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아쿠아리움 (1)
포근이를 꾹 안고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태양은 주황빛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는데, 그 어느 때보다 지면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 조오ㅤㅇㅗㅈ 같네.”
장마에 이어 폭염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비의 신수가 만들어 낸 장마가 걷히자 마치 벼르고 있던 여름이 기다렸다는 듯 더위를 발산시켰다. 그동안의 더위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난 더위를 타지 않았으나 끈끈한 불쾌함은 느껴졌다. 단지 관리실과 마물 우리 사이를 왕래하는데도 따가운 햇볕에 짜증이 치솟았다.
슬리퍼의 밑바닥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에 쩍 하고 달라붙는다.
위잉-!
“포근아, 먹어!”
귓가의 모기 날갯짓 소리. 성가시던 찰나에 포근이가 혀를 쭉 뻗더니 순식간에 모기를 채 갔다.
샐러맨더는 썩은 고기를 먹지만 도마뱀의 습성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우리까지 가는 동안 모기의 습격을 포근이가 막아 줬다.
“으아, 짜증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가락 사이를 물리고 말았다.
모기가 극성이다.
장마가 끝나고 한동안 고여 있던 빗물 웅덩이에 모기들이 알을 잔뜩 낳았겠지. 알이 더위와 동시에 부화해 버렸다.
능력자와 비능력자 사이에 평등한 건 아마 이놈의 모기 주둥이밖에 없을 거야.
어떻게 모기 따위가 포근이와 교감해 샐러맨더의 억센 피부를 가진 날 물 수 있는 거지?
“너 없으면 어쩔 뻔했냐.”
포근이는 무더위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상태다. 내 등에 매달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래도 녀석 덕분에 더위는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후아, 살 것 같네.”
마물원 우리 안은 바깥세상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관리에 취약한 마물 우리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마츄 우리로 향했다.
이곳은 항상 천공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로 시원했다. 포근이는 이곳을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조금 농땡이를 부려야겠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관리실로 돌아오자 원장님이 도착해 있었다.
‘뭐지? 새로운 실험인가?’
그녀를 보자마자 당황해서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도무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녀가 드래곤임을 제외하더라도, 분명 이 상황은 이상하다.
“날씨가 덥죠?”
“전 괜찮아요. 근데 원장님은… 더우세요?”
아니, 드래곤이 더위 따위를 탈 리가 없지.
근데 저 꼴은 대체 뭐란 말인가?
‘비의 신수’ 사건 이후로 어디론가 떠났던 원장님이다. 며칠 만에 돌아왔는데, 어디서 뭘 했는지 당혹스러운 꼴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복장을 중요시한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알몸으로 다니는 미친놈은 없다.
마찬가지로 수영복을 입고 다니지도 않는다. 수영복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입어야 한다. 수영복의 용도가 그러한 것이다. 속옷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새라도 곁에 물가가 있다면 통상적으로 용납되는 복장이다.
그래서 수영복을 입는 장소가 달라지면 난감하다. 아무리 둘밖에 없는 관리실이라고 하더라도 수영복을 입고 나타나면 사회 관념상 이상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당황해서 내 머릿속은 낙서하듯 엉망이 되었다. 젠장, 원장님은 비키니를 입고 나타났다.
현 상황에서 벗어나 그녀의 비키니에 집중해 본다면,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탄탄한 몸매와 볼륨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비키니는 자극적이지만 천박하진 않았다.
그녀의 빨간 머릿결과 눈동자와 똑같은 빨간색 비키니지만 조금 어두운 색을 택하여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와 적당함을 넘어서 과하다 싶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체 왜요?”
난 헛소리로 가득해지는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원장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네?”
“왜 수영복을 입고 있어요?”
원장님은 제 몸을 내려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보통 인간들은 이렇게 입지 않나요?”
어떤 인간들이 그런답니까?
“사무실 안에서 수영복을 입는 회사는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원장님은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는데, 얼떨결에 받아 든 난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나도 입으라고요?”
“네. 그냥 수영복은 아니에요. 몇 가지 기능을 추가했어요.”
그녀가 건넨 건 한 장의 하의 수영복이었다. 나더러 사무실에서 팬티나 다름없는 수영복을 입으라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삼각이 아니라 사각이라는 거지만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수영복에 기능이라고?’
대체 수영복 따위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퍽도 궁금하네. 수영복을 들고 뻘쭘하게 서 있던 난 그녀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셔츠를 벗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상사이며 드래곤이다. 까라면 까야 한다. 비록 사무실에서 수영복만 입는 상황이더라도 말이다.
“원장님, 입으라면 입겠는데 조금… 시선을…….”
“괜찮아요. 인간 수컷의 생김새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요.”
지금 나만 분위기가 어색한가?
난 쭈뼛거리며 칸막이 뒤에 숨어서 옷을 갈아입었다. 수영복 한 장만 걸치니 시원하긴 하네.
수영복을 입고 나오자 그녀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가 볼까요?”
“네? 어딜 가요?”
“수영복을 입고 갈 곳이 어디겠어요?”
앞서 말했듯이.
수영복을 입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젠장, 그녀도 알고 있었구나.
괜히 사무실에 비키니를 입고 나타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드래곤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사실 공간 따윈 상관없다는 걸. 물이 있는 장소를 가는 데에 손짓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걸.
피슝-!
공간의 무너짐. 이제는 익숙한 원장님의 순간 이동 마법. 마법에 휩쓸린 순간부터 난 담담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원장님은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 서 있었다.
습한 동굴이었다. 빛이 한 점 없는 어두운 동굴이었는데 원장님의 마법에 의해 보는 것엔 지장이 없었다.
“관람객을 받으려면 라이트를 설치해야겠어요.”
원장님이 관람객을 언급했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그래, 마물원에서 새롭게 개방하는 관광 장소인가? 일단 마물원은 동물원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으니.
그녀에게 물어봤다.
“여긴 어디죠? 관람객이라면 대중들에게 개방하는 마물 우리인가요?”
동굴은 작은 편이었다.
벽면은 물기로 가득했고, 시선을 조금 앞에 두자 찰랑거리는 연못이 보였다. 연못과 동굴, 그것밖에 없는 단출한 곳이다. 어딜 둘러봐도 마물들은 없었다.
내 물음에 원장님이 대답했다.
“요즘 덥잖아요?”
더운 척 연기하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그녀. 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드래곤이니 뭐니 해도, 예쁘고 ‘커다란’ 여자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은 역시 자극적이었다.
“사실 이런 사달이 난 건 ‘제 잘못’도 조금 있으니까요. 여름 특전으로 ‘아쿠아리움’을 개방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아쿠아리움요? 바다 생태계를 보여 주는 곳 말인가요?”
돌고래, 상어, 산호초, 고래상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수족관은 특히 여름에 인기 있는 관광 장소이다. 하지만 드래곤이 운영하는 마물원의 아쿠아리움은 평범한 아쿠아리움과 격을 달리하겠지.
내 예상이 맞았다.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번 선상 경매에서 구출했던 해양 마물들 중에 유순한 녀석들로만 골라서 생태계를 조성했어요. 인간들도 충분히 곁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며칠 동안만 개방하겠지만 그래도 인간들에겐 꽤 괜찮은 선물이 될 거예요.”
그렇단 말이지.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해양 마물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원장님은 평범한 관람객들을 포함하여 ‘학자’들의 지원도 받는다고 말했다.
단지 유리창 너머로 관찰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기회는 전 세계 어딜 찾아봐도 없다. 마물 아쿠아리움이라니,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제가 관리하겠군요. 어떤 일을 하면 되죠?”
“어려울 건 없어요. 보존된 생태계를 보여 주면 되는 일이니까.”
다행이다. 솔직히 아쿠아리스트 노릇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수영하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솔직히 해양 마물들은 조금 껄끄럽게 느껴졌다. 어릴 때 봤던 ‘죠스’의 영향인가.
“에이, 그럼 수영복을 입을 필요까진 없었잖아요.”
내 말에 그녀가 다가온다.
문득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정말 지켜만 본다면 수영복을 입을 필요는 없었겠지.
드래곤이 그걸 모를까?
“체험이란 건 단지 보는 것이 아니에요. 직접 느끼는 것이죠.”
그녀는 내 손을 붙잡았다.
심장이 철렁거렸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다정 씨가 오늘 하루 동안 ‘저 밑의’ 생태계를 둘러보며 나름 탐험 코스를 짜 봐요. 필요한 기능은 모두 수영복에 장착되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난 침착하게 따졌다.
“원장님, 실례지만 수족관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으세요. 어느 누가 수족관에 물고기를 구경하려고 가지, 물고기와 같이 헤엄치러 가요?”
그러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괜히 용이 만든 아쿠아리움이겠어요? 탐험이라니! 분명 인간들도 좋아해 줄 거예요. 다정 씨도 항상 잘해 왔잖아요?”
마물 우리를 탐험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물 사막에선 방심하다가 아이가 죽을 뻔했고, 쥐라기 공원 때는 또 얼마나 고생했던가.
“정말 위험한 건 아니죠?”
“유순한 마물들만 있어요.”
“저번처럼 관람객으로 위장해서…….”
“이번엔 확실하게 선별할 테니 걱정 말아요.”
원장님은 확고했다.
그녀는 자꾸 변명을 대며 머뭇거리는 날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와요!”
잡은 손을 끌어당기더니 냅다 던져 버렸으니까. 난 날아가 연못에 빠졌다. 겉으론 동굴에 있는 작은 연못이었으나 속은 무척이나 깊었다.
‘바다?’
과연 용이 계획한 아쿠아리움이다. 연못 아래엔 넓은 바다가 있었다. 원장님과 있던 곳은 해안 동굴이었던 것이다.
다시 위로 기어올라가 원장님에게 소리쳤다.
“하라고 하셨으니까 하긴 할 텐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녀는 싱긋 웃더니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홀로 남은 난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드래곤인 그녀는 훌륭한 상사였으나 가끔 보면 정말 독선적이다.
할 수 없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녀가 없으면 이곳에서 탈출하지도 못하겠지. 결국 그녀가 시키는 대로 또박또박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연못 아래로 내려갔다.
그 순간 척추와 귀 뒤가 시큰거리더니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등에 지느러미가 돋아난다.
발에는 오리발처럼 갈퀴가 생겨났다. 귀 뒤를 만져 보니 갈라져 있다. 아가미가 생긴 게 분명하다.
또한 머릿속에 저절로 이곳의 지도가 떠올랐다. 단지 아쿠아리움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척이나 넓은 곳이었다. 바다의 일부분을 옮겨 놓은 듯하다. 해안 동굴을 시작점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원장님이 조성한 바다 생태계를 지나치게 된다.
난 갈퀴가 생겨난 발을 동동 굴리다 아가미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아쿠아 맨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