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오크 라덴 (2)
숨을 쉴 때마다 고운 모래 먼지가 콧구멍에 가득 쌓인다. 러닝셔츠를 일부 잘라 얼굴에 둘러 지독한 먼지를 막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오크 라덴에선 자주 모래 폭풍이 일었다. 그럴 때마다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주변이 온통 황색으로 물들었고, 갈색 바위산들과 폭풍이 어우러져 하늘과 땅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지평선 너머 어딘가로 무작정 걸었다. 찾고자 하는 건 오크들의 마을, 그곳에 도착하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일단 모래 폭풍과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르고 쇄도하는’ 거대한 원통 모양인 바위들의 습격을 피하는 게 더 급선무였다.
도착지를 모르기에 힘을 아껴야 했다. 풍종도보의 경공은 지대가 격렬히 진동하며 바위산이 합쳐질 때에만 사용했다.
정말 오크 라덴은 극심한 피로를 유발하는 곳이다. 어느 정도 이계의 환경에 익숙해진 나라도 사막과 바위와 먼지의 세계는 당황스러웠다.
‘오크들과 오우거의 고향이랬나.’
그들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 이해가 간다. 이런 환경에서 살기 위해선 보다 강하고 질기며 먼지에도 상하지 않는 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나마 인간의 신체를 아주 많이 벗어난 나라서 버텼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벌써 호흡기 질환에 걸려 버렸을 거야.
몇 시간을 걸었을까, 어느덧 동쪽에 떠 있던 해가 내 머리 위에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빼곡히 솟아올라 있던 바위산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가이드북에 따르면 오크들은 바위 격돌을 피해 안전한 곳에 터전이자 그들의 기묘한 문화의 집결지인 ‘오크트리아’를 세운다고 했다. 바위산이 줄어든다는 건 오크트리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쳐.”
망할 원장 놈은 지독한 행군을 시키기 전에 다섯 장짜리 가이드북만 줬을 뿐이다. 물이라도 챙겨 줬으면 몰라.
가끔 보면 배려 따윈 눈곱만치도 없는 이 무자비한 처사들에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공간 이동 마법으로 뽕 하고 이동하니 뚜벅이의 슬픔을 어찌 알까.
‘막막하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도 안 잡혀.’
원장 놈은 워라이언이란 마물이 지구로 넘어오는 이유를 나더러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기 위해선 필히 오크와 오우거와 엮여야 할 테다.
놈들이 지구의 그놈들이 맞는다면, 분명 이 일은 골치 아프고 성가신 일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고약한 입 냄새와 암내를 맡을 생각에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다.
[쿠콩! 쿠코옹!]
그늘진 바위에 잠시 쉬어 가며 앞날을 걱정할 때였다. 나처럼 모래바람을 피해 바위로 피신한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후다닥 그늘로 들어오다가 날 보더니 깜짝 놀라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쿠콩쿠콩!]
도망칠까, 그냥 있을까.
경계하며 고민하는 녀석에게 난 친절히 손을 내밀었다.
“안녕.”
[쿠콩?]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하위 마물, 내 교감 파워를 피할 순 없다. 잔뜩 경계하던 녀석은 나의 사람 좋은 미소 한 번에 넘어갔다.
“너 참 잘 달리게 생겼구나.”
[쿠콩…….]
“옳지, 이리 와 보렴.”
내 의도와 달리 녀석은 바들바들 떨며 겁을 먹었다. 친근한 관계임에도 어쩌다 보니 억지로 끌려온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요즘 들어 험악한 놈들하고 자주 엮이다 보니 마물이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냄새가 깊게 배었나 보다.
‘쿠콩’ 하면서 울어 녀석을 쿠콩이라고 불렀다. 덩치는 낙타의 세 배쯤 되는 마물이었으나 성질은 순했다. 내게만 온순한 건진 몰라도 아무튼 순했다.
생김새는 타조와 비슷한 거조였다. 다만 낙타처럼 등에 혹이 두 개 달렸으니, 낙타와 타조를 반반 섞은 낙타 타조다. 길고 튼튼한 다리와 굵은 허벅지, 모래를 걸러 줄 기다란 속눈썹. 고놈, 참 잘 달리게 생겼다.
“부탁 한번 하자.”
난 녀석에게 등을 빌려 달라고 했다. 쿠콩이는 흔쾌히 허락했고 난 녀석의 등에 올라타 편하게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무척 빠른 속도로 오크 라덴에 사는 마물답게 위험은 미리 알아차리고 솟아오르는 바위들을 피하며 안전하게 달려 줬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하겠어.’
*
녀석 덕분에 수월하게 사막을 달려 마침내 저 멀리, 인공적으로 세워진 건축물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바위산이 없는 평평한 지대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석공들이 깎아 만든 듯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지구인인 내게도 익숙한 구조의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원형으로 반듯하게 세워진 건물에 무수히 구멍이 뚫려 있는 저 생김새,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 같다. 저곳이 오크트리아. 오크들의 마을이자 도시이며 나라이기도 한 곳.
난 쿠콩이를 세우고 책자를 꺼내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오크트리아에 들어가기 전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숙지하고 싶었다.
‘매드맥스야, 뭐야?’
하지만 읽을수록 점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크 라덴은 지구인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끔찍한 곳이었다.
저기 세워진 콜로세움은 오크와 오우거들의 도시임과 동시에 부족의 생활터였다. 오크 라덴은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고 부족 개념이 최대였다. 전쟁이 자주 일어날 법도 했다.
이들 부족은 오크트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다른 부족의 오크트리아를 침략한다. 그리고 침략에 성공하여 커진 부족은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부족의 오크트리아를 습격한다.
하지만 부족이 거대해져 국가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 이유는 부족 생활을 하지만 동료애가 많은 녀석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자에 따르면 그들은 전쟁에 나설 땐 동료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도 돌보지 않으나, 전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끈끈하던 동료의 등에 서로 비수를 꽂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반란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커진 부족도 알아서 제 살을 깎아 작아진다나.
녀석들의 사회에 대해서 알아 갈수록 점점 근육이 쫀쫀하게 조여 오며 긴장됐다. 놈들이 외부 세계에서 온 날 어떻게 대할진 너무나도 뻔했다.
‘그래도 드래곤보다야.’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하, 그래. 그래 봤자 오크와 오우거.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보다 무서우랴. 임무 실패와 중도 포기의 공포감이 오크 라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앞섰다.
그러자 이 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쿠콩이의 등에 올라탔다.
[왜 데려왔어?]
오크트리아를 향해 가려고 할 때 잠만 자던 단비 녀석이 일어나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뭔 소린가 싶던 그때였다.
냐아아아옹.
길게 이어진 고양이의 울음소리.
등 뒤를 돌아본 난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넌 언제…….”
야옹이가 쿠콩이의 등에 세상 편하게 누워 있었다. 녀석은 내가 쳐다보자 밤하늘 같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작게 울었다.
냐앙.
야옹이.
마냥 귀엽기만 한 녀석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이 녀석, 처음부터 따라온 거였나? 원장님도 속인 거야?
난 녀석에 대해서 안다.
정체는 몰라도 놈이 무시무시한 녀석이라는 걸 안다.
야옹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무릎 위에 누웠다. 난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섭고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그만큼 든든한 친구기도 했다.
*
쿠콩이를 보내고 홀로 오크트리아의 앞에 섰다. 야옹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또 갑자기 나타나겠지, 고얀 놈.
‘가 볼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쓸데없는 방법을 강구하는 건 그 뒤의 이야기다. 오크트리아의 입구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걸어갔다. 그러면서 정덕후의 힘을 끌어내며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했다. 놈들이 적대적이라고 하여도 싸울 이유는 없다.
‘흐미.’
침을 꿀꺽 삼켰다.
오크트리아의 성벽을 넘자, 모든 오크의 시선이 내게 쏠리기 시작했다. 경계인지 당황인지 쳐다보기만 하는 오크 수백의 시선은 몹시 부담스러웠다.
‘냄새.’
오크트리아에서 처음 느낀 건 지독한 냄새였다. 똥 냄새, 썩은 냄새, 오물 냄새.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오크들의 면상을 쳐다보면 이해가 갔다. 딱 녀석들이 살 만한 곳이다. 생김새로 대상을 판단하는 건 매우 무례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 돼지우리 같은 곳은 딱 녀석들에게 어울릴 만한 곳이다.
오크트리아의 안쪽은 살벌했다.
대충 지어진 돌집들과 오물이 즐비한 광장. 길거리엔 주인 모를 뼈가 잔뜩 있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장대엔 어떤 고기일지 모르는 붉은 살점이 널려 있었다.
오크들은 또 어떠한가. 남녀노소 상관없이 그들은 저마다 허리춤에 무시무시한 무기를 하나씩 차고 있었다. 칼날엔 묻어 있는 마른 핏자국이 나로 인해 촉촉해지진 않겠지?
난 오크트리아의 광장을 향해 담담히 걸었다. 자박거리는 발걸음이 담담해 보이지만 사실 엄청 긴장했다.
‘온다, 온다, 온다.’
드디어,
그들이 다가온다. 오크 몇몇이 나서서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메타소드의 손잡이를 쥔 채 녀석들에게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살벌하네.’
오크의 생김새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섭다’였다. 질기다 못해 삼나무 껍질처럼 보이는 피부와 우락부락한 근육에 돌출된 굵은 혈관들. 평균적으로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키와 고릴라도 씹어 먹는 괴력.
무표정한 얼굴은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화날 때의 얼굴은 불교의 조각상 중 야차상과 똑 닮았다.
그런 녀석들이 가까이 다가오니 날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선두에 선 오크와 악수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과연 어떤 태도로 나설 것인가. 난 몸이 굳어 딱딱한 표정으로 오크를 바라봤다.
오크는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내게 가깝게 다가왔다.
악수를 나누는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그러더니 회색 곰도 목을 졸라 죽일 수 있을 듯한 팔뚝으로 조심스레 날 안아 줬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의외로 오크의 품은 포근했다. 우락부락한 근육의 감촉이 쫀쫀한 느낌이랄까.
‘시벌.’
만약 내가 ‘위기 센서’가 탁월하지 않았다면 놈이 다가왔을 때 공격인 줄 알고 메타소드를 휘둘렀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길게 이어진 포옹이 끝난 후에, 다른 오크가 와서 또 안아 준다. 살포시 다가온 포옹, 오크들은 줄지어 날 안아 주며 미소까지 지었다. 마치 이곳이 하와이의 공항처럼 열렬한 환영 인사였다.
‘뭐여.’
사실 오크들은 포옹을 좋아하는 관대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였을까? 오늘부로 편견이 벗겨진 건가? 아니다. 오크들은 이러지 않다. 편견으로 에둘러 표현하기엔 그들의 악명은 너무 유명했다.
오크들에게 안겨 오크트리아를 자세히 둘러보다 몇 가지 기묘한 점을 발견했다. 주변이 다소 더러웠을 뿐, 정작 피 튀기는 싸움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뼈도 오래된 것이며 살점들은 먹으려고 널어 둔 거겠지.
생각해 보면 그토록 전쟁을 즐겨 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오크들이 이처럼 조용하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을 리가 없다.
대체 뭘까,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정말 오크들이 외부인을 포옹으로 반겨 주는 사랑이 넘치는 종족이었던 걸까?
“반갑소, 다른 세계의 주민!”
“반가워요!”
“환영해요!”
포옹이 끝나자 오크들은 날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환영 인사를 했다. 외부 세계에서 온 내게 무참히 칼을 휘두르는 게 어울릴 녀석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쁘게 손님을 반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