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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95화 (95/258)

# 95화 검은 사제 (3)

도감을 덮고 마물을 바라봤다.

나이트메어라는 녀석이다.

놈은 죽기 직전으로 상당히 괴로워했다.

“많이… 아팠니?”

내가 거칠게 다룬 건 인정한다. 독과 다름없는 오리하르콘을 문질러 댔으니. 하지만 죽지는 마. 젠장! 놈이 아슬아슬 죽을 듯 말 듯하는 꼴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원장님은 이 마물을 보면 절대 죽이지 말라고 했다. 덧붙여, 혹시 죽인다면 그에 따른 대가는 경악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최악의 상황과 대면했지만 생각해 보면 예정된 수순이다. 원장님이 없으니 봉인이라는 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기생 숙주인 소녀와 함께 나이트메어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근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과연 그런 잔인한 짓을 했을까?

젠장.

끼아아아-!

결국 나이트메어는 죽고 말았다.

나는 그 즉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괴현상을 목도했다. 벽지에 생겨난 얼룩이 꾸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소녀를 들쳐 업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제 곁으로 붙으세요!”

십자가를 들고 성경을 외우고 있는 신부님에게 외쳤다. 나이트메어가 불러온 파장은 커다랬다. 우습게 여기던 놈이었으나, 이 집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나는 이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문제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의 얼룩이 점점 번져 갔다. 나는 신부님과 기절한 소녀를 각각 어깨에 들어 메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맙소사.”

“신이시여…….”

하지만 바깥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우중충한 날씨이긴 했지만 색채가 짙었던 길거리는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해진 후였다. 초록과 갈색의 나무도 색을 잃어 검었고, 하늘도 밤하늘처럼 어두웠으나, 별과 달은 보이지 않았다. 흑백 사진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고립된 것 같았다. 마치 악몽에 갇힌 것처럼.

생각보다, 상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엿 됐네.”

내가 멍청해서 이런 상황에 치달은 걸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원장님의 말을 잘 들은 죄밖에 없다. 기생 마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내게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사용하라고 말한 것도 원장님이다. 이런 예외의 경우가 있다는 걸 언질하지 않은 원장님의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애써 상사이자 드래곤인 원장님을 탓하며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원장님이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치치직.

세상이 점점 그림자에 삼켜져 악몽처럼 변해 가는 와중에도 내가 별달리 무서워하지 않는 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해결해 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한 상사인 원장님.

“제발……!”

하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고, 고막을 괴롭히는 지지직 소리가 계속 될수록 마음은 초조해져 갔다.

마침내 세상은 완전히 그림자에 삼켜졌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그림자보다 더 짙은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놈은 검은색 도화지에 검은 크레파스로 덧칠한 듯하여 간신히 형체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신호기를 내려놓았다. ‘놈’이 나타나고 나서야 실감했다. 순식간에 몰아닥친 지금 상황이 내 일생일대의 위기라는 걸. 젠장, 차라리 귀신이 나았어.

그림자에 삼켜진 흑백 세계에 나타난 놈은 마물이었다. ‘문’도 존재했다. 하지만 감히 교감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너무 강대한 마력에 바라보는 것조차 버거웠다.

신부님은 놈이 나타나고 난 순간부터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다. 그는 마나를 가진 각성자였으나 놈과 마주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을 테지. 젠장!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신부복을 주워 입을 때만 해도 사소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도망치지는 못해.’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머리는 냉정해졌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으나, 도망갈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변해 버린 세계에서 놈을 죽이지 않는 이상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어떻게?

놈은 거대하고 짙은 그림자였다. 하지만 지면에 붙어 있는 그림자와 달리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덩치는 커다랬으나 정말 그림자처럼 부피를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살아 있는 그림자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상상력을 발휘해서 표현하자면 거대한 ‘말의 그림자’다.

그림자이기에 눈이 없어, 놈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팔의 잔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끼며, 놈이 확실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신부와 소녀에게서 떨어졌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놈은 나에게만 관심이 있다.

놈은 내 움직임을 따라 같이 ‘고개’를 돌렸다. 몸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만히 있고 머리만 돌린다.

내가 놈의 등 뒤에 설 때까지도 놈은 고개만을 돌렸다. 머리와 몸이 완전히 비틀린 꼴이 되었으나 놈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망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냅다 도망쳤다.

하아, 하아.

능력자인 내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내 애마 람보르를 타고 달릴 때보다 더 빨리 달린 것 같다.

하지만 이쯤 하면 멀어졌겠지, 하고 뒤돌아봤을 때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히고 말았다.

놈은 그대로였다.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정확히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이번엔 달리지 않고 뒷걸음질을 쳤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큰 보폭으로 열 걸음을 걸었을 때 나는 깨닫고 말았다.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옆에 있었다.

이젠 전속력으로 10초 동안 달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역시 내 뒤에 있었다.

‘그림자.’

정말 내 그림자처럼 놈은 내가 어딜 가든, 얼마나 빠르든 상관없이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도망을 포기했다.

신부님과 소녀에게서는 멀리 떨어졌다. 이 상황에 그들을 무사히 지킬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 그림자 괴물을 없애지 못하면 다 같이 죽는 건 매한가지다.

신부복을 벗었다.

그리고 총과 칼을 꺼내 들었다.

마취, 거미줄 트랩, 이런 건 통하지 않겠지. 그림자를 어떻게 공격하지?

쉬이이-!

내가 적대감을 보이자 그림자 괴물도 기이한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놈의 온통 검은 몸체로부터 붉은 촉수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긴장하며 놈을 바라볼 때였다.

갑자기 촉수가 순식간에 늘어나며 내게 쇄도했다.

콰앙-!

재빨리 마나로 방패를 만들어 막아 냈다. 내 마나를 매개체로 만들어진 방패는 원장님의 마도구, 웬만한 헌터들의 공격도 끄떡없이 막아 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방패는 촉수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고, 나는 데굴데굴 굴러 나가 떨어졌다.

“큭!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팔뚝이 얼얼하다. 턱시도 안이 축축하다. 흥분해서 고통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살가죽이 다 찢긴 것 같았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방패와 턱시도가 부서졌다.

젠장. 막아서는 안 돼.

피해야 한다.

놈은 이제 완전히 나를 죽이려 들었다. 수축된 붉은 촉수가 다시 찔러왔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막았으나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못할 것도 없었다.

일직선상으로 날아온 촉수를 피했다.

‘조금만 더.’

그러며 마나를 총에 집중시켰다. 내 마나를 총탄으로 쓰는 이 마도구는 마나를 모으면 모을수록 강력한 탄을 발사한다. 짐작하건대 저 정도 강력한 마나를 가진 마물을 죽이려면, 지금까지 중 가장 크고 강력한 한 발이 필요하겠지.

촉수는 파리를 낚아채는 개구리의 혀와 같았다. 수축하고 발사된다. 그러나 방패를 박살 낼 만큼 엄청난 위력이라도 단순한 공격이라 타이밍을 재면 피하기는 수월했다.

몇 번을 더 피했다.

포근이의 기운이 마도구 총에 넘칠 만큼 아른거릴 때였다.

“켜란다고 진짜 켜냐.”

놈의 촉수에 또다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 둘, 셋…….

검은 그림자 같은 몸체로부터 돋아난 일곱 개의 촉수. 하나의 촉수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더 성가셨다. 일곱 개, 피할 수 있을까?

야옹이와 교감했을 때를 생각해.

고양이의 반사 신경. 나도 모르게 야옹이처럼 잔뜩 몸을 부풀렸다.

슈욱-!

일곱 개의 촉수가 동시에 뿜어진다. 첫 번째 촉수는 몸을 돌려 피해 냈고, 이어진 촉수 공격도 허리를 비틀고, 팔과 다리를 기이한 각도로 꺾어 내,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누가 날 본다면 고양이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 후 바로 총구를 조준했다.

촉수가 다시 공격하기 전에,

지금까지 모은, 모든 마나가 응축된 탄환을 놈에게 쏘았다.

콰아앙-!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은 ‘총’이라기보다 ‘대포’에 가까웠다.

이 그림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불꽃의 기운이 나이트메어를 휘감는다.

끼이이이-!

‘효과가 있다.’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평범한 생물과는 달랐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놈이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불길에 당한 놈의 몸체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러니 그림자 괴물인 놈은 불에 약하다.

천만다행이지. 포근이의 기운이 놈과 상극이라서.

쉬이……!

나는 놈이 불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다시 힘을 모으며 불꽃 탄을 날릴 준비를 했다.

점점 놈을 휘감은 불꽃이 사그라지며 나이트메어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번만 더 먹이면 돼.’

방금처럼 촉수를 피하고, 불꽃을 먹인다.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으나 절망적이진 않다.

할 수 있다.

이 일이 끝나고 원장님이 돌아오면 떼를 써서라도 많은 보상을 달라고 해야지.

집채만 하던 놈이 이젠 트럭만큼 작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기세는 흉흉했다. 놈은 일곱 개의 붉은 촉수를 다시 내게 겨누었다.

작아졌어도 맞으면 위험하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피할 준비를 했다.

촉수가 수축되고,

이내 뿜어져 나왔다.

그래, 뿜어져 나왔다.

“아, 시발.”

일곱 개의 촉수는 수십 개의 촉수가 되었고, 수십 개의 촉수는 다시 수백 개의 가시가 되어 내게 쇄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화살 세례에 미처 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두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투투투툭-!

귓가에 스치는 섬뜩한 소리.

내 뼈와 살점이 부러지고 짓뭉개지는 소리. 촉수는 낚싯바늘처럼 내 몸을 꿰뚫었다.

휘익-!

나는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저항도 못 하고 놈의 촉수에 매달려 날아갔다. 아픔과 고통보다도 놈이 내게 할 짓이 두려웠다.

놈, 나이트메어.

놈은 아가리가 존재했다.

거울 속에서 봤던 여자처럼 날카롭고 촘촘한 수백 개의 이빨이 난 아가리.

나는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의 살점에 파고든 수백 개의 촉수만 아니었다면 저항이라도 해 봤을 텐데.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하.

아드득-!

마물원을 다니며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중 절대 산 채로 먹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놈은 날 씹어 댔다.

‘하하. 망할 새끼.’

나는 잡아먹히는 이 순간에 그만 웃음이 나고 말았다.

우습게도 턱시도에 불꽃의 기운을 두르니, 놈은 뜨거운 음식을 삼키는 것처럼 씹지 못하고 혓바닥만 열심히 굴리고 있다.

하지만 곧.

음식이 식으면 삼키듯 내 기운이 다한다면 나는 먹히고 말겠지.

‘감히 날 먹으려고 해?’

나는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온 것 치고는 기이할 만큼 침착했다. 내가 가끔씩 극도의 위기에서 미친놈이 된다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새삼 나 자신에 놀라고 말았다.

‘엿같이 아프네.’

팔 한쪽을 희생시킨다는 일념으로 왼팔의 촉수를 뜯어냈다. 하지만 낚싯바늘처럼 단단히 박혀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코쿠라차 여우원숭이로부터 얻은 능력인 ‘산성액’을 토해 내어 내 왼팔을 녹였다. 촉수를 녹일 만큼 강한 농도로 뱉어 냈기에 평소와 달리 내 살점도 녹고 말았다.

그리고 살점이 다 드러난 팔로 셔츠 앞주머니의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꺼냈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끈끈한 성질을 가진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이용해 손바닥에 붙여야 했다.

‘한 번 자라난 거, 두 번은 못 자라리?’

뼈만 드러난 팔은 금방이라도 잘려 나갈 것 같이 위태로웠다. 재기가 불가능한 수준의 상처겠지.

사실 저 왼팔은 내가 태어날 때 달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원래 있던 팔은 카르마 길드의 창잡이가 잘라 냈다.

저 팔은 황소 마물로부터 얻은 힘, 그로 인해 생겨난 팔.

미친 생각이고, 미친 방법이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팔, 두 번 못 잃어버리랴.

점점 마나가 바닥날 때였다.

나는 스스로 보호하던 모든 기운을 바깥으로 발산시켰다.

모 아니면 도.

통하지 않으면 죽는다.

쿵-!

불꽃에 휩쓸려 놈이 아가리를 벌린다. 하지만 죽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내가 노리는 건 다른 곳에 있었다.

“처먹어라.”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쥔 손을 놈의 목구멍에 쑤셔 박았다. 뼈가 끊어져, 그대로 내 왼팔은 놈에게 삼켜졌지만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끼이이-!

놈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내질렀다. 벌린 아가리를 다물지도 못했다. 나는 놈이 확실하게 오리하르콘을 삼키게 만들기 위해 왼팔까지 잘라 냈다.

다행이다.

통하는구나.

끄이이-!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기생 마물에게 극독임은 알았다. 단지 숙주가 된 소녀에게 문질렀을 뿐인데, 그 안에 있는 나이트메어가 죽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만큼 파괴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몸이 녹아내리던 놈은 이내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콰아앙-!

두 번의 폭발.

나이트메어는 순식간에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났다. 여파에 날아간 나는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았지만 아픔보다 환희가 더 컸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놈이던 조각들을 바라봤다. 산산조각이 나 길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액체들.

“후우…….”

발바닥에 달라붙은 놈의 사체가 기분 나쁘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놈의 체내에서 훌륭하게 일을 끝마치고 온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바라봤다. 더러운 타액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뽀뽀라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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