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인어와 사이렌 (4)
녀석들은 첫 만남 때처럼 이유 모를 호의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마치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다가와 친밀하게 군다.
솔직히 말해 인상이 귀여운 녀석들은 아니다. 까마귀보다 두세 배는 큰 몸통에 여자 얼굴이 달린 다소 엽기적인 생김새였는데, 사람의 ‘표정’까지도 흉내 내는 탓에 아무리 활짝 웃으며 날아와도 기괴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세이렌, 기억을 읽는 마물이라.’
난 움찔거리며 날아오는 녀석들을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 마물원에서 일하며 별의별 마물을 봐 온 탓에 겉모습만으로 마물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날 겁먹게 한 건 인어 아줌마의 말 때문이었다. 보기와 달리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다지. 기억을 읽는다고?
난 즉시 원장님의 ‘마물 도감’을 펼쳐 세이렌을 검색했다.
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매우 추상적인 두 글귀만이 적혀 있었는데, [기억의 열매를 먹는다]와 [기억을 진실로 인도한다]였다.
그 의미를 유추해 볼 때 정말 기억을 먹는 마물이 맞는 듯싶었다.
‘설마 나도 모르게 내 기억이 읽힌 건 아니겠지?’
내 머릿속의 ‘기억’을 다른 이가 허락도 없이 읽는다는 건, 개인 컴퓨터의 하드를 뒤지는 것만큼 무척 불쾌한 일이다. 상대가 마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남들하고 공유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사람마다 하나 이상은 있다. 그런 기억들을 우리들은 흑역사라고 부른다. 가령 예로 들자면 바로 얼마 전, 수컷 돌고래 마물의 생식기에 도구를 장착시켜야 했던 기억이 내 흑역사겠지.
세이렌들은 뒷걸음질 치는 날 계속해서 ㅤㅉㅗㅈ아왔다. 할 수 없이 아예 등을 돌려 세이렌들에게서 도망쳤는데, 세이렌들은 뭐가 좋은지 잔뜩 들뜬 상태로 노래를 부르며 날 뒤따랐다.
라라라!
[바다님! 바다님!]
숲에서 도망쳐 해안가에 도달하자 인어들이 보였다. 인어들은 바다에서 채취하던 요상하게 생긴 꽃들을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인어들과 마주치는 상황이 더 난감하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 세이렌들을 불러 세웠다.
“그만! 너네들, 왜 날 ㅤㅉㅗㅈ아 오는 건데?”
그러자 세이렌들이 다 같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좋은, 만족스러운, 선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다.
세이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다.
나는 마치 자비에 교수의 정신 공격을 막는 마그네토처럼 불꽃의 기운을 끌어내 머리에 둘렀다.
“니들, 기억을 읽을 줄 안다며? 무슨 프로페서X라도 돼? 내 기억도 읽는 건 아니겠지?”
내 모습에 세이렌들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며 종종걸음으로 한 마리씩 다가왔다.
[기억은 열매, 몽실몽실 맺힌 열매를 먹으면 우린 기뻐서 노래해요. 그리고 씨를 뱉으면 기억의 찌꺼기가 남아, 우린 찌꺼기를 뱉어 내기 위해 노래해요!]
세이렌들은 내가 만났던 마물 중에 가장 말을 잘하는 듯했다. 마물치곤 어휘 구사력이 장난이 아니다. 문제는 말의 태반이 못 알아먹을 추상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난 뺨을 긁적이며 반문했다.
“뭔 소리야?”
어느새 내 주변은 세이렌들로 가득했다. 녀석들은 내 어깨 위에 올라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바다님은 열매를 맺지 않아요.]
[그래서 기억을 먹을 순 없어.]
[하지만 그래서 좋아.]
와악-!
예고도 없이 푸드덕 날아든 세이렌들이 내 어깨 위를 점거했다. 머리 위에도 올라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자 정말 까마귀가 시체를 뜯어 먹듯 몸을 덮쳐, 나는 세이렌의 깃털들로 엉망이 돼 버렸다.
하지만 떨어지라고 밀치거나 깃털을 잡아 뜯을 수는 없었다. 교감은 거짓 없는 감정의 교류, 녀석들에게서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 전해져 오는데 어떻게 밀어내겠는가?
‘미묘해. 이건 진짜 미묘한 경험이야.’
세이렌들은 까마귀, 종달새, 혹은 카나리아를 닮은 새의 몸에 여자의 얼굴이 달려 있다. 내 몸에 세 개의 발가락을 이용해 달라붙은 채 연신 얼굴을 들이미는데, 언뜻 스쳐보면 마치 미녀들의 뽀뽀 세례 같았다. 저 뾰족한 부리와 새 몸뚱어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확실히 세이렌들은 내가 경험한 마물 중에 가장 미묘한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을 읽진 못한다는 거지?”
[열매가 열리지 않는데, 어떻게 먹어요!]
뉘앙스로 보면 읽지 못한다는 것 같다. 나는 잠시 동안 날개의 푸드덕 속에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며 세이렌들을 진정시켰다.
“좋아. 묻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는데, 너네들은 똑똑한 마물 같으니까 대답해 줄 수 있을 거야.”
세이렌들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내 말을 기다렸다. 으음, 아무리 봐도 사람 얼굴을 한 마물은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하나는 니들, 왜 날 좋아해?”
이 무지막지한 호감의 원인이 궁금하다.
[바다님이라서요!]
그렇단 말이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두 번째 질문의 답을 들으면 저절로 알 수 있겠네.
“자꾸 바다님, 바다님 하는데 왜 날 바다님이라고 불러?”
그러나 이어진 세이렌의 대답은 애매모호해서 결국 두 질문의 답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우리들의 노래가 바다님에겐 닿지 않아. 그래서 바다님이지. 바다님의 곁에선 바다처럼 포근해. 그래서 바다님이지.]
라라라~
라라라~
대답을 하다말고 세이렌들은 합창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울림이 깊어, 숲을 벗어나 해안가까지 울러 퍼졌다.
노래를 들은 인어들이 세이렌들을 찾아왔으나 곧 날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떠났다.
“듣기는 좋구나.”
어차피 인어들을 설득하기는 것은 글렀다 싶었다. 떠나기 전에 세이렌들의 아름다운 노래나 듣고 가자는 생각으로 나무 밑동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세이렌들의 노래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청아하나 보다 세련되고, 성악곡처럼 고풍스러우나 자연이 내는 소리만큼 편안했다.
봄날의 기분 좋은 바람을 마주하는 것 같이 노근해졌다. 나는 두 눈을 감고 해안가의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어울리는 세이렌들의 하모니를 들었다.
그때였다.
한순간에,
세이렌들의 노래가 구슬퍼지더니, 나를 절벽 아래로 끌어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풍경이 달라졌다. 신록이 우거진 숲은 온데간데없고, 화마에 삼켜져 활활 불타는 검은 재들만이 가득하다.
당황할 틈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도망치는 인어, 창을 들고 ㅤㅉㅗㅈ는 인간. 창에 찔린 인어의 죽음으로 장면은 끝을 맺었으나 마치 꿈을 꾸듯 새로운 장면이 탄생했고, 나는 영화를 관람하듯 장면들이 내게 알려 주는 사실들을 습득하였다.
“아.”
자그마치 몇백, 몇천 개의 장면들이 빛보다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고작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하는 경험은 길었다. 한순간에 나는 수백 년에 다다르는 길고도 험난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너희들…….”
나무 밑동에서 일어나자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넘어지고 말았다.
“너희들이 내게 보여 줬구나.”
세이렌들이 내 주변으로 다가왔다.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날 해치려는 건 아니었을 거야.
세이렌들은 단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기억을 보여 줬을 뿐이다.
다만 의도가 궁금했다.
대체 왜?
[바다님, 바다님. 인어님들이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니들 생각보다 엉큼한 녀석들이네.”
그런 거였나,
젠장. 그런 의도라면 세이렌들의 방법은 통했다. 어느새 난 인어들에 대해 연민을 품었기 때문이다.
세이렌들이 보여 준 건 녀석들이 기억하고 있는 인어들의 역사였다.
마치 쉬지 않고 수백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것 같다. 하지만 과부하 걸린 내 뇌의 기억 장치는 금방 잊어버려 수백 년의 경험을 모두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이렌이 보여 준 기억들은 내게 몇 가지 잊지 못하는 흔적을 남겼다.
인어와 인간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은 항상 같았다. 인어와 인간의 공생, 그 끝은 항상 인간의 배신.
인어는 인간과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수백 년 동안이나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항상 인간들을 믿어 왔다.
그녀들은 믿고, 믿고, 또 믿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끝내 배신을 했다.
‘인어공주’ 동화의 이야기는 진짜였다.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인어공주처럼 순진하던 인어들은 인간들에게 이용당하다 배신을 당해 물거품이 되어 죽어 갔다.
동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어공주 동화에서는 공주가 사랑을 택하여 왕자를 죽이지 못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진짜 현실에서는 왕자들이 인어를 죽였다.
어쨌든 새드 엔딩이다.
연민은 동정으로 이어졌다.
젠장, 왜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와 이들의 이야기는 닮아 있는 거야?
인어공주 동화책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인어공주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었을까?
나는 세이렌들을 바라봤다.
인어들은 설득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세이렌들은 인어를 구해 주길 바라고 있다.
‘헌터들에게 사냥당하지 않더라도 이대로 두면 인어들은 멸종할거야.’
인어의 역사가 슬픈 사랑 이야기인 건 그녀들의 종족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다.
인어는 모두 여성이다. 아이를 낳아도 인어의 아이는 모두 딸로 태어난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서 인간의 씨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배신의 역사로 굳게 마음을 닫은 인어들은 더 이상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처음엔 종의 보존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곳에 스스로 갇혀서 멸종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어들의 수장이 말해 주지 않은 이야기, 묘하게 고집을 부리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긴 사랑 때문이라니. 나도 세이렌들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졸지에 연애 솔루션처럼 돼 버렸네.”
인어들이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대는 끊어지고 말 것이다. 거처를 옮긴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엮이길 두려워한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지금처럼 스스로 갇혀 산다면 아예 기회조차 없다.
“너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세이렌들에게 말했다.
“너네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겠어?”
세이렌들은 망설임 없었다.
[인어들은 인간의 배신으로 죽을 만큼 슬퍼했지만, 인간을 사랑할 때도 죽을 만큼 행복해한걸.]
[우린 그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해. 다시 한 번 사랑을 찾았으면 해.]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단지 동정의 연장선에서, 혹은 인어공주 동화의 해피 엔딩을 바라던 어린 시절 내게 주는 보상으로. 오지랖을 한번 부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날 도와라.”
게다가 이번 일을 성공시키면 오랜만에 ‘특별수당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돈은 많이 필요 없으니 돈 주고도 못 사는 ‘여의주’같은 놈으로다가.
“연기 한번 해 보자.”
*
몇 가지를 생각해 봤다.
인어들에게 사랑을 다시 일깨워 바깥으로 나가게 한다.
미친 방법이다.
그리고 오만한 생각이다.
오죽하면 이곳에 숨어 지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오지랖은 인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주어 바뀐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로 끄집어내는 것? 원장님의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어들이 가진 상처를 후벼 파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소 강압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바로 세이렌들을 이용한 충격 요법이다.
“잘 들어. 인어들 앞에서 너네들을 데리고 떠난다고 할 거야. 그러니 니들도 미련 없이 떠나는 척을 해야 돼.”
[우리 떠나는 거예요, 바다님?]
“척이라고 했잖아. 연기야, 연기.”
세이렌들은 내게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바다님, 바다님 거리면서 내 지시에 잘 따라 줬다.
‘안 ㅤㅉㅗㅈ아오면 어쩌지?’
반려 동물을 위해 아파트에서 마당이 딸린 집으로 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세이렌과 인어의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면 내 방법이 통할지도 모르지.
세이렌들이 먼저 떠나면 내키지 않더라도 날 따라올지 몰라.
*
그날 오후,
뚱보 인어에게 인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만났던 인어 말고도 다른 인어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 ‘인간’인 날 적대했다.
“들으시오. 세이렌들은 나와 같이 갈 테니 인어님들은 어떻게 하실 거요?”
난 인어들이 보는 앞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긴장해서 쓰지도 않는 경어체를 썼다.
“세이렌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세이렌들이 이곳을 떠날 리가 없어요!”
즉각 인어들이 반발했다.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인어들이 인상을 쓰고 내게 화를 낸다. 그 모습에 난 살짝 서러워졌다. 진짜, 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세이렌과 우린 떠나지 않습니다.”
반문하더니 결국 내가 거짓말을 치고 있다며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백 명의 인어가 하나같이 화를 내는데 인어들의 수장은 말리지 않았다.
같은 의견이라는 것이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소란을 진정시켰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소? 세이렌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마쳤으니 마지막으로 대화나 나누시오.”
나는 말로 설득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이제 나와. 아침에 말했던 것처럼 행동하고!’
교감으로 신호하자 숲에서 세이렌들이 날갯짓하며 날아왔다. 수십 마리로, 섬에 있는 모든 세이렌이었다.
라라라~
녀석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잘 행동해 줬다. 인어들에게 붙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어들은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이렌의 말을 조금이나마 알아듣는다. 그래서 세이렌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깨달은 듯했다.
바로 이별의 노래다.
노래가 끝나자 세이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왔다. 인어들이 손을 뻗어 세이렌들을 불렀지만 녀석들은 본 체도 하지 않는다.
“아카라!”
“아카니!”
…….
저마다 이름이 불렸지만 세이렌들은 내 곁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인어들은 무척 당황스러운 듯했다.
또박또박 말하던 인어들의 수장이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말했다.
“대체… 가디언이시여, 대체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난 어깨를 으쓱하고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말했잖습니까. 난 세이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아침에 얘기 좀 해 봤는데 다들 떠나고 싶어 하더라고.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 무섭다나?”
내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세이렌들이었다. 세이렌들이 부리를 세우고 달려들어 내 발목을 쿡쿡 찌른다.
[바다님! 우린 그런 말 하지 않았어요!]
난 태연한 척하며 녀석들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잠깐. 다 연기라니까!’
[아, 맞다. 네! 바다님.]
시린 발목을 꾹 참고 인어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쩔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요람의 지킴이이자 비늘을 보살피는 세이렌들이 우릴 떠날 리가…….”
인어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결국 귀찮은 짓까지 할 수밖에 없나.
“자, 가자.”
세이렌들이 날 따른다.
우리는 해안가를 지나 바다로 향했다. 나는 기운을 끌어 모아 몸에 불의 기운을 둘렀다.
“잘 있으시오!”
세이렌들이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나둘, 어느새 모든 세이렌이 해안가에서 모습을 감췄고, 나는 마지막으로 해안가까지 ㅤㅉㅗㅈ아온 인어들을 둘러봤다.
‘크게 동요한다.’
작전은 통했다.
이렇게 끌고 가다시피 하는 건 내키지 않았으나 뭐,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바다로 뛰어들어 세이렌들을 뒤따라갔다. 동굴로 빠지기 전에 힐끔 뒤돌아봤으나 인어들의 그림자만이 수면 위에서 아른 거릴 뿐 같이 따라오는 자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