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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99화 (99/258)

# 99화 바캉스 (3)

“강단이 있어. 헌터인가?”

총알은 내 뒤에 있는 기둥에 박혔다. 뺨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반응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를 노리고 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너희들 목적이 뭔지 대충 알겠어. 전이를 어떻게 예상했는지는 차차 물어보고… 가장 이해 안 되는 건 너희들 실력이란 말이야. 야, 물어보자. 저 많은 마물들을 감당할 수 있겠냐? 빅 마우스 한 마리도 못 잡을걸.”

이번엔 고개를 숙여야 했다.

탕-!

방아쇠를 쥔 놈의 손가락이 움직이자마자 말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마빡에 총알이 박힐 뻔했다.

“고독(蠱毒)이라는 걸 알고 있나?”

놈이 마스크를 벗었다. 놈은 턱에 긴 흉터가 있는 동양인이었다. 영어를 사용했으나 어투로 보아 중국 출신인 것 같았다.

놈은 나를 죽이려 했으나 두 번의 시도는 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꽤 수다스러운 놈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세웠고, 놈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뒤질 놈이니 알려 주지. 고독(蠱毒)은 중국 고대 주술 중에 하나다.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을 큰 항아리에 담아, 서로 싸워 죽이게 만들지. 그렇게 마지막에 살아남은 것이 고독이 된다.”

놈의 수다스러운 설명에 난 곧바로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리조트 마당을 바라봤다. 전이가 계속되어 마물이 더 나오기라도 한다면…….

기계에 의해 활동 반경이 좁아진 마물들이 한곳에 뭉쳐 싸우는 아수라장이 열리겠지.

“마물도 마찬가지다. 한곳에 가두면 필히 약육강식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마물이 굶주린 배를 네놈들의 살점으로 달랠 때, 우린 여유롭게 제압하면 되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은 놈이니 가치는 충분할 테고, 힘이 빠졌으니 상대하기도 수월하겠지.”

마물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으니 한 마리만 남게 만든다고? 정말 어리석고, 머저리 같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니들은 먹잇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칼을 든 헌터의 신호에 놈들은 품에서 하나씩 작은 철제 병 따위를 꺼냈다.

치익!

그리고 제 몸에 뿌렸는데 냄새가 독했다. 붉은색 스프레이, 마물들을 화나게 한 기계가 분사하던 물질인가?

“아, 생각났다. 이야! 네놈들도 그걸 쓰는구나.”

그 모습에 나는 웃고 말았다. 성분은 약간 달라진 모양이지만 나는 저 액체의 정체를 알았다. 원장님이 만든 것이다. 나를 흉내 내던 사기꾼의 능력을 이용해서 만든 ‘마물 퇴치 약품’이다. 도구는 쓰기 나름이라고 원장님의 물건이 이런 데 쓰이다니 기가 막혔다.

“흥, 잔대가리 굴리기는.”

대강 사태는 파악했으니,

이제 움직일 차례다.

나는 포근이의 기운을 불러냈다. 턱시도가 없어 무기로 구현은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주먹 한 방에 두개골을 부숴 버릴 수 있으니까.

긴장과 함께 흥분한 상태로 놈들에게 덤비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꺼림칙한 울음소리에 뒤를 돌아봐야 했다.

끼이이-!

빅 마우스가 기계를 부수고 뛰쳐나오기 전에, 전이의 시작점에서부터 다른 마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필!’

나타난 놈은, 빅 마우스보다 더 끔찍한 ‘식생활’을 가진 마물, 흡혈거인이었다. 두 발로 다니는 놈은 언뜻 키가 큰 사람처럼 보였으나, 생김새는 무시무시하다. 얼굴 전체가 먹이의 피를 빠는 작은 촉수로 이루어져 있다.

놈은 동족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빅 마우스와 마찬가지로 전이에 휩쓸려 잔뜩 화가 난 상태이다.

곧바로 빅 마우스와 흡혈거인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두 마물의 격돌만으로 재난이다. 하지만 이내 전이는 다른 흉포한 마물들을 토해 냈다.

불가사리, 철악어, 등껍질도마뱀…….

그중 성격이 온순한 마물도 있었으나 기계의 영향인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좁은 곳에서 서식지와 성질이 다른 마물들이 뭉치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시작되었다. 헌터는 성가시니 먼저 죽여 놔야겠군.”

마물이 쏟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칼을 든 헌터와 두 명의 창잡이 놈이 내게 덤벼든다.

하지만 나는 놈들을 무시하고 뛰어갔다.

“도망쳐 봐야!”

“쟁! 멈춰라. 놈이 마물에게로 뛰어간다.”

마물 쪽으로 말이다.

뭐가 약육강식인가? 영역 다툼을 위해 수사자들이 다투는 건 자연의 순리다. 하지만 저 꼴은 수사자 수십 마리를 좁은 방에 가둔 것과 다름없다.

“흥, 의도를 모르겠군. 멍청한 새끼! 자살이라도 하는 건가?”

나는 뒤에서 이죽거리는 놈들의 외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우선순위는 놈이 아니라 마물들이다.

마당에 나온 나는 곧바로 마물에게로 뛰어갔다. 워낙 강한 놈들이라 아직 죽은 놈은 없었지만 가장 덩치가 큰 ‘흡혈거인’은 다른 마물들의 공격들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나머지 놈들도 위험한 상태였다.

서로 싸우던 마물들 앞에 섰다.

놈들은 내가 있어도 서로를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수라장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핏물과 살점과 비늘이 튀어 오르는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침내 싸움터의 중앙에 도착했을 때, 모든 마물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춰 섰다.

그리고 어떤 세계에서 왔든, 뿔이 달렸든, 이빨이 날카롭든, 독을 뱉어 내든.

제 각기 다른 마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 뒤로 물러났다.

4미터를 훌쩍 넘기는 덩치로 먹잇감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는 흡혈거인이 내 등 뒤에 선다. 먹잇감을 산 채로 씹어 먹는 빅 마우스가 사납게 으르렁거리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모두 내 편에 서서,

한곳을 바라본다.

그곳은 헌터들이 있는 곳이었다.

콰직!

나는 맨손으로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기계들을 모조리 부수었다.

그리곤 눈썹을 씰룩거리며 소리쳤다.

“자, 소개할게! 내 친구들이야! 방금 전에 친구 먹었거든! 어, 뭐라고? 잠시만! 애내들이 뭐라고 하네?”

나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귀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놈들은 내가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 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진짜로 듣는 중이었다.

“어어, 이 빨간 물이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다고? 넌 싸우기 싫었는데? 그래. 맞아. 니들을 이렇게 괴롭힌 게 저 사람들이야. 뭐? 냄새나서 가까이 가기 싫다고?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녀석들이 내 말에 따라 헌터들에게 달려든다.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전력이었다.

“냄새나는 녀석들만 ㅤㅉㅗㅈ아 가. 죽이지는 말고, 대신 팔다리 하나쯤은 먹어도 돼.”

마물을 피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뿌린 게 오히려 헌터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표적을 그린 것과 다름없다. 마물들은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았다. 헌터들만 공격했는데, 과격한 몸놀림이지만 정작 죽는 헌터는 없었다. 물론… 살아 있다고 보기에도 애매한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뭔가 좀… 좀 많이 다르네.”

마물이 내 말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솔직히 이 흉악한 놈들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줄 몰랐다. 잔뜩 흥분한 마물이 내 말에 싸움을 멈추고, 심지어 길들인 개처럼 잘 따르다니, 확실히 이상했다.

그동안 마물과 대화를 나누며 녀석들이 날 호의적으로 대하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처럼 확실하게 서열의 위에서 명령을 내린 경우는 없었다. 친해져서 힘을 빌리는 경우는 있었어도 말이다.

내가 마물에게 영향을 받는 만큼, 나도 마물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건 마나가 강해지며 생긴 능력일까?

*

사납기로 소문난 마물들과 유일하게 비등비등하던 헌터가 있었다. 칼을 든 대장과 창을 든 두 명의 헌터였다. 그들은 한곳에 뭉쳐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마물의 수가 워낙 많아 곧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쓸모없는 녀석들!”

그때였다.

칼잡이가 갑자기 자신의 등 뒤를 지켜 주던 두 명의 동료를 순식간에 베었다.

“네 놈만은 죽일 것이다.”

동료의 시체를 마물에게 던져 주며 시선을 끌고, 그 틈을 타 내게 덤벼든다.

과연 능력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뜀박질이 예사롭지 않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만 하여도 벼락같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놈이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오호라, 내가 만만해 보였구나.”

분노 조절 장애 뒤에 찾아온 현자 타임, 차곡차곡 쌓이던 분노 마일리지.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분노라는 감정에 도화선이 있다면 놈들이 내 이마빡에 총구를 겨눴을 때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했겠지.

그리고 지금 터져 나왔다.

나는 이빨들이 자라남을 느꼈다. 또한 손톱과 발톱이 길어지고, 감각은 날카로워졌으며, 동시에 배가 고파 왔다.

“괴물!”

내 모습에 놈이 기겁하며 검을 휘두른다. 나는 가볍게 피해 내고 놈의 팔을 낚아챘다. 그리고 갈고리 같은 손톱을 놈의 살점에 쑤셔 박았다. 내게 힘을 빌려준 건 흉포한 육식 마물들, 그로 인해 나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었다.

콰드득!

나는 놈의 팔을 물어뜯어 버렸다. 야만스럽고 잔인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놈은 온갖 중국어로 욕(알아들을 순 없었으나 어감이 욕처럼 들렸다.)을 하며 발버둥 쳤다. 그럴 때마다 난 놈의 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마침내 그의 의지를 꺾고 복종을 얻어 낸 건 놈의 마지막 남은 팔을 뜯어내기 바로 전이었다.

“그…그만. 살려 주십시오. 대인, 부디 살려 주십시오.”

그의 울부짖는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고 일어났다. 역시 사람도 다를 바 없구나. 아무리 건방지던 사람도, 짐승처럼 다루면 힘의 차이를 금방 깨닫는구나.

*

사태가 정리되고 나는 교감의 후유증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했다.

그런 와중에 리조트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경찰이나 미 정부 요원들이 출동한 줄 알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도착한 건 ‘카르마’ 문양이 새겨진 무장 용병들.

“와, 리조트 전체를 탈취하며 배짱부리던 이유가 있었네.”

어쩐지 전이를 대비하기에는 꽤 약하다 싶었다. 나는 내 발아래에 깔린 채 고통에 신음하는 헌터에게 물었다.

“니들 같은 놈들, 몇 명이나 되지?”

“서… 섬 전역에…….”

예상하건대 놈들이 어떤 방법으로 전이를 예상했다고 해도, 정확한 전이 장소를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몇 조로 나눠서 상황을 지켜본 건가.

“더 몰려들겠네.”

카르마 헌터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내 발치에서 신음하는 동료를 발견하고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아… 안 돼!”

크르릉-!

끼이이!

그 모습에 칼잡이 헌터가 소리쳤으나 마물들의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자는 보기보다 현명했다.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깨달은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말리기도 힘들다.

나는 그의 반쯤 찢긴 어깨를 토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나서지 않겠어. 하지만 네가 네 입으로 말했듯이 약육강식이야. 에라이, 머저리들아. 왜 니들은 먹이 사슬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 오만함의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겁을 잔뜩 주고 등을 돌렸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고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황급히 턱시도를 찾아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원장님! 원장님! 들려요? 여기 좆 됐어요! 원장님?”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마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괴상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물과 인간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을 일으키는 꼴을 느긋하게 바라볼 용기는 없었다.

이 사태를 막아줄 자,

당연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한 존재뿐이다.

-어디예요?

나는 이내 들려온 원장님의 목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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