻은 건 ‘분열’의 힘에 있었다.

사실 릭스틴 연구소를 습격한 게르반 형제들은 모두 분열체였다.

분열의 근간이 되는 동생, ‘모체’와 ‘투영’의 힘을 다루는 게르반 형제의 형은 아주 멀리, 깊숙한 곳에 숨어 분열체를 통한 시각 공유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모체를 숨겨 두고 분열체로만 싸운다면 모두 전멸한다고 하더라도, 혹은 분열체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모체만 도망갈 수 있다면 ‘자신들은’ 살았다.

그리하여 강한 적들을 상대로도 게르반 형제들은 살아남았고, 특유의 잔인함과 하이에나 같은 끈질김으로 악명을 떨칠 수 있었다.

무려 2등급에 가까운 능력자라 오인을 받으며.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

분열체뿐만 아니라 숨어 있던 게르반 형제, 아우와 동생은 모두 몇십 년 된 시체처럼 썩어 문드러져 죽었다.

다정에 의해 발생한 전염병 때문이다. 오로지 그들만을 죽이기 위해 발병한 바이러스는 호주 사막, 멀리 떨어진 곳에 숨은 모체를 순식간에 발견해 감염시켰다.

그로 인해, 허무하게도.

게르반 형제들은 불사의 힘이 간파당하고 완전하게 죽임을 당했다.

*

“포근아, 넌 여기 있어.”

말하지 않아도 포근이는 내가 놈과 교감하여 변한 후로, 멀리 도망간 상태였다.

바위 뒤에 숨어 빨간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한다. 젖은 눈망울이 날 걱정하면서도, 무서워하고 있다. 포근이가 처음으로 날 두려워했다. 젠장,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이게 놈들이 쓰던 마도구로군.”

사태가 끝난 후 난 연구소로 향했다.

쾅-!

게르반 형제가 남긴 폭발형 마도구로 릭스틴 연구소의 외벽을 부수었다. 철문마저 폭발시키고 담담히 들어갔다.

딸그닥-!

걸을 때마다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문득 외벽 유리에 비추어진 날 보곤, 짓궂은 농담이 생각났다.

“잭 스켈레톤?”

물론 현실은 크리스마스의 악몽보다 훨씬 흉측했으나, 이런 사소한 장난으로 덤덤한 척하지 않는다면 정말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놈의 욕망이 날 물들였다. 그래서 모두를 죽이고 싶었다. 이성을 붙잡고 피하지 않았다면, 올리비아를 비롯한 다른 자들도 모두 감염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다행히도,

이 살의를 풀 수 있는 대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그만 숨지 말고 나와.”

느낄 수 있다.

연구소 어딘가에 숨어서 와들와들 떨고 있는 한 남자의 숨결을.

그가 해골바가지의 모습을 한 날 마주한다면, 낫을 들고 있지 않더라도 확실히 죽음의 사신으로 보이지 않을까?

3층의 남자 화장실에서 그를 발견했다. 변기에 앉아 부들부들 떨던 오스틴은 문이 열리자 고개를 천천히 추켜들다가, 하얀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아니.”

기절해선 안 돼.

강제로 깨웠다.

정신을 차린 오스틴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무서워했다.

겨우 겉모습으로 무서워하면 안 될 텐데 말이다.

“오스틴.”

녀석의 손을 잡자,

백골의 손과 맞닿은 놈의 피부로부터 검은 진액이 흘러나온다. 진액은 놈의 팔목을 타고 점점 올라가 마침내 전신을 물들였다.

끄으윽-!

곧이어 살점에 기포가 생겨나고, 피부가 뭉개지며, 검붉은 핏물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간절히 외쳤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불과 한 시간 전이다.

놈은 우릴 배신하며 비열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굴하게 빈다. 오물을 쏟아 내며 마치 내가 그의 신인 듯, 간절히 기도한다.

“30억이었나?”

우리의 몸값.

“그럼 60억을 내놔.”

그러니 놈의 몸값도 30억쯤은 되지 않겠어?

“아, 알겠습니다! 드릴 테니 부디 살려만 주십쇼.”

“뭐?”

“손이 안 움직여서 스마트폰을… 부디, 제발 얼마라도 줄 테니 살려만…….”

병의 경과를 늦추자 놈은 내가 가르쳐 준 계좌를 더듬더듬 두들기며 수차례 송금을 했다.

“평범한 의사가 아니었구먼.”

지금 내 상태론 놈을 그대로 죽여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지만, 우습게도 놈은 단지 의사 주제에 60억이란 거금을 가지고 있었다.

거금이기에 내 계좌로는 입금시키지 않았다. 원장님이 쓰던 계좌다. 60억 따윈 별일 아닐 테니 의심 받지 않겠지.(의심 받아도 용인데 뭐 어쩌겠는가?)입금 금액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병을 고치진 못 해.”

그러자 놈은 경악하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하지만!”

“오해는 마. 봐 봐,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힘은 있잖아? 감염을 늦췄으니, 지금 당장 백신을 주사하면 살 수도 있겠지.”

퉤-!

물론 백신이 있는 연구소까지, 에스코트 따윈 안 할 생각이다.

*

윙바레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으며, 쓰러진 올리비아와 연구원들의 상태를 살필 수도 없었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모두 내 곁에서 죽고 말 것이다.

놈과 교감한 이후로, 힘이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의 힘은 나로 하여금 더 강해졌다.

교감,

마물의 말을 이해하거나 힘을 빌리는 힘이다. 마츄들의 힘을 빌려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포근이의 힘을 빌려 녀석에게 모유(불의 기운)를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깊고 끈끈하게 연결된 적은 없었다. 마치 놈과 하나가 된 듯했다. 내 자아는 흐릿해지고 마음속엔 놈이 품고 있던 살의의 욕망만이 가득해졌다.

백골이 되어 버린 난 전에 없던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놈은 지금도,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음을 내어 달라고.

“개소리하지 마.”

하지만 와들와들 떨리는 몸은 점점 기울여지고 있었다. 더럽고 탁한 구정물 웅덩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난 스스로 벙커에 갇혔다.

복도 끝엔 놈이 있다.

구석진 곳에서 일어나 확실하게 날 바라보며 붉은 눈을 열렬하게 불태우고 있다.

구애와도 같은 몸짓에 난 멀찌감치 떨어져서 가운데 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벙커, 건물 폭발로 전기가 나갔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이곳엔 나와 놈, 둘만이 갇혀 있다. 무서웠다. 놈도 무서웠고, 내 자신도 무서웠다.

저항할수록 놈의 영향은 더욱 커져 간다. 난 울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생각을 비웠다.

아마 반나절쯤 지났을까.

“다정 씨.”

닫혀 있던 벙커의 안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두터운 벙커의 문을 열지 않아도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 복도 끝에 갇힌 놈이 발광하며, 질병의 기운을 퍼트렸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원장님의 손짓 한 번에 우리째로 사라져 버렸다.

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원장님.”

마치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날 바라보던 원장님은 쓰러진 날 향해 새하얀 손을 뻗었다.

난 백골의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난 인간으로 돌아왔다.

“저놈, 케르베로스와 비슷해요.”

난 울렁거리는 속과 뇌를 찌르는 두통에도 침착한 척 일어나 말했다.

“풍기는 기운이나 힘, 속삭임까지도.”

그러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나로서도 알 수가 없었던 거예요. 놈은 솔로몬의 탑에 서식하는 마물이었어요.”

솔로몬의 탑,

원장님이 저번에 말해 줬었지.

케르베로스를 포함하여 온갖 끔찍한 마물과 악마로 가득한 곳이라고.

“그리고 원장님…….”

“네.”

필사적으로 버티나 더 이상 한계다. 생명을 모두 죽이고 싶다는 열망적인 살의를 잠시나마 품었던 후유증은 날 기절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나풀거리는 헝겊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졌으나,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박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원장님이 날 안았다.

난 그녀의 품에 안긴 채 요람에 잠든 아기처럼 잠에 들었다.

아득해지는 정신,

아…….

맞다.

잠깐!

“그리고 원장님.”

이건 꼭 말해야 돼.

“원장님 계좌에 60억… 그거 내 것.”

말하자마자 곧바로 맥없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수고했어요.”

붉은 용 파르바티는 다정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검은 액체가 다정의 귀와 코로부터 흘러나와 공중에 구의 형태로 맺히기 시작했다.

게르반 형제의 천 명의 분열체를 일순간에 죽였던 질병의 힘이다.

하지만 붉은 용은 검은 구슬을 가볍게 손으로 쥐어 터트렸고, 마물의 힘은 한순간에 정화되었다.

‘이건…….’

하지만 모두를 정화시키진 못했다. 파르바티는 그녀의 손에 남아 있는 소량의 검은 액을 바라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살짝 놀라고 말았다.

생각보다 마물의 힘이 더욱 강하게 발현되고 있었다. 한낱 ‘인간’이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자신과 만나기 전까지도 또렷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만 명의 정신을 오염시킬 재앙을 홀로 버티다니.”

파르바티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다.

“나의 가디언, 그대의 성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군요.”

그녀는 남은 질병의 힘을 소멸시키고, 솔로몬의 탑에서 온 재앙의 마물을 마물원으로 옮겼다.

또한 기절한 다정을 제 집까지 옮겨 주며, 조만간 큰 선물을 주리라고 생각한 파르바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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