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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93화 (93/258)

# 93화 검은 사제 (1)

음음음~

아직까지도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 세이렌들의 노래를 허밍하며 해백초 잎을 찻주전자에 넣었다.

“아침마다 몸이 불끈불끈한 게 아주 대단해.”

깊게 우려낸 해백초차를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입을 오므리고 마셨다. 해백초가 영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침마다 가지는 티타임이다.

해백초를 음용한 지는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는 효능을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다. 시들시들하던 게 해백초차를 마신 후로 아침마다 태양을 향해 피는 해바라기처럼 꼿꼿해졌다.

영약을 원래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건 아니겠지만 마나가 풍만해지며 덩달아 생기는 기분 좋은 효과였다.

“으음, 좋아.”

몸 전체의 양기가 활성화되는 기분, 예로부터 천하에 으뜸인 약들은 정력제를 겸한다고 했다. 당장 쓸 일은 없더라도 미리 대비해 두는 게, 그 상황이 와도 기죽지는 않을 거 아닌가?

원장님도 외부 세계(지구가 아닌)로 일을 하러 갔다. 나는 느긋하고 만족스럽게 아침 티타임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소파에 앉아 차를 음미할 때였다.

관리실 유리창 너머로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단지 마물원을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었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초인종이 어디 있는지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상하네.”

마물원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마물원 관람은 원장님이 특정한 시기에만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원장님에게 볼일이 있는 자들이다. 당연히 드래곤과 만남을 원하는 자들이기에 인간은 드물고 하나같이 비범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평범해 보였다. 풍기는 마나도 일반인은 넘어 보였으나 ‘용’을 찾아올 만큼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복장만은 특이하다.

검은색의 단정한 통옷을 입고 허리에 빨간 줄무늬가 있는 검은 복대를 차고 있었다. 나는 그 옷이 예전에 봤던 영화에서 신부가 입고 나오던 사제복이라는 걸 생각해 냈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없을 뿐더러 그 대상이 신부라면 더더욱 아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찻잔을 내려놓고 관리실 바깥으로 나갔다.

예스러운 철제 대문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던 남자는 날 발견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인사를 건넸다.

나는 반갑다는 말에, 안녕하냐고 대답하고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그는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신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과 정리된 머리. 먼지 한 톨 없는 구두. 50대로 보이는 중년인의 얼굴은 구김살 없이 편안해 보였으며, 목소리 또한 나긋하고 조용했다.

“오타방의 사제입니다. 전현前賢의 기록에 따라 파고의 성자를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신부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타방의 신부? 파고의 성자?

하지만 인과 관계를 유추할 수는 있었다. 신부님이 우리 마물원을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 우연이 아닌 손님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내뱉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마 저자는 또 내가 모르는 전이 이후 생겨난 어떤 신비하고 기묘한 단체 소속일 것이고, 파고의 성자라는 자는 분명 원장님일 테지.

일 년 반의 마물원 생활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폭을 넓게 만들어 줬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사실부터 확인했다.

“신부님, 우리 원장님을 아십니까?”

“이곳이 파고의 성자께서 기거하시는 은신처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물원이라든가, 원장님이 드래곤이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원장님이 고의로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기다려 주십시오.”

이럴 때는 그냥 원장님에게 물어보는 게 최선이다. 외부 세계 출장일 때는 가급적 연락을 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으나, 섣부르게 일을 처리 하다가 더 심한 일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원장님? 원장님?”

나는 그가 듣지 못하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원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아, 정말!

그녀는 곧바로 연락을 받았으나 짜증을 잔뜩 내며 날 나무랐다. 역시 원장님이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된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으므로 침착히 그녀의 짜증을 받아 냈다.

-연락하지 말라고 했죠. 축하해요. 다정 씨 덕분에 방금 300만 마리의 기생 마물들이 발작을 일으켰어요. 다정 씨는 다 좋은데, 가끔씩 내 말을 너무 허투루 듣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젠장. 연락 한 번 했다고 거 엄청 뭐라고 하네. 물론 지금하고 있는 통신이 단순히 전화로 통화하는 게 아니라 차원을 넘나드는 고도의 마법이란 사실을 그녀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마나에 민감한 마물들이 달아날 수 있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으며,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이라면 무마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부님의 방문이 잘 몰라도 왠지 중요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래요?

한참 잔소리하던 원장님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마물원으로 누가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원장님을 찾는 것 같아서요.”

나는 마물원에 방문한 신부님에 대해서 말해 줬다. 그가 오타방의 사제라는 자이며, 파고의 성자를 찾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자 원장님은 짧은 탄성을 지르며 대답했다.

-아~ 벌써 오타방이 활동을 재개했군요. 좋아요. 다정 씨, 신부에게 말해요. 다정 씨가 파고의 성자의 대리인이며 모든 임무를 위임 받았다고.

파고의 성자가 원장님이다.

하지만 성자니 오타방이니 사제니 당체 뭔 말인지는 아직 설명을 안 해 줬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 앞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입을 쭉 내밀며 얼굴로 있는 힘껏 불만을 표시했다. 당연히, 목소리는 낭랑하게 말하면서.

“네, 원장님! 근데 그게 뭐예요? 파고의 성자? 신부님이 왜 원장님을 찾아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대충 알아들어요. 그는 구마 사제이나, 마물을 악마와 동일시하던 바티칸과 다르게 마물을 신이 창조한 생물의 일면으로 보는 오타방이라는 종교 분파의 사제예요. 제가 ‘악마스러운’ 마물을 구마 하는 데 몇 번 도움을 준 적이 있죠. 다정 씨, 그는 동방 종교계에 큰 영향을 끼치니 중히 여겨야 하는 인맥입니다. 아마 구마 의식으로 찾아온 것 같으니 다정 씨라면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고 필요한 건 ‘아홉 번째 사물함’에 있으니 찾아 쓰세요. 그리고 이제 진짜 연락하지 마세요! 300만 마물들의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요.

지직-!

통신은 그렇게 끝이 났다.

“뭐래…….”

어안이 벙벙한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원장님이 ‘용’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직책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마 사제? 바티칸?

“엑소시스트 말하는 거지?”

유명한 영화, 만화, 소설에서 자주 나온다. 구마 사제, 엑소시스트. 악령을 퇴치하는 신부들이다.

새삼 생각해 보면 마물들의 힘은 ‘악령’처럼 기이하긴 하다. 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악마, 악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제법 귀찮은 일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귀신이니 뭐니, 질색이다. 하지만 원장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라고 했으니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큼큼-!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방금 전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하게 걷는 대신에 걸음을 규칙적으로 걸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문 앞에 긴 시간을 세워 뒀음에도 신부님의 표정은 온화했다.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파고의 성자께선 공적인 일로 외출을… 제가 그분의 대리자이니 필요하신 건 제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신부에게 나를 파고의 성자의 대리인으로 소개했다. 마물원 일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젠 종교적인 영역이라니, 연기 솜씨도 덩달아 늘어나는 기분이다.

신부님이 화색하며 말했다.

“파고의 성자의 도움을 받으러 왔으나 안 계시군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파고의 성자의 대리인이시라니 잘 찾아왔군요. 오타방의 구마 의식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렇습니까? 일단 들어오시지요.”

사실 아직까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난 알아듣는 척하며 그를 관리실로 안내했다.

*

신부님은 전혀 종교적인 활동과 관련이 없는 관리실의 풍경에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커피를 찾았으나 커피 원두가 보이지 않았다. 원장님이 이번 작업은 오래 걸린다더니 다 가져간 모양이었다.

남은 건 해백초밖에 없었다.

‘차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하필 차를 마시던 와중에 신부가 찾아와서 탁상에는 내가 마시던 차와 찻물이 담긴 주전자까지 있었다. 고민하던 난 찻잔을 들고 정수기에서 냉수를 뽑아왔다.

“날씨가 상당히 덥습니다.”

“고맙습니다.”

더위를 핑계로 냉수를 건넸다. 나는 주전자를 힐끔 보다가 내 찻잔에 가득 따라 부었다. 그럼에도 찻물은 아직 한 잔 분량만큼 남았다.

급히 차를 마시고 다시 따르려고 할 때였다. 신부님이 냉수를 다 마시고 나를 보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이미 차를 따라 마신 나와 주전자에 담겨 있는 차.

그에게 따라주지 않으면 어색한 꼴이 되어 버렸다.

괜히 뜨끔한 나는 결국 신부님의 잔에 해백초 우린 물을 부어 줬다.

“몸에 상당히, 아주, 특출하게 좋은 차입니다.”

신부는 차를 한 입 마셔 보더니 크게 눈을 뜨며 놀라워했다. 생각해 보면 도덕적 순결을 유지해야 하는 사제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음료일 수도.

“정말 그렇군요. 단지 차일지언데 깊은 힘이 느껴집니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다행히 신부님은 만족해하셨다.

나는 그가 눈치 못 차릴 만큼 작게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남은 찻물을 모두 내 잔에 부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해백초를 집에 도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파고의 성자님의… 시종이자 대리인인 정다정이라고 합니다.”

차를 마시며 통성명을 했다. 그는 오타방의 사제이자 김정호 신부였다.

“구마 의식 때문에 찾아오셨다니, 까닭을 말씀해 주시지요, 신부님.”

짧은 티타임이 끝나고 신부님에게 본론을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 일은 파고의 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언급하며, 내가 대리인이니 믿는다고 거듭 당부했다.

나는 원장님이 나더러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고 느꼈다.

“고난스러운 일입니다. 무리한 부탁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김정호 신부가 원장님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근방에서 강력한 악령이 어린 소녀에게 빙의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타방의 의식만으로 잠재울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악령입니다. 이걸 보시지요.”

신부가 건넨 건 갈색 서류 봉투.

그 안에는 사진 몇 장과 자료가 있었다.

“어머, 아니. 맙소사.”

사진을 보자마자 흠칫 놀랬다.

세상에, 저게 뭐야.

나는 자료들을 확인하며 내 예상이 약간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구마 의식, 악령을 퇴치하는 것. 나는 그게 마물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악령이 하는 괴상한 짓거리들은 모두 마물이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건넨 사진과 자료들을 들춰 보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거 진짠가?’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악령의 짓에 당한 가련한 자들입니다. 이젠 모두 죽고 소녀만이 살아있으나 안타깝게도…….”

사진에는 목이 돌아간 소녀, 검은 동공만을 지닌 할아버지, 또한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기괴하고 으스스한 사람들이 찍혀 있었다.

자료만 보면 영락없는 ‘악령’에 대한 것이다.

‘일가족이 악령에 당했다니.’

자료엔 현대 의학, 민속 신앙, 주술, 그리고 구마 의식으로도 이들을 구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난 컨저링의 로레인 부인이 아니라고.’

나는 살짝 혼동이 온 듯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 괴기스러운 현상이 정말 마물의 짓인가? 설마 진짜 악령… 귀신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 힘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지? 마물의 소행이라면 상관없지만 정말 악령이라면 진짜 퇴마사를 불러야 할 텐데.

‘제길, 원장님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원장님에게 제대로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다시 연락한다면 아마 악령은 물론 사후 세계를 직접 마주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신부님 말씀은 구마 의식을 도와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염치없지만 파고의 성자님의 가르침으로도 저희 오타방의 사제들은 이 끔찍한 악령을 구마 할 수 없었습니다.”

목이 돌아간 소녀의 사진.

단지 사진이었으나 꺼림칙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끔찍하고 강력한 악령이라는 그의 말, 사실인 것 같았다.

문제는 악령이 마물의 짓인가, 아니면 정말 ‘악령’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원장님이 찾으라던 사물함부터 뒤져 보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양해를 구하고 관리실에서 나와 창고로 향했다. 원장님은 창고의 아홉 번째 사물함을 찾으라고 했다.

창고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큰 사물함들은 내가 알기로는 ‘옷 보관함’이었다. 내가 아직 힘을 깨닫기 전 샐러맨더를 만나러갈 때 사용하던 ‘용암 슈트’, 아라크네를 만나러 갈 때 사용했던 ‘기름 슈트’도 이 사물함에 넣어 두었지.

“뭐야?”

아홉 번째 사물함을 열자 검은 사제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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