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조미료 (3)
날 제외하고 스튜디오에 유일하게 남은 사람들은 마물들의 살기를 고스란히 받아 도망도 치지 못하는 서동만.
그리고 도망치지 않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유일하게 녹화되고 있는 카메라를 지키는 CP뿐이었다.
“자, 이래도 녀석들이 널 좋아하는지 어디 한번 알아보자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디 한번 부탁해 봐. 살려 달라고. 왜? 얘네들이랑 넌 친구였잖아?”
서동만이 소리 질렀다.
“안 돼! 난……!”
마물들은 놈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녀석들을 생각보다 ‘덜’ 흉포하다고 했지, 흉포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마물들이 서동만을 해치기 위해 살의를 내뿜으며 다가간다.
서동만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래, 거짓말이야. 제발! 안 돼! 오지 마! 제발 말려 줘!”
놈의 바지가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낀 채 구경했다. 서동만은 꼴사납게 발버둥 치며 허둥지둥 도망쳤으나, 성난 마물들을 뿌리칠 순 없었다.
마침내 마물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들이 서동만을 해치려고 할 때였다.
끄르륵!
용케도 기절 안 했네.
마물들은 하얀 거품을 물고 쓰러진 서동만의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뿐 공격은 하지 않았다.
역시 내겐 착한 친구들이다.
겁만 주라고 부탁했더니 말도 잘 들어.
‘뭐, 녀석들이 날 무서워하는 이유 때문이겠지만.’
미라 마물과 교감한 이후로 생긴 힘이 이때 도움이 되는군.
“오케이! 컷!”
“뭐? 정말?”
CP의 외침에 순간 맥이 빠져 버렸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니, 아무리 자극적인 방송이라고 해도 이걸 방송에 내보낼 생각을 했어?
당신, 분명 해고당할 거야.
어쨌든 이제 정말 끝났다.
난 무대 뒤에 숨어 있던 포근이를 데리고 나왔다.
-원장님, 다 끝났어요.
-알아요. 방송 재밌게 봤어요. 곧 갈게요.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비행기 표를 끊을 필요는 없었다. 원장님의 공간 이동 마법이면 순식간이니까.
풀려난 마물들을 진정시키며 원장님을 기다릴 때였다.
“너 이 개새끼야!”
마물들을 피해 멀리 도망친 서동만이 외쳤다. 악에 받쳐 갈라진 목소리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난 그냥 이 빌어먹을 삶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뿐인데! 왜! 날 다시 나락으로 빠트리는 거냐고!”
그가 말하길,
자신은 ‘발버둥 쳤을 뿐이다’.
난 대꾸하지 않았다.
원장님이 올 때까지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내게 욕설을 내뱉었다.
“수고했어요, 다정 씨.”
순식간에 원장님이 도착했다.
원장님은 공간 이동 마법진을 그리며 내게 당부했다.
“마물들과 같이 이동하는 탓에 공간이 불안정해서 멀미가 심할 거예요.”
공간 이동이 시작되었다.
으윽, 확실히 원장님과 단둘이 이동할 때에 비하여 멀미가 심했다.
“휴우.”
마물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원장님은 곧바로 마물들을 알맞은 환경으로 돌려보내러 갔다.
난 홀로 관리실에 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켰다.
‘끝 맛이 씁쓸해.’
원하는 엔딩으로 끝을 맺었으나,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멀미 때문은 아닌 것 같네.
젠장.
*
며칠 동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날마다 인터넷으로 그에 대하여 검색했는데 모두 비극에 가까운 소식만 전해졌다.
[에너제틱, 서동만 계약 파기, 위약금은 30억 추정.]
[서동만 사건으로 보는 가짜 능력자들의 사기 행각, 능력 위조 범죄율 10년 전보다 5,000% 상승. 대책은?]
[능력 검사의 허점, 서동만 사건으로 재조명되다.]
서동만의 사기가 밝혀졌을 뿐인데 파급력은 굉장했다.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능력 위조 범죄와 사회 현상, 능력 검사의 허점 등 애꿎게도 바빠진 건 다른 사람들이다.
서동만은 막대한 위약금뿐만 아니라 소송 결과가 나오면 아마도 철장 신세를 지게 될 것 같았다.
한 달 전, 달동네에서 만났던 그가 생각난다. 다 무너져 가는 담벼락과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색 대문의 허름한 집에서 살던 서동만, 혹시 모를 기대감을 가진 채 웃으며 날 반겨 주던 어리숙한 사내.
서동만은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었다. 단지 방법을 잘못 택했을 뿐.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 들통 나 무너질, 겉모습만 화려한 모래성 같은 꿈을 좇았다.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마물원에서 출근한 난 약간의 무기력증을 느끼며 컴퓨터를 켰다. 차라리 다른 일에 집중하면 좋겠으나, 그날 이후로 딱히 중요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엑셀을 켜 마물원 비품에 대하여 영수증을 정리하던 중에 원장님이 출근했다. 그녀는 아침 인사를 나누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서동만의 이력서였다.
그날, 마물원으로 돌아왔을 때 원장님에게 부탁했었다. 녀석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원장님은 정보꾼들에게 일을 맡겼고, 지금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보꾼들이 조사한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이름, 주소, 가족 관계, 능력, 과거 직업 등.
하지만 그 모든 걸 합쳐도 달랑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지금 내가 이력서를 쓴다면 몇 장이 나오려나.’
“귀찮으셨을 텐데 고마워요, 원장님.”
“정보꾼들에게 부탁만 했을 뿐인 걸요. 다정 씨 생각이 맞았어요. 그의 능력, 냄새와 관련 있더군요.”
서동만의 정보를 부탁한 이유는 엘존 쇼 스튜디오에서 겪었던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마석 검사에 의한 결과]
-8급
표준: 후각 강화
특이: 마물이 기피하는 냄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력서에 적힌 서동만의 능력,
내 예상대로다.
녀석은 냄새를 잘 맡는다. 한번 맡은 내 냄새를 한 달이 지나도 바로 알아차릴 만큼 뛰어났다.
게다가 특이 능력으로 마물이 기피하는 냄새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마물들을 잘 다루는 척을 할 수 있었던 거지.
난 놈의 이력서를 읽어 갔다.
“서동만, 이 사람 마물 도축업 일을 꽤 긴 시간 동안 했네요. 마물에 대해 잘 알았던 건 도축 공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며 얻은 지식이었나 봐요.”
샐러맨더를 바로 알아보거나 어설프게나마 마물들의 습성을 파악했던 건 그의 과거 직업 때문이었다. 마물 도축업, 그중에서 헌터들의 뒤처리를 맡는 청소꾼.
‘병원비 지출이… 억 소리 나는군.’
그 일을 하며 돈은 꽤 벌었던 모양이나, 일을 하다 크고 작은 병에 걸리는 바람에 병원비로 다 지출한 것 같았다.
마르고 어딘가 아파 보이던 몸,
지금까지도 잔병치레를 하고 있어서 그랬구나.
“불쌍한 녀석.”
스쳐 가는 혼잣말이었으나 원장님이 내게 물어봤다.
“불쌍하다고요? 그는 다정 씨의 능력을 모방하던 사기꾼이잖아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사실 있잖아요. 녀석의 몰락이 그다지 개운하지 않아요. 제가 그에게 동질감이라도 느끼고 있었나 봐요.”
“동질감?”
원장님은 무엇이 그리 관심이 많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듯하다. 난 그녀의 빨간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크흠, 마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알기 전에는 사실 제 능력도 녀석과 별반 다를 바 없었어요. 허접한 능력. 그와 그때의 내가 다른 건 얼마나 상황이 절박했는가의 차이뿐. 저 같아도 병원비가 억대였다면 비슷한 사기라도 쳤을걸요.”
원장님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긴다는 거군요. 단지 동질감 때문에,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타인을.”
“뭐, 그를 끌어내린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맞아요. 조금 안타깝네요.”
그녀는 내 대답에 피식 웃었다.
단지 웃겨서 웃은 게 아닌 것 같았다. [호오, 역시 인간은 흥미로워] 따위의 말을 하더니 정리할 게 있다며 원장실로 향했으니까.
난 그녀가 품에서 꺼내는 게 ‘매뉴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설마 원장님은 다른 마물들처럼 나에 대해서 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다시 하고 있던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필요한 비품 목록을 작성할 때도 자꾸만 서동만의 이력서가 눈에 아른거렸다.
‘마물이 기피하는…….’
마물이 기피하는 냄새.
어쩌면,
원장님이라면.
*
챙겨 온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자 원장실의 문이 열렸다.
난 원장님이 나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말했다.
“원장님.”
“앗! 네?”
그녀는 뭘 하다 왔는지 내가 부르자 깜짝 놀라 했다. 처음 보는 신선한 리액션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침에 했던 말에 이어서 말씀드리는데요. 저번에 코쿠라차 숲의 마물들 때문에 말씀했었죠. 천적이 없는 마물들의 게으름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그건 골렘으로…….”
“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한 것 같아요. 서동만의 능력을 이용하는 거죠.”
그녀는 내가 말하자마자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어떤 방법이 있다고만 했지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한 건 아니나 원장님은 곧바로 서동만의 이력서를 챙겼다.
그러며 내게 묻는다.
“정말 괜찮겠어요? 그에게 기회를 주는 건데.”
“전 상관없어요. 그가 뭘 하든 이제 나와… 어? 설마 원장님?”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걸까? 서동만의 능력이 마물원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훨씬 전에, 어쩌면 방송 스튜디오를 급습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에?
“며칠 동안 안 올 거예요.”
하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묻기도 전에 싱긋 웃더니 ‘드워프’들을 찾아간다며 공간 이동을 해 버렸다.
*
서동만이 만들어 내는 ‘악취’는 흉포한 마물일수록 극도로 혐오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는 수년간 마물 도축을 하며 죽어 가는 마물들이 흩뿌리는 ‘공포의 냄새’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고, 그러한 냄새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원장님의 도움으로 공장이 설립되었다. 그의 악취는 드워프들의 기술력으로 추출되었고, 공장에서 공산품으로 가공되었다.
서동만은 담당자로 채용되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악취를 마물 퇴치 스프레이 등으로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원장님은 마물원 외에도 많은 일을 하고 있었으나, 며칠 동안 서동만의 공장이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줬을 뿐 그와 같이 일하는 건 아니었다.
서동만의 회사는 유명해졌다.
마물 퇴치에 효과적인 스프레이를 필두로 만들어 낸 악취 가공 제품들은 헌터들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호신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득은 원장님이 취했다. 대신 서동만이 짊어진 거액의 위약금과 범죄 기록을 삭제시켜 주고 고액의 월급을 제공했다.
이 모든 일의 경과를 팩스로 전해 들으며 난 새삼 드래곤이 돈 버는 방법에 대하여 깨달았다.
이러니 강제로 ‘탈취’하지 않아도 돈이 썩어 날 만큼 많지. 능력 만능, 자본주의보다 더 강한 드래곤주의다.
며칠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원장님으로부터 단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꽤 많은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리고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다정 씨는 나의 가디언이니까.”
사실,
원장님은 다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그를 채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기의 가디언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드래곤은 가디언이 자기에게 충성한 만큼, 가디언을 존중해야 한다나?
어쨌든,
뒤숭숭하던 꿈자리는 상쾌해졌고, 더 이상 꺼림칙한 기분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서동만이 이런 결과를 예측한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은 역전되었다.
늦은 밤, 잠에 들기 전 그의 회사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봤다.
[경제 집중!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호신용 제품을 개발해 대박 난 회사.]
그는 [서동만]이라는 제 이름을 밝힐 순 없었으나, 회사는 호황이었다. 기사를 읽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 더 이상 그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흐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쩌면 내 작은 호의가 그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거겠지.
마찬가지로 작은 시기심이 그를 구렁텅이에 빠트렸고.
원장님에게 서동만의 능력에 대하여 말할 때, 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내가 원장님에 의해 기회를 받았듯이, 그를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그에게 알맞은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뭐, 그런 것이다.
언제나 생각하듯 이 세상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잡탕찌개라고 한다면,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언제든 맛은 변화할 수 있다.
다진 마늘이나 고춧가루처럼 따로 먹으면 맛없는 재료라도 잡탕찌개에 들어가면 맛을 끌어올리는 재료가 된다.
그러니 잡탕지개의 메인 재료가 될 수는 없더라도, 평생 다진 마늘로 남아 홀로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호신용으로 마물 퇴치 스프레이를 개발한 서동만은 꽤 훌륭한 조미료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늦게 잠들었으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히려 머리가 맑다 못해 개운하기까지 했다.
*
여담으로 가면 쓴 능력자의 소문, 그러니까 나에 대한 소문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엘존 쇼에 출연한 나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드래곤이 감췄는데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원장님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나서도 된다고 했다.
서동만이 주목을 끌었듯, 난 진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단번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능력자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로선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일 뿐이라는 건, 언제든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