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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07화 (107/258)

# 107화 무림(3)

강한 힘.

“화기가 제법이다. 수천(水天)술식으로 상대해라.”

하지만 더 강한 적.

늘어난 마나는 타오르는 열기의 힘을 선사했지만, 놈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샐러맨더의 힘을 품은 탄환이 충분한 화력을 머금고 발사되었으나 손쉽게 막히고 말았다.

일곱 괴인은 마법과도 비슷한 힘을 부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알고, 보던 마법과는 약간 달랐다.

마법은 원장님 수준이 아니고서야, 마법은 보통 입으로 ‘내뱉어야’ 완성된다.

하지만 놈들이 일제히 지면에다가 무기를 붓 삼아서 무언가를 그리자, 순식간에 산의 중턱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큭, 물이 없는 공간에서 이만한 마법을?”

나는 샐러맨더의 힘마저 삼키고 곧장 내게 밀어닥친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덤프트럭에 치인 듯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이것도 마법이라면… 젠장!’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 냈다.

이건 위험하다. 한차례 공격을 받아 보니 알겠다.

원장님이 경고했지.

브로치가 빛나지 않는다면, 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강한 존재이니 즉시 도망치라고.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의리를 지키기에는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쩔 수가 있나.

놈들은 아직 나를 파악하며 본격적인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나는 품에서 공간 이동 마도구를 꺼냈다. 즉시 발동시킬 준비를 끝내고 놈들에게 외쳤다.

“잘 있어라, 병신들아!”

도망치는 꼴이었으나 지기는 싫어서 욕했다. 놈들이 수작을 눈치 채고 다시 괴상한 마법을 부리기 위해 행동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안전한 마물원으로 이동해 것이다.

딸깍!

버튼을 눌렀다.

놈들의 마법이 밀어닥쳤으나 공간 이동 마도구의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다. 공간 이동은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기에 방어 마법도 동시에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제 몇 초만 있으면 안전한 지구다.

냐앙!

워낙 존재감이 없던 녀석이기는 했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저 멀리 야옹이가 유유히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분명 내 실수겠지.

“이리 와! 야!”

야옹이를 버리고 나 혼자 마물원으로 이동한다면,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놈들이 굳이 검은 고양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야옹이를 해칠까? 아니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야옹이를 잃어버린다면?

애타게 불렀으나 야옹이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귀는 쫑긋거리는 게 분명 듣고 있긴 했으면서.

자, 생각해 보자. 공간 이동 마법은 일회성이야. 한 번 발동한 이상 중단하면 더 이상 쓸 수 없지. 야옹이를 놔두고 가는 게 맞아. 내가 남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일이 잘 풀린다면 곽운이 야옹이를 데리고 올 테지.

하지만 녀석은 지랄 맞게 도도한 놈이라서 도망칠지도 몰라.

애초에 특성 자체가 ‘존재감이 희미한’ 건데, 곽운이 신경 쓰지 못할 수도 있어.

이동까지 10초 정도 남았을까.

이제 고민할 여유가 없다. 나는 잘못된 판단인지 구별할 틈도 없이 몸으로 행동했다.

‘미안하다, 야옹아.’

*

“네놈, 뭘 한 거냐?”

놈들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새끼들아.”

내 품에는 야옹이가 안겨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멍청한 선택이다. 이제 놈들은 야옹이도 죽이려 들 것이다. 하지만 차마 야옹이를 버릴 수는 없었어.

“역시 고양이는… 싫어.”

냐앙!

품에 안긴 야옹이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머리를 내 배에 비비적거렸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고 일어났다. 손에 들린 마도구에는 어떤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원 이동은 고차원의 마법이니 두 번 쓸 수는 없었다.

젠장.

*

싸움, 싸움, 싸움.

마법, 주술, 두려운 것.

놈들과 맞서,

아라크네의 거미줄, 윙바레의 마취약, 코쿠라차 여우원숭이의 산성액, 황소마물로부터 얻었던 괴력.

하지만 결국 잔재주뿐, 나의 모든 힘은 놈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내게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 놈들의 마법을 막아 낼 수도 피할 수도 없었고, 내 힘으로는 처음을 제외하고 놈들의 옷깃마저 건드리지 못했다.

원장님의 경고는 정확했다.

놈들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그동안 내가 직접 상대한 그 어떤 적보다 강하여, 싸울수록 절망만이 느껴졌다.

“크윽, 난쟁이 새끼들.”

기이한 마법의 힘이 내 손발을 묶고 오장육부를 비튼다. 형체를 알 수 없으니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빨리 죽여.”

“오선들이 위험해. 도성, 괴물 자식.”

“제법 튼튼하군. 맹사(猛死) 주술로 죽여.”

놈들은 마법으로 내 손발을 묶어 놓고 주술을 퍼부었다. 오리하르콘의 힘일까, 강해진 육체의 저항력 덕일까, 지독한 고통은 느끼나 의외로 견딜 만했다.

하지만 놈들은 나를 빠르게 처리하기를 원했다.

강력한 마법도 금방 펼치던 놈들이 뜸을 들이며 바닥에 어지러운 그림을 그려 가기 시작했다.

놈들의 기괴한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주변의 마나들이 요동쳤다. 어느덧 내 머리 위로 붉은 구슬이 생기더니, 마나를 흡수하며 점점 커져 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놈들의 마법을 벗어나려고 했으나, 쓸데없는 저항이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추켜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죽는다. 저거에 맞으면 난 확실히 죽을 거야.’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온갖 경험을 겪은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머리 위에 붉은 구슬, 잘은 몰라도 나를 죽이기에 충분한 힘이 느껴졌다.

살면서 이렇게 죽음에 근접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던 나는 피식 웃었다.

“아, 많았지.”

어릴 때 한 번,

그 후로는 모두 마물원 일을 하며.

하지만 이 순간은 절대 익숙해지진 않았다. 두렵고 무섭다. 지금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인님들! 전 아무것도 모르고 저 남자를 따라왔습니다. 사실 무림인이 아니라 지구인입니다. 난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부디, 부디 살려 주십시오.”

토해 내듯 소리쳤다.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디 살려 달라고. 굴욕적이고 비참하게.

하지만 살아날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일까. 죽음 앞에서 초연한 새끼들은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 혹은 정신 나간 새끼들밖에 없다.

“웃기는 녀석.”

“멍청한 녀석.”

“한심한 녀석.”

“크큭, 우리에게 덤벼 놓고 안 될 것 같으니 목숨을 빌지. 비참한 녀석.”

일곱, 아니 열네 개의 입들이 모두 나를 조롱하며 비웃었다. 욕설과 조롱에 달아올랐던 머리가 도리어 차분해졌다.

그래, 예상했던 대로야.

목숨을 구걸해서 살아남는다면 살해당하는 사람은 왜 있겠어.

나는 입술을 깨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온갖 욕을 내뱉었다.

“입이 더러운 놈이군.”

“맹사의 주술은 즉사의 술법이나 특별히 고통 속에서 죽게 해 주지.”

붉은 구슬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내 머리에 구슬이 닿았을 때, 나는 까무러칠 듯한 고통을 느꼈다.

새하얗다.

고통은 생각을 멈추게 했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구슬의 힘이 날카로운 수천 개의 칼날이 되어, 머리를 부수고 난도질하고 토막 내는 것 같다. 점점 몸 전체로 퍼져 가는 고통,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심장이 갈라지고, 뼈가 가루가 되고, 손톱과 발톱이 뽑혔다.

“살아 있군.”

“이상한 녀석이다.”

“즉사 주술에 당하고도 살다니, 보기보다 내공이 깊은 녀석이었나.”

“다시 한 번.”

“죽어라.”

마침내 구슬이 사라졌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머리 위에 생겨나는 붉은 구슬.

체념했다.

나는 저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이미 죽어 가는 몸은 의지가 꺾이자 살기 위한 활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멎어 가는 심장 소리.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의외로 담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머저리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야.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아.

누가 날 살려 줘.

나는 그저 흐릿한 시야로 앞만을 바라봤다.

내 눈에 검은 고양이만이 보였다.

야옹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일곱 괴인들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쳐, 아주 여유롭게.

안 돼.

너라도 도망쳐.

오지 마.

야옹이는 야속하게도 계속 걸어왔다. 그러며 작고 앙증맞은 앞발로 내 부러진 발가락을 툭툭 건드렸다.

[야, 뭐 하냐?]

말을 하면서.

*

그림자,

고양이는 그림자다.

그리고 그림자는 최초의 짐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리고,

상자 속에 갇힌 고양이는 물리학 실험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확률은 50 : 50.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아 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괴이’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박사는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사고의 인지 영역을 벗어났다.

고양이가 죽어 있다면 그가 고양이를 죽인 것이 되고, 반대로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잘 돌아다니고 있다면 그가 고양이를 살아 있게 만든 것이 된다.

고양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반은 죽고 반은 사는 선택지는 없다.

그러나 남자는 상자를 열 때마다 고양이를 마주했고, 그건 산 고양이였다.

수없이 시도했으나 죽음이란 수는 없었다. 50의 확률은 100이 되었다.

남자는 우연히 기이한 생물을 만들어 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우연히 실험 대상이 되기 훨씬 전에도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과학자의 논리는 기이를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실험의 마지막 결과는 기재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다르게 세상에 알려졌다.

고양이는 자신을 보살피던 박사가 죽고 나서도 어두운 뒷골목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여인에게 발견되어 그녀와 살게 되었다.

여인은 자신을 알고 싶어 했으나, 고양이는 결코 자신을 알려 주지 않았다.

아무리 용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고양이는 스스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아야 함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는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고통을 순간 잊어버릴 만큼 큰 충격이 찾아왔다. 그동안 단 한 번이라도 속마음을 읽을 수 없었던 야옹이가, 먼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첫 말이,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뭐 하냐?’라는 질문이었다.

“너… 어떻게? 내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거야?”

야옹이는 앞발로 들어, 내 발바닥을 쿡쿡 눌렀다.

[응, 지금뿐이지만,]

나는 지금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젠장, 야옹이가 말을 하든 안 하든 뭐가 중요해.

“야옹아, 도망쳐. 놈들에게 들키면 너도 잡아 죽일 거야.”

야옹이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수염을 실룩거리면서 길게 야옹 소리를 내었다.

[저들은 딴 세상을 보고 있어. 그것보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문득 고통이 사라진 게 착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추켜올려 놈들을 바라봤다. 괴인들은 나를 보고 있었으나 어딘가 이상했다.

“뭐?”

주술에 당해 묶여 있던 몸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나는 곧바로 야옹이를 안아 들고 도망쳤다. 하지만 녀석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이질적인 현실을 알아차렸다. 야옹이를 안아 든 몸이 축 늘어졌다. 녀석에게 보채며 물어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야옹아. 네가 한 거야? 어떻게?”

녀석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서 앞니로 내 손을 살짝 깨물더니 혀로 그루밍해 주기 시작했다.

[자, 힘을 빌려줄게.]

밤하늘의 별처럼 어둡고 반짝이는 눈으로.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야. 또 다른 나, 날 찾기 전에… 아니, 그만 말할래. 녀석들이 싫어할 거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해 대는 야옹이.

[그리고 지금 순간을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특히 요망한 빨간 머리 여자한테는!]

요망? 빨간 머리? 누군지는 알겠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야옹이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 뒤에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다.

야옹이는 내 손에서 갑작스레 사라졌으며, 내 몸은 다시 주술사의 속박 마법이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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