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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2화 (62/258)

# 62화 냄새

난 잠에서 깼으나 한참 동안 누워 있었다. 눈꺼풀을 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간신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눈을 떠 눈곱이 잔뜩 껴 흐릿해진 시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벽에 걸린 옛날 게임 포스터들과 사는 데 돈이 왕창 깨진 스타워즈 레고 시리즈가 진열된 장식장이 보인다.

원장님이 방까지 데려다줬구나.

일어나 앉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도무지 일어날 힘이 나지 않았다.

입안에서 썩은 똥내가 난다.

당장 양치를 하고 싶었으나, 욕실까지 갈 기운도 나지 않는다.

대책으로 침대 옆, 장식장에 놓인 미지근한(아마 며칠은 된 듯한) 물을 마셨다. 망할, 오히려 입안은 더 찝찝해졌다.

난 물 잔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도로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누워 버렸다.

지독한 숙취처럼 지끈거리는 머리와 살짝 냉기가 도는 걸 제외하면 몸 상태는 멀쩡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서 쉽사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기묘한 악몽을 꾼 듯했다.

그래, 악몽이긴 하나 기묘하다.

으레 악몽이라면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괴상망측한 괴물에게 잡아먹히거나, 군대에서 뺑이 치던 때처럼, 나에게 해코지하는 대상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날 내게 펼쳐진 악몽은 나 스스로 누군가의 악몽이 될까 두려워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살인마가 내 손에 회칼을 쥐어 주고, 억지로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역겨움 같았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 역겨운 살인의 욕구는 그녀의 품에서 모두 사라졌다.

온갖 더러운 오물이 담긴 진창에 빠졌다가 시원한 찬물 샤워를 한 것처럼 개운했었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내 안에 깊게 새겨진 놈의 흔적을 끄집어내는 원장님의 손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하지만 때론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날 휩쓸었고, 그 순간 내게 잔재된 마물의 힘은 그녀의 힘에 밀려 사라졌다.

그녀가 미라 마물의 힘을 한순간에 없애 버린 것이다.

새삼 드래곤은 드래곤인가 싶었다.

분명 내가 겪은, 어떤 마물보다도 무시무시했던 마물조차 그녀에겐 옷깃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 듯이 대수롭지 않게 잠재워 버렸으니.

“끄으으악!”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기지개를 폈다. 20년 전부터 시작된 전이로 지구에서는 온갖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살면서 얻은 한 가지 지혜는 꺼림칙한 일이 있다면, 빨리 훌훌 털어 버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제대로 된 찬물을 마시고 스마트폰을 충전시켰다.

1%가 충전되자마자 핸드폰을 켰다. 날짜는 6월 14일, 이틀 동안이나 자고 있었구나. 어쩐지 입 냄새가 독하다 했다.

메시지가 세 건이 도착해 있었다.

아웃사이더 인생에서 메시지라 하면 납부서, 배달 음식 확인 메시지, 그리고 스팸 메시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 개의 메시지는 모두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첫 번째는 원장님에게서 온 메시지다. 시간상으로 보면 날 집까지 데려다주고 곧바로 보낸 메시지 같았다.

-일은 다 정리했고, 포근이는 마물원에 있어요. 다정 씨, 고생 많았어요. 한가해질 테니 21일까지 휴가를 드릴게요(웃음 이모티콘)…….

‘드래곤이 이모티콘이라니…….’

원장님은 메시지도 본래 말투와 똑같이 보냈다. 그래도 내 또래처럼 메시지에 이것저것 인터넷 유행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모티콘도 사용할 줄 알았다. 은근 귀여우시네.

-…그리고 성공 수당과 말했던 돈까지 다정 씨 계좌로 입금했어요. 꼬리 잡힐 돈은 아니니까 다정 씨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어요. 푹 쉬시고, 21일 날 봐요(토닥토닥 이모티콘).

즉시 은행 앱을 실행시켰다.

귀찮은 공인 인증서를 후다닥 입력하고, 동그랗게 돌아가는 로딩 표시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마침내 잔고가 표시되었다.

그 순간, 지끈거리던 두통이 싹 나았다. 무기력하던 몸에 활력이 돈다.

아하하!

난 돈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자고로 인간에게 있어 돈이란 행복의 근원이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쑤시던 허리가 절로 낫고, 욱신거리던 심장이 운동선수의 심장처럼 튼튼해지는 만병치료제다.

위선적인 사람들은 물질 만능 주의를 비판하며 돈을 밝히는 자를 멸시하지만, 난 좆 까라고 해 주고 싶다. 왜냐면 대부분 돈을 멸시하는 자들 중에 못 먹고, 못사는 양반들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잊어 먹고 있었다.

성공 수당 20억,

그리고 강제로 빼앗다시피 한 60억.

그동안 마물원에서 일하며 많은 돈을 만졌기에 큰 액수의 금액에 무덤덤해졌다지만, 이건 정말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당장에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말이다. 딱히 뭘 하고 싶은 건 아니나 이 돈으로 뭘 해 볼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많은 돈이 있어도 당장 쓸 줄 모르는 촌놈이라고 할지라도, 1년 전 단칸방에서 살던 궁핍한 시절, 라면 대신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고자 단돈 만 원에 벌벌 떨던 때에 비하면 당연히 낫다.

통장에 새겨진 0의 행진만으로 마냥 행복했다.

난 순식간에 방방 뛰는 컨디션이 되어 두 번째 메시지를 확인했다.

‘올리비아네.’

영어로 된 메시지라 번역기를 돌리며 확인했다.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 우선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무척이나 당황했고, 조력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 그전까지 무척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자기들은 골절과 타박상을 입긴 했으나 목숨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내 덕분이었다고 칭찬하면서 고마움을 전달했다.

미라 마물은 의문의 조력자(원장님)에 의해 다른 시설로 이관되었고, 릭스틴 연구소는 이제 아마존에 나타난 마물 풍토병을 연구할 거라고 했다.

메시지를 받은 난 전화를 할까 생각하다가, 코를 훌쩍이며 그냥 답장만 보냈다.

-다행이네요. 잘 지내요, 아디오스.

완전 상남자 스타일이야.

비록 저 세 마디를 쓰는 데 십 분 이상 걸리긴 했지만.

세 번째 메시지는 윙바레의 사타리언 부인으로부터 왔다. 그녀는 직접 내 병문안을 오려다가, 원장님이 날 배려하며 거절한 탓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또한 메시지의 반이 사과문이었다. 불찰을 용서해 달라, 릭스틴 연구원은 심층 면접을 보고 뽑은 인재들이라 배신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본사의 일이 바빠 경호 병력을 소홀히 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지 못하여 미안하다, 헌터들은 입단속 시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

사실 별 생각이 없다.

당연히 그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시지를 읽던 중에 의문스러운 게 있어 답장을 보냈다.

-안뇽하세요, (인사 이모티콘) 사타리언 부인. 뭐 괜찮습니다. (웃음 이모티콘) 세상만사를 어떻게 다 예측하고 대비하겠습니까, 허허. 그런데 메시지 중에 헌터들 입단속을 시킨다고 하셨는데, 입단속이라뇨? 뭘 말하는 거죠?

곧바로 사타리언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다정 씨! 일어나셨군요. 몸은 괜찮으세요? 위대하신 분에게 듣기로 괜찮다고는 했지만, 많이 걱정했어요.

“방금 전까진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돈 때문에 살아났거든요.”

사타리언 부인의 음성은 조금 늦게 들려왔다.

-…네?

“실없는 말을 할 만큼 멀쩡하다는 거죠. 괜찮아요. 부인이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근데…….”

말뜻을 모르는 건 아니다.

헌터들의 입단속, 아마 게르반 형제와 내가 싸운 일을 소문내지 말라는 거겠지.

궁금한 건 ‘왜?’다.

“보낸 메시지의 내용 중에 헌터들을 입단속 시킨다고 하셨는데 뭘 말하는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선… 사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바로 사과하게 되어 버렸네요. 죄송해요. 입단속을 시킨다고는 했는데 벌써 소문이 퍼졌어요. 다정 씨의 위장 소속이 윙바레의 헌터였잖아요. 게르반 형제, 놈들은 이쪽 세계에서 결코 무시 못 할 놈들이라 회사 내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고 떠들썩해요. 우리 회사 최고 헌터님들도 관심을 가지더군요.

호오,

명성(名聲)이라는 건가.

-정체불명의 강자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한 모양이에요, 다정 씨. 휴우.

전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사타리언 부인은 아까운 마음이 드는지 한숨 섞인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다정 씨에게 지금 스카우트 제의를 하면 양심 없는 도마뱀이겠죠.

사타리언들이 자신들을 도마뱀이라 부르는 건, 인간이 스스로 원숭이라 부르는 것과 같았다.

난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으음’이나 ‘아아’ 같은 감탄사만 냈다.

-다정 씨도 당연히 받아 주지 않겠지만요. 위대하신 분의 곁에서 그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니까. 대신 제 개인의 친분을 넘어서 윙바레를 대표하여 말한 건데, 다정 씨와 긴밀하게 지내고 싶어요. 혹시라도 우리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윙바레가 어떤 회사인가?

세계 굴지의 제약 회사 중 한곳이 아닌가?

그런 회사에서 날 귀인으로 대접한단다.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은 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말했다.

“너 좀 잘나간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자뻑하는 주인공들처럼 거울 앞에 서서 온갖 폼을 잡아 보다가, 문득 우습게 느껴져서 그만뒀다.

*

고급 휘트니스 클럽, 고급 호텔, 고급 음식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오랜만에 마물원으로 출근했다.

돈이 많이 있어도 하는 일은 똑같다. 전의 일이 특별했던 것이다.

평소에 내가 하는 일은 마물들의 똥을 치우고, 먹이를 주며,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

물론 마물원 우리의 환경은 원장님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와 똑같이 만들었기에 손이 갈 일은 그다지 없었지만, 특수한 마물들은 내가 직접 챙겨 줘야 했다.

오늘은 녀석들에게 특식을 주는 날이다. 흉포한 마물들, 내가 말하는 ‘흉포하다’의 의미는 주로 ‘인간’을 잡아먹는 마물들을 뜻한다.

특식,

다행히 인간은 아니다.

다만 살아 있는 먹잇감이다.

난 놈들의 야생성을 살려 주기 위해 이 먹잇감을 활발하게 운반해야 했다.

아라크네에겐 거미줄에 먹이를 직접 던져주고, 거미와 호랑이를 반반 닮은 지주호(蜘蛛虎)를 위해선 피를 잔뜩 묻히고 놈의 송곳니를 피해 미친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야 했다.

긴장하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잡아먹히기 전에 교감으로 대화는 시도해 볼 만하지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흉포’하다고 말한 게 아니니까.

평소와 같이 조심스레 지주호의 우리에 들어갔다. 사방이 대나무 숲인 이곳은 놈의 서식 환경이었다.

바스락-!

피를 묻히던 난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추켜들었다. 특식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습격해 왔다.

난 턱시도를 입은 채 대나무 숲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지주호들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평소엔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육식 마물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교감으로 하여금 들리는 놈들의 목소리는…….

[무서워!]

[뭐야, 저거 이상해!]

[건들면 안 돼. 위험한 녀석이야.]

서서히 피하는 놈들을 향해 슬며시 발을 내미니, 순식간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올 때마다 날 먹잇감으로 생각하던 놈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날 극도로 무서워했다.

‘설마.’

그 후, 지주호와 아라크네, 용사두와 설철(齧鐵)까지, 내로라하는 흉포한 마물들도 날 보자마자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밥을 주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제 오히려 배를 뒤집고 애교까지 피운다.

‘역시 착각이 아니야.’

흉포한 마물들도 순한 양처럼 만드는 이유, 사나운 개들도 개장수만 나타나면 오줌을 찔끔 흘리며 꼬리를 만다고 한다.

내게도 개장수처럼 ‘배어 버린’ 것이다. 사이코패스 마물과 교감한 탓에 놈의 끔찍한 냄새, 그것도 흉포한 맹수들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뭐, 덕분에 편하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웬만한 마물은 먹이를 줄 때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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