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가짜 (1)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마물원이 아니었다면 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했으며, 또 어떻게 밥벌이 혹은 그 이상의 명예와 명성을 얻고자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했을까?
마물원과 원장님을 만나고 나서 이곳이 내 능력을 가장 잘 개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단순히 일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아실현(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내겐 원장님처럼 창대한 목적과 소망은 없지만, 적어도 ‘전이 이후의 세계’와 세상이 지금보다 더 혼란해진다면, 잡탕찌개의 고기 옆(드래곤)만큼 안전한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이,
이계의 환경과 마물, 그리고 ‘마나’라 불리는 절대적인 힘이 지구와 뒤섞이는 행위.
미묘하게 느끼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못 느꼈겠지만, 전이와 가장 맞닿은 곳이라 할 수 있는 마물원에서 일하기에 체감이 되었다.
전이가 빨라지고, 많아지고 있다.
마물원에서 관리하는 마물의 수가 일 년 전에 비하여 늘어났다. 전이에 의해 발생한 마물을 원장님이 데리고 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장님이 수거한 마물들 중엔 ‘마츄’같이 똥글똥글 귀여운 녀석들뿐만 아니라, 미라 마물처럼 국가 재앙급이 확실한 마물들의 비중도 늘어났다.
어쩌면 요 근래, 20년 전에 발생한 전이에 의해 지구의 문명이 바뀌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이가 자주, 많이 발생할수록 결국 적응해야 할 건 지구였기 때문이다.
아니,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20년 전과 ‘일 년 전’의 상황만큼이나, 일 년 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에도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처음 이계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인 중국에 이어, 이젠 특별한 힘을 가진 이종족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셔 가려고 하고, 인권의 확대 적용으로 보호 받던 우딸리깔딸리, 오우거 등의 천한 종족들은 이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내 생각인데 결과적으로…….
끼익-!
“이런 씨발 놈이!”
잡생각을 하다가 그만 칼치기를 하는 스포츠카와 부딪힐 뻔했다.
중앙선을 침범하며 요리조리 칼치기를 하는 새끼는 람보르를 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차, 그래서 더 열 받네.
“요즘 람보르를 타고 다니는 새끼들이 너무 많아 졌잖아.”
그래, 결과적으로 인류는 전에 없던 풍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젠 슈퍼카가 저 양아치 새끼도 타고 다닐 만큼 도로에서 흔하게 보였다.
전이에 의해 인류는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방구석 경제학자의 어설픈 생각이 아니다. 정말 모든 경제적 지표가 상승했다.(인터넷에서 봤다.)아무래도 ‘마나’라는 사기적인 효율의 에너지와 그 마나를 공급하는 이계 비경, 또한 이계의 환경과 전이한 ‘마물들의 서식지’, ‘몬스터 하비타트’ 때문일 것이다.
몬스터 하비타트, 줄여서 하비타트라고 부르며 마물들의 서식지를 뜻한다.
비유하자면 난 이곳을 게임 속 던전이라 부르겠다. 헌터들이 하비타트에 감춰진 이계의 보물들이나 마물들을 때려잡곤 게임의 ‘레벨 업’처럼 승승장구하니, 던전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지.
탓하자는 게 아니다.
하비타트는 인류에게 유해 지역이니 없애는 건 매우 타당하며 합리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개념’으로 남아 있을까? 마물원에서 일하기 전엔 별생각이 없었지만, 이젠 조금은 알겠다.
지금은 과도기다.
하비타트, 이계의 문물들을 통해 발전하는 시기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하비타트와 이종족들이 인류의 생존권마저 위협할 만큼 많아질 테고, 그때 인류는 과연 지구의 주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잘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지.’
전이는 끝나지 않는다.
인류가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도 몇 년 안에 역전될지도 몰라.
젠장,
생각이 깊어질수록 ‘우주 전쟁’이나 ‘인디펜던스’ 따위의 영화가 생각나잖아?
원장님도 그랬다.
전이가 발생할수록 지구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어질 거라고. 행성 자체가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전이가 발생하던 초기부터 지구 확장설 이론은 재기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이러니저러니 해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나? 그럼 전이는 뭐, 설명이 가능한가?
그리고 지구가 커진다는 건, 커진 부분이 ‘지구가 아닌 다른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결국 전이가 반복하다 보면 ‘지구가 아닌’ 세계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할지도 몰라.
‘사람끼리도 별 시답잖은 이유로 전쟁을 해 대는데 다른 종족이라면…….’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으음, 더 이상 추측은 삼가야겠다.
자꾸 촉수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영화 속 주인공이 생각나네.
어쨌든 마물원에서 하는 일은 이 ‘하비타트’가 지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거나(대륙 거북의 산란 장소처럼), 하비타트의 마물이 너무 위험하거나(아라크네 등), 마물이 지구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샐러맨더 서식지), 대체제로 마물원이라는 서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일 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원장님이 하는 일은 굳이 직업으로 표현하자면 조율사라고 해야 할까?
드래곤답게 조율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여 이계와 지구 사이를 조율하지만 뭐, 하는 일은 비슷하지.
그러니 그녀의 곁은 필연적으로 전이 이후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난 그녀의 곁에서 기다리며,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앞으로 어떤 전이와 변화가 닥치든 그녀가 잡탕찌개의 ‘고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야비하다고 여겨도 좋다.
고기와 김치.
드래곤과 가디언.
그러니까 난 맛있는 고기랑 같이 먹는 김치, 딱 그 정도면 괜찮다는 것이다.
[150m앞에서 좌회전입니다.]
목적지를 알려 주는 내비게이션 목소리에 깊어지는 생각을 관뒀다. 젠장, 또 생각이 옆길로 샜구먼.
어차피 한참 후의 이야기가 될 텐데.
“녀석의 집이 이 근처라고?”
서울의 할렘.
20년 전과 달리 ‘달동네’가 아니라 ‘할렘’이라고 불리는 건, 총이나 칼빵을 맞거나 이종족의 주먹에 내장이 찢기거나, 하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람보르를 몰고 가자 주민들의 시선이 쏠린다. 곱지는 않다. 세상이 풍요로워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곳은 가난하니까.
하지만 난 이곳이 익숙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고급 주택가보다 평생을 살아온 이곳이 좀 더 정겹달까.
끼익-!
달동네의 낡은 주택가 옆,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 주차할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녹슨 하수구에서 끔찍한 냄새가 올라왔다. 으음, 오랜만이다. 썩은 계란을 닦고 오래도록 방치된 걸레처럼 폐를 찌르는 냄새.
슈퍼카가 이런 곳에 주차되어 있으니 차 도둑이 기승을 부리겠지만, 우리 람보르가 어디 보통 차인가?
좀도둑의 실력으론 보안 장치를 절대 뚫진 못할 거야.
“가자, 포근아.”
잘 시간이던 녀석을 깨워서 데리고 왔다. 어느덧 대형견만큼 커진 포근이는 야행성인 샐러맨더답게 낮엔 잠만 잤다.
뀨앙!
자고 있다가 내 말에 어슬렁어슬렁 차에서 내린 포근이는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조금 컸다고 반항심이 늘었구먼.
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간식을 약속했다. 포근이는 여전히 불만스러워했으나 단지 투정일 뿐이었다. 인마,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게 간식 먹고 싶은 티가 다 나거든?
녀석과 같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었다. 미리 받은 주소가 있지만 찾기가 난감하다. 가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달동네의 골목길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름한 집들.
“주소가 표시된 곳이 한 집도 없잖아.”
소주, 맥주병의 퍼렇고 노란 유리 조각 따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담장을 잠시 바라봤다. 폐가와 집을 구별하지도 못하겠다.
반쯤 무너진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눈높이에 있던 허름한 창문 너머를 쳐다봤다.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인이 홀딱 벗고 누워 있었으니까.
사람은 예쁘고 잘난 것 외에도 못생기고 충격적인 비주얼에도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아…….”
노란 장판 위에 TV를 보고 있던 ‘오우거’가 인기척에 날 바라본다.
휙-!
말없이 날아온 소주병을 피했다.
그리고 포근이를 안고 뛰었다.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후다닥 뛰어 도망친 난 우두커니 서서 이마에 맺힌 한 줄기의 땀을 닦아 냈다.
“어쩐지 동정이 드네.”
그에게 품었던 반발심이 사그라졌다.
내가 나름대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 건 원장님과 마물원을 만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동물들의 말을 듣는다.
원장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게 내 능력의 전부인 줄 알았지.
이걸로 무얼 해 보겠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사실 활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축산업의 귀재가 될 수도 있었고, 계속 헌터 시다바리 짓을 했으면 마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고 본격적인 헌터의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놈은 꽤 당돌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나였으면 못했을 거야.
‘물론 그의 능력이 진짜일 경우지만.’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녀석의 집을 찾았다.
내가 살던 마물 도살 공장 옆과 다를 바 없는, 낡은 주택이다. 녹색의 철문을 두들기며 그를 불렀다.
쾅쾅-!
“동만 씨 댁 맞습니까? 미리 연락드렸던 제이 에이전시의 정다정 팀장입니다.”
그러며 지갑을 꺼내 명함을 꺼냈다. 원장님으로부터 받은 가짜 명함, 난 능력자 에이전시의 마케팅 팀장이었다.
난 표면적으론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왔다.
능력자 에이전시는 모델 에이전시처럼 고용인의 능력을 활용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에이전시다. 주로 헌터와 관련 깊지만 이처럼 예능 쪽에도 활발하다.
그는 능력자 쇼쇼쇼!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고 있으니, 에이전시의 접촉은 자연스러운 접근 방법이었다.
“어휴, 잠시만요! 빨리도 오셨네, 방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남사스러버서. 곧 나갑니다!”
서울 말씨였으나 보다 걸쭉하다.
말투의 억양을 보니 사투리를 감추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듣기가 좋았다. 뚜렷하고 명랑한 느낌이다.
그러니 어수룩한 모습으로도 방송에 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의심받지 않고 믿음을 줬겠지.
우당탕탕 거리더니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일단 지금까진 그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좋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동질감, 그럼에도 방송에 출연하는 등 노력하는 자세, 듣기 좋은 목소리…….
하지만,
그와 직접 대면하자마자 난 나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뭐야.’
썩은 내다.
그의 첫인상은 단 한 줄, 썩은 내로 정의할 수 있다.
지른내? 아니야. 단순히 안 씻어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못 맡을 냄새. 뭐야? 저 불쾌하고 기분 나쁜 냄새, 하수구의 악취보다 심하고, 똥오줌만큼 더러우며, 썩은 시체처럼 불길한 냄새는?
“반갑습니다. 정동만이라고 합니다. 어유, 부끄럽네요. 설마 능력자 에이전시에서 먼저 연락을… 왜요? 표정이 조금 안 좋으신데… 뭐, 불편하신 게 있는 거유? 아, 화장실이라면 공중 화장실이 저 밑에…….”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제의할 게 있어 찾아뵙게 된 정다정 팀장입니다.”
반기며 인사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는 내 모습에 내가 똥이라도 마려운 줄 알았나 보다. 사실 똥을 직접 대면하는 것 같아서 그런 건데.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난 그의 능력을 확인하고자 왔으니까.
명함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넙죽 숙이며 받았다. 방송에서 봤던 꾀죄죄한 꼴에 덥수룩한 머리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한 줄 알았으나, 마주하니 꽤 서글서글한 사람이었다.
“날씨가 덥죠? 뙤약볕에 여기 있지 말구 들어오세요. 온다는 말 듣고 냉커피라도 사 놨으니께 마시면서 얘기를 나눕시다.”
그는 집 안으로 초대했다.
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앞발로 코를 막고 경계하는 포근이를 불렀다. 녀석도 나처럼 그의 악취를 맡았나 보다.
녀석이 없으면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없다. 싫다는 포근이를 안아 들었다. 다행히 새끼 때와 달리 기분 나쁘다고 불꽃을 함부로 발사하지는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던 동만을 불렀다.
“동만 씨! 바깥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낫겠는데요. 동만 씨의 능력을 체크하기 위해 온 거라 저희 쪽에서 준비한 게 있어서.”
포근이를 내밀며 말했다.
뒤를 돌아본 동만은 포근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피웠다.
“오후! 샐러맨더네요. 길들이셨나? 어려울 텐데 역시 능력자 에이전시네요. 그려, 그러면 요 집 뒤쪽에 버려진 공터가 있는데 거기로 가실까요? 불나면 안 되것으니.”
그는 버려진 공터까지 앞장섰다.
난 그를 뒤따라가며 생각했다.
샐러맨더를 알고 있다.
그리고 ‘불이 난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정도 마물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말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의 능력은 나와 같은 걸까?
아니면 비슷하기라도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