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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57화 (157/258)

# 157화 오크 라덴 (10)

빈틈없이 맞물린 두 거석은 하나가 된 듯 반듯했다. 그 사이에 있던 카를은 아무리 오리하르콘 갑옷을 입고 있었더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죽었겠지.

그럼에도 난 거대한 돌기둥을 향해 걸어갔다. 워낙 지랄 맞던 녀석이라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원시 마물의 힘이라.’

잘려나간 내 왼팔을 순식간에 수복시켰던 힘이다. 부러졌던 온몸의 뼈와 터졌던 고막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되었다. 심한 피로감만 느낄 뿐 상처는 괜찮았다.

거대한 바위에 다가가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녀석을 불렀다.

“단비야, 일어났니?”

잠시 후 징징대는 목소리로 단비가 말했다.

[잉잉. 너무 무서워. 녀석을 안에 들이지 말아 줘. 너무 무서워서 기절했잖아.]

“뭐? 야옹이 말하는 거니?”

단비는 그렇다고 말하며 한참을 울어 댔다. 난 녀석을 진정시키고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 바위 안에 들어가서 카를의 시체가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겠니?”

[그 녀석? 응, 알았어.]

위수 단비는 내 몸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물질을 유령처럼 통과할 수 있었다. 단비가 바위 안으로 스르륵 들어갔고, 그동안 난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정말 지친다. 마물원 일을 하다 보면 확실히 제명을 다 못 살 것 같다.

*

꾸벅꾸벅 졸 때 단비가 내려왔다.

[힘들었어어. 저어어기 위에 빨간 게 있었어. 흔적도 없이 빨간 거.]

“다른 건?”

[빨간 거만 있어.]

카를은 바위기둥에 찌부러뜨려져 죽었구나.

별다른 감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참, 그러고 보면 아즈모타카는 잔인한 성질이었지.

“아깝다, 갑옷 탐났는데.”

*

전쟁터로 돌아왔을 땐 까락시와 오우거들이 일어나 있었다. 카를의 죽음으로 오크들도 제정신을 찾은 듯 보였다.

다만 엄청 혼란스러워하며 난폭한 행동을 취하거나 저번의 오크처럼 자결을 시도하는 자들도 있었다. 게다가 카를의 세뇌에 당했을 땐 서로 포옹하던 놈들이 갑자기 주먹 다툼을 하며 서로의 뚝배기를 깨려고까지 했다. 카를이 죽어도 상황은 난잡했다.

‘시벌, 마음대로 하라지.’

오크들이 날뛰는데 가만히 있을 오우거들이 아니었다. 무기는 들지 않았으나 서로 뚝배기를 향해 발길질을 해 대는 게 방금까지 싸우던 상황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감히 내 왼쪽 발가락이 사랑스럽다고 칭찬을 했었지? 답례로 네 발가락을 잘라 주마.”

“뭐? 내가 언제 엄지발가락보다 길어서 징그러운 네 검지 발가락을 칭찬했다고 그러냐.”

“이 새끼, 감히 내 발가락을 모욕해?”

“그만 싸워라, 멍청이들.”

“넌 뭐야? 대가리에 술만 찬 오우거들이.”

아, 다른 게 있긴 했다.

지금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싸워 댄다는 것이다. 오크는 신기한 녀석들이었다.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싸울 수 있지? 카를의 세뇌가 풀린 부작용일까 싶었지만 까락시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원래 이런 게 자연스러운 오크라고 했다.

서로 싸우는 오크들의 모습에 기뻐하는 까락시의 태도가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異) 종족이라, 과연 인간과 다르다는 거네.”

오크들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내가 오만했다. 녀석들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새끼들이었다.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강제로 말릴지 아니면 과열된 놈들이 서로 뚝배기를 깨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하늘’에서 사자들이 내려왔다. 그 수가 끝이 없었다. 사자들이 풍성한 갈기를 자랑하며 포효를 내지르자 오크들은 저마다 주먹을 들어 올려 환호를 내질렀다. 그들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연호하며 크게 기뻐했다.

“워라이언들이 돌아오는구나.”

카를에 의해 강제된 본성과 평화가 사라지자 이 땅에 살던 워라이언들이 돌아왔다. 하늘을 가득 메운 워라이언들의 행렬은 장관이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데.”

다만 하늘을 메운 거대한 사자들의 행렬이 끝도 모르고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로 넘어갔던 워라이언들이 모두 넘어오고 있는 건가?

녀석들을 보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묘하게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리고, 묘하게 짜증이 솟았으며, 발가락이 간질거리고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마치 경기를 앞둔 격투기 선수가 된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것 같았다. 워라이언은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내려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워라이언의 오크 라덴 복귀를 지켜보던 그때였다. 사막 언덕 너머로부터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한 곳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사방에서 뿔피리가 울리더니, 이내 언덕 위로 쿠콩이를 탄 오크 군대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까락시가 다가와 말했다.

“팔라호 사막 근처의 오크트리아에서 온 부족민입니다. 북쪽 언덕의 군대가 동족의 뼛가루를 얼굴에 처바른 머저리들인 회색 뼛가루 부족, 가장 먼 곳에서 달려오는 자들이 적귀, 그리고 저 군대의 깃발은 청가오리 부족이군요. 이런, 저자들은……. 사악한 뱀 사마귀 부족까지 오다니.”

까락시는 내가 세뇌를 푼 오크의 전령을 듣고 도와주러 온 오크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와주러 왔다기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마침내 오크 군대들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당도했다.

“크하하! 전장의 사자들을 따라왔더니 마침 회색 뼛가루 놈들과 적귀, 청가오리 부족까지 모두 모여 있구나!”

까락시가 알려 주길, ‘뱀 사마귀 부족’의 족장이라는 오크가 외쳤다. 녀석은 뱀을 목에 두르고 다니는 괴상한 놈이었다.

“기묘한 힘을 다루는 이계인이 건방지게 활개친다기에 와 봤더니, 함정이었나? 감히 날 속여? 우선 저자들부터 죽여야겠다.”

청색 망토를 입고 다니는 ‘청가오리’ 부족의 부족장이 외친다. 놈들의 적의는 우리에게 향해 있었다.

“난 보았다. 오크의 명예를 더럽힌 배신자 놈들을 직접 처단하러 왔다.”

빨간 귀의 오크들은 아예 세뇌에 당한 오크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 모양이었다. 도와주러 온 놈들이 아니다. 싸우러 왔다. 세 부족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언제든 전쟁을 시작할 기세였다.

난 지근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워라이언, 워라이언. 전쟁을 알리고 ‘부추기는’ 놈들.

그래, 오크 라덴에선 이런 현상이 자연스럽다 그거지?

우습게도 그들이 나타나자 정신 지배에 당했던 오크들과 서로 싸워 대던 오우거들이 갑자기 합심하며 뭉치기 시작했다. 큰 전쟁이 벌어질 듯했다.

“난 모르겠다.”

이제 오크 라덴에서 내가 할 일은 없다. 워라이언도 돌아왔으니 빨리 평화로워진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휴가를 왕창 받아 내 일주일 내내 드라마만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까락시에게 작별 인사라도 할까 싶었으나, 그녀는 이미 중무장한 채 전쟁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락시의 반짝이는 눈을 쳐다보다가 나는 더 머리가 아파지기 전에 걸음을 서둘렀다. 피곤하다. 이번 일은 유독 더 피곤했던 것 같네.

그대로 가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휘말리기 싫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에 조금씩 격양되는 것을 난 꾹 참아 내며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상황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퍽-!

순간 눈앞이 번쩍이더니 이내 뒤통수가 시큰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웬 오크 놈이 철제 몽둥이로 내 뚝배기를 내려치곤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인간 놈이 왜 여기 있느냐! 오호라, 네가 그 못된 지구인이로구나. 널 죽이면 난 이름을 날릴 수 있겠지. 으하하.”

난 망설이지 않고 놈을 걷어차 이름을 대신 옥수수들을 멀리 날려 줬다. 이성이란 건 이리 쉽게 사라진다.

아즈모타카와의 교감으로 안 그래도 잔뜩 날이 서 있는데, 워라이언들까지 몰려와 흥분까지 한 상태인데, 진짜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뚝배기가 깨져 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참아, 시부랄.

난 녀석이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주워 들었다. 오크들이 몰려들었다. 굶주린 사자들이 이성을 잃고 싸우는 것처럼 오크들은 제정신을 잃고 서로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사이에서 난 몽둥이를 추켜들고 뚝배기를 찾아 나섰다. 이젠 진짜 모르겠다. 그렇게 싸우는 게 좋다면 나랑 싸우자, 시부랄 놈들아.

*

원장님은 가만히 날 바라봤다.

난 코를 긁적거렸다. 콧등의 때가 벗겨 나온다. 이제 보니 손톱 아래에도 때가 잔뜩 껴 있다. 젠장, 빨리 씻고 싶은데.

머리도 간지러워 미치겠다. 오우거의 이가 머리에 옮았나. 겨우 일주일이 지났는데 머리는 왜 이렇게 산발이 된 거야.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싸우느라 정신 팔려 연락도 안 했다는 거죠?”

“네.”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일은 진작 해결했지만 난 그 후로 일주일이나 더 오크 라덴에서 지냈다. 오크들과 사이좋게 뚝배기를 깨면서. 그러는 와중에 ‘대장군’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원장님은 기가 찬 듯 콧바람을 크게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잘 살폈어야 했는데.”

원장님은 자기 탓을 했지만 그 속뜻을 알아차리기 쉬웠다. 자신이 일일이 살펴 줘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뜻을 알아차렸음에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가만히 내 모습을 보던 원장님의 표정에 살짝 한기가 돌았으나 이내 평소의 목소리로 원장님이 질문했다.

“그래서 재밌었어요?”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보다 뚝배기를 잘 깨는 법을 배웠어요.”

“그거 참 잘됐네요.”

원장님은 더 이상 대꾸하기 싫은지 원장실에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난 나가려다가 물어볼 것을 지금 다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장님, 나 아마 좀 특별한가 봐요.”

이번에도 느꼈다.

교감의 힘, 정말 교감의 힘 때문에 아즈모타카의 힘을 빌릴 수 있었을까?

“아즈모타카 그 마물이 날 최초의 연결자라고 불렀는데, 뭔가 좀 대단한 칭호 같지 않아요?”

원장님은 내 말에 미간을 좁히더니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후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도 연결된 마물의 힘을 사용하는 다정 씨 같은 능력은 지금까지 없었으니 최초의 연결자라 부를 만 하네요.”

“그래요? 그럼 내가 좀 대단한 거네요?”

원장님은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

“어쩜, 그래. 몇 번이나 듣고 싶어요?”

“네? 뭘…….”

“다정 씨가 내 가디언이 된 이후로 계속 말했잖아요. 용의 가디언은 월급받는 직원 따위가 아니에요. 드래곤이 인정한 특별한 존재기에 존경받는 지위가 되죠.”

원장님은 역시 날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난 안심하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갑옷 만들어 주세요.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걸로요. 턱시도는 이제 임무의 수준에 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내가 생각해도 당돌했다.

원장님이라고 하더라도 뚝딱 만들어 줄 리가 없다. 하지만 실패 시 핀잔을 한 번 듣는다 치고 해 볼 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원장님이 말했다.

“이미 있어요.”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건 나였다.

있다고?

“하지만 다정 씨에겐 어울리지 않아.”

원장님이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오리하르콘은 마법을 막아 주지만 가진 자의 마나를 빼앗아요. 아주 탐욕스러워. 브로치처럼 작으면 괜찮으나 갑옷으로 만들어 입으면 분명 다정 씨에게 해가 될 거예요. 날 믿어요. 다정 씨에겐 필요 없어.”

물론 믿는다.

가끔씩 아니 자주 날 엿 먹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랬을 뿐이다. 원장님은 날 구한 적도 많으며 날 믿어 준 적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미련이 사라졌다.

난 휴가를 받고 마물원에서 나왔다. 그동안 피를 너무 많이 봐서 집에 가서 눈을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 주머니 몬스터나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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