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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94화 (94/258)

# 94화 검은 사제 (2)

얼떨떨한 마음으로 사제복을 들춰 보니 사이즈가 내게 꼭 맞춘 것처럼 알맞아 보였다. 사제복의 안쪽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잡혀 꺼내 보니 물이 담긴 작은 유리병과 한 장의 종이가 있었다.

“대체 내게 어떤 일까지 시키려는 거야.”

나는 종이에 써진 원장님의 조언에 한숨을 내쉬었다. 내용은 지침서에 가까웠다. 검은 사제복은 내 것이었으며 ‘구마 의식’을 치를 때 읊조릴 라틴어 주문(친절히 한글 발음이 표기된)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적혀 있었다.

[물론 앞서 말한 모든 건 보여 주기 식으로 실전에서는 다정 씨의 능력으로 재량껏 행동하면 됩니다.]

지침서 마지막에 적힌 원장님의 말. 뭐야, 마치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준비한 것처럼 보이잖아.

원장님은 이런 상황이 오길 예상했다는 거다. 일단은 마물원 직원으로 들어온 내게 언젠가 구마 사제 역할까지 맡기려고 준비했다는 것이다.

“마태오 8절 28장,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나는 진짜 악령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악령’이란 보편적인 의미에서 불리는 악령을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게 신부님이 말하는 악령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일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당연히 악령이 아니라 기괴한 어떤 마물일 것이다. 나는 구마 의식을 치르는 척하며 평소처럼 평화롭게 마물과 대화를 나누거나, 아니면 조금은 과격한 폭력적인 몸의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속에는 턱시도를 입은 채, 위에 검은 사제복을 걸친 나는 관리실로 나와 신부님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하지만 정말 ‘악령’이라는 게 있다면… 그 생각에 앞장 선 신부님을 뒤따라가는 내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느려지고 말았다.

*

신부님을 따라 악령 들린 소녀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쓸데없이 마당이 넓은 집이었는데 외국의 대저택처럼 나무들로 꽉꽉 채워 있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늘로 인해 어둡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젠장, 으스스하다. 서울 외곽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어느 공포 영화의 도입부로 연출하기 딱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귀신이 저런 곳에 살지, 달리 어느 곳에 살겠어.

“다른 신부님들은 오지 않습니까?”

“부끄럽게도 악령의 기운을 버틸 힘을 가진 사제가 저밖에 없는지라…….”

신부님과 단둘이 구마 의식을 해야 했다. 눈을 속이기에는 편리하겠지만, 정말 만의 하나 일이 벌어지면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다.

현관 앞에서 신부님은 성수와 성경책 등을 챙겼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더니 긴장해 있는 나를 불렀다.

“검은 고양이, 불길의 징조군요.”

검은 고양이?

신부님의 시선이 간 곳, 담벼락 위에 검은 고양이가 보였다. 나는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야옹아!’라고.

‘네가 왜 거기 있냐?’

녀석이 내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이는 고양이라는 건 얼마 전에 알았다. 하지만 혼자서 산책도 잘 가고, 밤이면 매일 돌아왔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왜 하필 악령의 집에 있는 거냐. 나를 따라온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 녀석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젠장,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녀석은 유일하게 내가 ‘읽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앞장서겠습니다.”

신부님의 눈치를 보며 야옹이를 불렀으나, 녀석은 본체만체했다. 결국 나는 찝찝한 의문을 남겨 둔 체 신부를 따라 으스스한 집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

현관을 열자 유럽식 저택 특유의 긴 복도가 나타났다. 어둡고 꺼림칙했다.

“막대한 원한이 느껴집니다. 더욱 강해지고 있어요.”

“네, 그렇군요.”

실제로 나에게 ‘막대한 원한’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기분 나쁜 장소일 뿐, 다른 건 쥐뿔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신부님의 말이 많아졌다.

얼굴 안색을 살피니, 하얗게 질려 있다. 꽤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덩달아 무서워진 나는 지침서에 적혀 있던 라틴어 주문을 속으로 읊조렸다. 원장님은 필요 없다고 한 주문이지만 혹시 모르지!

주머니 속의 성수(사실 성수가 아니라 정수기 물일지도 모른다.)가 담긴 유리병을 매만지며 복도를 걸었다.

“큭, 기운이 2층에서 느껴지는군요.”

그때였다.

신부가 말을 하자마자,

다다다다다-!

2층에서 격하게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피부의 잔털이 쭈뼛 서고 말았다. 한 소녀가 뛰어다닌다기에는 발걸음 소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식은땀이 난다.

점점 흐름이 내가 싫어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자극은 익숙지 않았다.

젠장, 차라리 흉악한 마물이었으면 더 좋겠다.

“올라… 가야겠지요?”

내 물음에 신부님이 답했다.

그도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소녀와 마주치면 제가 구속 주문을 외울 테니, 성자님의 대리인께서 구마 의식을 해 주시지요.”

그는 날 의지했다.

젠장. 일단 말해 둔 게 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맡겨 두세요.”

맡기긴 개뿔.

당장 신부님의 팔짱을 끼고 찬송가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아 가며 2층으로 향했다.

‘사치코야, 있다면 빨리 나와라.’

머릿속으로 자꾸 공포 영화 속의 진짜 주인공, 귀신들이 생각났다. 긴 머리의 여자가, 사지가 꺾인 채 우다다 내려오면 장담하건대, 섬머솔트킥을 날려 버릴 것이다.

나는 스스로 강하다고 다짐하며 신부님을 뒤따라갔다. 사실 우스운 꼴이다. 별의별 마물이랑 지내던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은 내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

2층 복도까지 올라갔다.

나는 집의 인테리어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솔직히 미안하지만 이러니 악령이 들지. 복도 벽에 걸린 거대한 거울이나 몇 점이나 걸린 인물화. 시든 꽃과 기괴한 장식품들. 일부러 공포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 놓은 것처럼 섬뜩한 취향이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소녀의 방문 앞에 당도할 때까지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무사히 노란색 조화로 장식되어 있는 방문 앞에 섰고, 신부님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고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뭐지?’

그리고 나는 그가 문고리를 돌리기 전에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상했기 때문이다.

분명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복도를 지나가며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있었다. 단지 착각이라고 생각하여 모른 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장소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귀신을 믿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괴기한 현상을 맞이할 때 능구렁이처럼 모른 체하고 상황을 넘어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즉, 나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목격할 수 있었던 많은 상황을 애써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복도를 지나치며 보았던 그걸 ‘별일’이 아니라고 취급하기에는 점점 악령의 존재가 확실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복도의 중간에 걸린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봤다.

“아이고.”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 나를 노려봤던, 거울에 비춰진 내가 아닌 누군가. 나는 멀찍이 서서 거울을 바라봤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무서움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물론 무섭긴 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왜 안 사라지냐?’

거울 속의 그녀는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젠장, 현실은 공포 영화와는 달랐다.

보통 영화에서 긴장감 고조를 위해 이런 신을 넣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발견하면 곧장 사라지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저건 사라지지 않았다. 나와 진득하게 눈싸움이라도 할 모양인가 보다. 아니, 눈이 없으니 눈싸움은 애초부터 성립이 안 되는 게임이지.

그녀는 눈과 코와 귀가 없었다. 단지 입만이 있었는데 입꼬리가 눈이 있어야 할 곳까지 기이하게 올라가 있었다. 입안은 좁쌀처럼 촘촘한 이빨들로 가득했는데, 저 입으로 무언가를 물어 버린다면 분쇄기처럼 갈아 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으악!”

내 모습에 신부님도 다가왔다.

의아해하던 그는 거울 속의 그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빨리 성수를 꺼낸 신부는 유리병 채로 거울을 향해 던졌다. 덕분에 거울이 깨지고 거울 안의 그녀도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사라진 이유가 성수 때문이 아니라 유리병이 깨질 만큼 세게 던진 신부님의 완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해.’

왜냐하면,

거울 속 그녀를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악령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주한 그녀가 내뿜던 기묘한 힘이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을 진정시키고 이젠 내가 앞장서 소녀의 방 문을 열었다. 침대에 하얀 천으로 손발이 묶인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뭔가를 속삭이며 녹색 구토를 했다. 나는 사뿐히 뒤로 피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의 목이 180도로 돌아갔다가 다시 원상 복구가 되었다. 영화처럼 360도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소녀가 무언가에 쓰인 건 맞았고, 그로 인해 소녀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달랐다. 직접 마주하니 알 것 같다. 이젠 완전히 겁이 사라진 나는 담담히 신부님을 불렀다.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지요. 제가 신호하기 전까진 절대 이 방에 들어 오셔선 안 됩니다.”

신부님은 군말 없이 내 말을 들었다. 나와 달리 꽤나 무서운 모양이다. 신부님이 나가고 문을 걸어 잠근 난 한숨을 쉬며 소녀를 돌아봤다.

“야.”

소녀는 또다시 녹색 구토를 했다.

이번 녀석은 상당히 매너가 없는 놈이다.

“사람이 말하는데, 시벌럼이.”

나는 다가가서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소녀가 다쳐서는 안 되기에 너무 세게 때리는 것은 안 됐지만 그래도 충분히 고통을 줄 만큼은 때렸다.

[…$#&%, ……!]

“되도 않는 말 하지 말고. 너도 내 말을 알아들을 것 아니야?”

소녀는 꺽꺽대며 괴로워했지만 나는 봐주지 않았다. 이젠 이마를 빡 때리고 인상을 팍 쓰며 기선을 제압했다.

“콱 마, 뒤질라고. 안 나와?”

나는 저런 ‘마물’의 유형을 원장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마물이다. 거울 속의 여자도 마물이겠지.

[…^&$%, ……!]

“뭐라는 거야. 너 내말 들리지. 제대로 말 안 할래?”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꺼내서 놈의 이마에 지그시 눌렀다. 소녀 안에 깃든 놈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독한 놈이라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하, 새끼. 끈질기네.”

내가 이렇게 담담히 놈을 대하는 건 이미 원장님이 이 방법을 한 번 보여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는 달라 보이지만 일단 놈은 ‘기생’ 마물이다.

‘미라 마물’처럼 솔로몬의 탑에서 온 마물들인데 숙주에 기생하며 생명을 갉아먹든가, 세뇌시켜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든가. 아무튼 고약한 짓을 일삼고 다니는 유해 마물이었다.

진짜 악령이었다면 쫄았을 테지만, 정체를 안 이상 놈은 그냥 약한 기생 마물에 불과했다. 벌써 사람을 해쳤으니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우리 마물원은 무조건 마물의 편에만 서는 곳이 아니었다.

‘인간’도 지키는 것이다.

끼이이이이-!

기생 마물에게 독과 다름없는 오리하르콘을 사정없이 이마에 문질렀다. 그러자 소녀의 입과 코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흩어지다가 뭉치더니 이내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놈은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작은 말이었다. 크기는 손바닥 한 뼘 정도라 위협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놈이 말했다.

[우리 일을, 방해하려 마.]

“새끼. 말할 줄 알면서.”

나는 예전에 봤던 기생 마물과 다른, 놈의 생김새에 즉시 도감을 꺼내 마물 확인용 레이저를 비추어 봤다. 원장님의 만능 마물 도감에는 놈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나이트메어]

위험도 : 세계 멸망

정보를 확인하던 나는 기겁했다.

도감의 시작 머리부터 위험도가 세계 멸망이란다. 세계멸망 등급, 저놈이 마물원 입사 초기에 원장님이 보여줬던 케르베로스와 글루투니 급이라는 거야?

나는 침착히 도감을 읽어 내려갔다.

[기생 마물, 나이트메어. ‘그림자 세계’에서 온 다른 마물들과도 다른 극히 이질적인 존재. 각 개체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시공간이 통용되지 않는 그림자 세계의 동족들을 불러, 순식간에 한곳으로 집결하는 성질을 지녔다. 최대 집결 마물 수, 추정 백만 마리. 개체 하나하나의 위험도는 미약하나 모일수록, 그림자가 크고 짙어지듯, 거대해지고 강해진다.

대처 방법은 목격 즉시 봉인하거나 기생 숙주와 같이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 많은 피해가 우려된다. 한 행성을 집어 삼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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