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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21화 (121/258)

# 121화 가디언이 되고 싶어

그 후의 기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놈이 죽은 후 갑자기 끔찍한 복통이 생겼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뜨자 익숙한 집의 풍경이 보였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어느새 출장에서 돌아온 원장님도 있었다. 원장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뭘까, 저 눈빛은. 뭔가 신기하거나 재밌는 것을 보는 어린아이 같은 눈이다.

“윽.”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곁으로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으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몸이 내 것 같지가 않았다. 얼굴 근육만 움직여질 뿐, 목 아래의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원장님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이불을 들추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알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하여 몸부림쳤지만, 내 몸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원장님의 손이 향하는 목적지는 내 배였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감각만은 그대로였다.

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저항할 수 없었다. 젠장, 정말 수치스럽다. 차라리 느끼지 않으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 몸은 제멋대로 반응해 버린다.

“드래곤 손은 약손.”

하지만 달아오른 수치심과 흥분은 이어진 원장님의 말에 곧장 진정이 되었다.

“뭐요?”

원장님은 여전히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며 다시 말한다.

“내 손은 약손. 가디언 배는 똥배.”

음률이 없어서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원장님은 흔히 엄마들이 아기 배를 문지르며 아프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 왜 나에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이고, 머리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미쳤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용이니 무례한 것 같고, 무안을 주는 것도 미안했다. 만약 이게 드래곤 특유의 호기심이 자아낸 상황극이라면, 마땅히 어울려 주리라 생각했다.

“응애! 응애!”

할머니와 엄마가 아기한테 하는 행동이다. 그녀의 상황극에 맞춰 나는 아기처럼 우렁차게 울었다.

그러자 원장님은 당황하며 재빨리 손바닥을 배에서 뗐다.

“이런.”

원하는 대로 어울려 줬는데 왜 저러지?

“내상으로 뇌까지 손상되었군. 큰일이야.”

그래.

이제 나를 놀려 먹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친해졌다는 거겠지. 나는 원장님의 능청에 억지로 깔깔 웃으며 말했다.

“깔깔깔. 웃겼어요. 웃겼으니까 이제 그만 말해 주세요. 내 몸이 어떻게 된 거죠? 전혀 움직여지지 않아요.”

또 다시 원장님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내 배를 쓰다듬었다.

“내 손은 약손, 가디언 배는 똥배.”

“원장님. 진지하게,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노래를 멈췄다. 하지만 내 배를 쓰다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주화입마예요.”

원장님이 말하길,

내 몸은 극심한 내상을 입어, ‘주화입마’라는 상태라고 했다. 아주 심각한 상태로 용의 치료 마법으로도 고치기 힘들어, 며칠 동안이나 직접 수기 요법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내 배를 쓰다듬는 행동은 내게 수치심을 주기 위한 장난이 아니라, 정말 치료법이었던 것이다. 드래곤의 손은 정말 약손이며, 마나에 의한 내상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자연 치유된다나.

정신을 차린 후에도 몇 주 동안이나 침대에서 살며, 하루 세 번씩 원장님의 수기 요법을 받아야 했다. 그 외에 먹고 자고 싸는 건 불편하지 않았다. 마법은, 정말 위대해.

병상에서 생활할 동안 나는 카르마 길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낙원이라 칭했어.’

짜 맞춰지는 퍼즐, 드러난 그림.

알 것 같다. 카르마 길드가 뭐 하는 새끼들인지. 사실 어렵지 않은 추측이었다. 왕정의 몸에 새겨진 카르마 문양과 놈이 주술사라는 것. 카르마 길드가 주로 사용하는 힘이 무림에서 건너온 힘이라는 것과 휴양지에서 마주친 카르마 헌터들이 사용했던 ‘주술’

목적도 알 것 같다.

내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왕정은 죽을 때 기막힌 정보를 던져 주었다.

‘주왕이라는 놈들은 아마 무림에서 꽤 끗발 날리는 새끼들이겠지.’

원장님은 존재력이 강한 자들은 차원이 버텨 주지 못해, 전이가 끝날 무렵에서야 지구로 넘어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 주왕이란 자들도 무림에서 엄청 강한 존재겠지. 지금까지 겪어 본 바로는, 못된 새끼들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카르마 길드는 무림의 주술사들과 결탁한 나쁜 새끼들이며, 어떠한 방법을 통해 주왕들을 지구로 불러오려고 하는 거겠지.

아마 목적은… 음, 세계 지배?

카르마 길드의 목적과 비밀에 대해서 나름대로 추리했다. 그 결과,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과도한 상상력,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넘기겠지만, 마물원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을 수없이 겪어 온 나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이다. 막말로 지금까지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이계인들은 너무 착했다.

아무리 갑이 지구고 을이 이계라지만, 너무 순탄했던 것이다. 이제 슬슬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미친놈들이 등장할 때가 되었잖아?

*

몸이 완치되자마자 원장님에게 카르마 길드에 대해 내가 알아낸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오, 그래요?”

대화는 저 한마디로 끊겼다.

그 후 내 질문을 원장님은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끈질기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때마침 찾아온 손님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지금은 오후에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사막 투어를 준비해 주세요.”

오후에 찾아온 손님들은 사타리언 부인의 아이들이었다. 도마뱀 인간 ‘사타리언’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1세대 혼혈 아이들. 녀석들은 2년 사이에 부쩍 자라 어느새 아이티를 벗었다. 아이들은 날마다 몰라보게 큰다지만, 아니 벌써 청소년이 되었다고?

‘괜한 기우였어.’

녀석들은 나를 삼촌이라 부르며, 사막 투어를 잘 따라 줬다. 물론 워낙 성격이 지랄 맞던, 아니 발랄하던 아이들이라 사소한 사고들(거대 개미귀신에게 잡아먹힐 뻔하거나, 마물 쇠똥구리를 건드려 온몸에서 똥 냄새가 나게 된 것 등)은 있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 점이 더 좋았다.

만약 2년 전에 비해 의기소침하고 소심해졌더라면, 더 마음이 안 좋았을 것이다.

세간의 편견과 오해는 녀석들에게 큰 난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2년 전 그대로 밝게 자라 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년의 시간이 이만큼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면 50년, 100년이 지난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 그때쯤이면 오히려 순수한 지구인이 더 드문 종이 되지 않을까?

*

나는 사타리언 아이들을 배웅해 주고 관리실로 돌아왔다. 원장님은 그만 퇴근하라고 했지만, 발을 돌리지 않았다.

“이번엔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분명하다.

분명히 원장님은 알고 있다.

“다 알고 게셨죠, 카르마 길드.”

원장님의 눈빛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의 풍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 넘긴 후 대답을 했다.

다른 주제의 이야기였다.

“다정 씨는 이 세계가 평화롭다고 생각하세요?”

평화롭다의 기준을 조금 낮추어 보자면 확실히 평화로운 게 맞다. 적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비교적 평화롭다고 생각해요.”

“왜 그럴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화의 이유를 물어보니, 선뜻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다시금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아직 서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카르마 길드는 무림 주술사들의 야욕을 앞세운, 앞잡이들이지만 지구에는 그 외에 다른 세력들도 많아요. 카르마 길드보다 더한 악인들도 있고, 감춰진 단체도 있으며, 나도 모르는 다른 세계에서 온 전령들도 있지요.”

원장님은 드물게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내게 사과했다. 그녀의 미안함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게 아니었기에 나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다정 씨에겐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역시 내 오만이었겠죠. 드래곤이 항상 그렇듯, 늘 저지르는 오만…….”

원장님은 카르마 길드에 대해서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카르마 길드와 무림의 관계와 목적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줬다. 카르마 길드는 무림의 주술사들에게 힘을 제공받는 대신, 주왕이라 불리는 기괴한 존재들을 지구로 전이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목적은 카르마 길드의 간부와 차원 간 왕래가 가능한 주술사들만 알고 있었다. 또한 무림인 곽운은 무림 쪽에서 주술사들의 동태를 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주왕, 혹은 대방주라 불리는 자들은 무림의 고수들로, 전이에 의해 기이한 힘을 받아들인 자들이지만, 아직 원장님조차 모든 걸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착한 놈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가 되어 주왕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그들을 지구에서 지워 버릴 생각입니다.”

원장님의 말이 진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주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원장님의 상대는 안 될 거야.

“하지만 다정 씨와 나에게 이마저도 사소한 일이 될 거예요.”

놀라운 말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 카르마 길드는 지구에 굉장한 위협이 되는 존재였지만, 원장님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해 오던 마물원 일들 중에 하나처럼 말이다.

“다정 씨는 선택을 해야 하겠죠.”

잊을 때가 되면 상기시켜준다.

내가 드래곤의 가디언임을.

원장님은 담담히 말했다.

“전이가 가까워지며 닥쳐올 상황에 대하여, 만약 다정 씨가 가디언으로서 한계를 느낀다면 그만두셔도 돼요. 마물원 직원을, 내 가디언을.”

지금보다 일이 난해하고 난처하고 어렵고 위험해질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2년 전에 마츄의 털을 빗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위험도가 천지 차이니까.

하지만 단지 마물원 일과 심부름 따위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부딪칠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 확연하게 느껴졌다.

‘마물원을 그만두면, 드래곤의 가디언을 그만두면 난 뭐 하지?’

예전의 삶,

아니. 다르다.

모아 둔 돈도 많다. 김빠진 콜라병에 가래침을 뱉던 시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떵떵거리며 살 수 있고, 교감의 힘을 이용하면 헌터 랭킹 100위 안은 식은 죽 먹기겠지.

하지만,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매 순간 스케일이 엄청나던 일을 하다가, 갑자기 지구 안에서 놀게 되면 시시할 것 같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중독된 사람들은 순간의 위험을 즐긴다고 들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땅에서 빨빨 기어 다니라니, 재미없잖아.

내가 말했다.

“원장님, 전 그냥 마물원의 직원이 아니라요.”

사실 내뱉기 전엔 이토록 소름이 돋는 말일 줄은 몰랐다.

“원장님의 가디언이 되고 싶어요.”

부끄러움은 몇 초 후에 몰려왔다. 지금 내가 뭐라고 씨불인 거야?

전에도 이런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지만, 그때는 반쯤 장난이었다. 하지만 장난기가 하나도 없이, 지금 나는 너무나 진지했다. 원장님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해서 더 창피했다. 차라리 깔깔 웃으며 비웃기라도 하지.

“안녕히 가세요!”

인사말이 틀렸으나 정정하지도 못하고 곧바로 도망쳤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뭐? 가디언이 되고 싶어?”

이불을 차다 못해 벌떡 일어나 달밤에 체조를 해도 오그라든 발가락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

다정이 떠나고 홀로 남은 파르바티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진짜 그만뒀으면 어쩔 뻔했어.”

파르바티는 차원 수납장에서 보롤레오 640년산 샴페인을 꺼냈다. 지금은 멸망한 문명의 양조 기술로 만든 샴페인이다. 드래곤조차 한 병밖에 구하지 못해, 아주 기쁜 날에만 가끔씩 꺼내 한 잔씩 마시는 샴페인이었다.

파르바티는 그날, 샴페인을 세 잔이나 마셨다.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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