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달려라 (3)
시간이 오후 여섯 시를 넘었다. 여름이라 해는 지지 않았으나 늦은 시각이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임시 트랙을 상시 개방해 두고 있다고 한다.
조련사이자 라이더의 자격도 있으니, 나는 녀석의 등에 올라타 마물 경주를 체험해 보고자 했다. 경주용 라이더 옷을 챙겨 입고 녀석의 우리를 찾았다.
“야, 다시 왔다.”
녀석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달리고 싶어!]
인사를 해도 시큰둥해하며 연신 우리를 뛰어다니는 녀석이다.
하지만 같이 트랙을 돌자고 말하자 꽁지깃을 세우며 다가왔다.
[네가 내 라이더야? 달릴 수 있는 거야?]
마치 산책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흥분하는 녀석
“그래, 한번 달려 보자. 처음이니까 잘 부탁해. 너도 경기는 처음이라며?”
[괜찮아. 우리 아빠는 챔피언이었다고! 내게 맡겨 줘. 네가 머저리라고 하더라도 등에 매달리는 건 할 수 있잖아?]
‘이놈 보소.’
이제 살다 살다 허세 넘치는 마물에게 무시까지 당하는구먼.
난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의 목에 인식표를 걸었다. 비싼 몸값답게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산으로 기록해야 했다.
우리를 나가기 전에 전산 시스템에 기록하고, 임시 트랙 입구에서 다시 한번 출입을 기록했다.
“생각보다 더한데?”
임시 트랙,
이계 비경의 일부분을 옮겨 놓은 연습용 경기장이다. 마물 경주의 악명은 익히 들어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놀라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이 살벌하기 짝이 없다. 단지 연습용 트랙임에도 거대한 칼날이 솟아 있는 뜀틀 장애물과 마치 ‘소닉’처럼 뛰어서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 장애물도 있었다.
이계 비경은 이것보다 훨씬 위험하다지? 정말 20년 전이면 상상도 못 할 파괴적인 스포츠다.
저녁 시간이라 연습하는 라이더들은 없었다.
끼에엑!
[가즈아!]
솔직한 심정으로 생각보다 빡센 트랙에 겁을 먹었다. 하지만 스위프트덕은 뭐가 신나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뛰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
[왜 안 달려? 빨리 달리자.]
“기다려 봐. 고민 중이야. 저 장애물의 칼날, 날이 제법 매섭게 서 있는 것 같지? 떨어지면 팔다리가 잘리지 않을까?”
끼헥-!
녀석은 오리 주둥이를 벌리며 웃었다. 나처럼 속마음을 듣지 못해도, 누가 봐도 명백한 조롱으로 느낄 만큼 신랄하게 비웃었다.
[겁쟁이. 이래서 인간들이란 쯧.]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난 ‘익스트림 스포츠’를 기대하고 있었다. 정말 마물 경주처럼 익스트림 스포츠를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에라이 시벌, 그래 한번 달려 보자.”
과감하게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소심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야, 믿어도 되는 거 맞지?”
[뭔 말이 많아. 자, 가즈아!]
흡-!
순간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녀석이 급발진하며 달려 나가자 얼굴이 욱신거릴 만큼 강한 바람이 느껴졌고, 순식간에 트랙의 입구에 도착했다.
‘장난 아니잖아.’
엄청 빠르다.
많은 마물을 만나 봤지만 얘가 제일 빠른 것 같다.
[자, 준비해. 간다.]
올라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총알처럼 뛰어나가려는 녀석이다. 난 당황하며 소리쳤다.
“잠깐! 마음의 준비를……!”
[스피드를 즐기는 자에겐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아.]
슝!
일단 처음 느낀 건 고막을 파고드는 파공음이었다. 그 뒤론 피부를 찢을 듯한 바람과,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느낌.
힘겹게 눈을 뜨자 분명 방금 전까지 멀리 보였던 장애물이 코앞에 있었다.
이 무슨 스피드야.
속도감은 슈퍼카를 탈 때도 느꼈다. 하지만 직접 피부로 느끼는 바람은 격이 달랐다.
까아악!
칼날 뜀틀을 넘을 때 소녀처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바로 발밑에 날카로운 칼날이 한 치 차이로 스쳐 지나간다.
[자, 다음!]
다음 장애물이 한 바퀴 돌아야 하는 트랙임을 기억해 내고 녀석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360도 회전, 진짜 소닉도 아니고 생물의 뜀박질로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최고 높이에 도달하자 피가 거꾸로 쏠리는 듯한 중력을 느끼며 엉덩이가 추켜올려졌다. 다행히 떨어지기 전에 스위프트덕은 ‘평평한’ 땅을 밞았다.
까아악-!
난 계속해서 소녀처럼 비명을 질렀으나, 혹시 누가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담력과는 다른 문제다. 세상 그 어떤 험악한 놀이 기구도 이보다 무섭진 않을 거야.
‘젠장, 꼴사납게. 즐기자, 즐기는 거야.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해.’
애초에 나도 만만치 않게 ‘스피드’를 좋아한다. 내가 슈퍼카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나마 꼴사납게 매달린 꼴에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자 제법 라이더의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애물을 지나자 슬슬 적응이 되었다. 난 눈을 부릅뜨고 생각했다.
다음 장애물은 뜨거운 바위가 잔뜩 깔린 장애물 지대.
‘이계 비경의 화산 지대를 옮겨 놓은 건가?’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
연습 트랙이라고 하더라도 에누리 없이 진짜 뜨겁게 달궈 놓은 돌이었다.
깔린 바위 중엔 열선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다. 그곳을 밞고 통과하면 된다.
[앗, 뜨거!]
하지만 녀석은 냅다 밞았다.
[앗, 뜨!]
계속해서 밟는다.
[앗, 뜨! 앗, 뜨!]
학습 효과가 없는 걸까?
마물이라 큰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뜨거운 바위에 허둥지둥하며 속도를 내지 못했다.
“멍청아, 뭐 해? 딱 봐도 저게 차가운 돌이구먼!”
[뭐? 진짜?]
연기가 나지 않으니 진짜겠지.
녀석은 폴짝 뛰어 내가 가리키는 바위를 밞았다.
[진짜네?]
“그걸 몰라?”
[난 달릴 땐 앞만 보여. 그게 스피드를 즐기는…….]
“됐어.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그것만 밞고 가.”
라이더들이 필요한 이유를 깨달았다. 녀석들은 일자무식이었다. 달리는 것밖에 모른다. 장애물 따위를 알려 주는 것이 라이더의 역할이었다.
특히 이 녀석처럼 쉽게 흥분하는 멍청한 녀석은 평범한 라이더라면 길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난 괜찮다.
“거기 말고 저기라고, 멍청아!”
[알았어!]
난 말이 통하니까.
세 번째 장애물을 통과했다.
임시 트랙은 이게 끝이었다.
하지만 이계 비경의 장애물은 이것보다 훨씬 많다지.
일단 녀석은 출발선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또 달리고 싶은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꽁지깃을 흔들었다.
“흠.”
난 코를 훌쩍거렸다.
막상 끝나고 보니, 이거 정말…….
“재밌네.”
처음 롤러코스터의 재미를 깨달은 어린아이처럼 난 ‘스피드’의 새로운 재미를 경험한 것 같았다.
어린아이는 직원에게 자유 이용권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겠지.
‘한 번 더 탈래요.’
“한 번 더 가자.”
[가즈아!]
처음 경험할 땐 따갑기만 하던 파공음도 슈퍼카의 엔진 소리처럼 듣기 좋아졌다. 제법 익숙하게 몸을 숙여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시켰다. 녀석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에도 피부를 파고들어 오장육부까지 뒤흔드는 것 같은 맹렬한 바람은 내게 흥분을 안겨 줬다.
‘바람이 될 것 같아.’
알 것 같기도 해.
녀석이 왜 달리는 걸 좋아하는지.
서툴기만 했던 첫 주마와는 달리 두 번째는 익숙했다.
[3분 26초]
이번엔 시간을 재 봤다.
한 번 트랙을 도는 데 3분 26초.
“한 번 더 갈래?”
[가즈아!]
세 번째 연습 주마를 끝마치자 기록은 단축되어 3분 20초를 기록했다.
지칠 만도 한데 녀석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달리기를 원했다.
난 씩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가즈아!”
[가즈아!]
바람, 바람, 바람!
단지 달리는 것에만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듯한 스위프트덕, 같이 달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젠 알겠다.
이 자유로운 기쁨을 달릴 때마다 느낄 수 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출발선에 서서 열한 번째 주행을 기다리던 때였다.
계속 달리자만 외치던 녀석이 다른 말을 꺼냈다.
[너에게서 우리들의 냄새가 난다.]
“냄새?”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아 보니 내 몸에서 비오는 날 물에 젖은 볏짚 냄새가 났다. 녀석의 등에 올라타 달리다 보니 냄새가 밴 것 같다. 쿰쿰한 냄새였으나 기분 나쁘진 않았다.
“괜찮아. 씻으면 돼.”
[아니, 그런 냄새 말고. 정말 우리들의 냄새.]
“그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래서 이상해?”
[난 좋아. 그래,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 시종이 아니라 친구로 삼아 줄게.]
선심 쓰듯 말하는 녀석이다.
난 녀석의 노란 오리 주둥이를 살짝 쥐고 흔들며 말했다.
“참 고맙네.”
녀석이 내게서 동족의 냄새를 맡은 것도 이해가 간다.
아마 교감 때문이겠지.
처음엔 무서워하기만 하던 내가 곧바로 녀석의 등에 올라타 달리는 걸 좋아하게 된 이유도.
달리고 싶다. 바람을 느끼고 싶다. 난 지금 교감으로 인하여 녀석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또 가즈아아!”
끼에엑-!(가즈아)!!
내 외침에 녀석도 목청을 높였다.
난 신나는 기분으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
날이 밝아 왔다.
난 뜨는 해를 바라보며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마침내 녀석의 등에서 내려왔을 땐 헐레벌떡 바지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 내 가랑이!”
가랑이가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피부가 뭉개져 피멍까지 들었다. 트랙을 돌 땐 몰랐다. 밤새도록 격하게 움직였으니 이 꼴이 나도 할 말이 없지.
걸을 때마다 시큰해서 죽을 것 같았다. 축축한 팬티가 땀으로 젖었는지, 피로 젖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몇 걸음 걷다가 포기하고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스위프트덕도 기진맥진해, 내밀고 있는 빨간 혀를 주워 담을 줄 몰랐다. 비틀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온 녀석이 머리를 땅에 누이며 납작 엎드렸다. 녀석의 달궈진 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밤새도록 달린 건 녀석한테도 힘들었나 보다.
“이상한 기분이야.”
새벽 공기가 차가워 달아오른 몸을 식혀 준다. 떠오르는 해로 하늘이 붉다. 아직 밤에 속해 있던 구름이 붉게 물들어 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왠지 허무하다.
이상한 기분, 몸을 채우던 바람이 빠져나가고 마치…….
“몸이 텅 빈 것 같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스위프트덕이 고개를 추켜들더니 나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인간인 주제에 너도 느끼는구나. 우리들은 항상 느껴. 후회 없이 마음껏 달린 후에 느껴지는 이 기분, 아빠는 이걸 ‘새하얗게 불태웠다.’라고 말하곤 했어.]
난 땀에 젖은 뺨을 긁적거리며 생각했다. 하얗게 불태웠다니. ‘내일의 죠’라도 되는 거냐?
“네 아빠, 챔피언답구나.”
하지만 조금 멋있다고 생각했다.
완전 연소, 녀석들에게 달리기란 그런 것이다. 정말 내일의 죠의 주인공처럼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태울 만큼 가치 있는 것.
단순하지만 모든 걸 불태울 수 있는 스위프트덕이 어쩐지 부럽다고 생각했다.
*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 느낌, 현자타임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젖은 땀이 마를 동안만 누워 있어야겠다.
해가 완전히 뜨고 아침이 되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들어 입구 쪽을 보니 몇 명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아침 연습을 하러 온 라이더들인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들이 내게로 걸어온다.
“비켜 줘야겠네. 야, 가자.”
[응, 지쳐. 이제 가서 잘래.]
문득 내가 바지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마물원 일을 하다 보니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벗은 바지를 어깨에 걸치고 일어났다. 걸을 때마다 가랑이가 아파 포경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팔자걸음으로 걸어야 했으나 부끄러움은 참을 만했다.
“뭐야?”
사람들이 날 ㅤ쫒아오기 전까진.
트랙에서 비켜 줬으나 사람들은 날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