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인어와 사이렌 (8)
며칠 후, 원장님과 세이렌이 도착했다. 나는 원장님 앞에 쭈뼛쭈뼛 섰다.
“몸은 괜찮아요?”
“네.”
“다행이네요. 다정 씨는 남아서 세이렌들을 안내해 줘요. 끝나고 관리실로 오세요. 이제 다정 씨께서 기대하는 부분만 남았잖아요?”
“아, 네.”
원장님은 단답만 하는 내가 이상한지 인상을 찌푸렸다가 별 말 하지 않고 관리실로 돌아갔다.
휴우,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다행이다. 정말 들키지 않았구나.
[바다님, 바다님!]
세이렌들을 인어들의 서식지로 데리고 갔다. 녀석들은 천진난만했다. 이 녀석들의 속삭임 때문에 드래곤의 기억을 날름 훔쳐 먹었었지. 뭐, 참지 못해 먹은 내 잘못이 더 크니까 원망할 건 아니지.
녀석들 때문이라,
문득 마물 도감의 글귀가 생각났다. 기억의 열매를 먹는다와 기억을 진실로 인도한다. 어쩌면 내게 원장님의 기억을 먹으라고 속삭인 것도 그 때문인가? 진실을 알라고? 덕분에 어릴 적 은인의 정체를 알았긴 했다. 맥 빠지는 결말이었지만.
마물들의 바다까지 도착하자 세이렌들은 저절로 인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잘 지내라.”
세이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이더니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부리를 벌렸다.
“뭐야? 니들 설마 내 기억을?”
재빨리 머리를 매만졌으나 기억의 열매가 맺혀 있지 않았다. 아니, 추상적인 개념이니 혹시 모르지!
[바다님.]
당황한 내게 세이렌들이 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두방정을 떨던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뭔 호들갑을 떨었담.
“에휴, 그래, 왜?”
[우리들은 기억의 열매를 먹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 아는 얘기를 왜 하지?
“나도 먹어 봤잖아. 맛있더라.”
[근데 바다님에게선 열매가 열리지 않아요.]
“그래. 저번에도 말했잖아.”
그러고 보니 왜 나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던 걸까? 드래곤조차 기억의 열매는 열리는데.
“내 기억을 먹을 수 없다는 거야? 아니, 그전에 시도를 해 봤다는 거지?”
나는 장난스럽게 녀석들의 깃털을 손가락으로 찔렀으나, 세이렌들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이상해요. 기억이 없는 건, 세상에 없는데. 바다님들도 모두 기억이 있는데. 바다님은, 바다님이 아닌 걸까요?]
나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걸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추상적으로 대화하던 녀석들이다.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모르겠어요.]
“싱겁게.”
세이렌들은 스스로 던진 질문에 스스로 궁금해했다. 그러다 작별 인사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다시 발랄해져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인사를 나눴다.
세이렌들과 헤어지고 나서 난 관리실로 돌아왔다.
‘바다님.’
세이렌들이 계속 말해서 그럴까?
왠지 모르게 잊히지 않았다.
되도 않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원장님에게 물어볼까?
*
관리실로 돌아오자 원장님이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드래곤이 타 준 커피는 처음이었기에 나는 목은 물론 척추까지 접어 가며 공손히 받았다.
“정말 몸에 이상은 없어요? 마나의 흐름이 평소보다 격한데요.”
“머리가 지끈거리긴 한데 참을 만해요.”
내 말에 원장님이 갑자기 불쑥 손을 내밀더니 내 이마에 얹었다. 방금까지 커피를 들고 있던 손이라서 그런가, 매우 따뜻했다.
뜻밖의 스킨십에 당황하며 쳐다보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네요. 다행이에요. 생각보다 후유증이 덜한 편이라서요.”
“후유증이요?”
원장님이 말했다.
“세이렌은 고대의 마물이자 강력한 마물이죠. 여러 방면으로 조사해 본 결과 그들 집단의 힘은 신수와도 맞먹는 에너지를 뿜어내더군요. 다정 씨는 신수와 교감한 것과 같을 테니 잘못했으면…….”
그녀는 말을 머뭇거리다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 줬다.
“빵 터졌을지도 몰라요.”
“빵 터져요? 이거 비유가 아니시죠. 정말 자폭하기 전의 셀처럼 빵 터진다는 거죠.”
그렇게 위험했다고? 나는 멋도 모르고 나대다가 죽을 뻔했다는 거잖아. 딱히 원장님을 탓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간담이 서늘해져 인상을 찌푸리자, 원장님이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조심성이 없었어요.”
으음, 나는 변태인가?
그녀의 사과가 왠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원장님으로부터 사과를 듣는 건 매우 드문 일이며, 심지어 그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 원장님의 태도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처음 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과를 한다는 건, 그녀가 나를 그만큼 신경 쓴다는 거잖아? 20년 전과는 다르게 말이야.
나는 주제를 바꾸려고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원장님, 세이렌들이 말하길 저보고 바다님이래요.”
“바다님? 어떤 뜻이죠?”
“쓰읍,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그게 인어들의 문화로 어… 음, 바다님이 신이라는 뜻이라네요?”
그녀의 눈동자가 커진다.
놀란 게 아니다. 입꼬리도 같이 올라가는 걸 보면 분명 어이가 없는 것이다.
나는 수습하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세이렌들이 저한텐 힘이 통하지 않는데요. 이상하지 않아요? 정말 세이렌들이 신수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왜 제겐 통하지 않았을까요?”
변명,
그럼에도 원장님은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으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예상 못한 격한 반응에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상당히 부끄럽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어쩌면 ‘나 사실 신처럼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돌려서 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쩌자고 물어봤을까.
게다가 이어진 원장님의 대답에 세이렌들이 그랬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와이셔츠 주머니의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이렌들의 ‘기억 읽기 노래’는 일종의 마법과 비슷해서,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막아 줬을 거예요. 하하하, 다정 씨.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어떻게 자신이 신이라는 그런 광오한 착각을 하시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신일 리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그걸 물어보는 건 또 뭐예요? 정말 재밌어. 신이라니! 드래곤로드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는 농담인데!”
아니, 내가 언제 신이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원장님은 다소 침착한 성격이었으나, 지금은 똑같은 의미의 말을 비슷한 문장으로 되풀어 말하며 나를 놀리는 게 분명했다.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이고 있자 진정한 원장님이 세이렌과 인어에 대한 말을 꺼냈다.
“후유, 어쨌든 인어들은 적응되면 곧 재활 시스템을 적용시킬 거예요. 그들은 충분히 지구에서도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인어들을 사회로 내보낼 생각이세요?”
“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은 마물원에 많은 도움을 줄 거예요. 세이렌들이 ‘정말 존재해서’ 다행이지 뭐예요? 앞으로 우리 일이 많이 편해지겠네요. 호호.”
“인어들이 도움을 줘요?”
“정확히는 인어들을 도와주는 세이렌들이 우릴 도와주는 거죠. 아무래도 ‘기억을 지울’ 일들이 많아질 테니까요. 호호.”
자주 보지 못하는, 아니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고텐션의 원장님을 나는 묵묵히 바라봤다.
‘설마.’
그녀의 말에 문득 한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맨인블랙’ 그 영화에서 외계인에 대한 기억을 편리한 플래시 기계로 뚝딱 지워 버린다. 설마 원장님은 세이렌들을 기억 지우개로 쓸 생각이신 건가?
…….
‘처음부터?’
어쩌면 원장님은 처음부터,
인어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자 원장님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이제 기대하시던 부분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두둑한 돈 봉투가 나타났다. 내가 기대하는 부분이란 특별 수당금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라면 간식을 앞에 둔 발바리처럼 헥헥 거렸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시큰둥했다.
“이번에 일을 잘해 줘서 성과금과 휴가를 챙겨 드릴게요. 일주일 정도 좋은 곳에서 요양하다가 오세요.”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분명 평소와는 달랐겠지.
원장님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요? 부족해서 그래요? 더 챙겨 드려요?”
나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그냥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용기 내어 말했다. 이번에 인어들을 구출하며 헌터들과 대립했다. 아니, 대립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렀지.
이제 내 힘에 대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뭐 어쩌겠어.’로 일관하던 전과 달라졌다. 강해지면 좋다. 전이 이후의 세계가 오더라도 내가 강하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 전적으로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일 년 반, 나와 보낸 그 시간이 원장님에게도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용기 있게 말했다.
“다른 걸 원해요. 턱시도, 여의주, 혹은 오리하르콘 브로치처럼. 제가 강해지는 어떤 것을요.”
세상은 변했다.
20년 전에 강해진다는 의미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많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거나, 혹은 꿈을 이룬다든가. 단순한 의미로 강해진다는 의미는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나사 빠진 사람들의 소망이었다. 20년 전에 개인은 아무리 강해 봤자, UPC 챔피언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셀전을 앞둔 손오공처럼 순수한 강함만을 원했다.
세상은 불합리해져서, 강할수록 많은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다. 만약 내가 약했으면 인어들은 모두 잡혀가고, 나는 북극해에 시신이 되어 둥둥 떠다녔겠지.
내 말에 원장님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일단 화를 내거나 무표정한 게 아니라 웃었다는 건 긍정적인 의미겠지?
하지만 원장님의 대답이 너무 늦자 혼자 어색해진 나는 되물어야 했다.
“안 되나요?”
이번엔 원장님이 대답해 줬다.
“좋아요. 조만간 좋은 걸, 아니 좋은 만남을 갖게 해 드리죠.”
*
인어들이 마물원의 식객으로 지낸 지도 두 달이 넘어갔다. 어느 날, 원장님에게 들었다. 얼마 전 인어들이 바깥으로 외출을 했었다고.
인어들의 보금자리와 마물원은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여 얼마든지 원한다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달이 되어도 보금자리에 틀어박혀 있기에 아직 인어들이 준비가 덜 됐나 싶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어보니, 원장님은 인어들이 변화를 맞이한 원인으로 ‘드라마’를 손꼽았다.
한참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내용도 참 인어들에게 딱 맞아떨어지게도 ‘인간과 이종족’의 사랑이 주제였다.
남주가 엘프 왕자, 여주가 가난한 인간 여자,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아니, 전형적이진 않지. 남주가 인간이 아니니까.
사랑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
이 드라마가 인어들에게 어떤 자극제가 된 듯했다. 지금까지 배신만 당해 온 ‘인간 남자’가 아니라 다른 종족과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회.
‘백마 탄 기사’가 아니라, 백마 탄 엘프, 백마 탄 오우거. 아, 오우거는 조금 아닌가.
어쨌든 뭐 인간끼리 나누는 사랑이 아니더라도 잡탕찌개인 지구는 사랑의 가지가 수없이 많아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어들아, 행복을 누리렴.
…….
하지만 며칠 뒤, 나는 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어들의 수장이 ‘수장직’을 내려놓고 보금자리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났는데, 그 이유가 새로운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놀라웠다.
그 양반이…….
역시 겉보기로 판단하면 안 돼.
설마 가장 빨리 사랑을 찾은 인어가 그 양반일 줄이야.
‘젠장.’
솔직히 너무 하잖아.
나는 아직 솔로인데 백 년 이상 홀로 지내던 인어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바로 사귀어 버리다니. 나는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사랑을 혐오하던 인어들보다도 더욱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쁘지만,
슬픈 날이었다.
*
퇴근하고 집에서 맥주나 마실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크게 당황할 이유는 없겠지만 나는 간담마저 서늘해졌다. 일단 내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배달원밖에 없다. 그리고 치킨 배달원은 이미 두 시간 전에 왔다 갔다. 친구도 없고, 내 집을 방문할 만한 아는 사람도 없다.
원장님이라면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에 그냥 내 옆에 뽕하고 나타났을 테니 원장님도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살짝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인터폰 화면을 바라봤다.
“뭐야?”
초인종을 누른 건 정말 예쁜 미녀였다. 저렇게 예쁜 얼굴은 처음 본다. 하지만 어딘가 풍기는 분위기가 익숙하다. 대체 누구지?
고민했다.
상대가 미녀이기에 더욱 고민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꼬마, 식칼을 든 남자, 미녀’라는 세 가지 경우에, 나는 가장 문을 열어 주지 말아야 할 대상을 미녀라고 생각했다.
꼬마는 벨튀를 하는 초딩일 수도 있고, 식칼을 든 남자는 선의의 마음으로 냉장고의 재료를 요리해 주러 다니는 착한 요리사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녀는 그런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 왜냐면 내 집에 미녀가 찾아올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띠리리!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문을 열어 줬다.
아파트 입구가 열렸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 2분쯤 지나면…….
딩동!
내 집의 현관문에 도착했겠지.
일단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미녀가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당연히 안 됩니다.”
당황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무어라 대답이 들리지 않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어 줬다.
젠장,
실제로 마주하니 더 예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보다, 저런 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더 궁금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집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왔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어.
말을 하지 않고 경계만 하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차 끓여 드릴게요.”
제멋대로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나는 주의 깊게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다. 아무도 모르는 남자의 집에 들어와 차를 끓여 준다.
이상한 습성을 가진 새로운 이종족인가? 아니면 차를 끓여 줌으로써 금품을 갈취하는 신종 사기? 그럴 리가.
차를 타자 향긋한 꽃향기가 퍼졌다. 혼자 살아 아저씨 냄새가 진동하는 내 집이 아주 드물게 좋은 향기로 가득해졌다.
“마셔요.”
식탁에 앉아 차를 건네는 미녀.
나는 주춤주춤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차를 홀짝 거렸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아직 사태 파악이 덜 끝났기 때문이다.
“받아요. 해백초예요. 백 년에 한 번 열린다는 귀한 해초이니 차로 다려 먹으면 좋아요.”
그녀가 선물을 건넸다.
그것으로 어색한 다과회는 끝이 났다.
“아, 당신 인어였어요?”
해백초는 인어들이 가꾸는 특별한 산호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라더니 인어였구나. 하지만 저렇게 예쁜 인어는 보지 못했는데.
“그럼 잘 지내세요. 가디언이시여.”
“아, 네.”
손님맞이가 형편없었네.
하지만 뭐 인어들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일도 없고 해서 현관문까지만 배웅해 줬다.
식탁에 돌아와 마시지 않는 차를 바라봤다. 향긋한 냄새. 맛있어 보여 입을 갖다 대 홀짝여 봤다.
“이거?”
깜짝 놀라 재빨리 현관문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복도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젠장, 근데 어떻게 저렇게 변한 거지? 페이스오프 수준이 아니잖아. 그 짧은 시간에 체형과 목소리, 얼굴까지 바뀐다니!
차 맛에서 그녀를 떠올렸다.
뚱보 인어 수장이 대접하던 차 맛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풍기는 분위기와 마나도 인어들의 수장과 똑같았다. 다만 생김새가 너무 달라 애초부터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눈치채지 못했다.
인어들의 수장이 수장직을 내려놓고 사랑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내게 작별 인사라도 하려고 온 건가.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그래도 저 정도 수준으로 예뻐지는 건 반칙 아닌가.
*
다음 날, 마물원에 출근하여 인어 수장에게서 받은 해백초를 커피 원두 옆에 놨다. 차를 즐겨 마시지 않아 집에서 마시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출근한 원장님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원두를 꺼낼 때였다. 그녀는 해백초를 발견하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이거 다정 씨가 가져왔어요?”
“아, 네. 어제 인어 수장이 선물해 주고 갔어요.”
“대단하네요. 이거, 영약 수준인데요?”
영약?
먹기만 해도 마나가 퐁퐁 솟아오르는 천하의 가장 값진 약?
나는 덩달아 깜짝 놀라 달려갔다.
“진짜예요? 영약이라고요?”
“오래된 해백초예요. 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네요. 바다의 기운을 머금고 백 년을 자랐으니 뛰어난 영약임이 틀림없죠. 다정 씨, 이걸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다니 정말 대인배네요!”
조용히 손을 뻗어 해백초를 도로 가져갔다. 내 행동에 원장님은 피식 웃으며 원두만 들고 갔다.
“이게 영약이라고?”
그럼 당연히 혼자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