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10화 (110/258)

# 110화 무림(6)

곽운은 대답 대신 갑자기 몸을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이고 고개를 추켜들었다. 엉덩이를 하늘 높이 세우더니 왼쪽 뒷발을 높이 들고 요상한 소리를 냈다.

슈슈!

곽운이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나는 저게 뭔 지랄인가 싶어 대응하지 않고 곰곰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 뒤로 곽운은 갑자기 동굴 벽에 붙더니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리다가, 개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며 컹컹 짖기도 했다. 종국에는 손바닥을 뱀처럼 휙휙 놀리더니 뒤로 발라당 자빠져 맨땅에 수영까지 했다.

“다 하셨습니까?”

그의 기행을 구경하던 나는 그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자 넌지시 물었다.

곽운은 머쓱한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기행의 이유를 말해줬다.

“방금 보인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떠오른 건 있습니다만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내가 방금 선 보인 건 형의권이다. 무공의 뿌리이자 외공의 전신이기도 한 권법이지. 쉽게 말해 약한 인간이 강한 동물을 흉내 내는 방법이다.”

아, 어쩐지 개 같더라.

곽운이 말했다.

“네가 배울 건 이 형의권이다. 내공을 움직일 필요가 없지만 보유한 내공을 바탕으로 강해지기도 하는 외공이다. 하지만 보통 형의권은 무공에 비하여 크게 효율이 떨어진다. 아무리 사람이 동물을 흉내 내도 사람에겐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 짐승만이 느낄 수 있는 감이 없기 때문이지.”

그는 처음으로 나를 칭찬했다.

“그러나 넌 가끔 움직임이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 같을 때가 있다. 내 주먹을 피할 때 보여 준 반사 신경과 기묘한 움직임 등은 능히 무공을 배운 자와 견주어 손색이 없었지. 하지만 싸움 ‘기술’은 부족하다.

형의권은 동물의 움직임을 토대로 싸우는 방법. 따라한 동물이 매서운 발톱을 지녔다면 그 이상의 날카로움을 가지는 게 형의권의 기본 묘리다.”

그의 말에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교감으로 인해 마물의 움직임과 능력을 고스란히 따라할 수 있었다. 아니, 따라한다기보다 내가 그 마물이 되는 것이다.

그럼 동물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형의권을 배운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대상이 마물이며 그 움직임들은 워낙 천차만별이라 동물처럼 쉽게 따라할 수는 없지만, 곽운의 말대로라면 만약 야옹이와 교감한 내가 그 힘으로 저 형의권이란 싸움 기술을 사용한다면 그건 묘권이 되는 것이다.

곽운은 다시 양손을 기역 자로 오므리더니 기이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형의권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그런지 그의 움직임이 확실히 뱀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형의권을 제대로 배운다면 더 격 높은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 우선 배울 건 대상을 ‘관찰하는 법’과 대상을 ‘흉내 내는 법’이다. 따라해 보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뱀을 흉내 냈다. 곽운의 지시에 방울뱀 소리를 흉내 내며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도 냈다.

누가 봤다면 쪽팔릴 자세이나 나는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다.

*

형의권의 기초인 관찰하는 ‘방법’

내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주변을 둘러보며 망상을 즐겨하던 버릇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곽운은 제 자리에 앉아 24시간 동안 주변을 관찰하기를 지시했으나, 나는 하루가 넘어 이틀이 되도록 곤륜산의 옥빛 봉우리를 관찰했다.

그 뒤 이어진 ‘흉내 내는 방법’도 내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었다. 교감, 이 힘은 동물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나를 아예 그 동물처럼 변하게 만들어 줬다.

그 뒤 흉내 낸 동물의 움직임을 전투 기술로 연결시키는 몇 가지 기술을 전수 받았다. 이건 무공에서도 외공의 기초라서 기의 운용이 필요 없어 나도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다.

무공과는 달랐다.

삼 일 만에 훈련을 마치고,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나를 ‘형의권을 위해 태어난 남자’라며 칭찬했다.

그리고 더 격 높은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동굴에서 나는 곽운과 마주 보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

“사실 지금 내가 가르칠 건 무공이라 부를 수 없다.”

무공이라 부를 수 없다니?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럼 뭘 가르쳐 줄 생각이지?

곽운은 언제나 진지한 편이었으나 이번에는 특히 진중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몇 주 동안 자넬 지켜봤지. 놀랍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자넨 형질이란 게 없는 사람일세. 재능과는 다른 영역이야. ‘사람’이라면 자고로 기의 형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버드나무 잎처럼 유(柔)한 기운이 있는가하면, 꼿꼿이 선 소나무처럼 강(剛)한 기운을 가진 자, 그리고 예측할 수 없이 환(幻)한 기운을 가진 자도 있지. 그 외에 다양한 형질이 있으나 무공에선 크게 유, 강, 환(柔, 剛, 幻)으로 나누네.”

그는 사람이라면 모두 기에 유하고 강하고 신기한 힘이 있다고 말하며 나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했다.

“이 세 가지 기운의 많고 적음에 따라 형질이 결정되는 거야. 하지만 자넨 뭐지? 세 가지 기운 모두 뛰어난 자를 무신의 그릇이라 하지. 하지만 자네는 시시각각! 일각, 아니 일다경마다 기운이 바뀌네. 어떨 때는 유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가, 어떨 때는 강한 기운. 종잡을 수 없어 가르치기 매우 힘들었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의 흐름을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와 동일했다. 이 힘, 내 것이 아니니까. 곽운의 말마따나 그릇으로 비유하자니 확 와닿는다. 나는 빈 그릇, 담는 마물의 힘에 따라 형질이란 게 달라지는 거겠지.

곽운은 열성을 토하더니 이내 침착해져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이 기술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 내가 알려 줄 건 내 치부이기 때문이다.”

대체 뭘 가르쳐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난 참을성 있게 곽운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천하 제일 무공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 치기가 빗어낸 우연의 결과물, 하지만 대단하지는 않지. 난잡하고 정립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기초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름조차 붙이지 않았으나 그래, 흉내쟁이의 검. 형의검이라고 지금 정하지.”

곽운이 말했다.

“오히려 너에게 가장 알맞은 검이 될지도 모르지. 한 시진 동안 쉬고 곧바로 수행에 돌입하겠다.”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고 곽운을 만났다. 그때부터 나는 자는 시간도 없이 일주일 내내 훈련을 받았다. 곽운은 무공이 아니라고 했지만, 체계적이었으며 난해한 기술이었다. 다만 기를 움직일 필요가 없어 배우는 데 큰 난황을 겪지는 않았다.

형의검.

신기한 기술이었다.

아니, 무공이다.

모든 움직임을 검으로 귀결시킨다. 내가 야옹이의 힘을 받아들여 형의검의 무론을 펼치면, 그건 고양이의 검이 된다. 내가 교감하는 마물에 따라 검은 시시각각 변했다.

아라크네의 힘으로 펼치면 환의 기운이 가득한 환검이 되었다. 황소 마물의 괴력에 집중시키면 강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패도적인 검이 되었다.

그가 나를 위해 안배된 검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나만큼 다양하게 형의검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삼 주가 더 지나갔다.

*

사실 공간 이동 마법은 연락한 뒤에 하루 만에 완성되었으나, 원장님은 곽운의 부탁에 내가 무공을 배울 시간을 준 것이라 하였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곽운의 표정이 싸늘했던 건 이 때문이었나. 하긴, 용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표정이 굳어질 만하지.

원장님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나더러 마물원으로 귀환하라고 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는 있을까.’

한 달 동안 같이 붙어살며 정이 들었는지 헤어질 때가 되자 조금 섭섭해졌다. 공간 이동 포탈에 올라서기 전, 나는 곽운에게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불초제자, 가르침을 받고 하산하오니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사부!”

장난이었다.

하지만 곽운은 정색하며 다가왔다. 문득 그가 무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유독 사제 관계에 민감하다던데 실례를 범한 건가?

“그래, 내 제자.”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곽운이 날 제자라고 부르자 이상하게 울컥했다. 장난으로 말했으나 정말 제자라고 불러 주니까 뭔가 마음이 시큰하잖아.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나 연은 확실히 이어졌다. 넌 우리 기천수호문의 제자이다. 늘 긍지로 여기며 스스로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말고.”

농담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사부와 제자라, 좋다고 느껴졌다.

“받아라. 하산 선물이다.”

포탈이 발동되기 전, 곽운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마치 호두처럼 생긴 작은 열매였다. 나는 열매를 보자마자 기린에게서 느낀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꼈다.

“동굴 깊숙한 곳에 기린이 남긴 ‘흔적’들이 뭉쳐 열매가 열렸더구나. 어쩌면 대단한 영약이 될지도 모른다. 네가 가져가거라.”

열매를 받아들자 영험한 기운이 솟구쳤다.

“기린의 흔적… 이걸 제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곽운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넌 기천수호문의 제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포탈이 발동될 동안에 그를 향해 아홉 번 절을 했다.

*

“잘 다녀왔어요?”

지구의 공기가 이렇게 탁하고 더러웠던가? 공간 이동 마법이 끝나자 관리실과 마중 나온 원장님이 보였으나 나는 코부터 틀어막고 말았다.

“원장님도 잘 지내셨… 으윽.”

그녀는 픽 웃으며 말했다.

“다정 씨도 이제 맡을 줄 아네요. 지구의 냄새. 호호호. 자 그럼, 무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나는 곧바로 원장님에게 보고했다. 곤륜산에서 기린의 기운을 느끼고 향하다가 ‘주술사’라는 존재를 만난 것,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야옹이가 기묘한 힘을 빌려준 것과 말을 했다는 것은 감추었다.

그리고 곽운과 사제 관계가 되었다고 말하고 그에게 받은 황금빛 호두 열매를 보여 줬다.

“어머.”

그녀는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삼켜요.”

“네?”

“삼키라고요.”

아니, 또?

이게 뭔 줄 알고?

머뭇거리던 나는 그녀의 성화에 결국 열매를 입안에 넣었다. 단단한 감촉이 느껴지던 열매는 입에 들어오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음?”

나는 포근이 때처럼 격한 부작용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나가 늘어났나 싶어 집중해 봐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이게 뭐죠?”

“두고 보면 알아요. 호호.”

그녀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원장실로 향했다. 저 걸음걸이를 요즘 따라 유난히 자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리 신나십니까, 원장님?

*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다가 똥을 쌌는데, 그 똥이 사실 돼지들이었고, 돼지들은 다시 황금빛 열매를 배설했다. 그러다 갑자기 활활 불타는 거대한 산이 나타나더니, 돼지들이 일제히 산을 지나치며 바비큐 구이가 되어 내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멍한 정신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지?”

길몽도 보통 길몽이 아니잖아.

무슨 길몽 모음집이야? 합쳐 놓으니 완전 개꿈인데?미신은 믿지 않으나 이건 복권을 살 수밖에 없는 꿈인지라 출근하는 길에 로또를 샀다.

당연히 당첨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요일, 복권 방송은 봤다. 혹시 모르니까.

“어?”

그리고 나는 1등에 당첨됐다.

음.

기분이 좋긴 하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마음이 더 크다. 뭐냐, 이건? 제약 회사로부터 받는 로열티로 돈은 부족함이 없었으나, 갑작스레 로또에 당첨되어 10억을 받다니.

뭔가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 로또 1등만큼 크게 터진 경우는 없었지만, 사소하게 운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신호등을 건널 때 빨간 불을 보지 않았고, 오랜만에 켠 게임에서 하루 만에 전설 아이템을 득했고, 점심밥으로 사 먹은 컵라면에는 튀김들이 일반 라면보다 두 배는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유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기린은 상서로운 신수였지?’

기린의 흔적을 삼킨 내가 운이 좋아진 것은 그 때문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