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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58화 (158/258)

# 158화 지키고 싶은 것 (1)

그는 죽은 게 아니었다.

교활한 카를은 제 목숨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그럼으로 언제나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다.

거석이 내려치던 그 순간 빛은 카를의 주변에 응축되어 다이아몬드도 자를 정도의 강력한 칼날이 되었다. 카를은 단단한 바위에 파고들어 숨었다. 찰나에 판단한 수, 카를은 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이내 낙하하는 거석과 부딪쳐 태산도 부술 만큼 막대한 힘이 가해졌으나 카를은 버텼다. 오리하르콘 갑옷마저 부서졌으나 완파되진 않았다. 온몸을 옥죄는 압력과 숨을 쉴 수 없는 극한의 고통에서도 카를은 자신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

오리하르콘 갑옷 너머로 전해지는 막강한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모든 힘을 내뿜고 자신은 가사 상태에 빠졌다.

그 뒤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핏자국을 남겼다. 위수가 본 건 카를이 저항한 흔적, 그를 발견하지 못한 건 유일하게 위수가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이 오리하르콘이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카를은 그곳에 있었다.

카를은 삶을 잠시나마 연장했을 뿐, 자신의 힘으론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거석에 갇힌 채 꼼짝도 못하고 매장되어 가는 순간에도 카를은 믿었다. 빛을, 희망을, 그리고 자신에게 심어진 그분의 씨앗을.

해와 달이 몇 번을 지고 떴는지 카를은 몰랐다. 그저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만 생각했다. 아니면 불과 몇 분일 수도. 꺼져 가는 정신만이 희미하게 빛날 뿐이었다.

카를은 작은 불빛을 보았다. 제 생명의 크기를 느낀다는 건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신다.’

그때였다.

카를은 순간 촛불처럼 작았던 빛이 커져 가는 것을 목도했다.

‘오신다, 오신다, 오신다.’

빛은 점점 더 커졌다. 이내 카를이 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그 순간 카를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킨 카를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엔 황금 날개를 가진 용이 있었다. 용은 제 몸보다 몇백 배는 거대한 바위 기둥을 날갯짓만으로 무너트려 자신을 구원했다.

아아, 나의 빛. 카를은 그렇게 읊조리며 절을 했다.

[야만의 세계조차 관리하지 못하더냐.]

빛이 강림하자 카를은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제 목숨을 가장 중요시하던 카를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금의 용이 잠자코 그를 내려다본다. 그러다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몸을 돌렸고, 그 순간 카를이 입고 있던 오리하르콘 갑옷은 가루가 되어 용에게 날아갔다. 오리하르콘은 용에게로 흡수되었다.

[쓸모없는 가디언.]

빛이 노하자 카를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커져 가는 공포심 속에서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카를은 차라리 바위에 갇혀 있던 순간이 더 안락했다고 생각했다.

[뭐, 됐다. 어차피 대체품이었으니.]

황금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렇게 용은 하늘로 날아갔다. 용의 뒤편으론 빛 뭉치가 있었다. 빛 뭉치는 천천히 사라져 흩어졌다. 한 생명의 종말이나 먼지처럼 덧없을 뿐이었다.

용은 우주를 날아다녔다.

이윽고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에 안착하여, 황금으로 이루어진 왕좌에 앉았다.

황금의 용은 생각했다.

다가올 동면의 시기에 가디언만으론 둥지를 지켜 낼 수 없으니 사라진 주술사를 찾아야겠다고.

[때가 온다.]

[붉은 아이를 찾아라.]

그의 명에 주변이 빛나며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곧 반짝이는 구체들이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

나는 휴가였으나 턱시도를 챙겨 입었다. 본래 ‘턱시도’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산발이 된 머리는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정리했고, 왁스를 발라 뒤로 넘겼다.

하얗게 센 일부 머리가 눈에 뛴다고 생각했지만 염색은 하지 않았다. 꿀리기 싫어서 시계도 명품으로 착용했다.

“댄디하군.”

거울을 보던 난 씩 미소를 지었다.

꾸며 놓으니 나도 나름 괜찮잖아.

연락받은 시간에 맞춰 아파트를 나서자 리무진 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

차에 타자 사타리언 운전기사가 반겨 줬다. 난 인사를 하고 좌석에 등을 기댔다.

‘벌써부터 어색하네.’

사타리언 부인의 요청에 연회에 참석하긴 하는데 무척 어색할 것 같다.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그나마 사람들의 연회면 모를까, 내가 사타리언들의 연회에 참석하는 유일한 ‘인간’이니…….

아니, 한 명 더 있긴 하지. 부인의 남편.

공항에 도착해서 사타리언 부인의 전용 비행기에 탑승했다. 몇 번 타 본 적은 있지만 탈 때마다 놀랍다.

탑승 수속 절차도 간단하고, 전용 비행기로 군사 지역을 제외한 어느 공항에도 착륙할 수 있으며, 승무원들의 배려 넘치는 서비스는 퍼스트 클래스보다 훨씬 뛰어났다.

물론 그들이 모두 사타리언들임을 감당해야 하지만 난 괜찮았다. 오히려 마물원 일을 하고 나서부턴 사람들보다 이종족들과 더 많이 지내는 것 같네.

기내식으로 잔어 요리가 나왔다. 사막 투어에서 처음 먹었을 땐 역겨웠던 음식이나 지금은 꽤 별미로 느껴졌다.

교감의 부작용일까, 장점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가리는 음식이 없어졌어. 하긴, 오크들의 진흙 고기구이도 맛있게 먹었는데.

몇 시간 후 비행기는 호주 어느 곳의 개인 사유지에 착륙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검은 턱시도를 입은 사타리언이 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짐작하기 힘들었으나 노인처럼 보였다. 노인은 윙바레가의 집사라며 자길 소개하며 연회가 열리는 곳까지 안내했다.

난 골프장에서나 쓸 법한 카트를 타고 그곳까지 향했다.

‘대단하네, 돈의 힘이란.’

이곳은 윙바레사의 사유지이자 그들 가문의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 사타리언 부인을 포함하여 이름 있는 사타리언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서 산다는 모양이다.

활주로부터 시작하여 사유지는 무지막지하게 넓었다.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활주로엔 개인 비행기들이 속속 도착했다. 정원으로 보이는 곳까지 십 분 이상을 카트로 달려야 했다.

그리고 정원도 만만치 않게 넓었다. 별장처럼 보이는 곳도 수십 채나 있었는데 물어보니 연회가 열리는 곳은 본관이란다.

‘누가 그랬더라? 돈만이 평등할지어니 신보단 돈을 섬기라고.’

돈의 힘은 대단했다.

이곳이 모두 이종족의 사유지라니.

사타리언들은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지구에 훌륭히 안착한 이종족임을 새삼스레 다시 느꼈다.

*

한참을 달려 마침내 연회가 열리는 ‘본관’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수억 원의 값비싼 세단들이 즐비했다. 저택의 입구까진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우습게도 누군가 밟고 지나가자마자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건물 자체는 과연 이종족의 저택답게 특이했다. 생김새는 유럽식 저택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큰 창문이 유달리 많았다. 유리창 너머로 저택 안의 조명이 얼마나 센지 마치 카지노 건물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트에서 내리자 저택을 오가던 사타리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뻘쭘해서 뺨을 긁적이며 시계만 쳐다봤다.

‘저들 모두가 사타리언 부인이 경계하는 적들이라는 거지.’

며칠 전 사타리언 부인으로부터 ‘승계자 결정식’에 초대받았다. 윙바레사는 사타리언 부인이 운영권을 휘어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윙바레의 모든 전권을 쥐었지만 늘 한 가지가 부족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바로 임시직 따위가 아닌 진정 사타리언들을 대표하는 대표자다.

낡고 고루한 의미로 ‘왕’이라고 부른다나. 현재 사타리언들의 대표자는 너무 늙고 병들어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동안 사타리언 부인은 대표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왕의 직위가 공석이 되어 승계자가 결정되는 의식이 치러지게 되었다.

난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사타리언 부인이 왕이 되리라 생각했다. 다른 걸 다 제쳐 두더라도, 원장님이 가장 신뢰하는 사타리언이 바로 부인이었으니까. 용이 보증하는 자인데 그보다 걸출한 인물이 어디 있겠어?

사타리언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민망함을 느낄 때였다. 난 차에서 내리는 사타리언 부인과 그의 남편을 발견했다.

“부인! 그리고… 으음.”

반갑게 인사하며 걸어가던 난 순간 멈칫하며 입을 깨물고 말았다. 웃으면 실례다.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대체 왜 저 사람은 저딴 꼬락서니로 이곳에 온거지? 원형 탈모에서 헤어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는 건 부인으로부터 익히 들었으나, 실제로 마주하니 더욱 보기 어려운 몰골이었다.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다정 씨의 존재만으로 제 가치는 더더욱 높아졌어요.”

“아뇨. 공짜 밥도 먹고 뭐, 별일 아닌데요. 그보다 저기…….”

난 그를 쳐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으셨나 봅니다. 머리가…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남편은 삐죽 솟아오른 양쪽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당당히 외쳤다.

“어떻습니까? 이 머리, 강함의 상징이라고 들었습니다. 장로들과 왕자들도 날 깔보지 못할 겁니다.”

‘강함의 상징이긴 하지.’

남편은 대머리에 닭볏을 두 개를 단 듯한, ‘헤이아치’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그에게 고전 격투 게임의 캐릭터 머리를 하라고 한 게 누구인진 몰라도 참 고약한 심성을 가진 자일 것이다. 저리 순진한 사람을 속이나.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그는 헤어스타일만큼이나 꽤 달라진 것 같았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던 전과 달리 당당하고 당차졌다. 풍기는 기운도 다르다. 무공을 배웠다더니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은 더 강해진 것 같다.

우린 같이 레드 카펫을 밟았다.

사타리언 부인은 유일하게 사람을, 그것도 두 명이나 대동하고 나타났으나 아무도 그녀에게 무어라 하지 못했다. 다소 패쇄적이라 들었던 사타리언들이 찍 소리도 못하는 건 사타리언 부인의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내가 보통의 인간으로 초대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앉아 계세요. 저흰 돌아가신 왕을 위한 위령의 제를 올리고 와야 해서…….”

사타리언 부인과 남편은 날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 난 홀로 테이블에 앉아 준비된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강렬한 조명에 엄청 반짝거린다. 원래 사막에 살던 이종족이라 그런지 반짝이고 빛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꾸며 놓은 모습은 귀족들의 연회와 같았다. 넓은 홀에서 금방이라도 사교 댄스라도 춰야 할 성 싶었다. 홀의 깊숙한 곳엔 작은 무대가 보였다. 시상식처럼 승계자를 무대에 불러 세우기라도 할 모양인가 보다.

본래 그들의 세계에서 연회란 이런 게 아닐 테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지구의 문화에 물든 모양이다.

각 테이블마다 드레스와 양복을 입은 사타리언 무리들이 앉아있었는데 서로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후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지지 세력들은 모두 경쟁자일 테니 당연한 건가?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자 날 주시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적대적인 시선이 아닌 관심이 가득한 눈빛들이었다. 이내 몇몇 사타리언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용의 가디언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뵈어 무척 영광입니다.”

이곳에 난 용의 가디언으로서(원장님에겐 허락을 받았다.) 참석했다.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당할 위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난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야말로 왕을 정하는 연회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두가 머뭇거릴 때 용기 있는 자가 나서서 질문했다.

“남쪽의 공주님과 같이 입장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승계식 후에 저희 보툰가(家)가에서 가디언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 전에 혹시 공주님과 무슨 사이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귀찮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누굴 지지하냐는 뜻이다.

“그분께선 저와 위대하신 분께 많은 도움을 줬지요. 제 주인님께선 빚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난 은근슬쩍 내가(원장님이) 사타리언 부인을 지지한다고 어필했다. 그들의 눈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게 무어라 할 자격은 없었다.

아무리 용의 가디언이라고 하더라도 승계자를 정하는 것엔 크게 관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사타리언 부인을 지지하고 싶었다.

우리 대화를 엿듣던 다른 사타리언들도 내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잠시 후 넓은 홀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그리고 곧바로 무대의 조명이 커졌고 오페라 하우스의 관람석처럼 2층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오랜 회의 끝에, 장로회는 다음의 승계자를 정했으니…….”

난 무대 위에 올라가는 자를 쳐다봤다. 사타리언 장로가 말하는 후계자가 정말, 정말 저자란 말인가? 농담처럼 느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사타리언들은 불편한 침묵을 고수했다.

“진짜야?”

헤이아치 머리를 한 ‘인간’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 게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들을 대표할 다음의 승계자는 남쪽 공주의 부군이자 인간인 김 경임을 장로회에서 공표하는 바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승계자가 되었으니 사타리언 부인의 입지는 윙바레사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겠지. 난 축하의 인사를 건네려고 그녀를 찾았다.

“부인?”

사타리언 부인은 저택의 뒷문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난 표정을 굳히고 급히 따라 나갔다.

정원의 선인장 나무 아래 그녀가 서 있었다. 난 비늘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기뻐할 줄 알았던 부인이 울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외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난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았나 보군요.”

부인이 화를 가득 눌러 담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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