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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4화 (84/258)

# 84화 아쿠아리움 (4)

인어란 무엇인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괴물, 동서양 할 것 없이 옛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상체는 인간(주로 여자), 하체는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고려 시절 때부터 목격담이 기록된 유서 깊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인어는 괴물치곤 조금 대접이 특별했다.

특히 시대가 지나며 미디어 문화의 영향으로 현대인들은 대부분 인어를 이렇게 생각했다.

‘끝내주게 아름다운 여자’

비록 하체가 물고기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원장님의 말을 듣는 순간 예쁜 인어 아가씨가 떠올랐다.

하지만 인어가 듀공을 인어로 착각한 바다 선원들의 오인에서 탄생한 거라는 설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하는 ‘붉은 머리’의 아리따운 인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어는 매뉴얼에도 없는 마물이었다.

머릿속에서 예쁜 인어 아가씨의 모습을 지우며 원장님에게 물었다.

“제가 생각하는 인어, 그 인어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나 이어진 원장님의 대답에 난 또다시 인어 아가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맞아요. 일찍이 설화로 전해져 오던 인어는 ‘실존하고’ 있는 마물이에요.”

사진을 받아 든 난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이었다. 폭풍우 치는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무언가가 흐릿하게 찍혀 있다.

하지만 형상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에서도 여유로이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이었다.

“어부가 찍은 사진이죠. 봐요, 인어가 찍혀 있죠?”

대전이로 인해 괴물은 이제 특별히 놀랄 거리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설화 속의 괴물이 실존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진짜요? 인어라니! 하, 참.”

놀람을 넘어, 어이가 없다.

인어공주가 실사화 영화였어?

원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요. 소규모 전이는 ‘대전이’ 이전에도 있었다고. 인어는 그중 가장 오래된 전이의 흔적 중 하나예요. 하지만 저도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인어의 고향은 만 년도 전에 사라졌거든요. 지구의 인어들도 인간들에 의해 멸종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원장님은 인어라는 종의 보존을 위해 행동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못한다며 내게 모든 일을 맡겼다.

“하필 그쪽 구역이 ‘다른 드래곤’의 영역이라, 전 간섭하지 못해요. 그러니 이번 일은 온전히 다정 씨가 해결해야 해요. 괜찮겠어요?”

인어.

난 사진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흐릿하지만 확실히 인어의 모습은.

마물이라고 생각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언더더씨.”

“…네?”

뜬금없는 내 말에 원장님이 되묻는다. 난 다시 한번 말했다.

“언더더씨.”

리듬을 타며 노래까지 불렀다.

“언더더씨~ 달링 잇츠 베러 다운 웨얼 잇츠 웨터 테이크 잇 프롬 미~”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요.”

어깨를 들썩거리던 난 그녀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해 줬다.

“제 첫사랑은 인어공주였죠.”

“진짜 제대로 말 안 할래요?”

원장님에게서 살기가 발산되자 노래를 멈춰야 했다. 언더더씨, 정말 신나는 노래야.

“알겠다는 말을 완강하게 표현해 봤습니다. 확실하게 인어에 대해 조사해서 돌아오죠.”

*

설렘의 종류는 많다.

예를 들어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생각에 기대하는 아이의 설렘과 다를 것이다.

윽, 비유에서 내 욕망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품은 설렘은 건전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원장님에게서 받은 인어가 찍힌 사진. 인어는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찍혀 있으나 분명 바다 위의 진주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무엇보다 비록 하체는 돌고래의 꼬리였으나, 상체는 인간이었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사실 난 인어들이 마물이 아니길 빌었다. 원장님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일찍이 잊어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다. 즉 마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마물이 아니었으면 해.’

음란하고 음탕한 전개를 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상이 ‘마물’이냐, ‘이종족’이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마물이라면 흑심조차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마물에게 그럴 의도를 가진다면 간신히 유지해 온 내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만약 인어가 인간과 똑 닮은 마물이라면, 난 마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인어는 나한테 과연 마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하면 복잡한 얘기다.

애초에 내 능력부터가 가끔씩 마물,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어트렸으니까.

어려운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어쨌든 인어다. 마물이 아니라 이종족일 수도 있는, 아름다우며 속옷을 입지 않은 미녀라는 것이다.

아직 모르기에.

그리하여 설렘은 유지된다.

“지랄 맞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선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장 위험한 해역을 건너는데, 사소한 설렘마저 없다면 화만 났을 테니까.

난 지금 원장님이 만든 수륙양용 개조 골렘을 타고 북태평양 북부의 베링해를 건너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바다다.

인어들의 서식지는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극한의 바다였다. 망할, 인어를 찍은 어부가 킹크랩잡이 어선을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와우.”

난 골렘 안의 조종석에서.

유리창 너머 바깥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폭풍우가 만들어 낸 거대한 파도가 날 향해 덮쳐 오고 있다. 산을 덮을 만큼 거대한 바다 이불에서 50,000t의 크루즈마저 뒤집을 만큼 압도적인 위용이 느껴졌다.

그에 비하여 ‘와우’라는 내 반응은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었다. 나는 생사의 난관처럼 느껴지는 이 극악의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쿵-!

거대한 파도에 골렘은 크게 흔들릴 뿐 휩쓸려도 박살 나지 않았다. 용이 특별히 만든 골렘이다.

이만한 재해에도 끄떡없는 것이다. 다소 멀미만을 느끼며 폭풍우의 바다를 무사히 지나갔다.

얼마 후.

바다는 잠잠해졌으나 해수면 위에 유빙들이 많아졌다. 아마 추크치해를 넘어 북극해로 접어들었겠지.

쿵-!

개조 골렘의 팔이 내 쪽을 향해 떠내려 오던 유빙을 부순다. 잠수함에 두 팔이 달린 듯한 우스꽝스러운 개조 골렘이었으나 든든하기 짝이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배일 거야.’

사실 바다엔 자연재해보다도 무서운 게 있었다. 전이로 생겨난 ‘자연적이지 못한’ 재해와 바다 마물의 난립이다. 산만 한 파도가 난리치던 폭풍우의 바다도, 전이 이전엔 없던(저만큼 심하지 않았던) 현상이라고 하지. 하지만 원장님의 골렘 안이라면 안전하겠지.

북극해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마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빙 위에 바다사자, 그 옆에 하얀 털을 가진 ‘얼음 원숭이’가 있었다. 녀석들은 한참을 싸웠다. 난 유빙을 지나치며 놈들의 싸움을 끝까지 바라봤다. 결국 싸움의 승자는 바다사자였고, 얼음 원숭이는 먹혔다.

‘동물이 마물을 잡아먹는 생태계라.’

육지엔 이계 비경을 제외하곤 마물의 생태계가 자리 잡은 곳은 아주 드물었지만, 바다는 아니었다.

저처럼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자연의 순환에 마물이 끼어들었다.

이미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바뀌겠지.

원장님이 하는 일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이런 변화에 어떤 점으로 작용하는 걸까? 큰 영향? 아니면 미미한 영향?

윽, 문득 배 아래가 간질간질하다.

내 일에 대한 보람 비슷한 걸 느끼고 말았다. 생태계를 조율하다니, 굉장하잖아. 내가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말이야.

인어들의 서식지는 북극해의 깊숙한 해역에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던 도중, 난 추운 바다 위에 있는 거대한 기계를 보았다.

북극해에도 인간의 이기는 있었다. 석유시추선이었다. 그것도 꽤 많았다. 석유시추선은 혹독한 추위와 강한 파도를 견디기 위해 무척 거대했다.

난 석유시추선이 마물보다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단지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서 저런 기계를 잔뜩 설치하다니 말이다. 대전이 이후 환경 운동은 사치라는 인식과 함께 절멸되었으니 이제 눈치 볼 것도 없단 말인가?

조금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석유시추선 ‘지대’를 지나쳤다. 시추선 근처엔 전투함으로 보이는 배들이 있었고, 배 안에선 희미한 마나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탄 골렘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난 조용히 빠져나갔고, 반나절 뒤 마침내 인어 거주지에 도착했다.

*

인어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하지만 내가 골렘을 타고 등장한다면 인어들이 날 경계하고 적대하리란 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난 근처에 골렘을 정박해 놓고 직접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수영복 대신 턱시도를 착용했다.

다행히 턱시도엔 수영복의 기능과 더불어 방한 기능과 방수 기능도 있었다.

검게 보이는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그저 물이라는 감촉만 느껴졌으나 만약 턱시도를 벗고 들어간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난 우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버튼을 누르자 원장님의 마법으로 내 발 아래 바다의 지도가 홀로그램으로 표시되었다.

“꽤 깊네.”

목표는 바다 깊숙한 곳이다.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긴장을 풀고 곧바로 아래를 향해 잠수했다.

몇 주간의 아쿠아리스트 노릇이 헛되지 않았다. 난 능숙하게 홀로그램 지도를 확인하며 인어 서식지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인어들은 이런 데서 산단 말이지.’

‘인어공주’와는 다르네.

북극해는 애니메이션 속의 살기 좋은 바다와 거리가 멀었다. 진주를 품은 조개들이 노래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바닷가재가 춤을 추는 곳이 아니었다.

서식지에 가까워질수록 어둡고 답답해졌다. 심해로 내려갈수록 기분 나쁜 불쾌함이 감돌았다. 깊은 심해는 밤처럼 캄캄했으나, 바닷물은 만질 수 있으니 마치 형상화된 어둠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주변 환경이 날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심연 속을 헤집고 다니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언뜻 보이는 투명한 해파리들과 긴 다리의 게 또한 분명 지구 생물임이 아닌 게 분명한, 일그러진 어떠한 생명체들을 지나쳐 마침내 ‘서식지’에 도달했다.

원장님의 마법 지도가 가리키고 있는 장소, 난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 해가 떠오름을 느꼈다.

“이런, 세상에.”

비유적이나 마치 그러했다. 방금까지 밤을 걷고 있었으나 단지 한 걸음 차이로 해가 떠오르고, 맑고 따뜻한 해역이 날 반겨 준다.

아름다운 곳이다. 과연, 인어가 사는 곳이라고 생각될 만큼.

“마법이구나.”

뒷걸음질을 치자 주변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난 얼른 한 걸음 앞으로 걸었고, 다시 주변은 맑고 따뜻하고 화창해지며 바닷물도 반짝거리는 에메랄드색으로 바뀌었다.

점점 괴상해지는 환경에 잊고 있던 설렘이 다시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인어공주’의 바다가 맞았어!

북극해 깊숙한 심해의 경계에 이러한 마법의 바다가 있다니, 역시 인어들은 어떠한 특별한 종족이 아닐까?

열대 바다의 산호초가 꽃밭처럼 펼쳐진 곳을 걸어갔다. 생각할수록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자 주변에 충만한 마나들이 느껴졌다. 아마도 마나가 북극해에 기적의 바다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마물의 바다구나.”

바다 아래의 세계는 진묵으로 그린 듯이 뚜렷하고 봄처럼 활기찬 곳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마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았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보석 비늘을 한 물고기들이 떼로 뭉쳐 반짝반짝 빛나고, 등껍질이 집채만 한 거북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자니 말이다.

인어 서식지에는 마물들이 가득했다. 원장님의 아쿠아리움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생물은 지구의 생물이 아니었다.

난 조용히 제 등껍질을 손질하고 있던 ‘긴팔거북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곳에서 녀석이 가장 마나가 많았고, 마나가 많으니 똑똑한 마물일 것이다.

“얘, 인어가 어디 있는 줄 아니?”

내 물음에 덩치가 산만큼 거대한 마물 거북이가 고개를 쭉 빼더니 눈을 끔벅거리며 날 바라봤다. 나도 수영해도 될 만큼 넓은 녀석의 눈망울을 마주하며 인어의 생김새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예상대로 똑똑한 마물이었다.

내 설명을 알아듣곤 인어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줬다.

[‘가꾸는 것들’은 저기 아래, 바위의 틈에서 살고 있어.]

녀석이 가르쳐 준대로 산호 숲을 지나 깊숙한 곳으로 헤엄쳤다.

‘너무 자연스럽잖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떤 놈이 태연하게 마물에게 길을 물을까?

인어공주 이야기에선 바다 생물들이 제멋대로 말을 한다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어쩌면 내겐 그러한 동화 같은 놀라움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바다 깊숙한 곳을 향해 헤엄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색이 사파이어색으로 물들어 있는 해저 동굴, 블루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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