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지키고 싶은 것(5)
“사타리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마물이 뭔지 아십니까?”
그가 나더러 묘권 외에 더 대단한 무공을 배웠냐고 질문하기에 마물의 힘을 받아들여 무공으로 승화시킨 무공이 있다고 대답하자 남편이 대뜸 저렇게 질문했다.
“샌드윔 아닌가요?”
사막의 거대한 청소부, 샌드윔은 그들의 고향에서도 무시무시한 마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보다 더 무서운 마물이 있다며 ‘페로페로’라고 대답했다.
“진짜요? 그 녀석이?”
아는 마물이었다.
내가 알고 있자 도리어 남편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페로페로를 아십니까?”
“알죠. 마물원에서 몇 번 봤어요. 사막 마물치곤 그다지 무서운 녀석은 아니었는데.”
남편은 모르는 말씀이라며 페로페로의 무서움에 대해서 부인에게 들었던 일화를 설명해 줬다.
“녀석은 싸우는 걸 좋아하고 성격이 워낙 사나워 눈에 보이는 건 다 쥐어 패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페로페로는 생김새는 언뜻 곰처럼 생겼으나 털 대신 단단한 비늘로 뒤덮여 있고, 다리와 팔의 관절이 수십 개나 되어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척척이’라는 뱀 퍼즐 장난감처럼 팔과 다리를 기괴한 각도로 꺾을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내겐 착한 녀석들이었지만 그저 분노 조절 장애를 잘하는 녀석이었나 보다.
남편이 말을 이어 나갔다.
“사납고 난폭하지만 샌드윔한테 덤비는 용기 있는 녀석들이라 오아시스 가문에선 깃발휘장에 새겨 넣고 상징수로 쓰인다고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아내는 어릴 때 페로페로를 따라 해서 만든 박투술까지 배웠다더군요. 정말 제 아내지만… 그… 아닙니다.”
남편은 마물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고 하니 생각이 났다며 페로페로에 대해서 말해 줬다.
‘사타리언들이 무서워하는 녀석이라.’
기억한다. 페로페로의 움직임들.
녀석과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았지만 사막에서 일할 때마다 내게 달라붙어 워낙 애교를 부리던 녀석이었다. 아니 잠깐, 설마 애교라고 생각했던 게 공격하는 거였나? 어쩐지 가끔씩 화난 듯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더라니.
“녀석들의 움직임을 따라 한 박투술이라, 음. 이런 모습이려나요?”
난 녀석들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인간의 관절이 페로페로만큼 많지는 않아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할 수는 있다.
“이 움직임…….”
장난처럼 시도한 무공을 보며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아내와 같아요.”
“네?”
남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내가 화났을 때 같아.”
*
난 그날을 떠올리며 부인에게 말했다.
“이건 남편분이 비밀이랬는데, 크흠. 사실 무공을 배운 이유엔 다른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시더군요.”
남편은 지키기 위해서 무공을 배웠다. 그게 가족을 지킨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1왕자와 남편의 싸움이 쉽게 끝이 나지 않아, 10분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동안 난 부인에게 남편의 진심을 말해 줬다.
“부인과의 부부 싸움이 견디기 힘드셨대요.”
부인이 당황하며 머리 비늘을 곤두세웠다.
“그게 무슨?”
“부인이 화나면 정말 무서워서 자긴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고 하시던데요. 무공을 배워 강해지리라 다짐한 것도 부부 싸움에서 견디기 위해서라고…….”
졸지에 남편 때리는 부인이 된 그녀는 새빨개진 혀를 날름거리고 시선이 흔들리며 크게 당황했다. 항상 침착하고 냉정하던 부인과 정반대의 모습이 제법 신선했다.
“제가 언제! 전 단 한 번도 남편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없어요. 이 사람이 헛소문을!”
2라운드가 시작되었으나 나도, 부인도 남편을 걱정하지 않았다. 승부는 이미 뻔했기 때문이다. 지친 1왕자에 비해 남편은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긴, 원장(용)님이 준 영약인데 저 정도 효과는 있어야지.
“이해합니다. 부부만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아니, 정말 말다툼은 한 적 있어도 때리지는……!”
더 놀려먹다간 정말 부부 싸움이 날 것 같았다. 난 바른대로 말해 줬다.
“알아요. 부인께서 정말 화가 나면 던전을 찾아 흉포한 마물을 잡으러 다닌다는 것도, 남편이 두려워하는 건 화풀이라지만 위험한 곳으로 자꾸 떠나는 부인이 혹시 다치면 어쩔까, 걱정되는 마음에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것도 다 들었어요.”
나라만 달라도 문화 차이로 고생하는데 하물며 이종족,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종족이다. 많은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다혈질인 다른 사타리언들과 달리 화를 잠재우고 살아가고, 남편은 사타리언인 부인에게 걸맞은 자가 되기 위해 무공을 배웠다.
“아!”
부인이 탄성을 지른다.
남편이 1왕자의 턱을 기묘하게 꺾어지는 움직임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승세가 기운다.
“대단해. 마치 할아버님 같아!”
부인은 어린 소녀처럼 좋아했다.
난 기뻐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 무공, 마치 부인이 화났을 때의 모습과 같다더군요. 저처럼 대단한 무술을 알고 계셨더라면 진작 알려 주시지 그러셨어요.”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전 할아버님으로부터 어릴 때 잠깐 배웠을 뿐인걸요. 다정 씨가 믿을 수 없이 놀랍도록 대단한 거예요. 대체 어떤 재능을 가지셨기에 사타리언도 배우기 힘들어하는 고대 박투술을 그대로 재현하여, 그이에게 가르치기까지 하시다니…….”
부인은 말꼬리에 ‘역시 용의 가디언’이라고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다듬어 준 건 많지만 사실 저 무공은 내가 만든 거라고 보긴 힘들다.
“아뇨, 저건 남편분과… 부인께서 만든 것과 다름없어요. 저 모습을 봐요. 십수 년을 같이 살아오며 눈에 하루도 빠짐없이 담아 왔던, 가장 사랑하는 자의 움직임을 따라 하니 저처럼 익숙히 다룰 수밖에 없지요.”
*
처음과 달리 승부는 처절하게 이어졌다. 제아무리 드래곤의 영약과 사타리언의 잊힌 박투술이라고 하더라도 1왕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묘권만을 대비하였는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헤매던 그는 후반부에 들어서자 능히 남편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었고, 벼락같은 검이 남편의 살점을 찢게 되자 승부는 다시 왕자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 싸우면서 진화를 했다. 대단히 고루하고 상투적이며 믿기지 않는 표현이지만, 어쩌면 사랑의 힘이 아닐까. 내가 말해도 소름이 돋지만 마지막 격돌에서 보여 준 남편의 일격은 분명 그 자신의 무언가를 초월한 공격이었다.
남편은 상처로 너덜거리는 몸으로 왕자의 턱을 부수고 왼손에 든 검을 배에 찔러 넣었다.
싸움이 끝났다.
부정할 수 없이 승계자는 남편이 되었다. 좌중은 조용했으나 남편을 적대하는 게 아니었다. 누가 무어라 할 것도 없이 제 힘으로 다섯 왕자를 꺾었다. 싫어하는 건 저 비루한 몸뚱이를 가진 장로들뿐.
“난… 난.”
여기서 이변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승리자가 된 남편이 장로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전엔 남편을 무서워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피 칠갑을 하고 이빨이 빠져 발음도 부정확했으나 그의 눈빛만은 강렬히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장로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간다.
“승계자… 왕의… 자리를.”
남편이 손을 올려, 어딘가를 가리킨다. 난 웃으며 옆을 바라봤다. 그가 가리킨 자는 사타리언 부인이었다.
“왕의 자리를 내 자랑스러운 부인에게.”
저래도 되는 걸까?
모른다.
하지만 장로들의 표정이 싸늘하다.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겠지.
남편도 그 사실을 아는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엄포했다.
“이제 왕은… 내 아내야. 꼬우면 다시 뜨던가.”
그 뒤로 힘을 다해 바로 발라당 자빠져 기절했지만 그 모습이 볼품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짝짝-!
싸늘하고 어색해진 분위기. 그러나 난 손을 들어 마땅히 박수를 쳐 줬다. 내 박수 소리만 경기장에 울려 퍼졌으나 뭔 상관이랴.
훈훈한 결말이야.
*
12월 15일
뒤늦게 안 사실이다.
사타리언 부인의 가문은 남쪽 오아시스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예부터 페로페로의 움직임을 따라 한 사타리언 박투술을 익힌 무골들의 집안이었다. 특히 사타리언 부인의 할아버지는 박투술의 귀재로, 무용이 너무 뛰어나 현 장로이자 과거 권력자들의 시샘과 두려움을 받는 자였다. 그러나 대전이가 발생하고 폭주하는 마물들로부터 왕국을 지키던 그는 결국 지구로 넘어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후계라곤 부인밖에 없어 유일한 전승자였던 그가 죽자 사타리언 박투술도 사장되어 버렸다.
부인은 그런 할아버지로부터 아주 어릴 때 잠깐이지만 박투술을 배웠다. 지금은 마치 본성처럼 몸이 기억할 뿐 제대로 펼치지는 못하나 남편이 보았던 부인이 화났을 때의 모습이 아마 부인도 모르게 박투술을 펼치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부인이 지금처럼 도전자나 자기목숨을 노리는 위험한 일이 발생할 것임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후계자를 자청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보기보다 강했다. 그러고 보면 마물 사막 투어를 할 때도 그녀는 샌드윔을 잘 알고 빠르게 대처했었지.
꼬이고 꼬였지만, 결국 사타리언 박투술은 부활하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박투술을 펼치던 부인과 그 부인을 걱정하며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남편, 그리고 마물원에서 일하며 페로페로를 알았고 마물의 힘을 본떠 형의권을 펼칠 수 있는 나의 힘으로 사장된 사타리언 박투술이 비슷하게나마 부활하게 된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이야기였다.
-‘첫 번째 제자’ 관찰기
저자, 정다정.
난 관찰기를 덮고 기지개를 폈다.
이왕 작성할 거 마무리까지 짓고 싶었다. 어차피 혼자 볼 일기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 마물원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무공서’를 만드는 것에 열중했다. 우선 사타리언 박투술을 나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해서 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파일이 든 USB와 편지 한 장을 작성하여 사타리언 부인에게 택배를 보냈다.
[사타리언 박투술을 정리한 파일을 동본하오니 부인 뜻대로 하세요.]
택배를 보내고 오자 관리실에 원장님이 출장에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내 책상 위의 무공서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난 조금 부끄러워져 무공서를 책상 서랍에 숨기며 대답했다.
“무공서예요. 머릿속에 놔두는 것과 기록하는 건 꽤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냥 정리할 겸 쓰고 있어요.”
내 말에 원장님은 싱긋 웃으며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용은 그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자기 종족은 머릿속에 메모장이 있다며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아무렴, 위대하신 드래곤이니까.
‘그러니까 지금까지 모른 척한 거다 그거지?’
잊지 않는다면서 그럼 왜 모른 척하는 걸까. 어릴 적 날 구해 줬던 붉은 용, 그게 원장님인데, 그녀는 왜 말하지 않은 걸까. 무슨 이유에서?
그냥 말하기 싫은 걸지도, 아니면 트라우마로 고생고생하면서도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소중한 내 기억이 그녀에겐 말할 필요도 없이 시답잖아서 그럴지도.
끼이익-!
괜히 삐뚤어져 거칠게 의자를 뺐다.
“다정 씨.”
앉으려던 난 냉큼 일어났다. 행동에 너무 드러났나?
“오후에 할 일이 하나 있어요. 별건 아니고.”
“뭔데요?”
“다시 서울 쪽에 고블린들이 나타난 모양이더군요. 내가 할 일은 아니잖아요? 다정 씨가 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