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식스
평화로운 나날이다.
끔찍한 미라 마물과 기괴한 능력을 지닌 또라이 헌터들과의 싸움이 그저 기분 나쁜 추억으로 회상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다정 씨.”
평소처럼 단조롭고 지루하던 어느 날 아침, 원장님이 마물들을 잔뜩 데리고 왔다.
“우와.”
보자마자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원장님이 내려놓은 마법 요람에서는 새끼 마물들이 빼액빼액 울고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작은 새들과 마찬가지로 꼬물거리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네 마리였고, 새의 새끼는 두 마리였다.
마물답게 새 새끼들은 붉고 타오르는 깃털을 가졌고, 강아지들은 냉기마저 느껴질 만큼 차갑고 파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느낌이 쌔한데.’
내가 마물원 직원이 아니라면 단지 신기하고 귀엽게만 느껴지겠지만, 난 보자마자 예감하고 말았다.
“다정 씨가 맡아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윽.
포근이 이후로 마물의 새끼를 포육하는 건 오랜만이네.
그것도 총 여섯 마리나 된다.
“어라, 원장님 이 두 녀석은?”
게다가 두 마리의 새 새끼들에게서는 익숙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맞아요. 양해의 바다에서 온 애들이에요.”
기억난다.
양해의 바다, 그곳의 불까마귀들.
포근이의 무리를 찾아 주기 위해서 갔다가, 원장님이 없는 사이 신나게 뜯어 먹혔지. 아직도 놈들의 부리에 등이 뜯기던 고통이 생생하다.
‘새끼는 귀엽네.’
그래도 새끼가 뭔 죄겠는가.
불까마귀들의 성체는 못생기고 흉측했으나, 녀석들의 새끼는 꽤 귀여웠다.
“어디서 주운 애들이에요?”
원장님이 여섯 마리의 새끼 마물들을 데리고 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원장님은 마물원 외에도 운영하는 시설이 많았다. 그중, 주로 헌터들을 고용하여 불법 헌팅을 단속하는 밀렵 단속반도 있었다. 원장님이 항상 바쁜 이유가 있었구먼.
어쨌든 단속반이, 자유 용병단이 운영하는 대규모 불법 마물 공장을 습격했는데, 이미 어미 개체들은 다 폐사당했고 새끼들만 살아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원장님은 아직 폐쇄할 공장들이 남아 보살필 여유가 없다며 새끼들을 내게 맡겼다.
“단속반이니 밀렵이니 바쁘신 것 같은데, 전 요 녀석들만 보살펴 주면 되나요? 다른 도움은 필요 없으세요?”
“헌터를 상대하는 건 다른 자들도 할 수 있지만, 마물의 새끼들을 보살필 수 있는 건 다정 씨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예요.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능력이잖아요. 온리 원, 다정 씨가 최고야.”
새삼 말하기도 우습지만 마물 포육엔 나만큼 뛰어난 전문가는 없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마물 공장을 습격하는 중대한 일에 날 빼놓은 것에 대해 이유 모르게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나, 헌터들을 상대하면서 피를 볼 바에야 마물 새끼들과 노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일주일만 맡아 주세요.”
“맡겨만 주세요.”
원장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난 정말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할 때마다 무서워 죽겠다.
“미리 말해 두는데, 각오를 하셔야 될 거예요.”
“어떤 각오죠? 죽을 각오? 난감한 일들을 당할 각오?”
원장님은 네 마리의 강아지, 얼음처럼 차가운 몸을 가진 녀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들은 니플헤임이라 불리는 빙설(氷雪)의 세계, 그곳의 녹아내리는 빙하에서 온 마물들이죠. 그리고 니플헤임의 얼음 마물들이 가지는 특징은…….”
이어진 원장님의 말은 순간 녀석들에게 깊은 동정이 생길만큼 슬프게 느껴졌다.
난 눈도 뜨지 못한 채 땅바닥을 뽈뽈뽈 기어 다니는 파란 강아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겨우 일주일이다.
태어나자마자 남은 시간이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얼음이 녹아 사라지듯이, 덧없게 느껴지는 시간.
“문제없어요.”
젠장,
정은 주지 말아야겠다.
원장님이 떠나고 본격적인 마물 육아가 시작되었다.
*
포근이가 사용하던 포육실은 양해의 바다에서 온 새끼 까마귀들에게 최적의 환경이었다.
새끼 까마귀가 작은 날개로 파닥파닥 날갯짓을 할 때마다 불똥이 튄다. 관리실이었다면 이미 불이 붙어 난장판이 됐을 거야.
“엄청 배고파 하는군.”
새끼 까마귀들은 부리를 벌린 채 빽빽 울었다. 모든 조류가 그러하듯 먹잇감을 받아먹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칭얼거림을 보던 난 머리를 벅벅 긁곤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녀석들이 원하는 게 나에겐 있다. 하지만 차마 그 짓을 다시 하기엔 무척이나 수치스러웠다.
원장님이 내게 부탁한 일은 자명했다.
‘겨우 벗어나나 싶었더니.’
내가 마물 포육(哺育) 분야에 최고인 건 스스로 마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육(哺育),
뜻을 풀이하면 동물이 새끼를 ‘먹여’ 기르는 것.
양해의 바다, 불의 까마귀들은 뭘 먹고 살까? 녀석은 포근이, 샐러맨더와 비슷했다. 성체는 양해의 바다에서 썩은 시체를 뜯어 먹으나, 새끼 때는 포근이처럼 불의 기운을 먹는다고 한다.
본래 어미 까마귀들이 먹이를 잘게 찢어 주나 원장님이 급히 자리를 비운 관계로 지금 당장엔 먹이를 구할 곳이 없었다.
원장님도 그 사실을 알기에 내게 맡긴 거겠지.
그래, 배고픈 새끼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포육실 구석에서 심드렁하게 누워 있던 포근이가 내가 ‘그 짓’을 하려고 시늉만 했을 뿐인데, 귀신같이 눈치채고 달려왔다.
안 돼,
넌 이미 뗐잖니.
젠장.
사실 방금 전부터 계속 시도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피부’로 흘려보내는 방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포근이에게 불의 기운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으며, 원장님의 마도구인 턱시도에 의해 저절로 불의 기운이 맺혔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었었다.
연습을 하면 괜찮겠지만 오랫동안 굶은 까마귀 새끼들은 그사이 아사할지도 몰랐다.
결국 난 이 숭고하고도 수치스러운 능력이 처음 발현되었을 때, 그때와 같은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삐액-! 삐액-!
“네 녀석들이 원하는 게 이거더냐?”
웃통을 벗었다.
난닝구까지 다 벗었다.
그 순간, 오랜만에 느끼는 시큰한 느낌과 함께 가슴에서 녀석들이 원하는 불의 기운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게 아닌 발사라고 표현한 건 정말 불의 기운이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얼레? 이거 너무 많이 나오는데?”
마나가 늘어났더니 젠장, 덩달아 불의 기운도 훨씬 많이 늘어났다. 그동안은 불꽃 모유를 물총처럼 찍찍 발사했다면, 지금은 하이드로펌프 수준이다.
삐액!
가뭄 끝에 단비에 젖는 대지처럼, 녀석들의 목마른 배고픔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어쩌면 이건 기적이라 불러도 마땅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 능력은 굶주린 새끼 마물들을 먹이기 위해, 어떤 초월적인 인도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개소리.’
쓸데없이 거룩해지던 마음을 접어 두고 불의 기운을 뿜는 것에 집중했다. 녀석들은 배고픔이 해결되자 기운이 나는지 작은 날개로 파닥파닥 날아왔다. 강의 상류를 찾아 헤엄치는 연어들처럼 불꽃 모유의 근원지를 찾는 것 같았다.
마침내 가슴까지 도달한 녀석은 부리로 불꽃 모유강(江)의 근원지인 내 살을 꼬집었다.
“아야, 꼬집지는 말고.”
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모습은 마치 세 가지의 이변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인데 모유를, 사람인데 마물이 먹는 모유를, 부리가 달린 조류가 모유를. 젠장, 몰라.
녀석들을 진정시키자 이제 네 마리의 퍼런 강아지들이 문제였다. 까마귀만큼은 아니지만, 녀석들도 배고파 하고 있다. 어느덧 눈을 뜨고, 크기가 치와와만큼 자란 녀석들은 내 수유 장면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니들도 먹을래?”
하하, 농담이다.
샐러맨더의 기운은 포근이와 교감하여 발현되는 능력으로, 어미 샐러맨더와의 깊은 교감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이처럼 새끼들이 원한다고 마음대로 뿜어 댈 수 없다. 새끼 마물들이 원할 때마다 그 마물의 모유를 뿜는다니, 내가 인스턴트 자판기도 아니고.
그리고 아이스 독의 먹이는 특별하다. 다행히 원장님이 아이스 독의 먹이는 준비해 놓았다.
그걸 먹이면 되는…….
그때였다.
왼쪽 가슴이 시큰거리더니 불꽃 모유의 공급을 중단했다(이거 뭐, 공장도 아니고).
또한 내가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힘, 결코 인간의 몸으론 뿜으면 안 되는 종류의 무언가가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파란색이었다.
샐러맨더의 기운과는 달랐다.
불꽃 모유가 양(陰)의 기운이라면, 이 힘은 음(陽)의 기운이다.
“아냐. 이건 진짜 아니야. 멈춰, 이 칠칠치 못한 가슴아.”
난 남자다.
그런데 모유를 뿜는다.
불꽃의 기운이니 뭐니 부연 설명을 해도 결국 모유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까지는 참을 만했다.
존엄성의 훼손과 수치심을 견뎌 내고, 단지 양해에 사는 생물의 새끼들의 먹이를 가슴으로 뿜는 행위.
그렇게 생각하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엄성의 훼손의 격이 다르다. ‘모유’라는 일차원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만약에 모유가 나오는 걸 정당화하며 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두 가지의 모유를 뿜으면 얘기가 또 많이 달라진다. 단지 모유를 내뿜는 것과 두 가지의 다른 모유를 뿜는 건, 같은 자동차라도 경차와 고급 세단이 다르듯이 격심한 차이가 있었다.
만약 젖소에게서 딸기 우유가 나온다 치자.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갑자기 바나나 우유까지 내뿜는다.
“이런 씨… 골라 먹는 것도 아니고!”
왼쪽과 오른쪽에서 서로 다른 모유가 발사되고, 네 마리의 아이스 독 새끼들은 사파이어색 모유를 기뻐하며 맞이했다.
양쪽에서 서로 다른 모유를 내뿜는 기적을 행하며, 난 기어코 현자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모유는 모유다.
될 대로 되라지.
“후우.”
난 가까스로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감의 힘.’
대체 그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이오? 단지 마물의 힘을 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황소 마물이나 미라 마물 때는 완전한 동화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지금은 깊은 교감 없이도 너무 쉽게 녀석들의 힘을 받아들인다. 난 네 마리 얼음 강아지들의 어미가 되어, 왼쪽 가슴이 얼어붙을 만큼 시린 모유를 내뿜었다. 교감의 힘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이제 포기했어. 자, 마음껏 먹으렴.”
다행인 건 이 정도 수치심은 아직까진 괜찮았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도 없고, 왼쪽에서 차가운 모유를 뿜는다고 해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면 된다.
끼엥! 끼엥!
두 마리의 불까마귀 새끼들은 배불리 먹고 제 요람으로 돌아갔으나, 새끼 아이스 독들은 양이 부족한지 먹는 와중에도 칭얼거렸다. 그에 반응하여 어느새 오른쪽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뿜어졌다.
난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가슴에 문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녀석들이 만족할 때까지 충실히 어미의 역할을 수행했다.
“미안하다. 너희를 모두 안기에는 내 가슴이 좁다.”
그때였다.
내가 문득 왜 가슴을 두 부분으로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 난 빌어먹을 진화를 맞이하고 말았다.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빨갛고, 파란 모유가 나오며 태극의 기운을 자아낼 때까지만 해도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존엄성 훼손의 가장 끝에 몰려 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벼랑 끝이다.
더 가다간 떨어져 죽는 수밖에 없다.
“안 돼, 제발.”
사람이 사람임을 포기하면 그건 짐승에 불과하다. 난 금수가 되지 않기 위해 그 마지막 선을 지키고자 발악했으나 몸은 정직했다.
가슴,
인간은 왜 아이를 가슴으로 품는다고 할까.
간단한 얘기다. 임신을 했을 때 많은 생명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한 명의 아이를 낳는다. 그러니 상체를 차지하는 부분이 넓지 않더라고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포유류들은 다르다. 새끼를 많이 낳기에, 가슴으로 품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굳이 부작용이 없기에 퇴화되지 않은 거겠지. 문제는 내가 이 아무런 쓸데없어야 할, 인간에게는 필요 없는 경이로운 진화를 이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불러야 되는가? 지금 내 모습은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철학적인 논제가 아니다.
난 정말 남자를 넘어, 인간이기조차 의심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젖소의 경지.”
애초에 내가 모유를 발사한 시점부터 녀석들과의 동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나가 늘어나며 교감의 힘은 점점 동화에 다다랐고, 녀석들에게 기운을 먹이며 일순간 품고 말았던 모성애가 각성하여, 가슴을 넘어 배에 없어야 할 것이 생기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개 같은…….
아니, 젖소 같은 상황이다.
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슴과 배의 경계가 사라졌다.
또한 귀가 길어졌다.
거울을 보니 아이스 독과 같이 파란 귀가 돋아난 상태다.
역시 이건 단지 마물의 힘을 빌려 오는 게 아니라 동화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단지 내 가슴이 좁다는 이유만으로!
모성(母性)의 감정이 마물과 날 이어 주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라는 걸, 아라크네와 샐러맨더와의 경험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니!
결국 마지막 선은 지워졌다.
난 녀석들을 받아들였다.
늘어난 영역은 녀석들에게 충분한 포만감을 선사했다.
그래, 난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하겠다. 내 가슴으로 하여금 세상에 젖과 꿀이 흐르길.
아디오스(adios),
카르페 디엠(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