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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7화 (67/258)

# 67화 가짜 (2)

공터에 도착하자 동만은 덧니가 드러날 만큼 히죽 웃으며 말했다.

“헤헤, 근디 사실 조금 긴장되네요. 에이전시에선 어떤 시험을 치르는지… 샐러맨더를 데리고 오신 걸 보면 대강 알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검사 받듯이 본격적으로 하는 건 처음이라서.”

“괜찮습니다. 쉬운 거예요. 마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셨죠? 제가 준비한 질문의 답을 이 녀석에게 들어보세요.”

“그게 무슨…….”

“이 녀석의 이름과 나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먹이, 뭐, 그런 거요.”

밝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던 그가 처음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글서글하던 표정이 굳어진다. 그와 동시에 악취는 더 진해졌다.

“…알겠습니다.”

진지한 거냐?

아니면 화라도 난 거냐?

난 그의 표정이 약간은 섬뜩하다고 느끼며, 준비한 질문을 그에게 했다. 정말 목소리를 듣는다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아주 쉬운 질문을 말이다.

‘확인’은 금방 끝났다.

그의 집 앞까지 같이 간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고 뒤를 돌아보니 동만은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내가 준 명함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직감한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멍청한 새끼.

잠깐 주차된 람보르엔 그새 낙서가 가득했다. 훔치지 못하니 엿이라도 먹으라는 거냐?

마물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차장에 들렸다. 자동 세차를 맡기고 음료수나 홀짝일 때, 휴대폰이 울렸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팀장님, 저 서동만입니다. 혹시 결과가 언제쯤 나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메시지를 지우고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내가 그를 동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생긴 것과 다르게 놈은 제법 똑똑했고, 그 잔머리를 이용할 줄 알았다.

아마 TV 프로그램 등으로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겠지.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구라쟁이 따위.

“에라이, 뭐로 칠한 거야? 지워지지가 않네.”

자동세차를 끝마친 내 람보르의 차체엔 여전히 낙서 자국이 있었다.

화가 나 발로 뻥 차자 시끄러운 도난 방지 알람이 울러 퍼진다.

사실 낙서 자국 때문에 짜증이 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젠장.

*

관리실로 돌아오자마자 원장님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냥 눈치만 빠른 구라쟁이였어요.”

“정말요? 방송에선 꼭 마물들을 잘 다루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한 거래요?”

그녀는 구라쟁이가 어떻게 마물들을 다뤘는지 궁금한 듯했다. 난 공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포근이는 놈을 싫어했다. 그 행동이 방송에서 흉포한 마물들이 그에게 했던 행동들과 비슷했다. 방송 카메라로 봐서 애매했었는데, 직접 대면하니 확실히 알겠다.

“마물들이 그에게 순종적인 건 냄새가 나서예요.”

“냄새요?”

“놈에게선 싫은 냄새가 나요.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

아직까지 내 옷엔 놈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녀에게 냄새를 맡아 보라고 말하며 입고 간 정장 윗도리를 벗어 건넸다. 눈썹을 찌푸리며 내 땀 냄새만 난다고 한다. 드래곤도 못 맡는 건가.

“아마 마물들이 놈을 공격하지 않은 건 더러워서. 차마 상대도 하지 못할 만큼 추악한 악취 때문일 거예요. 방송에선 마물들과 친한 척 굴었지만 지금 보니 알겠어요. 그냥 상대를 안 해 준 거야. 저도 놈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는데 냄새가 심해서 못 건드리겠더라고요.”

원장님은 내 신랄한 독설에 어깨를 으쓱했다.

“다정 씨가 그렇게 싫어하니 후임자에서 제외시켜야겠네요.”

다행이다.

만약 놈과 같이 일했다면, 한 여름날 하수구 처리장에서 홀딱 벗고 오물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처럼 고생스러웠을 테니까.

원장님은 더 이상 놈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고, 나도 ‘동만’이라는 이름을 뇌리에서 지우고자 했다. 놈의 구라는 기껏해야 ‘마물의 소리를 듣는다.’라는 것이다.

재미없는 능력이다.

점점 미디어의 관심도 식을 테고 동만이라는 남자도 잊히겠지.

…….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미 에이전시 에너제틱 소속의 서동만, 그가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능력자가 된 이유.]

[한강의 능력자들… 세계에서 통하다.]

[마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능력이 평범해 보이신다면 이 기사를 주목하십시오. -> 마물학에 혁신을 불러올, 일곱 명의 마물 학자들이 말하는 그의 진정한 능력. 지금 바로 팟캐스트에서 확인하세요.]

그를 주제로 한 뉴스 제목들이다.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어느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능력자가 되었다.

*

‘능력자 쇼쇼쇼!’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프로그램은 맞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미국,

능력자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토크쇼인 ‘엘존 쇼’

정규 편성된 TV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동시 중계되며 출연자 모두 세계에서 가장 관심 받는 능력자인 점에서 세계적으로 동시 시청자 수만 몇천만 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지구촌의 토크쇼다.

엘존 쇼의 게스트는 엄선하고 엄선하기 때문에 최근 몇 주 동안은 쇼가 방영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몇 주 만에 엘존 쇼 홈페이지에 토크쇼가 열린다는 안내와 함께 게스트가 소개되었다.

어쩌면 역대 엘존 쇼에서 가장 이례적인 게스트였다.

많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를 다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장 뜨거웠다. 몇 년 만에 한국 게스트가 출연했으며, 그는 이미 능력자 쇼쇼쇼! 등을 통해 한국에 얼굴을 알린 능력자였으니까.

엘존 쇼의 출연자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마물원 일로 바쁜 나라도 뉴스와 인터넷에서 하도 떠들어 대니 소식을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았다.

놈이 내 모방작처럼 느껴지는 건 오만방자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말로 ‘저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도 있었잖아.

무엇보다 저 새낀 거짓말로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그 점이 짜증 났다.

무슨 느낌이라고 설명하기엔 애매한데 유일무이한 내 능력이 놈에 의해 헛되게 쓰이게 있다고 해야 할까, 마치 저 인간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표절’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애매하지만 분명한 건 엄청 열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작두를 들고 놈에게 가서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며 두 손을 싹둑 잘라 버리고 싶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놈이 승승장구를 하든 말든 나완 전혀 연관이 없다.

그래도 짜증 난다. 부러워서 배가 아픈 수준이 아니다. 으으. 속에 열불이 나는구나.

아침부터 놈이 엘존 쇼에 출연한다는 기분 나쁜 소식을 들으며 마물원으로 출근했다.

*

“저 사람, 너무하네요.”

원장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나마 한을 풀자면 원장님밖에 없었기에 난 답답한 속을 토로했다.

“그러게요. 저 망할 놈이 뻔뻔도 하지. 대체 어쩌자고 이 지경까지 일을 벌인 건지, 저놈 저러는 것도 한때일걸요? 결국 놈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마물들 목소리 듣는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인데 구라인 거 뽀록나 봐. 그때부터 인생 롤러코스터 오지게 타는 겁니다.”

원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들어줬다. 내 한풀이가 끝나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마침 공개 무대를 하더군요. 잘됐어요.”

그러며 무언가를 건넨다.

받고 보니 티켓 같았다.

“엘존 쇼… 방청권이요?”

놈이 출연자로 나오는 엘존 쇼의 방청권.

원장님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되묻자, 그녀는 코를 찡긋거리며 대답했다.

“그의 능력이 가짜인 이상, 결국엔 귀찮은 걸림돌이 될 거예요. 사실 저도 이럴 줄은 전혀 몰랐지만…….”

“걸림돌이라 하시면?”

“난 다정 씨 능력을 숨길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 이용할 가치가 충분한데, 저자 때문에 능력에 오명을 쓰고 가치가 바라지면 안 되잖아요. 반대로 다정 씨 능력에 대해 연구 가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도 안 되고요. 그는… 다정 씨 표현대로 말하자면 ‘너무 나댔어!’ 다정 씨가 가서 혼내 줘요.”

원장님하고 같이 일하며 새삼스레 느끼는 건데 그는 정말 좋은 상사이자, 친구이자, 드래곤이었다.

“암요. 너무 나댔지요.”

엘존 쇼라면 그에게 망신을 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무대가 되겠지.

원장님은 드래곤다운 인맥으로 미리 그쪽 쇼 담당자와 얘기를 끝마쳤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무대에 난입하여 능력을 밝혀내는 것, 놈의 구라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칵- 퉤!

손모가지는 못하더라도 밥줄은 끊어 버려야지.

“왜 관리실에 침을 뱉고 그래요? 걸레로 닦고 가요.”

“네, 원장님.”

몇 시간 후에 미국 로스 엔젤리스에서 엘존 쇼가 열리나, 난 원장님이 준 편도 이용권으로 순식간에 방송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토크 쇼가 시작되었다.

난 가장 앞좌석에 앉아 멀뚱멀뚱 구경만 했다.

시시껄렁한 근황 토크가 끝나고, 마침내 동만이가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마련된 무대 위로 오른다.

우리에 갇힌 마물들이 등장했다.

세간에서 위험한 마물이라고 여겨지는 마물들만 잔뜩 모아 놨다. 하지만 사실 녀석들은 그다지 흉포하거나 잔인한 녀석들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마물.

놈의 쇼맨십은 여전했다. 생긴 것과 달리 정말 영리한 남자야.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 척하는 건 정말 쉬운 쇼였다. 대화를 나누는 척하며 무슨 먹이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는 건 무엇이냐, 등등을 물어보다가 ‘좋아하는 먹이가 돼지 머리입니다!’라고 외치며 먹이를 던져 주거나, 싫어하는 건 ‘차가운 걸 싫어하네요.’라면서 얼음물을 쏟아 버리면 되니까.

당연히 놈은 마물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걸 모른다. 돼지 머리를 먹는 건 육식 마물이라 그렇고, 차가운 물을 싫어하는 건 생물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갑자기 차가운 물을 덮어쓰는데 좋아할 애들이 어디 있어?

“어디 보자,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의 엉터리 쇼를 사람들이 납득하는 유일한 이유는 마물들이 놈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그 점에서 오는 믿음으로 나머지를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다.

놈의 거짓말을 탄로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마물들이 놈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전에, 확실하게 하기 위해 놈에게 망신부터 줄 생각이다.

몰래 무대 뒤편으로 가 턱시도를 입었다. 그리고 보타이를 가면으로 바꾸고 얼굴에 썼다.

이 기능, 처음 써 보는구나.

경비들 몰래 슬금슬금 무대로 향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야? 은근히 신나잖아?

“이 아이는 지금 몹시 배고파 하는군요. 하지만 평범한 먹이는 먹지 않습니다. 오로지 먹는 거라곤 신선한 돼지 머…….”

놈이 마물을 상대로 거짓부렁인 대화를 할 때 무대에 난입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릴 때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새끼, 순 구라쟁이예요!”

개인적으로 생각한 건데 ‘내 귀에 도청장치’를 이을 최고의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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