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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31화 (131/258)

# 131화 드루이드

관리실의 문을 열었다.

이제 이곳이 내 집처럼 느껴졌다. 힘든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안락한 둥지 같은 느낌이다.

“고생 많았어요. 삼 일 동안 쉬고 오세요. 전 바로 지하 도시로 돌아가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어야겠어요.”

나는 곧바로 엘프들의 도시로 돌아가려는 원장님을 불러 세웠다.

“원장님.”

넌지시 질문했다. 굳이 꺼낼 필요 없는 화재였으나 궁금했다.

“구탄에게 거짓말을 했죠?”

“제가 언제요?”

원장님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녀석에게 보장된 승리를 약속하셨다던데.”

그제야 피식 웃으며 원장님이 이야기했다.

“난 그저 구탄에게 ‘이러이러한 세 가지 대결’을 한다면 그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줬을 뿐이에요. 그걸 보장된 승리로 착각한 건 그의 잘못이죠.”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원장님을 따라 생글생글 웃었다. 사실 소름이 끼쳐, 피부가 간지러웠지만 말이다. 어쩐지 너무 극적인 대결 구도였다. 드루이드 대결, 위수와의 교감, 마지막 수령투까지. 모두 원장님이 조종한 거잖아.

내가 똑똑해진 것이 아니다. 그냥 몇 년을 그녀의 부하 직원으로 살다 보니 저절로 깨달았다. 그녀는 드래곤이지만 우월한 힘과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다만 그 힘을 다른 곳에서 쓴다. 지금처럼, 판을 만드는 데 쓰는 것이다.

역시 드래곤은 무섭다.

원장님은 무섭다.

“원장님.”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이는 정말 이토록 무섭게 치밀한 원장님조차 막을 수 없는 것인가?

“전에 전이를 막을 수 없다고 하셨죠.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정말 알 방도가 없는 건가요?”

그동안 비슷한 질문을 몇 번 한 적은 있으나, 이처럼 진지하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 원장님은 루비처럼 빨갛고 빛나는 눈동자로 내 눈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없어요. 단언하건대 그 어떤 신적인 존재라도 전이는 막을 수 없고, 막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요.”

때로 헷갈릴 때가 있다. 원장님은 사실 엄청난 거짓말쟁이고, 나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물론 대부분 맞는 말이다.

타의든 자의든 나는 원장님의 꼭두각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가끔씩 보여 주는 저 진실한 눈동자를 보면, 나는 또다시 그녀를 따르게 된다. 원장님은 지금까지 중요한 것은 결코 숨기지 않았다.

“그러니 그 이후의 세계를 대비해야죠.”

그러고 보면 항상 원장님은 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전이 이후의 세계를 대비한다는 것, 마물원의 목적이자 아마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겠지.

“전이 이후, 마침내 마지막 전이가 끝났을 때, 신들조차 예상하지 못할 거대한 차원에서 얼마나 많은 혼란과 비극이 일어날까요?”

원장님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

나는 더더욱 그녀의 신념을 깊게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빨간 눈은 어느 때보다 깊고 또렷했다.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고, 반듯하게 퍼진 어깨는 작았으나 많은 무게를 감당할 만큼 넓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비하는 거예요. 모래로 거대한 탑을 쌓듯 위태롭게,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내듯 끝은 알 수 없지만. 분명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거니까.”

전이는 점점 커져 간다.

그리고 나는 얼떨결에 마물원에서 일하며 드래곤의 가디언이 되었고, 그리하여 전이 이후의 세계와 가장 가깝게 연관된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번에도 엘프들과 엮이며 이종족의 사회에 대해서 깨달았다. 지구에 엘프들의 사회처럼 독특한 이종족의 사회가 몇 개나 더 있을까?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이번엔 기껏해야 다크 엘프들의 테러 행위였으나, 점점 더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이는 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전이 이후의 세계를 대비한다.’

전에도 생각했다.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다.

무엇이든 금방 싫증을 내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 분명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큰일 났네.’

누군가가 그러길, 자신이 하는 일이 좋아짐을 넘어 명예롭게 느껴진다면 목숨보다 소중해진다고 했다. 어쩌지? 내가 점점 자랑스러워지려고 하잖아.

*

황금 털의 원숭이가 TV 앞에 서서, 내가 드라마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

[고기 주세욥!]

“어허, 혀가 짧다.”

녀석에게 불과 30분 전에 고기를 줬다. 그것도 한우 등심 3kg, 원하는 대로 미디움 레어로 구워서 대령했다.

[고기를 달라.]

“이젠 말이 짧네?”

하지만 녀석은 생긴 것과 달리 배통이 엄청 컸다. 녀석을 데리고 온 후, 어림잡아 계산해도 한 달에 수백만 원은 고기값으로 지출하는 것 같다.

[고기 주세요.]

“싫어.”

[못된 새끼!]

“뭐?”

[날 책임진다고 했잖아!]

“또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

원숭이 녀석은 TV를 가리켰다. 아이고, 머리야. 언어 습득력이 굉장한 녀석이었다. 설마 아침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의 말을 따라하다니. 어젠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떽떽 거리는 녀석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좀 참아 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조그마한 덩치로 하루에 소 한 마리씩 잡아먹는 놈이 세상 어디 있냐!”

녀석이 조금 특별한 위수라고 생각하긴 했다. 감정만 전달되던 다른 위수들과 달리 녀석은 또박또박 나와 대화할 만큼 똑똑했다.

지금처럼 언어 습득력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풍기는 마나가 독특했다.

보통 위수는 저마다 풍기는 마나가 다 달랐다. 예를 들어 카르네의 하얀 원숭이는 파랗고 맑은 숲속의 냇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운을 풍긴다면, 구탄의 붉은 거북이는 뜨거운 불과 용암, 단단한 바위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그 풍기는 기운에 따라 드루이드를 통해 발현되는 능력도 다 다르다고 한다. 카르네의 드루이드는 바람과 숲을 조절했고, 구탄은 바위와 불을 조종했지.

하지만 이 녀석은 미묘했다.

풍기는 기운을 무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언뜻 녹림이 우거진 숲처럼 느껴지던 기운이 태산과 같이 웅장해지기도 하고, 바다처럼 넓고 깊어지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사나워지기도 했다.

[고기! 고기!]

하지만 특별한 위수라도 하는 짓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오랜만에 휴일이라 밀린 드라마 좀 보겠다는데, 녀석은 고기를 달라며 온 집구석을 방방 뛰어다녔다.

[아야! 왜 때렷!]

그러다 조용히 쉬고 있는 야옹이의 꼬리를 밞고 연달아 냥냥 펀치 스무 대를 맞았다.

“야야, 까불지 마라. 저 형님 무서운 형님이다.”

녀석은 야옹이에게 덤벼드려다가 움찔하고 물러났다. 그래, 알아본 거니? 저 녀석은 내 고양이지만 좀 그래.

떼쓰기가 안 통하자 내게 찰싹 달라붙더니 간지럼을 피우며 애교를 부렸다. 새끼 원숭이의 눈을 자주 마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정말 빌어먹게 귀엽다.

“에휴.”

결국 냉동고에서 내가 먹으려고 남겨 둔 스테이크용 고기를 꺼냈다. 녀석은 위수 주제에 미식가였다. 이대로 주면 안 먹고 조리해서 줘야 했다.

[고기다, 고기!]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탐스럽게 쳐다보는 녀석.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살 식구니 ‘반짝이’로 부르는 것은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았다.

“이 녀석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정씨 집안의 넷 째. 정고기다.”

고기를 좋아하니까 이름도 고기로 하자.

[싫어욥!]

나름 쉽고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반항하며 내 귀를 살짝 깨물었다.

[고기는 먹을 거! 난 먹을 거 아니야!]

녀석은 방방 뛰어다니며 지랄을 해 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너무 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누가 ‘정김치찌개’로 부르면 기분 나쁘지.

“알았어. 어디 보자, 그래. 딱 맞는 이름이 있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정단비다.”

[단비?]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귀의 털을 파닥파닥 거리며 기뻐했다.

[마음에 들어. 날 단비라고 불러!]

기쁘나 싫으나 방방 뛰며 지랄하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단비는 신나서 방을 뛰어다니다가 야옹이에게 다가갔다.

[난 단비, 넌 이름이 뭐야?]

야옹이는 밤하늘 같은 눈으로 녀석과 나를 번갈아 째려봤다. 분명 어디서 저런 녀석을 데려왔냐고 원망하는 눈치이다. 결국 야옹이는 스스로 창문을 열고 가출했다. 고층 아파트지만 야옹이니까 괜찮겠지.

단비는 꼭 단비 같은 짓만 했다. 이름 잘 지었네. 어릴 때 봤던 만화 주인공과 꼭 닮았어. 아직 어려서 그런가… 잠깐, 위수도 나이를 먹던가? 계속 이런 상태면 피곤한데.

녀석은 잠잘 때나 쉴 때면 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위수라서 유령처럼 내 몸을 자유자재로 오고갈 수 있는 녀석이다. 24시간, 하루 종일 달라붙어 지냈다. 다행인 것은 녀석의 지랄은 짧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어느덧 내 가슴 위에 고개만 빼꼼 내밀고 지쳐 잠든 녀석. 나는 손가락으로 녀석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자그마한 손을 뻗어 내 손가락을 꽉 쥔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

관리실에서 단비와 놀고 있을 때였다. 몇 주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 원장님이 돌아왔다. 그녀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걸어왔다.

“다정 씨, 자! 받아요!”

하이 톤의 목소리에 생글생글 웃는 표정. 저런 텐션의 원장님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원장님으로부터 작은 상자를 건네받았다. 이게 뭐라고 저토록 원장님을 기쁘게 만들었지?

“열어 봐요.”

목각 상자를 열자 볼품없는 반지가 나왔다. 장식도 없고, 재질도 쇠로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반지를 만졌을 때, 나는 온몸을 타고 흐르는 따가운 전기를 느껴야 했다.

“이게 뭐예요?”

“드루이드.”

“오아우.”

드루이드.

엘프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소형 환경 조절 장치, 위수의 힘을 빌려 내재된 초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장치이다. 비와 눈을 내리게 하거나 바위를 모래로 바꾸는 등 믿을 수 없는 천재지변을 인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이거 제 겁니까?”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착용하라고 했다. 볼품없던 쇠 반지가 드루이드라고 하니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귀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손가락에 집어넣었다. 다소 굵은 내 손가락에도 잘 맞았다.

“나도 다정 씨가 위수의 힘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어요.”

원장님은 두툼한 책 한 권을 건넸다.

“설명서도 드릴 테니 당분간 마물원 일은 접어 두고, 드루이드 사용에 익숙해지도록 하세요.”

책 한 권이 다 설명서란다.

‘한 대 가지고 싶었긴 했지.’

약았다.

사실 단비를 꾀서 데려올 때,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위수들과 교감할 수 있는 내가 엘프가 쓰는 힘을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설명서의 첫 페이지에 적힌 글귀를 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님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이 드루이드는 인간이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편리화된 특별한 드루이드란다. 아마 원장님이 엘프를 닦달해서 만들었겠지.

무엇보다 그녀가 하이 텐션으로 기뻐하며 좋아하던 것이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자 코끝이 찡해졌다.

나보다 아득한 존재인 원장님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실례일진 몰라도, 얼마나 마음씨가 기특해.

*

그 후 나는 드루이드 사용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간소화되고 다루기 쉬워졌다고 해도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지식뿐만 아니라 무공처럼 기술도 있어야 했다.

나는 마물원의 빈 우리에서 드루이드를 연습했다. 드루이드에 기입된 환경 변화 요건은 조합에 따라 수백 가지였다. 미묘하게 다른 점을 포함한다면 수천 가지로 늘어난다.

그리고 설명서엔 위수와 사용자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제한되어 있다고 했지만, 단비는 달랐다. 기껏해야 작은 웅덩이 수준의 변화였으나 바위를 모래로 부수고, 모래를 용암으로 바꾸고, 눈을 내리게 하고, 비도 내리게 했다.

위수는 속성에 따라 여덟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며, 강하고 특별한 위수일수록 많은 속성을 품는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만능인 단비는 무척 강하고 특별한 녀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위수가 강하고 특별하더라도 사용자가 미숙하니 드루이드의 힘을 모두 이끌어 내진 못했다.

“어려워. 새삼 구탄을 재평가하게 되네.”

주변 일대를 용암 지대로 바꾸어 버린 구탄은 결코 약한 게 아니었구나. 드루이드를 사용하면 할수록 구탄과 카르네의 실력을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의 범위가 1m를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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