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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97화 (97/258)

# 97화 바탕스 (1)

뜻밖의 휴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원장님의 말에도 그다지 우려가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가 분노에 찬 다혈질이 된다는 뜻인데, 사실 평소 성격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노곤한 느낌을 원했는데 뜨거운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도 차가운 물만 나왔다.

“시벌, 비싼 집이면 뭐 해. 오늘까지 고쳐 달라니까 쥐뿔도 안 듣네.”

보일러 고장난 지가 언젠데 아직 안 고쳤나 보다. 한두 번이 아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도 못하는 거야? 대체 고급 아파트에서 왜 내 집만 이러는 건데.

짜증이 나 머리만 감고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려다가, 빨래해 둔 수건을 바깥 건조대에 널어놨다는 걸 깨닫고 물기만 털고 나왔다.

“아, 씹!”

추적추적 물기를 남긴 채 부엌으로 가던 나는 그만 젖은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넘어지며 레고 장난감 장식장을 손으로 짚었는데 유리창이 박살 났다. 내 몸은 평범하지 않는지라 피부는 찢어지지 않았지만 3,600피스 레고가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부서진 레고를 들어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다 문득 원장님의 말이 생각났다.

[이제 곧 정신이 오염되어 분노에 사로잡히고 되실 거예요.]

박살난 레고와 유리창을 보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다. 이건 불의의 사고다. 사실 이 정도 엿 같은 일을 겪으면 누구나 나처럼 화를 낸다. 절대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닌 것이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려고 했다. 냉장고에 맥주는 없었다. 사다 놓는다는 걸 깜빡했다. 치킨을 시켜먹고 남은, 김빠진 콜라를 들고 침대로 향했다.

스마트폰으로 웹 서핑이나 하다가 자려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나사 빠진 정신머리를 탓했다.

“산다는 걸 깜빡했네.”

나이트메어의 공격을 받으며 그만 박살 나 버린 스마트폰, 그동안 몸을 치유하며 기절하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다른 가전 기기라면 괜찮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건 불편하다. 딱히 연락 올 사람은 없지만 사실, 스마트폰 의존증은 전화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니까.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휴대폰만 사고 집에 있자.”

솔직히 나도 느끼고 있었다.

내 안에 헐크가 생겨나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휴대폰 하나 사는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는가? 나는 얼른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

“새로 나온 SSS99입니다. 최신형이고, 동급 모델 중에선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죠.”

나는 판매점 아저씨에게 가장 비싼 스마트폰을 달라고 했다. 돈이 넘쳐 나는데 가성비를 따질 이유가 없었다.

아저씨는 화색하며 새로 나온 휴대폰을 건넸다. 금색 케이스에 들어 있는 적당한 액정 크기의 스마트폰, 색도 레드메탈로 마음에 들었다.

“최신 기술로 소형 마나 탐지 기능을 탑재하여 위급할 시 근처 사무소…….”

디자인을 구경했는데 내가 고민한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연신 기능들을 설명했다.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이걸로 주세요.”

“이걸로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요금제와 할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요금제는 기존 걸로 유지해 주시고, 할부 말고 일시불로 할게요.”

나는 휴대폰 요금제를 비싼 걸 쓰지 않는다. 돈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바깥에 돌아다닐 이유도… 없어서 데이터 요금제도 필요 없다.

“저기, 고객님.”

내 말에 아저씨가 주춤거리며 말을 걸었다. 내가 바라보자 그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고객님. 14요금제로 바꾸시고 할부로 하시면 제가 최대한 더 싸게…….”

“됐어요.”

나는 또다시 아저씨의 말을 잘랐다. 왠지 그의 말을 끝까지 듣기 싫었다. 담배를 많이 피는지 드문드문 가래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저딴 놈이 판매원이라니. 쯧.

내 냉정한 태도에 아저씨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전국 최저가로 해 드릴 테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거치대하고 휴대폰 케이스도 사은품으로 드릴 테니까.”

“됐다니까요.”

그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았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도.

내 외모적인 장점이라고 하면 다소 착해 보인다는 것, 단점이라고 하면 그래서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다시 말을 하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이거 최신형이라 가격이 비싸요. 오히려 일시불보다 할부가 가격적인 면에선 더 싸게…….”

아저씨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나는 냉정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봤다. 보통, 이런 일이라면 크게 화날 일이 아니다. 그냥 말귀를 잘 못 알아먹는 판매원을 상대로 몇 번 호응을 해 주다가 결국 일시불로 해 달라고 말하면 된다. 평소의 나라면 화조차 안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참고 참으려고 해도 발산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부들거리는 손을 꽉 붙잡고 헐크를 달랬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해 분노의 타협점을 찾아냈다.

나는 즉시 최신형 스마트폰, 특정 계층을 목표로 하여 몇백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들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어이!”

도둑으로 오해한 판매원 아저씨가 나를 따라 나오다가 이어진 내 행동에 비명을 질렀다.

“으악! 뭐 하는……!”

콰앙-!

나는 새 휴대폰을 아스팔트 도로에 내동댕이쳤다. 단단한 내구성으로 코끼리 발바닥에 깔려도 무사하다는 스마트폰이었으나, 황소 마물의 힘을 발휘한 내 괴력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움푹 파이고 스마트폰은 개박살 났다.

나는 한층 개운해진 마음으로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판매원 아저씨가 주춤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똑같은 기종으로 달라는 내 말에 이젠 군말 없이 가져다주고 개통까지 진행했다.

“부서진 기기값까지 같이 계산해 주세요.”

카드를 주고 아저씨가 계산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왠지 그런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됐나?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였나? 인간 손님이라 만만했나? 엘프가 고객이었으면 감히 말에 토를 달았을까? 일시불로 한다니까, 왜 계속 할부로 하라고 그래. 어?

또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는 진열된 스마트폰을 비싸든 싸든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 그러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려는 아저씨의 손을 꽉 쥐고 말했다.

“후우, 후우. 계산.”

화가 풀리자 이마까지 열이 차올랐다. 무슨 꼴이야. 이건 무척… 부끄럽다.

“저거까지 다 계산해 주세요. 덤탱이를 씌우든 뭐든, 그냥… 아저씨가 원하는 만큼 계산해 줘요.”

스마트폰을 들고 대리점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집을 향했다. 그리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 썼다.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향을.’

원장님이 그랬지.

‘다정 씨는 내 말을 너무 허투루 듣는다고.’

젠장,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이트메어의 영향을 확실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 후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너무 과한 행동이었다. 웹 서핑을 하다가 뜨는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유튜브를 보다가 인기 순위에 오른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영상.

그런 걸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만 새로 산 스마트폰을 다시 부수고 말았던 것이다.

TV도 보지 못했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배달 음식을 가져다 준 배달원을 물어뜯을 뻔하여 컵라면만 먹었다.

결국 며칠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명상하듯 지냈다.

‘병이야. 분노 조절 장애는 병이라고.’

지금 상태라면 원장님에게도 개길 수 있을 것 같다. 망할, 이전까진 내가 다혈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는 다르잖아.

*

“…도둑이라도 들었나요?”

청소 회사 직원이 내게 물어본다.

나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사실 내가 더 부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침대는 물론이고, 장난감 진열장과 냉장고, 세탁기, 책상과 컴퓨터마저 다 부숴 버렸다. 가정 살림을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다행히 헐크는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나는 청소 서비스를 불러 집을 정리했다.

청소 직원들이 잔해들을 치우고 가자 내 아파트는 새집처럼 깨끗해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인테리어 리모델링의 기회라고 생각하자.

“하, 현자 타임이 세게 온다.”

텅 비어 버린 거실에 매트리스만 놓고 누워 있다 보니 마음이 공허했다. 분노로 가득할 땐 폭풍우처럼 격하던 마음에 이젠 타다 남은 재처럼 허무함만이 느껴졌다.

이제 화는커녕 맛있는 걸 먹어도 기쁘지 않고, 재밌는 걸 봐도 재밌지 않았다.

“힐링이 필요해.”

힐링, 힐링이라 하면 역시 여행.

생각해 보면 마물원에서 일한 후부터 여행이란 걸 가본 적이 없었다./@42화 거북 (1)에서 별장인 고양이 섬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이것도 여행 아닌가요?/틈만 나면 해외는 물론이고, 다른 세계로까지 출장 가니까 여행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전적으로 힐링에 중점을 둔 여행이 하고 싶었다.

관광이나 먹을거리, 그딴 것들 다 필요 없다. 온전히 마음을 안정시킬 곳이 필요해.

스마트폰(다시 샀다, 다른 대리점에서)으로 여행지를 찾아봤다.

제아무리 훌륭한 명소와 맛있는 먹을거리가 있는 관광지와 럭셔리 크루즈 여행이라도 성에 차는 건 없었다.

“아, 여기! 들어 본 적 있어.”

찾아보던 도중 ‘마쿠아 섬’ 이라는 곳의 여행 정보를 보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여행사에 연락해 예약을 했다.

마쿠아 섬, 태평양 어느 곳에 있는 평범한 관광섬이나 마쿠아 섬은 한 가지 특별하게 다른 것이 존재했다.

나는 그 하나를 보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정했다. 정말 힐링만을 위해서 말이다.

*

자유 관광으로 티켓 구입과 리조트 호텔 예약만 하고 곧바로 마쿠아 섬으로 향했다.

하와이 공항에서 경비행기로 경유해야 했는데 검문이 철저했다. 미국 주의 입국 심사대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지참해야 했고, 마나 검사에 약물 검사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비행기에 탑승하여 마침내 스무 시간이 걸려 도착한 마쿠아 섬. 피곤한 여정이었으나 섬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잘 왔다고 생각했다.

“알로하~”

나는 꽃다발을 건네는 원주민 환영단의 인사에 화답하며 외쳤다.“알로하!”

공항부터 짙게 느껴지는 이국의 냄새!

태평양의 푸르른 바다와 야자수, 덥지만 습도가 낮아 쾌적한 날씨, 관광객을 반겨 주는 하와이언식 환영 인사!

무엇보다 좋은 건 그 어느 곳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마물과 이종족들.

이 섬은 관광 특구다.

사실 어느 마물원 우리를 가도 그곳의 비경이 태평양 섬의 경치를 압도했다. 진정 편하게 지내고자 하면 사실 돗자리 하나 펴고 마츄들과 즐기는 게 더 낫다.

내가 이곳을 휴가지로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간 전용’이었기 때문이다.

환영 인사를 받고 공항을 지나 야자수가 심어진 도로를 거닐며, 나는 단 한 번도 이종족과 마물을 보지 못했다. 검문 심사가 까다로운 이유였다. 이곳은 철저하게 마물과 이종족의 출입을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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