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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60화 (160/258)

# 160화 지키고 싶은 것 (3)

도라에몽은 찌질한 진구를 위해 만능도구를 줬지만 곽운에몽은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으나 스승님은 단칼에 거절했다.

[난 이미 두 명의 제자가 있으니 더 이상 제자는 받지 않는다.]

곽운은 단호한 사람이다. 난 계속 말해 봤자 입만 아플 거라는 걸 알았기에 바로 포기했다. 스승님이 가르치는 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대신할 수단은 많겠지. 영약을 주거나 스승님이 아는 일주일 단기 속성 과외선생을 따로 붙여 준다던가. 하지만 곽운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네가 가르치는 게 어떻겠느냐.]

“제가요? 으음, 제가 무공을 가르치는 건 무리 같은데요.”

스승님은 나더러 그를 가르치라고 했다. 하지만 난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불세출의 천재면 모를까 사실 내가 배운 무공도 무공이라 부르기엔 애매했다. 마물의 힘과 움직임을 빌려 오는 교감의 능력에 ‘형의’의 묘리만 담았을 뿐이다.

전에 스승님이 무공을 가르칠 때도 난 무공에 전혀 재능이 없다고 하였다. 이미 있는 걸 배우지 못하니 스스로 만들어서 쓰라고까지 했었다.

[무공은 때론 배움을 받는 것보다 베풂으로서 얻어지는 게 많을 때도 있다. 어찌 아느냐, 깨달음의 증진은 별안간 찾아오는 법. 너에게 교육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지. 시도를 해 보지 않으면 결코 모르는 법이다.]

스승님과의 대화는 얻은 게 없이 끝이 났다. 그저 나더러 무공을 가르쳐 보라는 말이 다였다.

난 전화를 끊고 기대하는 눈빛의 남편을 바라봤다. 내가 저자를 가르칠 수 있을까? 단지 무공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내 역량에 사타리언 부인과 남편의 운명이 걸려 있다. 부담감이 상당했다.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내가 과연 가르칠 수 있을까?

‘형의검은 기본적으로 관찰에 의한 무공이다. 만약 내가 깨달은 움직임들을 그에게 설명만 잘할 수 있다면…….’

아니, 오히려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닌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형의검은 다른 무공과 궤를 달리하는 나만의 무공. 시도해 보지 않아서, 시도해 볼 이유도 없어서 몰랐을 뿐 어쩌면 타인이 배우기엔 다른 무공보다 더 쉬울지도 몰라.

난 남편을 데리고 숲의 넓은 공터로 향했다. 그리고 형의권 중 묘권을 선보였다. 가슴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엎드린 채 손가락을 구부리고 등을 꼿꼿이 세운다. 묘권의 강함은 유연한 육체에서 나오는 기묘한 움직임과 빠르기.

“묘권이라는 겁니다. 따라 해 보세요. 냐앙!”

추임새가 고양이 같다고 해서 부끄러울 게 아니다. 형의권은 그야말로 동물, 나아가 마물의 움직임을 따라한 무공. 울음소리를 따라하는 건 보다 집중력을 높여 준다.

“네?”

그러나 남편은 날 해괴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첫 만남과 같았다. 불꽃 수유를 들켰을 때도 저 표정을 했었지.

“왕자들을 이기기 위한 무공을 가르쳐 줄 테니까, 따라 해 보라고요. 냐아앙!”

남은 기간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가르쳐도 급박한 시간이다.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말자.

“따라 해!”

윽박을 지르고 나서야 남편은 내 움직임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해한다. 인간이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건 보기보다 벅차다.

“캬옹!”

그렇다고 허투루 가르칠 생각은 아니다. 난 머릿속으로 사타리언 왕자들의 검술 대련을 떠올렸다. 그들이 어떻게 공격하는지, 어떻게 방어하며 반격하는지. 상상하며 손을 휘두르고 허리를 꺾어 피한다.

“웅야야양!”

상상 속의 사타리언 왕자,

그가 검을 뻗어 오자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경계하듯 몸을 웅크렸다가 검이 휘둘러지는 타이밍에 맞추어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뒤로 피했다.

“크냐아옹!”

이 무공을 다루기 위해선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 영역에 침범한 적을 가차 없이 몰아내듯 상상 속의 왕자의 몸에 올라타 양손으로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겉보기엔 허접해도, 너덜거리는 걸레조각이 된 적은 감히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지.

끝났다.

묘권은 사타리언 왕자들의 직선적이고 빠른 검술에 대항할 수단이다. 남편이 이 무공만 배울 수 있다면 사타리언 왕자들을 이길 수 있다. 난 웅크린 허리를 펴고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했다. 그러곤 중반부터 따라 하기는커녕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만 보던 그를 향해 말했다.

“아시겠냥? 아니, 아시겠습니까? 이 상태에서 검을 든다면 더 강해질 거다냥. 아니, 망할 교감. 그러니까 이 무공만 배우면 당신도 왕자들에게 이길 수 있습니다.”

난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불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배운답니까?”

“못 믿겠다는 겁니까?”

“아니, 다정 씨가 대단한 건 알겠는데요. 크흠, 제가 그래도 과외 선생한테 배울 땐 꽤 재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정 씨가 보여 준 건 무공이라고 해야 할지 날뛰는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지……. 물론 굉장한 모습이긴 합니다만 제 눈으론 따라잡기 힘들어서요. 혹시 따라 하기 쉬운 건 없을까요? 무공 비디오나 하다못해 책이라도…….”

“비디오?”

남편이 폰을 꺼내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리고 한 편당 수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유료 동영상을 틀어 준다. 제목이 [동영상으로 쉽게 따라 하는 무공]이었다.

난 동영상 속의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몸짓으로 무공을 가르쳐 주는 교사를 보며 방금 내가 했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와 달리 비록 저급한 무공처럼 보였으나 저 정도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무공에도 일타강사가 있냐?’

이래선 안 돼.

“이 바위를 저 언덕까지 옮기세요. 쉬지 않고 왕복 세 번씩, 10세트.”

“네? 그걸 어떻게?”

“죽어서 부인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으면 잔말 말고 하세요. 나도 다 그렇게 배웠어요.”

남편에게 체력 증진을 위한 숙제를 내주고 사타리언 부인을 찾았다. 부인으로부터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하고 어두운 방과 컴퓨터를 부탁하자 자신의 전용기를 추천해 줬다.

난 노트북을 켜 포토샵을 실행시켰다. 21세기 현대인답게 활자와 동영상으로 무공을 배우는 그를 위해 쉽게 무공을 배울 수 있도록 정리해서 기록해 볼 생각이었다.

“뭘 해야 하나.”

막상 하려니 빈 페이지만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내 무공을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기록해야 하니 우선 나부터 확실한 정리가 필요했다.

“으음.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

생각해 보면 내 무공은 그저 내가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사용하는 것이다. 주술사와 싸웠을 땐 본능적으로 황소 마물의 힘을 이끌어 냈고, 나이트메어를 죽일 땐 미라 마물의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경계가 없다.

이 힘이 무공인지, 그저 순수한 마물의 힘인지 나도 잘 알지 못해.

체계적으로 내가 가진 힘을 무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달라질 게 있겠냐마는…….”

공부 잘하는 녀석들의 공통점은 정리를 잘한다는 것이다. 제 머릿속에 든 지식들을 잘 정리하여 노트에 기록한다. 물론 무공은 공부와 다르긴 하지만 생각에 그치는 것과 정리하여 기록하는 건 별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움직임을 이해하기 편하게 그림으로 그려 볼까.”

이럴 때 취업을 위해 배워 둔 포토샵 기능과 보육원에서 인어공주를 그리며 키웠던 그림 실력이 도움이 되는구나. 난 야옹이를 흉내 내는 내 모습을 그리며 사족을 달았다.

[두 발로 서는 인간의 무게중심을 잊고 네 발로 균등하게 무게 중심을 둔다.]

무공의 기초조차 모르는 자가 본다면 난해하겠지만 남편은 그래도 무공을 배웠다. 그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

“어디 보자, 왕자들에게 통할 만한 고양이의 움직임은…….”

야옹이의 힘을 받아들인 난 모든 움직임이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부인의 남편은 그러지 못하니 야옹이의 움직임을 체계화하여 동작마다 구분하여 가르쳐야 했다.

“이 공격 방법을 [고양이 실룩거리기]라고 할까. 에잉, 이왕 할 거면 멋지게. 묘난타(猫亂打)라고 짓자.”

난 왕자들과 대적할 수 있는 무공을 우선 기록했다. 다섯 왕자는 확실히 검술 실력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루 동안 겉핥기로 봤지만 그들의 실력이 승계 서열 순이었다는 것이다. 듣기론 이번 도전자 순서도 승계 서열 순으로 1왕자가 가장 마지막 도전자라고 들었다.

가장 강한 도전자가 마지막인 건 좋은 상황이다. 당연히 그 기간이 단지 유예 기간으로 끝난다면 안 된다.

특히 걱정되는 1, 2왕자. 30일 동안 그를 1왕자와 대적할 만큼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지금 그의 실력으론 5왕자, 잘하면 4왕자가 한계다. 지금부터 한 달간의 기간, 다섯 번의 싸움. 5일마다 남편을 몰라보게 성장시켜야 해.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몸을 꺾어 상대의 검을 피하고 발등으로 급소를 친다. 절하묘각타.]

곽운 스승님이 가르쳐 준 묘리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상상하고, 기록했다.

안타까운 건 기의 운용에 대해선 말해 줄 게 없었다. 야옹이의 힘을 직접 받아들인 난 기를 운용하는 법을 몰랐고, 가르쳐 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관찰’할 수는 있다.

그의 기가 강한지 유한지 환(幻)한지는. 가장 난해한 이 부분은 그가 해내야 할 일이다.

[묘권은 형의권 중 하나로 움직임을 기록한 것이며, 다른 무공과 달리 기를 운용하는 법은 제한다. 그러나 심법이 없어도 무공을 배운 자라면 능히 기류를 운용할 수 있으며, 기를 이용해 보다 유연하고 민첩한 몸을 만든다면…….]

빈 페이지가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

점심쯤에 시작했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장수가 늘어날수록 깨달음 교묘하게 찾아왔다. 왜 무림인들은 굳이 무공비급을 남겼을까? 난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무공비급 때문에 혈겁이 일어나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으면서, 다른 놈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기 싫어 무공 연습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살인멸구하려 들면서.

왜 굳이 비급을 없애지 않은 걸까.

머릿속에 모든 걸 담아 두고 비급 따윈 불태워 버리면 그만인데.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써 보니 알겠다.

다르다. 머릿속에 있던 것과 기록한 결과는 확실히 달랐다.

재밌는 추측일 뿐이지만 어쩌면 무공을 창안한 자라고 하더라도 비급을 없애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게 아닐까? 고수들이 일자전승의 절세무공을 굳이 기록으로 남긴 것도 참고서가 필요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으면 잊어먹지 않기 위해 기록하듯이 거듭된 깨달음을 계속 기록하기 위해서일지도.

“단지 기록으로 남겼을 뿐인데 움직임이 더 정교해졌어.”

효과가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묘권에 그쳤으나 내가 가진 다른 힘들도 기록해야지.

*

난 하루 동안 만들어 낸 묘권의 자료들을 사진으로 찍어 곽운 스승님의 ‘메신저톡’으로 보냈다. 내가 보기엔 괜찮으나 착각일지도 모른다.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검수를 받고 싶었다.

[까토옥!]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답장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공, 무림, 파일로 만든 무공서, 메신저 톡은 정말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라니까. 그래도 곽운 스승님이라면 평가해 줄 수 있겠지.

난 바로 답장을 확인했다.

“이세계인들은 이모티콘을 왜 이렇게 좋아한대?”

원장님도 그렇고 스승님도 정말 어울리지 않게 답장에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휴대폰 기본 이모티콘, 그중에 웃는 노란 얼굴 이모티콘.

[웃음, 웃음, 웃음, 웃음, 웃음. 으하하! 개조의 재능이라고 하였다. 웃음, 웃음, 웃음. 내가 사람 보는 눈은 뛰어나구나!]

이모티콘으로 정신 사나운 메시지였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합격이라는 거겠지.

[웃음, 웃음, 웃음. 쓸 만한 무공이다. 심법은 없으나 보아하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구나. 하루 만에 이런 무공을 만들어 내다니. 웃음, 웃음, 웃음. 과연 내 제자로구나. 웃음, 웃음, 웃음.]

그 뒤로도 메신저톡으로 웃음 이모티콘만 잔뜩 보내기에 차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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