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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79화 (79/258)

# 79화 장마 주의 (1)

원장님의 마법 덕인지 나는 하늘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턱시도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저게 대체 뭐죠?”

정신을 차리고 원장님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고 싶어요?”

참 짓궂다.

그런 대답으로 날 난감하게 만들 모양인데, 어차피 내가 다시 물어보리란 걸 원장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말씀해 주세요.”

내 대답에 원장님이 언제나 날 놀리기 전에 보여 주던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이건 드래곤들만의 비밀인데, 다정 씨가 내 가디언이라서 말해 주는 거예요.”

오래 지내 보니 알겠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난감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짝 치켜세워진 눈썹과 장난기를 머금은 빨간 눈동자, 미세하게 떨리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사실 비의 신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놀라운 이야기들은 신화와도 같은 비범한 내용이지만, 난 확실히 실존하는 이야기라고 믿었다. 왜냐면 그녀는 드래곤이며, ‘지구 바깥’의 세계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늘을 날며 비구름을 만들어 내는 청동 잉어가 사실 우주를 이루는 근본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바루나[Varuna]라 불리며, 바루나가 없어도 비는 내리지만 우주의 모든 차원에서 내리는 비의 근본은 바루나에게서 나온다고 하였다.

‘뭔 소리람.’

그동안 원장님이 말해 주던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처럼, 역시 말귀는 알아먹겠으나 이해는 할 수가 없었다. 상대성이론을 처음 보더라도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는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내 답답함이 노골적으로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다.

원장님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저 하늘을 나는 잉어가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 중에 하나라는 건 지구인으로선 받아들이기 버거운 이야기죠. 다정 씨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어요. 음, 지금 당장은요.”

지금 당장?

나중에는 알아야 된다는 말투잖아.

하지만 다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원장님이 갑자기 인간의 모습에서 드래곤이 되더니, 지금까지 봐 왔던 모습 중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다른 세계로 갈 줄 알았는데, 대전이 이후로 근본들도 목적을 잃고 차원을 헤매고 있나 보군요.]

내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목소리 자체는 변한 게 없으나 내겐 천둥소리만큼 커다랗게 들려왔다.

[이대로 놔두면 지구는 물에 잠겨 멸망할 테니 ‘균형’을 위해서라도 돌려보내야겠어요. 그 전에, 다정 씨.]

그렇게 말하며 날 불렀다.

나는 숙이고 있던 목을 간신히 들었다.

그녀가 드래곤으로 변한 후, 느껴지는 압박감에 두려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 진심인 원장님은 두렵기 짝이 없었다.

힘겹게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날카로운 동공이 날 바라본다.

난 애써 담담한 척했다.

“네, 원장님.”

속으론 피 토가 나올 지경이지만.

[저 신수와 교감이 가능하겠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청동 잉어를 바라봤다. 녀석은 방금 전보다 크기가 더 커져 이젠 점보 비행기도 새처럼 느껴질 만한 덩치였다.

구름 위의 해는 쨍쨍하게 떴는데, 놈이 움직이자 햇빛이 다 가려졌다. 저딴 괴물이 하늘을 헤엄치는데 왜 밑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

지금까지 많은 마물과 이야기를 나눠 봤다. 그중엔 케르베로스나 황소 마물, 미라 마물처럼 껄끄럽고 두려운 마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겠다.

‘저건’ 격이 다르다.

원장님은 저것이 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정말 신이 있다면 저것처럼 경이로움을 뿜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걸기도 무섭다.

불경스럽다는 말도 어울리겠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원장님을 쳐다봤다. 젠장, 여기도 마찬가지다. 나 따위는 좁쌀과도 다름없게 만드는 존재.

평소에도 원장님과는 확실한 선을 지켰지만 지금은 투정조차 부리지 못하겠다.

난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 쪽으로 보내 드릴게요. 파이팅!]

원장님은 자신의 새끼손가락 손톱을 조심스럽게 내 턱시도의 목덜미에 집어넣었다.

물론 내가 용의 손톱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는 말로 통용이 안 되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날 조심스럽게 다뤘다.

원장님은 청동 잉어를 바라봤다. 꼬리를 살랑거리고 날개를 파닥거린다.

그러고는 눈을 찡그리더니 날 집어든 손을 뒤로 힘껏 제쳤는데, 난 그만 원장님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던지시게요?”

[네.]

“마법은 안 돼요?”

[그가 눈치챌 거예요.]

“더 쉬운 방법이 있잖아요. 그냥 걸어서 가까이 가는 거.”

[내가 가까이 가면 도망치거나 저항하겠죠. 그럼 시도조차 하지 못할걸요.]

이런저런 말을 해도 다른 변명거리를 댈 것이다. 난 체념했다.

드래곤을 상사로 둔 내가 미친놈이지.

[갑니다.]

강속구의 ‘공’이 되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스위프트덕 경주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칼날 같다.

살가죽마다 실을 매달고 뒤에서 잡아 뜯는 고통이 느껴졌다.

쿵-!

그녀에게 투수의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순식간에 정확히 청동 잉어를 향해 날아간 난 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쓸데없이 뛰어난 제구력이네, 망할!

뼈가 산산이 부서질 충격이었으나 나도 청동 잉어도 멀쩡했다.

원장님을 바라보니 그녀는 멀리서 손을 치켜세우고는 따봉 자세를 취했다. 그래, 일단 보호 마법은 걸어 줬다는 거지?

난 힘겹게 놈의 비늘을 쥐고 등반하듯 등에 올라탔다. 청동 잉어는 제 등에 올라탄 날 불편해하며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으아악-!

그럴수록 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늘을 꽉 쥐고 버텼다. 놈은 멈추지 않고 먹구름 사이로 들어갔다.

쏴아아-!

얼굴을 때리는 빗물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먹구름 안은 아예 양동이로 빗물을 퍼붓듯이 폭우가 세차게 쏟아졌다.

‘상식적으로 가당키나 해?’

힘겹게 눈을 뜬 난 경악하고 말았다. ‘먹구름’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뭐야? 겉으로 봤을 땐 컴컴한 뭉게구름이었는데, 안은 ‘또 다른 하늘’이잖아?

주변이 온통 검게 물든 먹지 같은 하늘. 놈과 난 이미 구름 따윈 벌써 지나칠 만큼 많은 거리를 비행했으나 끝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다른 공간에 온 듯했다.

쿠르릉-!

천둥, 벼락까지 내려쳤다.

문득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노아가 바라본 종말의 하늘이 이랬을까?

“거참, 시벌.”

나에게는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놈에게 매달렸다.

그러고는 교감의 ‘문’을 활짝 열고, 녀석의 ‘문’을 열기 위해 들어갔다.

교감.

실제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추상적인 감각을 설명하자면 그렇다.

문 너머로 끈을 던지면 마물이 그 끈을 받아 준다. 그럼 마물과 이어져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청동 잉어에게 던진 끈은.

“이게 대체…….”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어떤 마물도 이런 넓은 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건 ‘문’이 아니다.

바다다.

내가 던진 끈은 넘실거리는 바닷물의 표면에 떠 있기만 했다. 난 이를 악 물고 교감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문 듯 갑작스레 끈이 바다 아래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끈은 바다로 끌려갔다.

끝도 없이, 계속, 계속 끌려간다.

마침내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끈을 끌어당겼고, 난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꼬르륵-!

기이하다.

지금 상황은 단지 교감의 현상일 뿐인데. 나는 바닷물의 촉감을 생생하게 느꼈다.

나는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방금까지 먹구름 안의 세계, 그전에는 원장님의 곁에 있었던 내가!

‘또!’

처음 겪는 상황은 아니었다.

황소 마물, 미라 마물 그리고 ‘케르베로스’와 교감할 때도 느낀 적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체 이 마물은 얼마나 많은 마나를 가졌기에?’

너무 강대한 마나를 가져 내가 그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신비한 경험.

하지만 이번 경우는 보다 실체적이고 실감 났다. 난 숨이 막히는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이 깊고 넓은 바다에선 녀석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 끈을 잡아당기는 녀석, 그게 청동 잉어일까?

아니면…….

가라앉는 몸,

난 멀뚱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컴한 낭떠러지라고 생각될 만큼 어두웠다.

숨은 막혀 오나 익사하진 않았다.

문득 호흡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상황은 정말 현실일까? 그것마저도 모르겠다.

왜지?

시간이 한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빨려 들어가는 몸은 멈추지 않았다. 깊은 바다는 끝이 없는 우주 같다.

난 간절하게 날 잡아당기는 존재를 마주하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그 이유도 있다.

하지만 보다 궁금했다.

청동 잉어, 원장님이 말하길 신수라고 했었지. 녀석은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

이 엄청난 세계를 만들어 낸 녀석은 대체 어떤 새낄까?

난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면 녀석도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깊은 바다가 요람처럼 편해졌다.

얼마쯤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식만을 느낄 때.

내 목덜미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안 돼!”

가라앉을 때는 많은 시간이 지났으나 무언가에 의해 건져진 난 순식간에 지상으로 끌어 올려졌다.

퍽-!

명치에 느껴지는 고통에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몽롱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커헉!

동시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구토를 참지 못하고 울컥 뱉어 냈다.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눈을 뜨고 토사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뱉어 낸 건.

방금까지의 경험이 꿈이 아니라는 듯 검기만 한 물이었다.

“후우, 후우. 하아…….”

나는 간신히 진정하고 날 건져 올린 존재를 올려다봤다. 흉측하고 무서운 드래곤의 모습이 아닌, ‘젖은’ 빨간 머리의 여자가 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원장님.”

“다정 씨, 죽을 뻔했어요.”

그녀의 등 뒤로 후광이 비추어 온다. 진짜 후광이다.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난 하늘에서 내려와 마물원의 마당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직까지 땅은 젖어 있었으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몸 상태는 어지러움을 제외하곤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먹구름을 쏟아 내는 청동 잉어와 줄기차게 내리는 장마는 없었다. 평범한 여름날처럼 맑은 하늘에 햇볕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청동 잉어는요?”

“돌려보냈어요.”

“정말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 놈과 교감할 뻔했는데.”

원장님이 내 말에 한숨을 내쉰다.

그녀는 흠뻑 젖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빗물에도 젖지 않았던 그녀인데, 지금 꼴은 옷을 입고 샤워라도 한 것 같다.

빨간 머리는 젖어서 미역 줄기처럼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고, 그녀의 블라우스도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어 그만 속옷이 비치고 말았다.

“다정 씨, 죽을 뻔했어요.”

시선을 아래로 내리던 난 재빨리 올려야 했다. 원장님은 나보고 죽을 뻔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또 내쉬었다.

“정말 찰나의 차이로 구한 거라고요. 다정 씨,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줄 아세요?”

“며칠이라뇨? 방금 전에 제가 청동 잉어의 등에 올라타서…….”

“삼 일.”

저절로 표정이 찡그러졌다.

뭐라? 삼 일이 지났다고?

그녀가 말해 줬다.

놈의 등에 올라타 교감한 줄 알았던 난 사실 청동 잉어에게 먹힌 것이었고, 원장님은 날 구하기 위해서 녀석과 싸웠다고 한다.

날 구하고 청동 잉어를 ‘상처 없이’ 돌려보내기 위해 많은 힘을 사용했다고 한다. 흠뻑 젖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죽을 뻔했다는 말, 비약하신 거 아니죠?”

“만약 12초만 늦었다면 다정 씨는 익사했습니다.”

난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비의 신수가 돌아가자 하늘은 장마가 끝난 여름날처럼 파랗기만 했다.

하암~

원장님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상처가 없어 보여도 내상이 깊어서 며칠 동안 고생하실 겁니다. 일주일 동안 푹 쉬고 와요.”

평소에 피곤한 모습은 자주 보여 주던 원장님이었으나 하품까지 하는 건 처음 본다. 이번 일은 드래곤에게도 꽤 힘든 일이었나 보다.

내게도 특출하게 기이한 일이었다. 마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싶었는데 신수라고? 역시 도통 모를 녀석들이야.

운전을 할 기력조차 없어 집까지 택시를 탔다. 돌아오는 길에도 자꾸만 생각났다. 청동 잉어의 깊고 검은 바다. 분명 녀석이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였다.

그 끝에서 날 부르던 녀석은 내게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마나가 늘어날수록 교감의 힘은 깊어졌지. 만약 내가 더 강했더라면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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