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아쿠아리움 (3)
이번엔 크게 반항하며 대꾸했으나 ‘발정기라서요.’라는 대답만 들려왔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 거죠? 원장님이 부탁하고자 하시는 일이, 그… 대신… 크흠, 입에 담기도 상스러운 그 짓을 부탁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다만 굳이 그렇게 의미는 두지 마세요. 그냥 마물 관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어때요?”
젠장, 관리도 관리 나름이지.
지금까지와 영역이 다르잖아.
하다못해 이제 내가 마물들의 욕구까지 관리해 줘야 돼?
‘따지고 보면…….’
사실 중요한 일이긴 하다.
동물 사육사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투정 부릴 건 아니지. 일단 난 마물 사육사니까.
동물 조련사들은 관리하는 동물의 번식 활동을 돕는다. 다만 난 지금까지 관리하던 모든 마물이 자기들끼리 다 알아서 잘했기에, 이런 상황이 닥쳐오리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 처지를 동물 조련사로 비유하자니 진정이 되는 기분이다. 난 원장님에게 침착하게 되물었다.
“어떤 마물이라고 하셨죠?”
그녀는 내게 매뉴얼을 꺼내라고 말하며 마물의 이름을 말했다.
화광돌고래, 육지가 없는 바다의 세계에서 온 마물이다.
매뉴얼에 검색하여 마물의 정보를 확인했다. 돌고래의 모습을 한 마물이었는데, 돌고래의 갈라진 꼬리가 세 개나 달린 녀석이었다.
육식을 하나 성질이 온순하여 무리지어 다니면서 서로 서열 다툼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뜻 온순한 바다 생물 같았다.
하지만 마물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이한 습성이 있었다.
원장님에게 마물의 이름을 왜 ‘화광化光(크나큰 덕화)’이라 지었냐고 물어보니, 마물이나 은혜를 입으면 잊지 않고 꼭 몇 배로 갚으려고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단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들과 달리 구체적으로 은혜를 갚는데, 예를 들어 배고플 때 밥을 주면 그 몇 배 크기의 먹잇감을 구해다 주고, 위기에서 구해 주면 은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마물이라 가질 수 있는 특이한 성질인 것이다.
“발정기라면… 수컷밖에 없는 건가요?”
내 손으로 직접 화광돌고래들의 욕구를 풀어 달라는 원장님의 부탁. 아무리 그녀라도 이번만큼은 쉽게 들어줄 내용이 아니다.
난 만약 수컷밖에 없다고 말하면 암컷을 구하러 가자는 말을 하기 위해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광돌고래들의 세계가 전이에 의해 멸망하고, 녀석들을 구출해서 마물원으로 데려 왔을 땐 모두 새끼였어요. 일곱 마리의 수컷과 스물한 마리의 암컷. 번식성이 강한 마물이라 그대로 성장하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난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녀석들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점점 성장하던 화광돌고래들.
원장님 말처럼 그대로 놔두면 행복한 무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수컷들만 암컷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수컷들은 성체가 되었지만, 암컷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교배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온순한 화광돌고래들이 일생 중 유일하게 난폭해지는 때가 있으니, 발정기란다.
원장님이 말하길 암컷의 성장을 기다리지 못한 수컷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평화롭던 마물원의 바다 생태계는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원장님은 한숨을 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물 때문에 골치를 썩는 경우는 많았지만 저처럼 노골적인 한숨은 처음이었다.
원장님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행패를 부린답니까?”
그녀는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술을 깨문다. 음담패설같이 차마 말 못 할 이야기인 것처럼.
“휴우, 보면 아실 거예요.”
원장님은 곧바로 화광돌고래 서식지로 향했다.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 곳은 마물원의 바다 생태계 우리였다.
‘못 본 곳인데.’
바다 생태계 우리는 바다라는 특성상 하나의 우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원장님의 마법으로 생태계와 수질(마나의 양도 포함하여)에 따라 구역이 나눠진 형태다.
이번 바다 우리는 지구의 바다와 다를 바 없는 환경이었다. 난 헤엄치고, 원장님은 물속임에도 또박또박 걸어서, 화광돌고래 서식지에 도착했다.
“마침 괴롭히고 있네요. 으휴.”
그곳에서 난 곧바로 화광돌고래들의 행패를 목격했다. 원장님이 입에 담길 꺼려한 이유가 있었다.
기력이 없는 듯 둥둥 바닷속을 떠다니는 물고기, 살아는 있으나 곧 죽을 것같이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저거, 녀석들의 입속에 언뜻 보이는 것.
저 멀리 일을 마치고 유유히 도망가는 화광돌고래 한 마리가 있었다. 나와 원장님은 때마침 현장을 목격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는 중이 아니라는 건가.
원장님의 마법으로 물속에서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으엑. 저거 설마 저 물고기를 암컷이라 생각한 거예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원장님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이때의 수컷은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니까요.”
젠장, 물고기들이 너무 불쌍했다. 차라리 잡아먹히면 몰라. 곤욕을 겪으려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닐 것 아니야?
돌고래는 손이 없기에 저 꼴이 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녀석들의 손이 되어 줄 이유는 없다. 내 존엄성, 불꽃 모유와 젖소의 경지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존재하다니!
“전 못 합니다. 진짜예요. 죄송해요.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원장님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협상을 제시했다.
“보수를 많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암컷 화광돌고래들이 다치거나 죽을 위험도 있어요. 다정 씨가 당분간만, 아주 잠시만 대신 해결해 주면 되는데…….”
“어쩌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인데. 하지만 전 제 존엄성을 지킬 겁니다.”
돈으로도, 알량한 동정심으로도 내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다정 씨, 그럼 위대한 운명의 흐름에서 태어나 조화와 균형을 수호하는 드래곤더러, 해결하라고 하는 겁니까?”
바로 협박이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부터 불길이 치솟았다. 농담이 아니라 바닷물이 순간 증발해 밀려 나갈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묻습니다. 나의 가디언, 정말 나더러 그런 치욕적인 행위를 하라고 종용하는 겁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가 묻는다.
정말 나더러 시킬 거냐고.
젠장.
거창한 말들로 꾸몄지만 결국 더러운 일이라 못 한다는 거잖아. 병장이 이등병에게 짬 처리를 시키듯이.
어쩌면 내 모든 저항적인 생각과 행동은 처음부터 소용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고자 쓸데없는 반항을 했지.
그래, 결국 일은 이렇게 될 거였어.
“거참, 알았어요.”
수락하자 진지하고 무서운 태도에서 곧바로 돌변하여 생글생글 웃는 원장님이다.
“고마워요.”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드래곤이 못 하는 걸 발견했다는 것. 바로 연기다. 이 양반아, 사실 무섭지도 않았어.
“원장님.”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처음으로 깊은 후회를 느끼며, 원장님에게 부탁했다.
“장비는 주시겠죠?”
설마 아쿠아리움에 맨몸으로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걱정 말아요. 도구는 만들어 놨으니까.”
“도구요?”
순간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원장님은 그녀만의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내 내게 건넸다.
“지내는 데 필요한 건 모두 들어 있으니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해결해 주시면 돼요. 그럼 수고하세요.”
“저기, 도구라는 게 뭔…….”
원장님은 내가 가방을 받아 들자마자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도구가 뭔지 물어보려던 난 말을 삼키며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어?”
가방을 살짝 열어 보니 그 안엔 먹을 것과 예비 수영복(기능 탑재) 몇 벌, 그리고 원장님이 만든 도구가 있었다.
“도구가 정말 그런 도구를 말하는 거였어?”
화광돌고래를 위한 원통형 도구.
원장님이 마도구 제작의 달인인 건 알았으나,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후다닥 도망갈 만하네.
나라도 도망갔다.
*
후우,
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건 일이야.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지는 건 나다.
난 도구를 가지고 발정난 화광돌고래들을 찾아 도구를 꽂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상한 게 아니다. 이상한 게 아니다. 사육사라면 응당 하는 일이야. 그냥 컨트롤, 컨트롤하는 거야.”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스스로 세뇌라도 하듯 계속 다짐했다. 이 수치심은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종마 교배처럼 마물들의 발정을 해결해 주는 것도 사육사의 일일 뿐이라고.
[끄에엥! 너무 좋아!]
하지만 사육사와 나 사이엔 결정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었다.
난 들린다는 것이다.
[흐아앙, 이런 기분 처음이야.]
심히 기뻐하는 화광돌고래.
처음엔 저항하다가도 일단 도구를 꽂으면 기뻐 날뛴다.
그리고 빌어먹을 교감의 힘 때문에 내겐 놈들의 환호가 또박또박 들려왔다. 그래서 더 엿 같다. 기분 좋아, 기분 좋아. 그만 좀 말해, 새끼들아!
게다가 며칠 동안이나 이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도구가 일회용이었기 때문이다. 지급 받은 도구는 수십 개, 발정기가 끝날 동안 사용할 분량. 젠장, 일회용이라니.
일은 어렵지 않았다.
존엄성의 훼손과 수치심만 견딘다면.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틀이 지나자 이제 작업이 익숙해져 과일을 따듯 능숙하고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횟수가 반복될수록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수컷 화광돌고래들이 생겨나자 이젠 묘하게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너희가 나보다 낫다. 며칠만 견디면 할 수 있잖아.”
단 며칠.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난 분명 수컷 화광돌고래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마물들답게 성장은 기이하게 이루어졌다. 단 며칠 지났을 뿐인데, 암컷 화광돌고래들이 충분히 성장한 것이다.
더 이상 내 도움은 필요 없었다.
격리된 수컷 화광돌고래들은 암컷들과 무사히 합사하였고, 큰 축복이 바다에 깃들기 시작했다.
난 어딘가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떠났다. 뒤를 돌아보니, 무척 행복해 보이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래, 잘 살아.
행복해.
원장님은 약속대로 많은 보수를 지급했고, 위로 휴가를 보내 줬다.
휴가 동안 잊고 있던 열정이 불타올라 여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봤으나, 친구도 인맥도 없는 나로선 꽤 벅찬 일이었다.
결국 휴가가 끝날 때쯤엔 열정은 모두 식어 솔로도 좋다는 원래의 생각을 고수하게 되었다.
*
#후일담.
몇 달 뒤 다시 화광돌고래들을 방문해야 할 일이 생겼다. 새끼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화광돌고래들 모두 새끼 때 마물원에 온 터라 어미로부터 답습되는 지식들이 부족했다. 난 교감의 힘으로 기본적인 육아 지식(원장님이 가르쳐 준)을 전파했고, 꽤 성공적으로 끝났다.
일을 마치고 떠날 때였다.
수컷 화광돌고래들이 슬금슬금 몰려들더니 나를 툭툭 건들기 시작했다.
“뭐여, 시발?”
당황해서 밀쳐 냈으나 다시 파고든다.
“왜 이래?”
교감의 문을 열고 대화를 시도했다.
…….
단지.
단지 녀석들은 내게 은혜를 갚고자 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놈들은 ‘화광’돌고래라 은혜를 갚는 마물이다. 그리고 내가 베푼 건…….
그러니 지들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내게 갚을 은혜라고 한다면…….
“안 돼, 새끼들아. 진짜 안 돼.”
결사코 저항했다.
그러자 놈들은 시무룩해하면서도 결단코 은혜를 갚겠다며 덤벼들기 시작했고, 난 수영복을 벗기는 녀석들에게 저항하며 있는 힘껏 도망쳤다.
“오지 마!”
다급하게 ‘비상벨’을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원장님이 도착했고, 난 절규하며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결국 난 그녀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퇴근 시간까지 날 한심하게 쳐다보는 원장님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 고아원에서 유일하게 봤던 애니메이션이 ‘인어공주’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인어에 대한 환상을 품은 것 말이다.
“인어라고요?”
“네.”
화광돌고래 소동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원장님은 내게 새로운 일거리를 하사했다.
그것도 출장 업무다.
아침에 출근한 나에게 원장님이 말했다. ‘인어’ 서식지를 발견했으니 그곳을 조사해서 보고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