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69화 (69/258)

# 69화 조미료 (2)

‘생김새, 목소리가 아니라면 냄새로 알아본 거겠지.’

그가 날 알아봤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가면을 쓰고 있는 날 말이다. 일단은 그도 마나를 가진 능력자이니 단지 악취를 풍기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있는 거겠지. 냄새를 잘 맡는다든가 하는 능력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체를 들켰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때 공터에서 알아차렸습니다. 당신, 구라를 능청스럽게 하더군. 주변을 둘러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널 주목하고 있어. 거짓말을 너무 크게 쳤다고 생각되지 않아?”

“뭣……!”

“당신, 잣 됐어. 내가 다 까발려 줄 테니까.”

확신은 아니었나 보다.

내가 스스로 정체를 인정하자 꽤 충격을 받은 듯 안 그래도 말린 오징어 다리처럼 얇은 다리를 불쌍하게 후들거린다.

난 뒤로 넘어지려는 그를 잡아 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침착하세요. 심호흡, 심호흡.”

그는 의문이 많아 보였다.

내 말에 진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 듯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안정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왜, 당신이… 제이 에이전시에서 날 견제하러? 아니, 그러기엔 엘존 방송이라고!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강렬한 의문은 두 가지겠지.

왜, 에이전시의 마케팅 팀장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느냐?

왜, 너까지 게 뭐라고 내 능력을 까발리겠다는 거냐?

“기다려 보세요. 곧 알기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

때마침 엘존이 돌아왔다.

FD(연출 보조)들이 방송 시작을 알린다. 광고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엘존 쇼에서 능력자끼리의 대결만큼 흥미진진한 건 없지요. 흥미로운 대결이 시작될 2부, 시작합니다.”

*

대결은 블라인드 테스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나오는 텔레파시 게임과 비슷했다.

마물이 보이지 않도록 암막을 사이로 두고 대결이 진행된다. 다른 행위는 일체 할 수 없으며, 오로지 마물들에게 ‘질문과 답’만을 하여 마물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맞추면 승점을 얻는 게임이었다.

내겐 손쉬운 게임이다.

“미스터 서, 그리고 가면의 남자분. 오늘 아침은 뭘 드셨나요?”

쇼의 진행자 엘존이 물었다.

미스터 서는 햄버거라고 대답했고, 아침을 굶었던 난 거짓말을 했다.

“18 BEDFORD 거리의 two leaves에서 리코타 팬케이크를 먹었어요. 맛있던데요?”

오랜 백수 생활의 장점 중에 하나라면 잡다한 지식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즐겨 보던 쇼 프로그램 mc의 단골 레스토랑이 어디 있는지 아는 정도다.

난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존은요? 듣기론 그 가게의 단골손님이라면서요?”

“맞아요. 오늘 아침에도 팬케이크를 포장해 갔죠. 이제 브루클린의 명소는 two leaves 레스토랑밖에 안 남았어요. 드래곤이 자유의 여신상을 골렘으로 만들어 버리기 전까진 브루클린 하이츠(Brooklyn Heights)도 최고의 장소였으나, 지금은 키덜트족의 성지가 되어 버렸으니.”

“와우, 드래곤을 언급해도 되는 건가요?

“글쎄요. 지오 그래픽처럼 드래곤을 취재하진 않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과장스럽게 리액션을 취하는 엘존에 방청객들이 웃는다. 드래곤을 취재하려다가 방송국이 날아가 버린 지오 그래픽, 드래곤을 상대로 한 멍청한 짓의 교본이 되었지.

‘미국 유머는 어려워.’

난 전혀 웃기지 않았으나, 미드 따위로 단련한 조크 실력을 과감하게 뽐냈다.

엘존은 햄버거라 대답한 서동만보다 나와 대화를 이어 가길 원했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고, 어느덧 쇼의 중심에서 서동만은 자연스레 밀려나 가게 되었다.

“자, 그럼.”

엘존이 아침밥을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대화를 끝낸 엘존이 무대로 내려가며 말했다.

“이처럼 사람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상대방의 감정과 상태를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마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과연 그 마물의 상태와 감정을 알 수 있을까요?”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가벼운 토크였다. 드디어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나와 서동만은 무대 위에 올랐다.

내 앞엔 빨간 버저 버튼이 있었다.

서동만 앞에도 마찬가지다.

엘존의 질문에 버튼을 눌러 답을 외치면 득점한다. 퀴즈 대회처럼 말이다.

이제 쇼는 나와 서동만과의 대결이 중심이 되었다. 엘존은 무대 바깥에서 질문만 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우리 너머의 마물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맞추세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쉬운 문제겠지요?”

대결이 시작되고 서동만이 얼 타고 있을 때 난 재빨리 버저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우리 너머에 있는 녀석은 ‘불가사리’네요. 주로 철을 먹는데 음, 뭘 먹이시는 거예요? 철하고 구리? 마이크? 그래도 꽤 괜찮아 하네요.”

엘존의 손짓에 따라 암막이 걷힌다. 검은 천막 너머엔 우리에 갇힌 ‘불가사리’가 있었다. 바다에서 사는 불가사리가 아니다. 스폰지밥의 뚱이가 아니라 기괴하게 생긴 마물이다.

생김새는 코끼리의 머리에 호랑이의 몸이 달린 것처럼 생겼으며, 철과 금속을 먹는 마물이다.

녀석은 스태프가 건넨 먹이를 먹고 있었다. 기다란 스탠드 마이크다. 내 물음에 녀석이 [노란 거 맛있다.] 라고 말한 건 마이크의 구리 선이 맞았구나.

“와우, 대단히 신기하네요! 정답입니다!”

와아아……!

방청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전혀 보지도 않고 녀석이 뭘 먹는지까지 정확히 맞춘 것이다. 서동만이 보여 줬던 쇼와 수준이 다르다.

점수가 올라가고,

서동만을 힐끔 봤다.

밝은 조명에도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게, 누가 구라치랬어?

대결은 계속 진행되었다.

두 번째 질문,

[마물이 지금 어떤 색의 무엇을 입고 있는가?]

난 곧바로 노랑 모자를 썼다고 대답했다.

“돌바위 물개에게 모자를 씌웠네요. 노란색 모자, 프로듀서 것인가요? 어유, 엄청 싫어하네.”

그러자 서동만이 더듬더듬 내 말을 따라했다.

“노란 모자를… 머리에…….”

말을 더듬는 서동만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얄팍한 수야.’

정답을 먼저 말하진 못하더라도, 자기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 저런 짓을 하는 거겠지. 하찮은 연기에 누가 속겠는가?

세 번째 문제,

[어떤 공을 가지고 있죠?]

고릴라와 닮은 마물 훔바바,

녀석이 들고 있는 공을 맞추는 문제에 난 농구공이라고 대답했다.

“노… 농구공!”

서동만이 따라한다.

난 그를 조롱하며 말했다.

“거참, 앵무새처럼 따라만 하지 마세요. 마물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서요? 왜? 안 들리는가? 아니면 일부러 당신을 무시하는 걸 수도 있겠네.”

부들거리는 녀석,

다섯 문제가 남았지만 사실상 승부는 이미 결정 났다.

하지만 게임이 재밌어 도중에 중단되진 않았다.

여섯 번째 문제,

[지금 마물이 어떤 먹이를…….]

“저… 정답!”

앵무새 짓을 하던 서동만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나보다 빨리 비저 버튼을 눌렀다.

“오, 미스터 서가 문제를 반만 들은 상태에서 처음으로 버튼을 눌렀습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과연 그는 문제를 맞힐 수 있을까? 이제 이 쇼는 서동만의 능력 확인이 메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 팔짱을 낀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맞추겠지.’

“저… 정답은 고기! 쇠… 고기, 쇠고기를 먹고 있어!”

난 어깨를 으쓱했다. 정답이다.

“정답입니다! 미스터 서가 이 문제를 기점으로 역전을 꾀할 수 있을까요?”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맞출 수밖에 없다.

물론 마물과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하진 않았겠지. 난 그가 악취를 풍기는 것만큼이나 냄새를 잘 맡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인간의 후각을 넘어서 ‘능력’ 수준으로.

그러니 한 달 전에, 딱 한 번 만난 내 정체를 알아냈겠지.

먹이가 소고기인 건 마물과 상관없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 뒤, 나머지 네 문제 중 두 문제를 그가 맞혔다. 단순히 먹이 문제만 아니라 마물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문제도 맞추었는데, 마물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서동만은 알아낼 수 있었다.

‘냄새로 유추하다니.’

나도 알고 있었다.

암막 너머, 불가사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불’을 피해 공포에 떨고 있었다는 걸.

난 그가 불가사리의 냄새를 캐치했다고 유추했다. 인간도 무서우면 땀을 흘린다. 마물도 마찬가지로 무서우면 특유의 땀 냄새를 풍긴다.

흐음, 그래도 밑천 없이 쌩구라를 친 건 아니었구먼.

어쨌든 퀴즈의 우승자는 나였다.

하지만 세 개의 문제를 맞힘으로서 서동만은 아직까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되지.

난 확실하게 못을 박고자 했다.

대결이 끝나고 쇼가 끝나려고 할 무렵,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동만에게 다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마물에게 공격을 안 받는 이유를 알겠어. 마물들이 싫어하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다니니까.”

“뭐요? 내가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는 거요?”

“난 맡을 수 있어. 사실 처음 무대에 올라온 순간부터 냄새가 났고 말이야.”

서동만은 그래도 자신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았다고 내심 안심한 모양이다.

이전까지 꿀 먹은 벙어리였던 그가 발끈하며 덤벼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래, 내 능력이 당신보다 딸리는 건 맞아. 하지만 난 분명 마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의 헛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어퍼컷? 아니면 콧대? 아니야. 그래도 뺨을 때리는 게 낫겠어.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짝-!

말하던 그를 냅다 후려 팼다.

뺨을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단지 뺨을 때렸을 뿐인데, 그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오후~!

역시 자극적인 것만큼 입맛을 돋우는 게 없다. 방청객들이 함성을 질렀다.

한 대 얻어맞은 서동만은 ‘악취’가 더 심해졌다. 그는 부어오른 빨간 뺨으로 날 바라봤다.

“저기요.”

내가 다가가자 놈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깨달은 듯했다. 그래, 난 그다지 앞뒤를 재지 못하는 사람이다.

난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다.

“진짜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진짜?”

그래도 기회를 줬다.

난 이제 달라졌으니까.

좀더 ‘드래곤의 가디언’으로서 품격을 갖추고자 했다.

난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발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말해 주라.

하지만 그는,

“그… 그래요. 들려요.”

구라를 까며 고개를 끄덕였다.

쓰읍.

놈의 구라를 까발리고자 했을 때, 원장님에게 부탁해서 받은 ‘마도구’가 있었다.

난 턱시도의 안주머니에서 그걸 꺼냈다. 유리병에 담긴 노란색 액체, 그의 머리 위로 졸졸졸 뿌렸다.

노란 액체가 그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서동만은 아직까지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다.

“당신도 맡을 수 있지? 이제, 당신에게 냄새가 나?”

“…어?”

내가 말하고 나서야 서동만은 깨달았다. 이 마도구는 냄새를 지워 준다. 일시적이지만 그는 이제 깨끗해졌다. 악취 따윈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 쇼의 클라이맥스로 가 볼까.’

이제부턴 스피드가 중요하다.

내가 이제 할 행동은 지금까지 방관하던 경비들과 스태프들이 뜯어말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흐차!”

쾅-!

포근이와 교감하여 신체 능력을 높이고 사람들이 방심하는 사이 후다닥 마물 우리로 뛰어갔다.

그리고 미리 충전해 놓은 불꽃의 탄환으로 마물 우리의 잠금 장치를 폭파시켰다.

꺄아악-!

현대인들은 20년 전과 다르다.

지금 같은 돌발 상황에도 굳지 않고 재빠르게 대응한다. 마물 우리가 열리자 방청객들, 엘존, 스태프들 모두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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