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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06화 (106/258)

# 106화 무림(2)

무림.

그곳으로 향하는 포털의 앞에서 난 실랑이를 했다.

야옹이하고 말이다.

“얘가 왜 이래?”

야옹이는 무림으로 넘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달려와 내 등에 매달렸다. 당황하며 떨쳐 내도 굴하지 않고 내 옷에 발톱을 박아 넣고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위험한 곳이다.

녀석을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속마음을 읽을 수는 없더라도 영물인 야옹이는 내 말을 다 알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집을 부리며 내 말을 따라 주지 않았다.

떨쳐 내도 달려온다.

엄하게 꾸짖어도 매달린다.

결국 난 녀석과 같이 가야 했다.

‘날 걱정해 주는 건가.’

하지만 막상 안아 들자 격하게 거부하며 손을 물었다. 결국 녀석은 내 옆에서 도도하게 걸으며 포탈을 넘었다.

역시 마물이라고 할지라도 고양이는 알 수 없는 생물이다.

*

‘이곳이 무림.’

“마치 여긴…….”

“부서진 세계죠.”

첫인상은 무척이나 기분이 나쁜 곳이었다. 거수들의 세계나 다른 차원, 심지어 양해의 바다마저도 온전한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곳은 붕괴되고 부서지고 무너진 세계였다. 멀쩡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게 다 어딘가 이상했다.

하늘은 ‘밤과 낮’이 공존하고 있었다. 어느 부분까진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었으나 갑자기 별들이 반짝거리는 밤하늘이 되었다.

올바르게 자라난 나무도 있었으나 거꾸로 자라는 나무도 있었다. 강줄기의 끝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흘렀다.

‘불쾌한 골짜기’를 보는 듯 이질감으로 가득한 끔찍한 곳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기린’이 산다는 영험한 태산이었다. 원장님의 마법으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 걸어야 하는 거리라고 하였다.

“무너지고 있다는 게 정말이었군요.”

난 그를 따라 걸으며 넌지시 말했다. 생각보다 처참한 광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무림은 본래 지구와 비슷한 세계였습니다. 크고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지요.”

그는 그리운 눈으로 무너진 세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대전이는 순식간에 모든 걸 앗아 갔습니다. 확장되어 가는 지구와 반대로, 무림은 점차 작아져만 갔지요. 대지는 황폐해지고, 곡식은 말라 가고,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도적들이…….”

그는 피식 웃곤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 이젠 모든 자가 도적이지.”

난 그의 얘기를 들으며 ‘이종족’이 생각하는 지구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지구인의 입장에서 이계와 이종족들은 불편하고 무서우며, 두렵고 놀랍고 선망이었으며, 위협적이기도 한, 다양한 시선이 뒤섞인 채였으나 그들 또한 놀랍게도 지구를 선망하고 있었다.

“붕괴된 무림이 그나마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 ‘신수’라는 신령스러운 존재들 덕분입니다. 하지만 기린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무림을 떠나가니 곧 세계는 죽어 없어질 겁니다. 그래서 많은 무림인들은 푸른 세계, 낙원으로 가길 희망합니다. 당신들의 세계, 지구라 불리는 곳으로.”

낙원.

지구가 낙원.

비교적 평화로운 지구를 만족스러워하는 이종족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낙원이라고 생각하다니.

복잡하고 쉽사리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지구를 낙원으로 생각하는 무림인, 그런 자들이 지구에 정착한다면.

나와 같은 지구인들은?

전이에 대해 부담감만 가지고 있던 내게 곽운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영험한 산, 곤륜산.

그곳으로 가는 길목은 험하고 위험했다. 수시로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안전하기도 했다.

상황은 위험했으나 ‘안전장치’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남자, 너무 강해.’

느끼고는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가 처음 도를 뽑아 들고 도적 떼와 싸웠을 때 난 공포마저 느꼈다.

무림인은 강했다. 웬만한 지구의 헌터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하지만 기천수호문장 곽운은 격이 달랐다. 검을 휘두르면 바람이 일어나고, 그 바람이 수십 명을 베어 버린다. 지구에선 볼 수 없는 무공의 경지였다.

난 그저 야옹이를 안고 멀뚱멀뚱 구경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걷고 나서야 곤륜산 입구에 도착했다. 곤륜산은 붕괴된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정상적인 거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느껴져요, 확실히.”

원장님은 내가 본능적으로 기린을 찾게 될 거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난 곤륜산을 마주한 순간부터 어떤 특별한 기운도 같이 느꼈다.

저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지는 곳에 신수 기린이 있을 것이다.

내 말에 곽운은 크게 기뻐했다.

“다행입니다. 곧바로 기린의 기운을 느끼시다니, 과연 용님이 믿고 보내신 수호자. 어서 찾으러 가시지요.”

*

곤륜산에서는 다양한 기운이 느껴졌다. 험준한 태산의 산맥은 보기에도 웅장했지만, 산 자체에서 뿜어내는 영기가 엄청났다.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건 산의 기운이 아니었다. 이자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단순히 마나를 읽을 수 있다고 하여 찾을 수 있는 성질은 아닌 듯했다. 나보다 그가 훨씬 마나를 잘 읽을 테니 말이다.

난 저 기운이 ‘생명’에게서 나오는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알아들을 순 없어도 강렬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원장님은 내 힘이라면 신수 기린을 놓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직접 마주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송로버섯의 냄새를 찾아내는 돼지처럼 강력한 마물의 목소리와 기운은 내게 너무 자극적이었다.

산 정상의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영험한 기운을 추적하며 곤륜산을 올랐다. 가파른 지세에 힘겨웠으나 남자의 재촉에 쉬지 않고 올랐다.

하지만 산 중턱의 비교적 넓은 공터에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타의적으로 말이다.

‘그들’을 본 순간,

곽운은 곧바로 내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기척을 숨겼으나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요.”

난 곧바로 사태를 파악했다.

인적 없는 태산의 깊숙한 곳에서 만난 괴인들이다. 침착하게 놈들의 생김새를 둘러봤다. 열두 명의 남자.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쩜 저렇게 못되게 생겼을까.

세 살배기 아이라도 다 알겠다.

적이다.

그것도 꽤 질 나쁜 적.

열두 명의 괴인은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놈은 히죽 웃고, 어떤 놈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적의가 가득했다.

유난히 덩치가 큰 다섯 명과 그들에 비해 반 토막도 안 되는 키의 일곱 소인.

생김새는 모두 하나같이 어딘가 머리통에서 나사가 빠진 꼴이었다.

놈들은 모두 알록달록한 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그리고 제 머리만큼 높은 폭에 비를 막아 줄 수 있을 듯 넓은 챙을 가진 모자를 썼는데, 모자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너무 실감나게 그려진 터라 처음 봤을 땐 사람 얼굴 가죽을 떼어다가 붙여 놓은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언뜻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서움이 더 컸다.

손에 들린 거대한 낫, 검, 칼, 그리고 쇠몽둥이 때문이겠지.

길목을 가로막은 놈들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난 입술을 깨물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놈들의 정체를 알 필요 없다.

그리고 듣는다고 해도 뭔 말인지 난 못 알아듣는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에선 멍청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누굽니까?”

곽운은 등에서 거대한 도(刀)를 꺼내며 대답했다.

“선두에 선 덩치 큰 남자 다섯이 천육모사황, 그 뒤의 일곱 명의 소인이 사망칠괴, 모두 그릇됨을 숭배하는 주술사들이며, 본문을 방해하던 인면괴들이요.”

곽운은 꺼낸 도를 손에 쥐지 않고 땅에 깊숙이 박았다. 그러며 내게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악적들의 방해가 있을 거라 생각하여 홀로 움직였으나 패착으로 돌아왔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우선 도망치십시오. 여긴 내가 막아설 테니.”

천육모사황? 사망칠괴? 인면괴?

역시 알아들을 순 없었다.

다만 이해한 건 그들이 엄청 위험한 놈들이며, 원장님이 경고한 ‘주술사’라는 것.

난 품에서 원장님이 준 공간 이동 마도구를 꺼냈다. 여차하면 바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곽운의 행동에 난 사고가 정지되었다.

그의 강함을 믿었다.

그래서 미련을 남기지 않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부탁하오! 이렇게 빌 테니 한때 동포였던 정을 봐서라도 우릴 살려 주시오!”

하지만 곽운이 무릎을 꿇고 괴인들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강한 남자가 간단히 자존심을 굽혔다.

단지 괴인들이 자신보다 강해서일까? 아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이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저 표정,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나 표정만큼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저 표정!

하지만 멀리 있어 눈치채지 못했는지 괴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가장 덩치가 큰 자가 나서서 외쳤다.

“으하하! 천하의 도성(刀聖)이 변백괴인들이라 폄하 받던 우리들에게 무릎을 꿇다니. 확실히 중한 일이 맞는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뭐? 동포의 정? 우습구나. 난 오히려 네 그 비굴함이 무섭다. 너뿐만 아니라 저 무명의 객도 죽여 확실히 후환을 없애야겠다.”

그 순간이었다.

괴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람이 몰아쳤다. 난 곁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바람을 일으킨 자가 곽운이라는 걸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

쿵!

곽운이 순식간에 땅에 꽂힌 도를 뽑고 휘두르자 삭풍이 불어와 괴인들을 덮쳤다. 놈들은 간신히 피했으나 삭풍은 뒤편의 거대한 바위를 산산조각 내고 나서야 멈추었다.

괴인들이 우왕좌왕하며 저마다 병기들을 꺼내 들 때, 곽운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듭 죄송하오. 내가 걱정한 건 당신이었소. 이번 싸움은 내가 이깁니다. 하지만 당신을 지켜 줄 여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정말 그는 괴인들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무릎까지 꿇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믿겠습니다.”

머뭇거리던 난 몸을 돌려 곧바로 도망쳤다.

“칠괴, 저놈을 쫓아라!”

뒤로 일곱 소인이 ㅤㅉㅗㅈ아온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놈들의 힘을 분산시켜 잠시 시간을 벌어 주는 것.

‘도망칠 수 있겠지?’

물론 미끼를 자청하는 건 아니다.

싸우다가 정말 위험하면 날름 마도구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날 위해 무릎을 꿇은 남자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만하지.

평범한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내 신체 능력으로도 놈들을 떨쳐 내기엔 버거웠다.

결국 뒤를 잡힌 난 뜀박질을 멈추고 재빨리 총을 꺼내었다.

화르륵!

포근이의 ‘진주’를 먹고 강해진 불꽃, 만들어 낸 탄환은 모인 힘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사람을 잿더미로 만들기엔 충분한 화력이었다.

“크악!”

하지만 탄환에 직격당한 소인들은 모자만 홀라당 타 버렸을 뿐 몸은 멀쩡했다.

“씨… 저게 뭐야.”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당황스러움보다 모자에 감춰진 놈들의 비밀이 더 당혹스러웠다.

유난히 크고 길었던 모자.

“봤군.”

“봤어.”

“더더욱 살려 둘 수 없겠군.”

그 안엔 사람의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놈들은 머리 위에 머리가 하나 더 달린,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었다.

놈들은 모습을 들킨 게 수치스러운지 잔뜩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

“젠장! 머릿수가 일곱이라도 버거운데, 열넷이라니. 당할 재간이 없잖아.”

난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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