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85화 (85/258)

# 85화 인어와 사이렌 (1)

마물 거북이는 ‘틈’이라 말했지만, 그건 산만큼 거대한 녀석의 덩치에 비해서였다. 해저 동굴은 무척 넓은 구멍이었다.

마물의 바다도 충분히 놀라웠으나, 바다 아래쪽에 자리한 짙은 색깔의 블루홀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물 색깔이 짙어서 마치 연기 같아. 아무것도 보이질 않네.’

눈을 부릅뜨고 봐도 짙은 바닷물 너머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당연히 평범한 블루홀은 아니었다.

블루홀의 바닷물이 유난히 짙은 건 단지 동굴이 깊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 발아래의 짙은 청록색 바다에서 충만함을 넘어 피부의 털이 곤두설 만큼 강력한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블루홀을 향해 헤엄쳤다.

하지만 곧바로 부상해야 했다.

색깔이 다른 바닷물이 피부에 닿자마자 정전기가 오르듯 따끔한 것이다.

깜짝 놀라 버둥거리며 다시 올라온 난 아직까지 따가운 피부를 쓰다듬었다.

‘마나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턱시도를 입은 부분은 괜찮지만 손등과 얼굴은 버티지 못했다. 마나가 강렬하게 발현되는 이계 비경에서는 평범한 사람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죽는다더니, 과연 마나가 너무 짙어도 문제구나.

“음…….”

저 너머에 인어들이 사는 건 분명하겠지. 골렘을 타고 오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남의 집을 방문하는 데 다소 과격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현관문에 댈 순 없는 노릇이잖아?

“통하려나?”

난 천천히 마나를 불러 모았다.

원장님이 주신 여의주를 먹은 후에 마나를 보다 자유로이 다룰 수 있었다. 이제는 포근이가 없어도 불의 기운을 피부에 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의 기운은, ‘불’이 아니다. 그렇기에 바닷물 속에서도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기운이 확실하게 내 몸을 보호해 주어, 다시 블루홀에 몸을 담갔을 때 더 이상 정전기 같은 고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오.”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지만 막상 블루홀 안의 시야는 깨끗했다. 지상에서처럼 난 앞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인어는… 마물은 아니야.”

블루홀을 지나는 동안 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인어들은 마물이 절대 아니다. 아니, 만약 마물이라고 한다면 이 블루홀 아래에는 인어 외에 다른 ‘이종족’이 살고 있는 거겠지.

마나를 머금은 바닷물로 가득한 해저 동굴, 그 벽면에서 난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바위 절벽에 양각된 다양한 조각은 물속에서 조각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심하고 멋스러웠다.

이곳까지 오며 본 바다 마물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생동감이 엄청났다. 놀라운 건 ‘인어’를 비롯하여 인간처럼 보이는 존재도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인어, 마물, 그리고 인간.

그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격려하고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점 동굴이 깊어갈수록 조각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인간들은 창을 들고, 인어들은 도망친다. 마물들은 인간에게 잡혔고, 곧 창에 찔러 죽었다.

기이한 건 참극처럼 보이는 조각 그림 사이, 홀로 서 있는 조각상 하나가 있었다. 새처럼 생겼으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인면조였다.

인면조는 참극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고개를 추켜올리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굉장해.’

나에게 이 모든 조각 그림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예술에 문외한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도 비견될 만한 작품이 아닐까?

만약 인어들이 이런 조각을 새겼다면, 이만큼 예술을 아는 종족이니 고등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지.

당장 확인해 보고 싶었다.

*

조각을 구경하느라 느릿하던 움직임을 빨리하며 해저 동굴의 깊숙한 곳으로 헤엄쳤다.

“어… 어?”

불의 기운을 둘렀음에도 피부가 점점 따갑다고 느껴지던, 그때였다.

처음엔 돌고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고래의 꼬리를 가진 ‘무언가가’ 숙인 허리를 들어 올렸을 때, 바닷물에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을 발견한 나는 재빨리 바위 뒤에 숨었다.

그녀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바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내게 어릴 적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아무리 예쁜 미녀를 봐도 심장이 멎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 미모로 한 남자의 심장을 멎게 하려고 한다면, 분명 다른 재료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첫사랑이라든가.

인어의 얼굴을 또렷하게 마주했을 때 내 심장은 잠시 멎었다. 인어의 아름다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나 누군가 내게 인어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햇살이 비추는 물결이 움직였지.

방울마다 맺힌 빛이 그녀의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어. 그녀의 눈동자가 바위 뒤에 숨은 나를 찾지 못해서 다행이야. 만약 마음의 준비도 없이 금빛을 머금은 눈동자를 마주했다면 진심으로 사랑에 빠졌을 테니까.

피부는 흠이 없는 진주처럼 매끈하고 하ㅤㅇㅒㅆ는데, 너무 맑아서 심지어 내 얼굴이 비추어 보일 정도였다니까. 비록 허리 위만 사람이었지만 너무 예뻐서 물고기의 꼬리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더군.

무엇보다 내 심장을 쿵 하고 떨어트린 결정적인 요인은 인어의 머리카락이었을 거야. 만화에 나온 인어공주와 똑 닮은 붉은 머리카락이었는데 바닷물에 넘실거리는 게 귀한 명주실보다 고왔어.

듣는 이에게는 과장된 묘사로 인어를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 어쩌겠어. 저 모습이야말로 미에 대한 찬미인걸.

‘마물이 아니야.’

인어는 마물이 아니었다.

생김새로 판단한 게 아니다.

인어는 날 찾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하던 일에 열중했다. 모래 바닥에 무엇을 심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어떤 식물을 재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행동,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자연스러웠다. 인간을 닮은 마물은 본 적이 있다. 아라크네, 미인을 닮은 더미를 달고 남자를 유혹해 잡아먹는 거미 마물.

하지만 더미는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더미는 더미일 뿐이었다. 표정도 없고,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인어는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게 예쁘다.

나라서 알 수 있었다. 교감이 통하지 않는 마물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모두 ‘문’은 있었다. 하지만 인어에게서 ‘문’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종족과 마물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이 없기에 끈을 던져 노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인어들은 분명 마물이 아닌, 어떤 ‘종족’들이다.

…….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모두 다 제외하고도 그들이 지성을 가진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가장 쉬운 이유가 있었다.

입고 있다.

젠장,

안타깝게도 사진과는 달랐다.

인어는 모두 입고 있었다. 비록 짧고 하늘하늘한 소재였으나 충실히 가릴 곳을 다 가리고 있었다.

나는 바위 뒤에 숨어, 뻔히 인어의 행동을 관찰했다. 인어의 움직임은 인간과는 약간 달랐다. 바닷물 속에서 다리가 아닌 꼬리로 헤엄치니 당연한 건가? 하지만 그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젠장, 사진만 같았더라면 더 바랄 것도 없겠는데.

‘첫인상을 어떻게 심어 줘야 하나.’

고민해 봤으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개팅 자리도 아니고, 난 심호흡을 하며 바위에서 나왔다.

“저기요!”

보글보글-!

내 말에 인어는 적잖이 놀랐는지 기겁하며 물거품을 물었다.

난 인어가 심지어 날 발견하고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다가, 이내 적대적으로 추켜세우는 눈썹까지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어… 음. 날씨가 좋죠?”

나도 안다. 이 평범한 인사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는 걸. 하지만 딱히 어떻게 호감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서글서글하게 다가갔으나 그녀는 잔뜩 겁먹었다.

당황 서린 눈빛으로 날 경계하며 어디론가 헤엄쳐 간다.

젠장, 그러더니 바위 뒤에 감춰 놨던 삼지창을 후다닥 주워서 들어 올린다.

하지만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하, 걱정 말아요. 나 나쁜 사람 아녜요. 그 창 좀 내려놓고 대화를 나눠 볼까요?”

젠장, 판단 미스다.

그녀 혼자 있기에 나섰긴 했지만 설마 삼지창을 들고 다닐 줄이야.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대했다. 난 우선 내 소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 해코지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이름은 정다정이고 마물원에서…….”

그러나 말을 내뱉자마자,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물속임에도 고막이 터질 듯이, 비명이 시끄럽게 울러 퍼진다. 음, 저것도 마법인가?

비명을 듣고 주변에서 다른 인어들이 몰려왔다. 모두 끝내주게 예쁜 미녀였다.

하지만 모두 삼지창을 들고 날 경계한다. 슬픈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어들은 많아졌으나 난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늘어나는 인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십 명의 인어가 날 감싸고 삼지창을 금방이라도 던질 듯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나.’

난 머저리가 아니다.

이 상황이 위급한 상황임을 알았다. 미녀라고 해도 인어가 휘두른 삼지창 찔리면 죽는 건 똑같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태연히 행동할 수 있었다.

“다들 진정하고 이걸 보십시오.”

인어는 만 년 전에 기록이 소실된 모양이지만, 드래곤은 사실 시간의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 원장님이 다소 젊은 편이었고(정확히 몇 살인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듣기로는 캣 맘은 연세가 행성의 역사와 맞먹을 정도라나.

그리고 드래곤의 위용은 그 어떤 차원에도 널리 퍼져 있다. 난 잘 몰랐는데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옛 황제들이 사랑하는 ‘용’, 서방 국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드래곤’의 전설 모두, 사실 그러한 영향이 간접적으로 표출된 거란다.

어쨌든 비밀의 바다에서 숨어 지내는 인어들도 드래곤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내가 품에서 원장님의 기운이 담긴 상자를 꺼내 보이며 내가 드래곤의 가디언이라 소개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줄 알았다.

“자, 이 기운을 느껴 보십… 으악!”

하지만 양복 재킷에서 상자를 꺼내자마자 삼지창이 날아왔다. 내 행동을 공격 신호로 여긴 모양이었다.

쾅-!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뒤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에 간담이 서늘했다.

단지 삼지창을 던졌을 뿐인데, 바위가 박살 나고 말았다.

인어들, 생각보다 힘이 세다.

슝-! 슝-!

그리고 성격이 더럽다.

성질 급한 어떤 인어의 행동은 방아쇠가 되었다. 첫 공격을 시작으로 다른 인어들도 삼지창을 차례대로 휙휙 던지기 시작했다.

“야! 말 좀! 크윽!”

상황이 급해지니 예의 차릴 것도 없어졌다. 난 욕지거리까지 내뱉으며 만류했으나 투창은 멈추질 않았다.

“난 드래곤의 가디언이오!”

정체를 말해도 소용없다.

피하는 것도 벅차 상자를 열 여유도 생기지 않았다. 상자를 열기 위해선 몇 가지 일련의 과정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자신의 기운은 너무 위험하다고 몇 가지 보안 절차를 설정해 놨다. 그래서 상자를 풀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인어들은 그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상자를 품에 넣고 생각했다. 망할, 인어가 신화로 남은 것도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이렇게 족쳐서 그런 건가?

슝-!

눈을 부릅뜨고 피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행이 ‘총알’보다는 느렸다. 야옹이의 힘이 깃든 난 한 대도 맞지 않고 모두 피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첫 번째 공격은 위협사격에 불과했다.

‘하나, 둘…….’

대체 옆에 쌓인 삼지창이 몇 개지?

혼잡한 틈을 타 인어 몇 명이 삼지창을 더 가져온 모양이다. 그녀들은 쉴 새 없이 옆에 쌓여 있는 창을 던졌다. 이미 내 주변은 삼지창 꽃꽂이로 꽃밭이 만들어졌다.

“윽!”

잘 피하다가 그만 뒤꿈치 쪽에 꽂혀 있던 삼지창을 살피지 못하고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휙-! 휙-!

즉시 내가 방심한 틈을 노리고 인어들의 삼지창이 날아든다.

다행히 창에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담이 서늘해졌다. 솔직히 방금까지만 해도 그다지 큰 긴장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얼굴 바로 옆에 꽂힌 삼지창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새끼들…….’

바위를 꿰뚫고 꽂힌 창에 얼마나 많은 힘이 담겼는지, 창대가 아직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 치 차이로 빗나갔다.

내가 조금 더 심하게 넘어졌거나 창을 던진 인어의 솜씨가 좋았다면 창은 바위가 아니라 내 대갈통에 꽂혔을 것이다.

…….

슬슬 짜증이 치솟았다.

이제 첫사랑의 감정은 온데간데없다. 상황이 상황이리자만 정말 개같이 구네.

그래, 나를 보금자리를 침입한 들개처럼 대하는데, 내가 신사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방패로 막는 행위조차 위협으로 느껴질까 봐 쓰지 않았다. 난 원장님의 명으로 인어들을 조사하고 보호하러 왔지, 깽판을 치러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제공격을 받아도 지장보살처럼 굴었다.

하지만 내 성격은,

그 마물원에서의 수많은 사건, 사고에 의해서도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피가 끓었다. 세간에서는 내 성격을 다혈질이라 부른다.

탱-!

방패를 만들어 삼지창을 막아 냈다. 담긴 힘이 아무리 강력해도 드래곤의 마도구를 꿰뚫진 못했다.

또한 총도 만들어 냈다.

늘어난 마나 덕에 포근이가 없어도 만들 수 있게 된 불의 탄환, 장전하고 인어들을 겨눴다.

‘죽진 않을 거야.’

해저 동굴의 신비한 마나에 의해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인어들, 확실히 강하다. 웬만한 헌터들보다 많은 마나가 느껴진다.

그러니 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고통은 ‘따끔’ 수준을 넘을 것이다. 그러나 뭔 상관이야. 젠장, 면상에 창을 꽂으려던 녀석들인데.

망설임은 찰나였다.

총구를 확실히 겨누고 힘을 발산시켰다. 마법의 탄환이 만들어지고 방아쇠만 당길 일만 남았다.

그때였다.

끼이이이이-!

어디선가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소름끼치는 초음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커져서 고막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초음파 소리가 뚜렷한 ‘노랫소리’처럼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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