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목욕하자(2)
나는 어떤 마물보다 샐러맨더의 움직임을 잘 알았다. 녀석이 태어날 때부터 2년 동안이나 지켜봐 왔으니 당연하다. 젖을 빠는 움직임부터 썩은 고기를 먹을 때, 잠을 잘 때, 똥을 싸거나,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까지도 머릿속에 선했다.
그래서 따라할 수 있었다.
흉내 낸 움직임을 검으로 귀결시키는 형의검은 아직 내게 난해한 무공이었지만, 포근이를 비롯하여 뼛속까지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몇몇 마물의 움직임은 능히 검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의검, 샐러맨더 ver.
이름을 붙이자면 형의검 샐러맨더 버전, 혹은 초식이겠지. 그리고 지금 펼치는 초식은 녀석이 보여 줬던 가장 강력한 힘을 따라한 것이다.
검날에 붙은 샐러맨더의 순수한 불꽃은 점점 치솟았다. 언뜻 거대한 성냥처럼 보였다.
‘검(劒)은 아가리다.’
불꽃을 머금은 포근이의 입,
불꽃은 머금은 검.
곽운 사부님의 말을 빌리자면 무공이란 내공을 바탕으로 초식이란 기술을 펼치는 것이다. 즉 나도 마물(포근이)의 기운을 바탕으로 초식(움직임)을 표출하니, 능히 무공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곽운 사부님은 무공에 초식을 붙이는 이유를 설명하며 형의검을 다룰 때 사소한 기술까지 모두 이름을 붙이라고 하였다. 초식을 떠올리며 감각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지.
그래서 억지로 붙여 봤다.
“홍식(紅息).”
몸 쪽으로 끌어당긴 검을 활공하는 괴조를 향해 뻗었다. 그 순간 기름을 부은 듯, 검에 맺힌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괴조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양해의 바다에서 어룡을 몰아내던 포근이의 브레스처럼 이글거리는 불꽃의 기운이 맹렬하게 놈을 덮쳤다.
“맙소사.”
내가 펼친 무공이나 스스로 기겁하고 말았다. 내 손에는 검 한 자루만 쥐어졌을 뿐인데, 마치 폭탄이 날아간 것 같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을 꽉 쥐고 화염에 삼켜지는 괴조를 바라봤다.
끼이이이-!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던 괴조는 고막이 터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녀석에게서 떨어져 나온 재 가루가 내 발치에 쌓인다. 하지만 녀석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망할.”
낙하하던 놈이 공중에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놈은 숯검댕이가 된 채로도 살아 있었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전보다 낮게 날며,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검이 닿기에는 먼 거리였다.
게다가 놈은 내게 겁먹어 도망을 우선시했다. 홍식이 통한 건 놈이 제 날개를 믿고 방심했기 때문이다.
홍식을 다시 펼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사이 놈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말 것이다. 지금 놓치면 안 돼.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다면 내가 다시 놈을 잡을 기회는 없어. 처음 만났을 때처럼 구름 너머에서 활공하고 다닌다면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침착히 놈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리 강한 육체를 지닌 나라도 뜀박질로 하늘을 나는 새를 낚아챌 수는 없다. 날개를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다.
하지만 무공에는 날개가 없더라도 나는 법이 존재했다.
‘경공이 필요해.’
곽운 사부님의 말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다.
[무공은 다양하다. 외공과 내공 외에도 기의 유형에 따라 강, 유, 환으로 나뉘며 성질에 따라 정과 마, 또한 오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된 개념으로 유형과 성질에 구애 받지 않는 무공이 있으니, 바로 경공이다.
경공은 무공의 주춧돌이지. 무공 초식의 가장 기초이자, 경공이 튼튼해야 강력한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저급한 무공들은 하나의 경공만을 사용하나, 신공이라 불리는 무공들은 달을 걷든 하늘을 걷든 어떤 무공하고도 서로 호환이 된다.
항룡십팔장의 퇴로에 마환강도의 보법을 섞으면, 어지러우나 패도적인 도법인 천강참마도법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그때, 설명을 듣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말씀을 들어 보니까 결국 경공이란 뛰는 법이 아닙니까? 뛰는 것에도 방법이 그렇게 다양한가요? 저도 스프린터와 마라토너의 차이는 아는데.]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해 줬다.
[맞다. 그냥 뛰는 법이지. 토끼는 도망칠 때 발달된 뒷발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방향을 꺾으며, 범은 육중한 덩치로도 유연하고 탄력적인 근육을 이용해 순식간에 높은 담마저 뛰어넘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달을 ㅤㅉㅗㅈ는다는 유성간월의 경공과 풀잎 위를 걷는다는 초상비의 경공도 그저 하나의 뛰는 법에 지나지 않는다. 세간에선 무림절기라 불리지만 결국 그럴싸한 허세라는 것이다.
경공이란 그저 뛰는 법이지. 그러나 모든 동물을 걷거나 뛰어야 한다. 그래, 어쩌면 네 기묘한 재주는 경공에서 재능을 꽃 피울지도 모르겠구나. 사람인데도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걸으며, 도마뱀처럼 납작 엎드려 빠르게 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하하.]
‘뛰자.’
곽운 사부님의 말대로 경공이 그저 뛰는 법이라면, 사실 나는 무공을 배우기 아주 예전부터 경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형의검을 통해 보다 세련되고 잘 단련되었을 뿐이다.
‘떠올려. 그때의 기분을.’
괴조를 향해 달려가는 내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그 순간 여전히 괴조는 내 머리 위를 날고 있었으나, 훨씬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를 잡기 위해 나는 녀석을 떠올렸다. 날개 달린 마물을 떠올린다고 하여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날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도 하늘을 나는 마물이 있었다.
녀석은 내가 교감한 수많은 마물 중에 단연코 가장 빨랐으며 가장 잘 뛰었다.
내가 포근이와 야옹이에 이어서 세 번째 가족이라고 생각한 녀석이다. 나는 녀석을 정씨 집안의 셋째 가족 정덕후라, 다른 사람들은 녀석을 ‘스위프트덕’이라고 불렀다.
형의검 경공 스위프트덕 ver.
바람을 ㅤㅉㅗㅈ아 걷는다. 그래서 풍종도보(風從道步)의 경공이라 명하기로 했다.
몸이 가벼워졌다.
내딛는 발이 점점 먼 곳을 향했다.
이윽고 나는 한 번 뛰었을 뿐인데, 몇 초 동안이나 공중에 머물렀다.
그러길 열 걸음이 넘자 이내 땅보다 하늘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백 걸음을 걸었을 때 내 몸은 공중에 있었다.
마이클 조던이 덩크슛을 하다가 에어워크로 하늘을 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당황스러웠으나 상쾌했고, 위태로우나 자유로웠다.
나는 하늘을 ‘뛰며’ 녀석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놈에게 가까이 다갔을 때, 놈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에 이내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쿵-!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겉은 괜찮아도 속은 엉망이다. 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다시 한 번 놈을 향해 뛰었다.
‘역시 난 곽운 사부님의 말대로 재능이 없어.’
마치 내 발밑으로 흔들리는 발판을 놓은 듯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어설픈 자세로 하늘을 뛰었다. 조금이라도 발에 힘을 적게 주니 곧바로 추락했다.
사부가 보여 준 경공에 비하면 허접했다. 무공을 따라하지 못하니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인 내가 무림인을 어떻게 따라잡는가?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뛰었다. ‘달려라 하니’가 된 기분이었다. 하니는 엄마를 보고 싶어서 달리고, 나는 놈을 죽이고 싶어서 달린다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흐압!
기합 소리와 함께 뛰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전과 달라. 확실해. 이번에는 성공했어.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을 향해 달려갔다. 기운이 빠지기 전에 놈을 죽일 생각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을 가득 줬다.
마침내 날갯짓의 바람에도 휩쓸리지 않고 놈을 벨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약해졌다.’
교감으로 알 수 있었다. 처절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놈의 상태를!
놈은 나는 것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듯했다. 멀쩡한 놈이라면 쉽게 죽일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검을 추켜들며 놈의 목을 노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는 고통 없이 빠르게 죽이는 것이었다.
끼이!
하지만 그마저도 놈의 저항에 실패했다. 괴조는 도망치던 방향을 바꿔 노란 부리를 들이밀며 내게 쇄도했다. 생을 포기하고 나를 죽이겠다는 고약한 심보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에 맞서 나는 검을 뻗었다.
불구덩이에 먼저 뛰어 들어와 준다면 나야 환영이다.
“홍식.”
화르륵!
또 다시 뿜어져 나간 응축된 화염덩어리.
기운이 빠져 첫 번째 홍식보다 약했지만, 죽어 가는 놈을 마무리 짓기에는 충분했다.
놈은 죽었다.
“젠장.”
하지만 나도 죽을 것 같았다.
경공을 펼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빠져 버렸다. 게다가 홍식을 펼친 반동으로 땅에 낙하하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이대로 땅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아, 고통이다. 지독한 고통을 기다리는 이 고통.
쿠웅!
순간 정신을 잃었다가, 고통 때문에 눈을 떴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잃었지만 망할 고통은 나를 다시 제정신으로 돌려놨다.
“으으.”
시원하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땅에 처박히다 못해 흙더미 속으로 움푹 파고들어 갔다. 온몸의 뼈가 부러진 것 같다.
‘일을 마쳤어요. 빨리 와 줘요.’
나는 원장님이 오길 간절히 기다렸다. 이 고통을 멎게 해 줄 존재는 원장님뿐이다. 빨리 와라. 빨리!
“음?”
늦어지는 원장님을 원망하던 그때였다. 순간 고통이 덜 해졌다. 여전히 뼈는 부러져 있고, 몸 상태는 최악이었으나 고통만은 멎었다.
“설마. 당신은.”
갑자기 깨달은 나는 울컥하여 그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하늘에서 추락하여 온몸의 뼈가 부러진 고통이다.
즉 방금 전에 느낀, 격이 다른 고통은 사실 내 고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괴조가 죽어서 그런지, 내가 힘이 약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간 교감이 강화되며 산신령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이다.
산신령은 온몸의 뼈가 부러진 고통보다 더 한 고통을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거야.
‘상쾌해.’
물론 지금도 나는 죽을 것 같이 아팠지만,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다. 고통에 해방된 산신령을 만나 보지는 못했어도, 지금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
얼마 후, 원장님이 도착했다.
그녀는 손쉽게 내 몸을 치료해 줬다. 그래도 후유증이 상당해 몸을 거동하기에는 당분간 불편할 테지만, 한 행동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멀쩡했다.
“으음.”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떨어진 곳이, 어디 보자. 저 구름 아래쯤 되려나?
그리고 고개를 내려 새까맣게 타 죽은 괴조를 바라봤다. 저게 내가 한 짓이란 말이지.
평소에도 내가 강해졌다고 몇 번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와닿았다. ‘무공’이라는 싸움의 ‘기술. 이만치 위력적이었어.
“나 강해졌구나.”
혼잣말이었으나 지나가던 원장님이 넌지시 한마디를 보태었다.
“다정 씨,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마요. 오호호.”
문득 원장님의 얼굴을 보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강해질수록 느껴지잖아. 젠장, 격이 달라.’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았다.
젠장, 저 먼치킨 사기 캐릭. 아무리 강해져도 원장님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지.
*
산신령의 고통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다만 큰 고통들은 사라졌다. 그는 나머지 미세한 고통을 주는 마물들과는 공존을 선택한 듯했다.
원장님과 지구로 향하는 포탈의 앞에 섰다. 원장님이 먼저 지나가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콰르릉!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천둥은 하늘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땅 깊숙한 곳, 그곳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천둥소리.
하지만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고맙구나.]
또렷하게 들려온 산신령의 목소리로.
*
이번에는 휴가를 받지 못했다.
병가 처리 될 줄 알았는데, 지구로 넘어오자마자 내 몸이 말짱해진 것이다. 아니, 전보다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원장님은 내 몸의 상태를 점검하며 산신령의 선물이라고 말해 줬다.
“산신령이 자연의 정기를 일부 나눠 줬군요. 그가 다정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나 봐요.”
그날 밤, 나는 야옹이를 데리고 몰래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자주 오는 곳이었으나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넌 여기 있어, 야옹아.”
빌딩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발을 내딛었다.
허공을 향해서.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나는 집에 돌아왔다. 거수들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내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