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목욕하자 (1)
토끼는 발버둥 치다가 결국 원장님의 ‘공간 이동 마법’에 당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마물원 우리로 이동 당했을 것이다.
“산신령의 몸 위엔 많은 마물들이 살아요. 보통 방금 전 토끼처럼 아무 해도 끼치지 않지만, 따개비처럼 속살에 깊게 파고들어 산신령의 생명을 갉아 먹는 못된 놈들도 존재하죠. 놈들을 강제로 없앤다면 산신령은 많은 힘들이 뜯겨 나갈 테고, 자칫하다간 대전이를 일으킬 수 있어요.”
뭐가 목욕이란 말인가.
원장님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이게 목욕이 아닌 사냥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산신령에게 고통 완화 마법을 걸 동안에 다정 씨는 산신령이 유독 고통스러워하는 마물들만 찾아내 없애 주세요. 아니, 할 수 있다면 대화로 물러가게 하는 게 가장 좋겠죠.”
“산신령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건 어떻게 제가 알죠?”
“그에게 신호를 보내라고 할게요. 다정 씨가 가진 교감의 힘이라면,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산신령의 몸에 기생하는 악질 마물들을 없애 달라는 거지. 바다거북이가 작은 따개비에 죽어 가는 것처럼, 산신령은 너무 크기가 커 스스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장님은 언덕 아래에 난 지하 동굴로 향하며 내게 당부했다.
“조심해요. 감히 산신령의 몸을 갉아 먹는 마물들이 ‘착한’ 녀석들일 리가 없을 테니까.”
*
“아이고, 나 죽네.”
언덕에 가만히 앉아 있자 이윽고 원장님이 말한 신호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머릿속에 거대한 말벌이 들어와 윙윙거리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고 있다. 교감이라기에는 일방적인 간섭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독한 고통이 동반됐지만 나는 머리통을 주먹으로 쳐 가며 고통을 참아 냈다.
내게 말을 거는 아득한 존재,
산신령이겠지. 그가 직접 내게 말을 거는 거야.
“아아악! 알아들을 수 없잖아!”
하지만 강대한 존재인 산신령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속삭임은 내 뇌를 녹이고, 두개골을 부술 뿐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위치를 알려 주는 거야.’
고통이 지속될수록 산신령이 보내는 메시지는 뚜렷해졌다. 젠장, 아파. 산신령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속삭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치다가 코피가 왈칵 쏟아졌지만, 머리 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아…….”
마침내 지독한 두통이 끝났을 때,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난장판으로 만든 주변이 보였다. 나는 핏물을 닦아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망할… 원장님.”
아니, 요즘 들어 심하잖아. 빨간 피. 특히 내 피 좀 안 보고 일하고 싶은데. 의사보다 피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물론 그녀가 미리 경고를 하긴 했다. 하지만 주사 맞기 전에 간호사 ‘따끔해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
“그래, 산신령님. 요놈들이 당신을 아프게 한다는 거지?”
산신령이 내게 말하고자 한 건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기생 마물들, 거북이의 따개비 같은 놈들이었다.
‘많이 고통스럽구나.’
지독한 고통이 진정되고 머리가 차분해지자, 내가 느낀 고통이 산신령이 느끼고 있는 고통의 일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그냥 숲과 산에 지나지 않던 산신령의 몸, 나는 고개를 숙여 흙을 매만졌다. 아주 미세하지만 느껴져. 미세하지만, 확실히 생명이 담겨 있다.
산신령의 몸은 자연과 같아 꺾이고 부러져도 아마 큰 고통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도가 지나치게 산신령의 생명을 빨아들이는 마물들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 고통을 지금도 느끼고 있었다. 무간지옥이 따로 없다. 이렇게 심한 고통을 계속 받고 있노라면 이만한 덩치를 가진 존재라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야.
‘사냥… 아니, 목욕을 시켜 줄게.’
산신령이 알려 준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마물은 총 네 마리. 위치는 저절로 알았다. 꽤 가까운 곳에 그중 한 마리가 있었다.
고통을 잠시나마 공유한 나는 산신령에게 연민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나는 칫솔이다. 지독한 치통을 남기는 세균들을 닦아 없애는 칫솔맨, 세균 같은 놈들을 남김없이 닦아 내 주마.
*
언덕을 내려와 울창한 숲으로 향했다. 산신령의 몸은 생태계와 똑같았다. 잔뜩 자라난 거대한 나무와 풀, 꽃. 마물들도 더러 보였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것들은 아니다.
“가까워지고 있다.”
숲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산신령에게 고통을 주는 놈의 존재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첫 번째 놈.”
숲 깊숙한 곳에 끈적이는 공기를 내뿜는 늪지대가 있었다. 나는 야옹이의 힘을 빌려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늪으로 다가갔다.
갈색과 짙은 초록색이 섞인 색의 늪지대 위, 놈은 그곳에 있었다. 흉악하게 생긴 거대한 뱀이었다. 아나콘다와 비슷했는데, 머리는 여섯 개였고 덩치는 호랑이를 삼킬 만큼 거대했다.
위험한 녀석이다. 놈에게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마치 미라 마물처럼 놈은 원초적으로 악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머리가 여섯 개니 육두사냐? 개 같은 놈. 악취 풍기는 주둥아리로 어디 내 몸을… 아니, 산신령님 몸의 기운을 빨아먹어?”
놈을 보자마자 나는 매우 분노하며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내게 고통을 준, 아니 산신령에게 고통을 준 나쁜 놈을 당장이라도 잡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씩씩대며 놈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저절로 화가 풀리고 걸음이 느려졌다.
‘그래, 일단 대화를 시도해 보자.’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 정도는 한 입에 삼킬 만한 대가리를, 그것도 여섯 개나 가진 뱀을 상대로 평화주의가 되는 건 당연하잖아.
나는 조용히 몸을 숨기고 놈에게 말을 걸었다. 놈은 고개를 추켜들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자를 찾는 듯 여섯 개의 머리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위험한 놈이다.’
생긴 것도, 하는 행동도 그렇지만 역시 위험한 마물이었다. 놈의 마음은 잘 읽히지 않았다. 보통 이런 놈들은 마나가 나보다 월등하게 강하거나 아님 대화가 필 지 않은, 극악무도하게 사나운 마물이다.
놈은 후자인 것 같았다. 사회성 제로에 포식자로서 군림하기만 하는 지독한 놈이다.
‘일단 시도해 보자.’
나는 놈이 잘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다. 검을 쥐고 곧바로 싸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죽여야겠지.’
내가 어릴 적부터 동물과 교감하며, 그리고 마물원에서 마물들을 보살피며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녀석들과 말이 통한다고 해서, 내가 박애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기에 좀 더 냉정해졌다. 동물 중에서도 사이코패스도 있고, 따돌림을 주도하는 못된 놈도 있고, 저놈처럼 주변에 해악만 끼치는 괴물도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 인간보다 낫다는 얘기는 언제나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물론 사람보다 나은 짐승도 더러 있지만, 못된 짐승도 많으니까 말이다.
평소에는 놈들을 만나도 무시하고 말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놈이 산신령을 죽게 만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부디, 말귀 좀 알아먹어라.
싸우긴 싫단 말이야.
“내 말 알아듣지? 너…….”
기척을 드러내고 놈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 나는 쇄도하는 여섯 개의 뱀 대가리를 마주했다.
즉시 뒤로 물러나 모아 둔 불꽃의 탄환을 발사했다. 젠장, 예상하긴 했지만 엿 같은 기분이 든다.
놈이 나를 잡아먹으려 든다.
쥐가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고양이는 살려 주지 않는다. 나는 놈에게 쥐였다. 잡아먹어야 하는 쥐.
그에 맞서 나도 싸울 준비를, 아니 죽일 준비를 했다.
쉬이이!
놈의 무기는 거대하고 유연한 덩치에서 오는 힘이었다. 마물로서 어떤 특별한 힘은 없는 듯했다.
나한테 다행이었다.
‘느리게 보인다.’
무림의 곽운 스승님에게 배운 형의권. 내가 묘사한 건 야옹이의 움직임. 본래 나는 투박하고 거친 몸놀림으로 야옹이를 흉내 냈지만, 형의권을 통해 ‘기술’로 승화된 몸놀림은 격이 달랐다.
뱀은 거칠게 덤벼들지만 내 옷깃 하나도 스치지 못했다. 꼬리를 휘둘러도, 날카로운 독니를 가진 여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쇄도해도, 나는 가볍게 피해 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나는 공격을 준비했다.
‘배운 걸 써먹어 보자.’
마물의 움직임을 따라한다.
그리하여 싸움의 기술로 승화시킨 게 형의권, 하지만 보다 높은 단계가 있다. 마물의 움직임을 검으로 귀결시키는 형의검이다.
“뱀을 상대할 땐 고양이가 제격이야.”
많고 많은 마물의 움직임 중 야옹이를 흉내 낸 것은 익숙하다는 점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무엇을 따라해야 할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직선상으로 공격해 오는 뱀을 상대하기에는, 더 민첩하고 자유롭고 능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고양이의 힘이 알맞았다.
실전은 처음이었다.
사각!
하지만 고양이가 뱀의 머리를 짓누르듯, 바람처럼 휘둘러진 검은 순식간에 놈의 머리를 잘라 냈다.
“냐앙!”
무아지경.
휘두른 검은 마침내 여섯 번째 뱀의 대가리를 잘라 냈다. 나는 내가 검을 휘두르면서 ‘냥냥냥’ 거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만큼 집중했다.
“후우…….”
머리가 모두 잘려 나간 놈은 꿈틀거리다가 결국 늪에 삼켜졌다. 그 순간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무어라 말하는지 알 수 없었고, 고통은 여전히 느껴졌지만 약간은 덜 아픈 것 같았다.
*
숲과 산을 헤집으며 유독 강한 고통을 주는 탐욕스러운 마물들을 찾아 죽였다. 대화가 통하는 마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놈들이니 산신령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 거겠지.
‘이제 마지막인가.’
뱀 마물을 시작으로 기괴하게 생긴 마물을 두 마리 잡고, 이제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다.
나는 긴장하며 놈을 찾아 나섰다.
세 번째 마물을 죽였을 때도 산신령의 고통은 여전했다. 즉, 산신령이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을 마지막 놈이 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얼마나 끔찍한 놈일까.
‘산 위잖아?’
놈의 기운은 산신령의 몸에 솟아오른 산들 중 가장 크고 높은 산의 정상에서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숨죽이며 기척을 숨겼다.
기운은 느껴지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둘러봐도 짙은 회색 구름만이 뭉실뭉실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수많은 마물과 지내오며 갈고 닦은 ‘본능’이 경고한다. 위험해, 지금 엄청 위험한 상황이야.
끼이-!
그때였다.
내 머리 위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재빨리 몸을 풀숲에 숨기고, 고개만 추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림자가 주변을 덮는다.
거대한 날개로 인하여. 주변이 그림자로 덮인다. 구름을 헤치고 나타난 마물, 그건 괴조였다.
놈을 처음 마주 보는 순간 단 한 가지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크고 강력한 마물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난다면, 대체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끼이!
하늘을 활공하던 거대한 새.
독수리와 닮은 놈이 갑자기 날개를 접더니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노란 부리로 바람을 찢으며 섬뜩한 파공음을 자아낸다.
쿵!
그러더니 이내 ‘땅’으로 파고들었고, 으읍-!
그 순간 나는 정신을 놓을 만큼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아 내며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으나 뱉지 못하고 핏물을 삼켰다.
“이 빌어먹을 새대가리 새끼가.”
고통스러워. 단지 일부분만 느꼈을 뿐인데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산신령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놈은 사냥하고 있었다.
지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간 놈이 다시 지상으로 나올 때 부리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산신령의 기운.’
놈이 꿀꺽 삼키는, 영롱한 옥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의 정체를 난 알았다.
흙과 나무에 감춰진 산신령의 살점이었다.
놈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물수리 같았다. 하늘에서 쇄도하여 두터운 대지를 꿰뚫고, 산신령의 살점만을 낚아채 가는 무자비한 사냥꾼이다.
“망할 새끼.”
지금도 고통은 전해져 온다.
산신령은 참아 냈다. 놈에게 둥지를 제공하고 먹이가 가득한 환경을 선사했다. 그런데도 놈은 은혜를 베푼 산신령을 잡아먹고자 했다.
젠장.
교감이 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산신령과 확실히 교감하고 있어. 그러니 이토록 분노하고 있는 거야.
“감히.”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까.
이제 내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단지 은혜도 모르는 비열한 놈을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 되었다.
나는 검을 들었다.
누가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고 꾸짖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를 어떻게 검으로 잡는다고 무어라 했겠지.
‘형의검.’
하지만 나는 추켜든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양해의 바다에서 포근이가 보였던 그 힘.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시야가 붉어진다.
검에서 점점 불꽃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검을 든 손을 천천히 몸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포근이를 흉내 내며, 내 모든 움직임과 동작을 녀석의 ‘입’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나는 놈을 떨어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검 한 자루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