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오크 라덴 (1)
현대인은 이제 웬만한 시끄러움에도 둔감했다. 대전이만큼 충격적인 건 없었고 이계인과의 무력 충돌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도 결국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7차 정상 회담 결렬. 군사 개입 금지 조약 체결 가능성은?]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다르다. 관망하던 자들도 점점 현실을 깨닫는다. 아직까지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우스갯소리로 여겼지만, 현명한 자들은 전쟁을 대비했다.
[E.U.S.C 단체는 중동 연합군 페르마 장군의 미 선제타격 계획안을 입수하여…….]
[국가 전복 테러안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중동 국가들은 일제히 어불성설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미 정부는…….]
시시각각 보도되는 뉴스에선 상황이 완화되는 경우는 없었고 모두 극한으로 치닫는 사건들뿐이었다.
상황의 흐름은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날 듯, 비참한 참극만을 연상시켰다. 마물원의 관리실에서 나는 인터넷으로 이 파국으로 치닫는 전운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검색하여 찾아봤다.
‘지구에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한 달의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자, 원장님은 인간과 드래곤의 자식이라던 정혜연을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기 위해 몇 달간 자리를 비운다며 내게 마물원 일을 모두 맡기고 갔다.
그동안 나는 마물원의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중엔 마물들의 고향에서 환경적인 요소들을 수집하거나 마물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녀석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등 ‘외부 세계 출장’건이 많았다.
원장님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고 그동안 나는 무려 몇 달 동안이나 다른 세계에서 지냈다. 지구로 돌아오더라도 매일매일 원장님의 오더에 따라 다른 세계로 출장을 갔으니 지구에 이런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어제부로 원장님이 돌아와 여유가 생긴 나는 몇 달 만에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난리도 아니었다. 몇 달 전 뉴욕의 이계 관리 본부 센터에서 발생한 대규모 테러, 수천 명이 사망한 불행한 사고의 뒤에 과격파 테러 단체를 가장한 국가 세력이 테러 활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세상은 순식간에 살벌한 전운에 휩쓸리게 되었다.
미 정부에선 추상적으로 밝혀졌던 적대적인 국가 세력을 정확하게 찾기 위해 우호적인 모든 수단들을 배제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가 규모로 감추고 있던 사고들이 강제로 밝혀지며, 사건은 연쇄를 일으켰고 국가 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당장 세계 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단 몇 달 만에 벌어졌다. 이상한 건 내가 생각하기로 지금까지의 정세가 모두 정신 나간 미친놈들처럼 급박하고 감정적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대전이 이후 지금보다 더 위험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건 급변한 상황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전이 이전의 인류처럼 같은 인간에게 총을 겨누며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나마 이 정도의 평화가 유지된 건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정말 지구의 안방 주인이 뒤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망할 놈들.’
나는 그러려니 했다. 비참해질 미래에 눈물이 날 만큼 안타까웠지만 인류가 자멸의 길을 선택한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본성이란 고쳐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잘나가다가 스스로 자멸하는 게 인간이 가진 종족의 특성이라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관론적인 관점이었지만 어쩌면 마물원에서 일하며 다양한 이계인을 만나 본 나라서 더 신랄하게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막아야겠군요.”
하지만 원장님은 아니었나 보다.
TV의 긴급 뉴스를 지켜보던 원장님이 말했다.
“전쟁을요?”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마물원의 원장으로서 그녀는 사람 또한 보호한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더라도,
원장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전쟁을 스스로의 선택이라며 비관적이게 보던 나도 막을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 역시 마물원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이다. 본성은 바뀌지 않더라도, 모두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피폐해질 사람들이 훨씬 많겠지.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번에 내가 할 일은 전에 없이 직접적으로 깊고 강렬하게 세계의 사회에 관계될 것이다.
어쩌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지도 모른다. 무장 단체의 수장을 암살하게 될까? 스파이가 되어 정보 조직에 잠입하여 국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엄청난 비밀을 빼돌릴지도 몰라. 그것도 아니라면 드래곤의 스케일답게 핵무기를 포함하여 위험한 전술 병기를 모두 폐기시킬지도.
나 또한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진중하고 엄격하게 스스로를 꾸짖었다. 평소보다 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에게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는지도 몰라.
“명령만 내려 주세요.”
원장님의 표정 또한 진지했으므로 난 턱시도로 갈아입고 처음 가디언의 맹세를 했을 때처럼,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자 원장님은 징그럽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하던 짓 그만하고 일어나요. 오글거리게 왜 이래요?”
“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다정 씨가 알긴 뭘 알아요. 얼른 안 일어나요?”
역시 드래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도 대수롭지 않다는 건가. 감히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을 벌써 생각해 둔 모양이로군.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담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겠지.
“감사합니다, 원장님. 전쟁을 막아 주시다니 원장님은 인류의 은인이십니다.”
“내가 왜요.”
난 살짝 눈썹을 구겼다.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말았다.
하지만 침착히 원장님에게 되물었다.
“내가 왜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장님이 전쟁을 막아 주시니 은인이지요.”
“내가 안 막는데요.”
“방금 전에 막아야겠다고…….”
“나 말고 다정 씨가 막을 거예요.”
이해한다.
원장님은 내게 사람으로서 동족에게 시키지 못할 일들을 강제로 명령하겠지. 하지만 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괜찮습니다. 원장님과 제 힘이라면 충분히…….”
그녀는 내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나 말고 다정 씨가 혼자서 할 거예요.”
나 혼자?
그건 아무리 그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전쟁을 어떻게 혼자 막는단 말인가.
당황한 내게 원장님이 말을 덧붙이며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지금 당장 가 볼까요.”
어디로 가지? 펜타곤? 백악관?
그때였다. 원장님은 완성된 포탈을 가리키며 싱긋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여행 가이드북같이 얇은 책자를 건넸다.
책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크 라덴을 여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들]
책을 펼치자 오크 라덴을 여행할 시 주의해야 할 경고들과 수칙들이 적혀 있었다. 정말 여행 가이드북인 것이다. 문제는 오크 라덴이란 곳이 지구에 위치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원장님을 쳐다봤다. 원장님의 표정은 진지했으나 나는 붉은 눈동자에 서린 장난기를 읽어 냈다.
“다른 세계로.”
원장님은 인간의 모습에서 무서운 드래곤의 모습이 되어 순식간에 내 목덜미를 가로채 포털을 넘었다. 아주 먼 곳인지, 박탈감은 길게 이어졌다.
*
마침내 공간 이동이 끝나자 나는 헛구역질하며 도착한 곳을 둘러봤다.
온통 거대하고 높이 솟아오른 바위. 시야가 닿는 지평선 너머까지 모두 꽉 찬 바위들이 보였다. 바위는 하늘 높이 솟아올라 마치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압도적인 크기의 원통형 바위산 수천 개를 보자니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오크 라덴.”
원장님이 말했다.
“오크와 오우거, 그러한 투쟁 종족들의 고향.”
그때였다.
갑자기 발밑의 땅이 격렬히 진동하더니 지진이 일어났다. 문제는 갈라진 땅에서 거대하고 뾰족한 바위가 솟아오른 것이다. 난 재빨리 피했으나 원장님은 솟구친 바위 위에 그대로 서서 하늘 높은 곳으로 솟아올랐다.
“원… 원장님?”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당연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만 왜 피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오크 라덴은 전투, 전쟁을 아침 티타임처럼 자연스레 즐기는 곳.”
솟구치던 거대하고 뾰족한 바위 송곳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바위에 가로막혔다.
콰아앙-!
천둥과 폭탄이 동시에 터진 것같이 엄청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 사이에 있던 원장님은 짜부라뜨려지기 전에 날개를 펴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상에.’
나는 그제야 하늘과 땅이 연결된 바위산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땅에서 치솟은 바위 송곳과 하늘에서 쇄도한 바위 송곳이 맞물린 것이다. 놀라운 건 마치 자로 딱 잰 듯 두 바위의 크기가 딱 맞아 처음부터 하나인 듯 완전히 일자가 된 것이었다.
원장님은 살포시 내 곁으로 내려앉더니 다시 인간의 모습이 되어 말했다.
“이곳은 목숨을 건 혈투가 당연시되며 타인의 죽음이 훈장이 되고 스스로의 생명을 깎아 먹는 짓이 명예가 되는 곳이죠.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기묘한 힘을 가진 고대 마물이 살고 있어요. ‘전쟁을 알리고 부추기는’ 전운의 마물, 워라이언이라 부르죠.”
“전쟁을 알리고 부추긴다면… 못된 마물이네요?”
단순하게 생각한 걸까, 원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워라이언은 자연적인 현상의 마물이에요. 적어도 이 오크 라덴에선 그들은 바람과 물처럼 자연스러운 존재들이죠. 하지만 워라이언들이 지구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원장님이 지구의 전쟁을 막기 위해 오크 라덴으로 온 이유를 말해 줬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급변하고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던 국가들의 반응은 사실 워라이언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원장님은 워라이언을 보는 즉시 가두어 오크 라덴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워라이언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그리고 항시 전쟁이 벌어져 좋아하는 환경인 오크 라덴을 버리고 지구로 계속해서 넘어왔다고 한다.
원장님은 워라이언들이 전이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오크 라덴을 떠나 지구로 넘어온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난 곧 돌아가 봐야 해요. 더 이상 흔적을 남기면 들킬지도 몰라요.”
원장님은 이번 일 또한 자신이 나서지 못한다고 했다. 오크 라덴은 그 드래곤 로드인가 뭐신가 하는 새끼의 감시하에 있어 들킬지도 모른다나.
“바위가 솟아오르지 않는 곳으로 가세요. 그곳은 오크들의 군락이자 투기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봐 줘요.”
할 말만 하고 다시 포털을 생성하는 원장님에게 난 다급히 외쳤다.
“허허벌판인데 어떻게 가요? 도와주세요!”
이깟 가이드북 한 권으로 생전 처음 와 보는 이계에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지만 원장님은 지극히 당연한 내 요청을 무시하며 망설이지 않고 포탈을 넘었다.
“그건 다정 씨가 알아서.”
이 한마디만을 남겨 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