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날개를 가진 소녀 (3)
신인류,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힘을 가진 인간들. 선천적 돌연변이. 갓난아기 때부터 능력을 가지고 있어, 도중에 바뀐 능력자들과 달리 ‘평범한 인간’의 삶을 모르는 자들.
그들에 대해 익히 알려진 것은 이 정도다.
대전이가 발생한 몇 년 뒤를 기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추정하길, 가장 나이가 많이 든 자도 스무 살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힘은 본랜 평범한 인간이던 기존의 능력자들을 압도하며 상식 외의 특별한 힘을 다룬다고 한다. 신인류는 전이에 의해 ‘바뀐’ 인류를 대변하는 현상이다.
그들을 지칭하는 신인류란 단어는 90년대 일본에서 파생되었으나 지금은 모든 매스컴에서 그들을 신인류라 불렀다.
나는 ‘신인류’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우 우생학적인 관점이 아니던가? 일부 멍청한 녀석들은 그들을 가리켜 진화라고 표현했지만, 글쎄다. 애매하지 않을까.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면에선 진화라 불러도 될지도 모르지만 녀석들도 사람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낳은 자식이다. 사타리언 부인처럼 완전히 종이 다른 것도 아니다. 성격도 생김새도 ‘능력’도 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의 범주에 있다.
근데 저렇게 신인류니 진화된 인간이니, 대단히 SF적이며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여러모로 불상사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매스컴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신인류를 어떻게 대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데 실제는 오죽할까.
나라고 해도 저런 대접을 받으면서 자라면 버릇이 나빠지겠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얘가 신인류라고.”
난 소녀를 쳐다봤다.
이상하게도 녀석은 자신을 가두고 못살게 굴던 적들 앞에서도 태연했다. 지하 터널에선 그토록 겁에 질렸던 녀석이 말이다.
‘무서운 건 따로 있다는 거군.’
신인류는 처음 본다. 과연 다르긴 다르다. 신인류는…….
젠장, 마땅히 표현할 단어가 이것밖에 없나. 제2 세대? 아니야, 무슨 포켓몬스터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라 부르자.
“이름이?”
소녀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저 깊은 눈망울이 너무 부담스럽다.
“정… 혜연.”
평범한 이름이었다. 특이한 기운이지만 생김새도 평범하고 대화도 평범하게 통하고 행동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보기엔 카르마길드가 노릴 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특이한 기운이란 게 가장 큰 문제다.
솔로몬의 탑의 괴물들이 탐내는 기운.
‘능력’의 종류는 규정지을 수 없다.
내가 교감의 힘으로 마물의 목소리를 들으며 힘마저 빌려 오듯이 능력자들의 힘은 아주 다양하고 기괴하다. 하나쯤은 솔로몬의 탑의 마물들을 자의와 상관없이 불러내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하다.
그리고 내 일과 맞닿아 있다.
원장님이라면 해결해 줄 수 있겠지.
위 바오룽은 날 금방이라도 도륙을 낼 듯 사나운 기세를 뿜었지만 쉽게 덤벼들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전에 했던 행동들 때문에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아이를 카르마가 왜 원하는 거지?”
“모른다.”
“뭐?”
대답은 간결했다.
‘모른다’란다.
녀석이 입을 꾹 다물거나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소리를 지르면 모를까, 모른다는 대답은 이상했다.
“모르는데 왜 서울 도심의 폐쇄된 지하철에 36겹 주술로 이루어진 결계를 만들고 딱 봐도 엄청나 보이는 마도구로 이 아이를 꽁꽁 묶어 뒀냐? 삽질도 이 정도 정성이면 무슨 꿍꿍이가 있겠다, 새끼야.”
나를 머저리로 아는 듯한 놈의 대답에 신랄하게 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위 바오룽은 차이다오(중식도) 두 자루를 양손에 쥐며 살기를 내뿜었다.
“모르기에 값진 것이다. 너 같은 우민에겐 알려 줘도 모른다. ‘주술사’들조차 측정할 수 없는 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정혜연을 힐끔 쳐다봤다. 곧 싸움이 일어날 지경인데 역시 태연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잠자던 단비를 깨웠다.
“시벌, 뭐만 하면 모른다고 핍박하는 건 원장님 하나로도 충분해. 어쨌든 카르마 길드에, 인신매매범에 날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니.”
메타소드를 꺼냈다.
샐러맨더의 힘이 깃들자 붉은 송곳니의 장검이 되었다.
“주둥이만 뻐끔거릴 수 있도록 해 줄게. 그래도 말은 할 수 있어야 원장님이 편할 테니.”
검을 손에 쥐자 위 바오룽의 뒤편에 있던 헌터 수십 명이 행동에 나섰다.
‘소란에도 조용하군. 좋아.’
놈들은 날 습격하기 전에 이미 근방의 도로를 폐쇄하고 차단한 것 같았다. 번거롭게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잡졸은 퇴장.”
깨어난 단비는 내 부탁에 힘을 빌려줬다. 가동된 드루이드는 주변의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근처에 생겨난 용암 웅덩이.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는 자들은 없었다.
“어디 한번…….”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용암 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으아, 따뜻하니 요즘 같은 날씨에 정말 좋다.
망설이지 않고 몸 전체를 담갔다. 그러다 머리를 집어넣고 잠수까지 했다.
[좋아?]
“딱 적당해.”
단비는 용암 온천의 온도를 기가 막히게 조절했다. 물론 남이 보기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다. 발을 헛디뎠다간 온몸이 녹아 버리는 무시무시한 곳이지만 내겐 아무렇지 않았다.
“와… 마그마다.”
위 바오룽마저 경악하며 날 쳐다볼 때 정혜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난 녀석을 보며 윙크를 했다. 너도 아는구나.
“홍식.”
내 행동에 얼이 빠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카르마 헌터들에게 기습 공격을 가했다. 용암 웅덩이에 몸을 모두 담갔다가, 일어나며 홍식을 펼쳤다. 불의 기운을 머금고 펼쳐진 홍식은 광범위하게 뿜어나가 헌터들을 휩쓸었다.
비명은 짧았다. 놈들은 일격에 전투 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적당하게.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겠지.
카르마 헌터가 된 게 잘못이라고 생각해.
위 바오룽에게도 화염은 닿았으나 놈은 아무렇지 않게 쳐 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편이 당했음에도 별다른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
“넌 안 싸우냐?”
나는 용암 웅덩이에서 나와 유니콘에게 말했다. 녀석은 정혜연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내 말을 무시했다. 궁둥이가 들썩거리는 게 정혜연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나처럼 맞을까 봐 못 가는 것 같다.
“힘 좀 보태 봐.”
푸르릉.
[잘 싸워 봐.]
격려 아닌 격려에 뺨을 긁으며 홍아를 쥐었다. 경계만 하던 위 바오룽이 공격에 나섰다. 순식간에 달려와 양손에 쥔 차오다오를 매섭게 휘두른다.
놈의 쌍수는 매서웠다. 마법이나 주술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오로지 적의 목숨을 끊기 위한 간결한 움직임이었다.
‘고수야.’
뛰어난 무공.
사마귀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군더더기 없는 공격. 과연 말석이긴 하지만 랭커의 지위를 인정받은 자이다. 왕이 되겠다고 오만하게 떠벌릴 자격은 있는 놈이다.
‘그들보단 약하군.’
위 바오룽이 급소만을 노리고 덤벼 온다. 배를 가르고 목을 잘라 내기 위해 사선으로 휘둘러진 검은 눈 깜짝할 사이 살점을 베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난 그 순간 인간이라면 결코 불가능한 몸놀림으로, 그 작은 검 사이를 통과해 피해 냈다. 마치 고양이 같은 몸놀림이다.
피해 낸 후 곧바로 홍아를 휘둘러 반격했다. 불화살처럼 뻗어 나간 홍식의 검은 놈의 한 팔을 가벼이 잘라 냈다.
‘원탁의 기사들과의 대련이 없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몰라.’
샐러맨더의 기운으로 공격하고 야옹이의 힘으로 피한다. 원탁의 기사들과 대련하며 깨달은 ‘혼종’의 힘이다.
‘이젠 확실해졌네.’
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놈을 비교의 대상으로 이용했다. 내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은 내가 강하다는 것이다. ‘인간’들 중에선 그래도 천 등 안엔 들어가지 않을까.
더 이상 싸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나는 일단 풍종도보의 경공으로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에서 이 힘을 펼치면, 놈은 형상조차 못 남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노오옴!”
잔뜩 성난 놈이 뛰어올 때 나는 담담히 홍아를 추켜들었다. 이번엔 아주 쉬웠다. 마물원에 돌아가서 소녀를 대충 치료해 주고 우리에 가둔 다음 원장님이 돌아올 때까지 돌보면 되나.
[거두러…….]
그때였다.
무언가가 속삭이는 목소리.
그 후 들려오는 비명.
꺄아악-!
소리를 지른 건 놈도, 나도 아닌 정혜연이었다. 나는 그녀의 비명을 듣는 순간 무작정 뛰어갔다. 풍종도보의 경공을 극한으로 끌어내어 뛰었다.
[거두러… 왔다.]
속삭임,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난 균열에서부터 들려온다. 나이트메어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하고 암울한 기운을 내뿜는 균열.
본능이 경고했다.
무작정 도망쳐야 해.
푸르릉!
[내게 소녀를!]
“내가 더 빨라!”
균열과 속삭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무작정 비를 피하는 개미처럼 대책 없이 정혜연을 안고 도망쳤다.
“아.”
그때 무언가가 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고개를 돌려 날 자르고 지나간 무언가를 쳐다봤다. 거대한 낫이었다. 농기구처럼 볼품없는 낫이었으나 크기는 큰 나무를 단번에 벨 만큼 어마어마했다.
“아아아…….”
꼬꾸라졌다.
미라 마물 때와 같다. 날 영혼부터 허덕이게 만든다. 물리적인 공격은 아니다. 베어 낸 살갗은 멀쩡하다. 다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잘려 나갔다.
“하아, 하아.”
하지만 그 허덕임과 부족함은 곧바로 채워졌다. 미라 마물 덕에 면역력이 생긴 걸까? 모르겠다. 어찌 됐든 ‘죽음’은 날 피해 갔다.
“너!”
하지만 정혜연은 아니었다.
낫은 나와 그녀를 같이 베었다.
생기가 넘치던 하얀 피부가 점점 창백하게 변해 갔다. 혜연은 푸른 입술로 벌벌 떨었다. 허덕임과 부족함과 굶주림, 그 아픔을 잘 알기에 보는 나도 고통스러웠다.
[거두러 왔다.]
놈.
놈은 단 한 번 휘두른 거대한 낫으로 카르마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잡병은 물론 랭커인 위 바오룽마저.
그들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뼈마저 남기지 않았다. 마치 수백 년에 이어 천천히 진행되어야 할 부패가 한순간에 벌어진 것 같았다.
‘버티고는 있지만…….’
놈의 낫은 우리를 노렸다.
그저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 위 바오룽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직격으로 당한 정혜연은 버텨 주고 있었다. 대단한 마력,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해.
나는 그녈 내려놓고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놈을 쳐다봤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검은 거적으로 몸을 숨긴, 거대하고 아득한 망령. 낫과 백골, 흩뿌리는 기운만으로 주변의 모든 게 색채를 잃어 간다.
놈은 죽음의 위치에서 고고하게 날 내려다봤다. 나는 놈을 안다.
악몽의 왕.
나이트메어들이 일반적이라면 놈은 TOP다. 솔로몬의 탑에서 온 망령, 원장님의 매뉴얼에 따르면 멸망 등급 바로 아래.
마물원에서 일하며 원장님에 의해 강제적으로 꼭 숙지한 마물들이 있다. 존재만으로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멸망 등급의 마물이 그렇다. 케르베로스, 글루투니 등.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원장님이 마물원에서 보호하거나 가둬 놓았기에 괜찮았다.
문제는 바로 아래 등급의 마물들이다. 지구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마물들, 빌어먹게도 엄청나게 많았다. 미라 마물, 아즈모타카, 집결한 나이트메어.
놈도 그중 하나.
이렇게 부른다지.
‘그림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