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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2화 (82/258)

# 82화 아쿠아리움 (2)

바다 생물이라도 된 듯 움직이기가 편했다. 숨도 원활하게 쉴 수 있었고, 바닷물에 눈이 따갑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수영복이구만.

‘첫 번째 구간이…….’

[첫 번째 구역은 산호 지대입니다.]

수영복은 내비게이션 같았다. 난 귓가에 울리는 원장님의 안내음을 들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직까지 내키지는 않으나 일단 한 바퀴 돌 수밖에 없겠어.

첫 번째 구역인 ‘산호 지대’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거면 원장님은 왜 비키니를 입은 거야?’

정작 그녀는 물에 닿지도 않았는데 비키니를 왜 입은 거지?

애초에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그녀는 젖지 않는다.

그러니 비키니라는 건 그녀에게 완전 불필요한 복장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하다.

설마 자랑하려고 입은 것도 아닐 테고.

‘어쨌든 예쁘긴 했어.’

*

물속에서 숨을 쉬거나 움직이는 건 금세 익숙해져 바다 거북이처럼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었다.

이곳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낯선 환경이다.

바닷속이라는 특이한 점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이상했다. 바닷물은 투명하여 육지처럼 시야가 환했다. 기이한 건 수면 위에서 내려오는 햇빛이었는데,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해서 동화처럼 아름답게 바닷물을 물들이고 있었다.

꽤 깊은 바다까지도 말이다.

당연히 햇빛은 아니었다.

궁금하여 수면 위로 고개를 빠끔 내다봤는데 태양은커녕 하늘조차 없었다. 온통 시커먼 공간. 어딘가 오싹하여 다시 바다로 들어오니 무지갯빛이 여전히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곳 바다 전체가 원장님의 마법이구나.

‘원장님 하니까 또 생각나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환경이었으나 긴장은 찰나였다. 한번 떠오른 상상은 바다를 헤엄치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났다.

‘비키니.’

오히려 주변의 환경보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음란한 상상들이 더 문제였다.

망상을 자주하는 내 버릇을 제외하더라도, 솔직히 건장한 남자라면 쉽사리 잊지 못할 광경이었어.

‘드래곤만 아니라면…….’

젠장, 상상이라도 선은 넘지 말자. 기포가 생길 만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물론 이런다고 야한 상상이 떨어지진 않았다.

애써 무시하며 산호 지대로 향했다. 예전에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고백했던 게 떠오른다. ‘내 여자 친구 할래요?’라니! 그때의 난 용의 무서움을 모르는 머저리였다.

지금은 충분히 용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래, 만약은 없다. 그녀가 드래곤인 이상 절대 넘보지 못할 존재다. 드래곤에 암수 구별이 있어 그녀가 여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이성’이라는 영역에 두면 안 된다.

비록 내 이상형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 두고 할 일에만 집중하자.

*

보글보글-!

느릿하던 동작을 빨리해서 산호 지대에 도착하니 첫 마물을 볼 수 있었다. 산호 지대엔 갑각류와 패류貝類 마물들이 많았다.

집채만 한 크기의 산호들과 그 사이사이 숨은 바다 마물들이 보인다. 생김새는 지구의 생물과 별다른 바가 없었으나 크기가 몇십 배는 커, 모든 게 커져 버린 바다라는 느낌이다.

‘마음가시소라, 두뿔박이대게…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 녀석들.’

처음 보는 마물들이었으나 난 저절로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있었다. 수영복의 효과겠지.

산호 지대를 둘러볼 땐 만지지만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

좋아, 다음 구역은…….

정어리 구역이라?

산호 지대를 지나 조금 더 깊은 바다로 내려갔다. 지구의 바다와 달리 얼마나 깊어지든 바닷물의 채광은 달라지지 않았고, 수압의 변화도 체감상 느껴지지 않았다.

‘워메, 저게 다 뭐여?’

헤엄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님이 ‘정어리 구역’이라 이름 지은 해역에 도착했다. 과연, 정어리 구역이라.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바다였다.

수백 마리의 물고기 마물이 무리지어 다닌다. 크기는 10cm를 채 넘지 않았으나, 마치 정어리 떼처럼 뭉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꼴이 다소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해는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을 보인다. 바다 마물은 이상하게 교감하기 ‘꽤 힘들었지만’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바닷속의 마츄 같은 녀석들이네.’

전혀 해가 될 것 없는 마물이다.

자세히 보니 정어리처럼 생겼으나 눈이 달랐다. 각양각색의 보석을 박아 놓은 것처럼 빛나고 있다. 물고기치곤 상당히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마츄보다 겁도 없어 애교가 많았다. 두 팔을 벌려 ‘너희들을 좋아해’라며 교감 신호를 보내자 일제히 내 몸에 달려들어 몸을 비비적거리는 녀석들이다.

정어리 구역을 뒤로하고 위로 상승했다. 다음 구역은 특이하게 해수면 위의 바다였다.

용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바다답게 해수면 위에도 ‘다른 바다’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구역은 해합 구역입니다.]

마물원에서 일하고 난 뒤 괴상하고 판타스틱한 상황에 익숙해진 나다. 그래서 정어리 구역까지는 그다지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합 구역에 들어서자 난 서서히 가슴속에 차오르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곳이 하이라이트구먼!”

바다 위의 바다.

해합은 아마 모든 바다를 모아 놓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 아닐까?

첫 느낌은 ‘꽉 찼다’였다. 눈에 닿는 모든 시야마다 물고기들과 물고기의 모습을 한 마물들로 가득했다. 상어나 거대 해파리처럼 다소 위협적이게 생긴 마물들도 있었으나 겉모습은 위장일 뿐, 사실 초식 마물들이다.

헤엄치는 어느 곳마다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아니, 물고기로 가득한 바다라서 어딜 가도 물고기가 있는 거겠지. 가냘픈 지식으로나마 구분하자면 합해의 물고기들은 서로 서식지가 달랐다. 한류와 난류, 다른 해역에 사는 물고기들이 한곳에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화에서 나올 법한 오올 블루가 따로 없었다. 물 반 고기 반,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환장하겠네.

[다음 구역은 ‘워터 슬라이드’ 구역입니다.]

다음 구역으로 향하면서 느꼈다.

난 해합 구역이 하이라이트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돌고래 마물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그곳은 거대하고 가파른 급류의 시작점이었다.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는 듯 돌고래를 닮은 마물들이 눈에 보일 만큼 휘몰아치는 급류에 몸을 던진다.

그 뒤 벌어진 상황은.

정말 놀랍기 짝이 없었다.

‘스케일이 달라, 스케일이.’

역시 용이다. 오랜만에 새삼 느꼈다. 스케일이 다르다고.

어떻게 이곳을 한 바퀴 도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방법을 사용하다니!

급류는 보기와는 달리 위험하진 않은 듯했다. 급류를 탄 돌고래 마물들이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어디론가 휩쓸려 간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대, 최고 속도의 워터 슬라이드인 것이다.

저런 모습까지 봤는데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난 빠르게 헤엄쳐 급류에 몸을 던졌다.

부글부글-!

와, 이거 엄청나잖아!

바닷속이라 비명을 내지르자 기포만 만들어질 뿐이다.

몸을 휘감는 기분 좋은 물살, 보기와 달리 ‘안마’처럼 시원하다. 한 시간에 걸쳐 헤엄쳤던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자 짜릿함을 넘어 어떤 쾌감까지 느껴졌다.

마법의 워터 슬라이드는 금방 끝났다. 아니, 충분히 길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짧다고 느껴졌다.

다시 첫 시작점으로 돌아온 난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해안 동굴로 올라갔다. 그곳엔 이미 원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은 안타깝게도 빨간 비키니 대신에 평소에 입던 사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재밌었어요?”

원장님이 조성한 바다는 총 네 구역이었다. 각 구역마다 특색이 있으며 서식하는 마물들도 달랐다.

확실한 건 이것을 일종의 놀이이자 관광이라고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구성이라는 것이다.

분명 마물원 최고의 관광이 될 거야.

“재밌었어요!’

하지만 말하고 나서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마치 지금 내 꼴이 놀이 기구를 처음 타는 남자아이처럼 신나 하는 철부지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았는데 한 번 더 도실래요?”

하지만 그녀의 제안에 결국 난 다시 해맑게 외치고 말았다.

“돌래요!”

어쩌겠는가, 재밌는걸.

*

지원자 모집은 금방 끝났다.

대부분 민간인이나 원장님이 초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저번에 만났던 ‘마물 학자’는 구면이었다. 쥐라기 공원 때 만났던 지질학자의 지인이었지?

아쿠아리움 첫 개장일.

“출발합니다. 모두 수영복을 착용해 주시고, 제 허락 없인 경로를 이탈하거나 마물들을 건드리지 마세요!”

저번 쥐라기 공원 때와 달리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첫 아쿠아리움은 대성공, 정말 완벽한 관광으로 끝났다. 다소 점잖던 학자들마저 ‘워터 슬라이드’가 끝나고 나선 헬렐레거렸으니.

그 뒤 이어진 열흘간의 일정.

관람객의 대부분 근처에 사는 민간인.

원장님의 규정으로 ‘능력자’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인솔하기 수월했다. 다만 마지막 날에는 ‘바다가 주 무대인 세계’에서 온 이종족들과 같이 돌아다녀야 했는데 관람 시간이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길어지고 말았다.

그 점을 제외하면 모두 완벽했다.

아쿠아리움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무더위도 잦아들었다.

원장님은 이걸 인간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었지. 정말 맞는 말이다. 아무리 전이로 기상천외한 지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 보겠어?

단발성 이벤트라기엔 다소 아쉬운,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고 며칠 뒤였다. 아침 신문을 보던 나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출근할 때 신문을 챙겨 가 곧바로 원장님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원장님, 이거 보셨어요? 이 기사, 괜찮을까요?”

“네. 이제 재밌어지겠네요!”

응? 재밌어진다고?

저런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난 미간을 좁히며 콧잔등을 긁었다.

이토록 놀라운 마물원이라도 다소 패쇄적이기에 세간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원장님이 하는 일은 분명 인간들에겐 큰 문제였다. 마물을 구출하면서 생겼던 ‘무력 충돌’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말이다.

무려 용이 운영하는 곳이라도 덕지덕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했다. 그래서 원장님이 일부러 감추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마물원, 용이 운영하는 마물 동물원.]

아쿠아리움 이후, 기사가 이렇게 떴다. 처음으로 마물원에 대한 기사가 뜬 것이다. ‘용’인 원장님이 막으려고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음에도 막지 않았다.

‘재밌어진다라…….’

그녀의 말대로 정말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문득 귀찮은 상황들이 줄지어 떠올랐지만 난 애써 무시했다. 그때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

아쿠아리움은 문을 닫았으나 한동안 바다 마물 관리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아쿠아리스트 노릇도 익숙해져 흉포한 메갈로돈 마물과 다리 길이만 10미터는 넘는 문어 마물하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무리 익숙해지더라고 하더라도, 결코 무리다.

원장님은 출근한 내게 다짜고짜 일을 부탁했다. 마물이 특정 기간 동안 이상한 짓을 하지 않고, 무사히 보내도록 돌봐 달라고.

돌봄.

그래.

돌봐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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