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61화 (161/258)

# 161화 지키고 싶은 것(4)

다행히 쉽게 풀이된 무공서는 부인의 남편이라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이해와 숙지는 다른 영역이다. 남편도 걱정하며 물었다.

“어떻게 4일 만에 배우죠?”

묘권이 움직임을 따라 하는 외공이라고 할지라도 전이 이전, 현대의 무술을 생각해 보면 쉽게만 생각되진 않는다. 권투는 주먹을 쓰는 법, 주짓수는 상대를 제압하는 법일 뿐이지만 숙련되기 위해선 몇 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인간이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건 더욱 난해한 일이다. 새삼 교감의 힘의 굉장함을 깨닫네. 난 녀석의 힘만 받아들이면 어려울 것 없이 뚝딱 해내니.

“지금부터 하루 중 두 시간을 제외하고 모두 무공 수련에 할애해야 합니다. 제법 기본기가 튼튼하시니 자세를 배우면 대련으로 봐드리는 식으로 갈 겁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남편이 무술에 있어서 초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드웨어도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었고, 소프트웨어도 백지부터 설치하는 게 아닌 업그레이드로 봐야겠지. 그가 배운 달에 3900만 원 무공은 기본기에만 충실한 삼류 무공이었다.

지금 상황에선 사기꾼에게 돈 떼어먹힌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어설프게 힘 좀 부리는 무공을 배웠다면 골치 아팠을 거야.

“다정 씨, 지금 상황에서 볼멘소리를 내는 건 안 될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정이 너무 살인적입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제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히 말했다.

“괜찮아요. 인간의 의지는 의외로 쉽게 조절되거든요.”

그리고 품에서 원장님표 공진단을 꺼냈다. 저번 오크 라덴의 일로 다른 세계에만 가면 잘 시간이 없다고 찡찡댄 적이 있었는데, 원장님은 아주 간단히 불평을 잠재웠다. 곧바로 약 몇 개를 만들어 주며 이것만 먹으면 절대 피곤하지 않을 거란다.

‘하루를 안 자면 하루의 수명이 날아가겠지만 따질 때야?’

동시에 몇 가지 부작용을 말해 줬으나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물론 난 먹기 싫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약을 받아 든 남편은 머뭇거리다가 속에 담아 놨던 본심을 말했다.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사실 가장 불안한 건 그일 것이다.

결국 불행으로 끝날지 행복으로 만개할지는 자신의 힘에 달려 있으니까.

그는 부인과 다르게 날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날 믿어 주고 있다. 3900만 원 과외 선생보다 날 더 의지하고 있다. 우유부단한 나라도 지금만큼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았다. 그의 부담감을 약간이라도 줄여 주기 위해서.

“날 믿어요. 이 무공은 도마뱀 잡는데 특화된 무공이니까.”

내가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찬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난 그에게 단호하게 느껴질 만큼 강력하게 말했다.

그러자 불안하던 남편의 눈빛이 점점 굳혀진다. 이제 그는 오로지 수련하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다.

“혹시 이 무공을 배우면… 어, 날뛰는 사타리언도 제압할 수 있을까요? 다치지 않게?”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한 걸 물어본다. 유약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왕자들은 당신을 죽이려 들 겁니다. 힘이 비등할수록 더욱 그렇겠죠. 그런데도 누군갈 죽이는 게 두려운 겁니까?”

꾸짖듯이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손사래를 치며 자신도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의식과는 별개로… 아니에요. 지금 물어볼 주제가 아니죠. 당장 수련을 시작할까요?”

남편은 사타리언을 제압하는 방법을 물어봐 놓고 왕자들과 다른 문제라고 한다. 의아했지만 말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럼 우선 첫 자세로 뻗어 오는 검을 허리의 힘으로 피하는 회피 동작부터 배워 볼게요.”

“기의 운용은 어떻게 하죠?”

“몸을 보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올바른 자세부터. 나머진 보면서 확인해 드리죠.”

그렇게 수련이 시작되었다.

난 공진단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그와 하루 종일 붙어 대련을 봐줘야 해서 결국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영양분을 섭취하고 기를 진정시키는 두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이리 열정적으로 행동해 봤으나 의외로 생각보다 더 뿌듯했다. 가르치는 재미, 알 것 같기도 하다.

*

[무공 증진을 위한 관찰기]

11월 7일

첫 수련이 끝났다. 그는 꽤 훌륭하게 묘권의 기본자세를 습득했다. 전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알았을까. 자신이 무공에 나름 재능이 있다는 걸. 생각보다 만족스럽게 진도를 뺄 수 있겠다.

11월 11일

첫 번째 대결을 앞두고 부부는 망할 막대 과자를 교환했다.

난 왜 그의 무공 증진을 기록하는 관찰기에 이런 쓸데없는 말을 쓰는 걸까. 모르겠다. 어쨌든 5왕자와의 싸움은 처절했다.

일부러 ‘묘권’을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하긴 했으나 생각보다 더 힘들게 이겼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과연 의료계 원탑 종족답게 흉터도 남기지 않고 회복되었다.

좋아, 5일 동안 더 빡세게 굴릴 수 있겠지. 4왕자와의 싸움에도 묘권은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뭐, 숨겨 둔 수는 두 개 이상이 좋을 테니까 말이다.

11월 13일

그가 진실을 말해 줬다.

충격적인 비밀이었으나 상황은 재밌게 되었다. 지금 와서 갑자기 달라지는 게 아니다. 묘권보다도 훨씬 오래된 역사에서… 후략.

11월 16일

4왕자는 강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묘권을 사용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리로 걷어차는 절하묘각타의 자세로 찔러 오는 검을 걷어차고, 묘난타의 자세로 손에 든 짧은 검으로 4왕자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할퀴었다.

4왕자는 간신히 살았으나 얼굴의 가죽이 다 찢겨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남편이 환호성을 내지르자, 더 이상 남편을 만만하게 보며 야유하는 사타리언들은 없어졌다.

이겼으나 난 고민이 더 컸다.

묘권을 배운 남편은 첫날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어. 하지만 어제 염탐한 첫 왕자의 검술은… 묘권만으로 힘들지도.

11월 18일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과연 그는 이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 묘권보다 훨씬 어려운 상위 무공을?

11월 21일

3왕자와의 싸움도 쉽게 가져갔다. 빠르지만 일직선의 단조로운 공격을 취하는 사타리언 검술은 다채롭고 민첩한 묘권의 손쉬운 먹이였다. 다만 근심은 떨쳐지지 않는다. 묘권이 아닌 다른 걸 가르치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11월 23일

남편이 쓰러졌다.

사타리언 부인이 눈이 돌아갔다. 무섭게 날뛴다. 온갖 영약을 공수해 살렸긴 했는데, 으음. 부인의 저 모습. 과연 그랬구나. 이제 몸도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비장의… 후략.

11월 25일

희망이 보였다.

사실 난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이 무공을 다루는지, 부인이 어떻게… 후략.

11월 26일

2왕자와의 싸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이긴 남편. 허벅지와 배가 찢겨 내장이 다 드러났다. 아무리 윙바레의 의료 기술이 좋아도 단 며칠 만에 완전히 회복시키기엔 무리겠지. 원장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승부 결과는 만족하지 못했으나 이로써 100% 확신하게 되었다. 1왕자, 묘권으론 못 이겨.

11월 27일

원장에몽은 대단하다. 도라에몽과 만능 도구 배틀을 펼치면 원장님이 근소한 차이로 이기지 않을까? 다만 ‘몸이 회복되고 마나가 충당되는’ 비밀의 약을 사타리언 부인에게 건넬 때, 무언가 긴 대화가 오고 갔다.

내가 알기론 원장님은 공짜로 무언가를 퍼주는 드래곤은 아니었다. 아니,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원래 다 그렇다. 이번엔 대체 뭘 얻었을까?

12월 1일

12월의 시작에서, 마침내 마지막 결전이 일어났다.

*

난 관찰기를 덮고 격투장을 내려다봤다. 사타리언들은 반짝거리고 매끈거리는 비늘과 다르게 품위 있는 자들이다. 그들의 회사는 지구의 의료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호주의 이 드넓은 사유지만 보더라도 얼마나 지구에 잘 적응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저 아래 야만적인 격투장은 다르다. 사타리언들은 오크처럼 드러내진 않았으나 속은 흉포한 전사들이었다. 네 번의 싸움으로 핏자국이 스며든 저 모래 격투장은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아 잘려 나간 옷가지와 부러진 검날이 그대로 박혀 있다.

몇백 석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타리언들은 또 어떤가. 단지 종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식이라서 참여한 게 아니다. 우습게도 왕자들이 피를 흘러도, 그들은 즐거워했다.

피냄새처럼 야만적이고 부러진 칼날처럼 살벌한 격투장에 한 남자가 오른다. 그는 비늘 사이에서 매끈한 살점을 가진 인간이었다. 다만 그를 무시하는 사타리언들은 아무도 없었다. 네 명의 왕자를 꺾은 남편은 그들이 봐도 훌륭한 전사겠지.

‘드디어 마지막 결전.’

상대로 1왕자가 격투장에 올랐다.

다른 왕자들과 격이 다른 위압감.

덩치는 오히려 다른 사타리언들에 비해서 작은 편이었으나 붉은 비늘과 번뜩이는 파충류의 노란 눈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의 검은 사타리언 사이에서 벼락의 검이라 부를 만큼 빠르기에선 발군이다.

“그이가… 이길 수 있을까요?”

부인은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안절부절못했다. 벌써 몇 번째 질문인지. 이해는 한다. 불안하겠지. 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는 묘권만으론 이기지 못해요.”

부인이 깜짝 놀라 쉭쉭 소리를 냈다. 난 부인의 혀가 진동하듯 떨리는 걸 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더 감추다간 부인의 입에서 피거품이라도 날 지경이었다.

“그거 아세요? 묘권은 고양이를 흉내 내는 무공이며, 흉내 내는 무공은 ‘형의권’이라고 해요. 묘권은 본래 고양이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지켜본 자가 깨달음을 얻어 무공으로 탄생시켰고, 당랑권이나 사권 또한 사마귀와 뱀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무공으로 승화시킨 거예요. 그러니 형의권은 결국 오래 관찰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거죠. 뭐, 전 예외긴 하지만. 그러니 남편분께서 가장 잘 흉내 낼 수 있었던 건 고양이 따위가 아니라…….”

그때였다.

때마침 결투가 시작되었다.

나와 부인은 입을 다물고 마지막 결전을 지켜봤다.

선제공격은 1왕자의 벼락같은 검.

과연 소문답게 평범한 자는 눈으로 따라잡기도 벅찰 속도였다. 일직선상으로 뻗어지는 단조로운 검이었으나 너무 빨라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이다.

그러나 남편은 막았다.

아주 가볍게.

또한 기괴하게.

난 그의 손가락 사이에 꽂힌 검날을 보며 웃었다.

“저건… 대체?”

당황하는 부인의 목소리에 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낄낄대며 대답했다.

“맞아요. 고양이의 움직임이 아니죠. 하하.”

지금 그가 펼치는 무공.

모든 움직임들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팔과 다리, 목과 허리. 모든 관절 부위가 부자연스럽게 따로 움직인다. 실로 매단 관절인형처럼 불규칙적인 움직임에 첫 왕자의 검은 갈 곳을 잃는다. 그는 분명 심장을 노리고 휘둘렀겠으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아니다. 하지만 격투의 개념에 있어서 분명 묘권보다 몇 단계 위의 무공임이 틀림없었다.

쉽게 배울 수 없는 무공이다.

그의 수준으론 몇 년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십 년의 경험이 있기에.

첫 왕자의 검은 매섭고 강했지만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닿지 못했다. 열띤 관중석이 점점 가라앉아, 결국 그 누구도 함성을 내는 자가 없었다. 침묵으로 적막해진 경기장엔 1왕자의 악에 바친 고함만이 들려왔다.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겠지. 나도 이건 기적과 가깝다고 여겼으니까.

결투를 지켜보던 부인은 점차 깨달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설마. 말도 안 돼. 저 자세, 저 움직임! 난 알아요. 분명 잊힌 사타리언 박투술. 하지만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대가 끊겼는데……? 아니, 달라. 미묘하게 달라. 그래도 정말 할아버님의 모습이… 어떻게?”

그녀의 당황을 이해한다.

사건의 발단은 정말 우연이었으니까.

*

5왕자와의 싸움이 끝난 후였다.

난 1왕자에겐 묘권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남편에게 보다 격 높은 무공을 가르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다른 무공들은 그가 배우기엔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묘권은 형의권의 기본 형태가 있어서 가르치기 편했지, 포근이의 힘처럼 다른 힘들은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가르치길 포기하고 지쳐 버린 남편과 내가 잠시 쉬면서 사사로운 대화가 오고갈 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