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고블린
고블린은 괴물이다.
마물과는 다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산성 피부와 흘러내리는 녹색 피, 이글거리는 눈빛과 맞물리지 않게 뾰족뾰족 자라난 징그러운 이빨들. 녀석들은 솔로몬의 탑에서 왔다.
솔로몬의 탑은 세계다.
아니, 확실히 말하자면 여러 개의 세계다. ‘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공간의 개념은 아니며, 한 층의 규모는 작은 세계와 맞먹고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지구와 엇비슷한 크기까지 나타난다.
원장님이 말하길, 솔로몬의 탑은 전 우주의 가장 더럽고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라고 하였다. 그곳엔 악마가 살고, 괴물이 산다.
‘20년도 더 되었네.’
난 원장님이 지시한 대로 서울의 노원구의 폐허로 향했다. 고블린, 어릴 적 기억을 피비린내로 진동시키게 만든 증오스러운 놈들. 발생지까지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운전 초보자처럼 핸들을 꽉 쥐었다.
원장님에게 고블린 소리를 듣고 난 후로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어찌 잊을까, 정작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들의 살점을 물어뜯는 고블린들의 이빨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한 걸.
노원구 수락산 근처엔 버려진 폐허가 있다. 대전이로 발생한 이계 환경의 침투로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화 작업으로 멀쩡해졌다지만 버려진 마을에서 굳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런 곳이라 고블린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겠지.
고블린들은 흔한 놈들이 아닌 데다가 발견 즉시 처분당하는 괴물들이다. 원장님도 이번 일은 헌터들에게 맡기려다가 고블린이 전이한 곳에 공간의 비틀림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며 내게 조사를 부탁했다.
‘냄새가…….’
차에서 내려 버려진 폐허로 향했다.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 부서진 건물과 잔해들이 즐비한 마을을 거닐었다. 점점 폐허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지독한 냄새는 점점 심해졌다. 난 냄새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폐 공장에서 고블린들을 마주쳤다. 놈들은 서로의 몸에 이빨을 박아 넣고 오독오독 뼈까지 씹어 먹고 있었다. 놈들을 쳐다보던 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러곤 성큼성큼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크아으……!
날 알아챈 놈들이 동족상잔을 멈추고 녹색 피와 점액이 가득한 입을 탐욕스럽게 놀린다. 인간인 난 먹잇감,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쩜 저리 추악한 생물일까.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끔찍한 욕망만을 앞세운다.
‘거참, 내 어린 시절 악몽들이.’
몸이 떨린다.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와 그만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겁에 질려서? 젠장, 차라리 무서웠으면 좋겠다. 난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낄 뿐이다. 엿 같다. 어린 시절 무력함과 공포를 심어 줬던 악몽이 저딴 꼴이라니.
크이아!
달려드는 고블린 중 한 놈의 목덜미를 쥐고 폐 공장의 지붕까지 뛰어올랐다. 그리고 지붕 위에서 천천히 놈을 관찰했다.
녀석들과 빌어먹게도 교감이 된다. 다만 마물들과 달리, 놈은 생물의 개념을 벗어났다. 마물, 동물, 그리고 아마 인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기만 다를 뿐 저마다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동물로 생각하면 맛있는 먹이를 많이 먹는 게 되겠지.
그러나 그 한 가지만을 중시하진 않는다. 번식욕도 있고, 수면욕도 있으며, 분명 모성애와 애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블린, 놈은 오로지 한 가지의 욕망만이 존재하며 그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저주스런 인형 같은 존재였다.
살육을 원하고, 살점을 뜯어먹길 원할 뿐.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동족마저 씹어 먹을 괴물들. 만약 창조신이 있다면 확실히 놈은 잘못 만든 게 분명했다.
끄이이!
난 발악하는 고블린의 목을 서서히 눌렀다. 그래, 한 가지 공통점은 있구나. 다행이다. 녀석들도 죽음을 두려워해.
기묘한 기분이 든다. 이건 어린 날의 복수일까? 아니면 단지 마주하니 허탈하기 짝이 없는 악몽들에게 짜증이 나서 그런 걸까. 왜 하필 고블린들이야. 젠장, 이처럼 추악하고 병신 같은 새끼들에게 내 인생은 박살이 났어.
꽈드득!
고블린의 목을 꺾었다.
시체를 던지자 아래에 있던 고블린 무리가 덥석 받아먹는다.
“만약 네놈들이 아니었다면 난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대답해 줄 리가 없지.
날 먹고 싶어 하는 놈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니,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난 어차피 고아였고, 대전이로 뒤바뀐 세상의 풍파는 스스로 견뎌야 했었어. 하지만 말이야. 친구들이 고블린에게 뜯어 먹히는 기억이 없었더라면 조금 더 건실한 아이가 됐었을지도 몰라.
메타소드를 꺼냈으나 곧 다시 넣었다. 대신 깊게 받아들인 야옹이의 힘이 내 손톱을 뾰족하게 자라게 만들고 주변의 시야를 넓혀 줬으며,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날 보다 잔인하게 만들었다.
사각!
지붕에서 내려와 고블린들을 잡아 찢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을지도.
감회는 천천히 차올랐다.
어린 나의 복수치곤 그다지 통쾌하거나 신나진 않았다. 하지만 손으로 전해지는 놈들이 죽는 순간들은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날 기쁘게 만들었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을 모두 죽였을 때였다. 폐공장의 허공에서 다시금 고블린들이 튀어나왔다. 고블린들이 시커먼 공간의 아가리에서 뛰어나오는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마주했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공간의 비틀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지독한 악취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녹색 액체로 온몸이 더럽혀졌으나 기분만은 맑은 햇빛을 받고 있는 듯 상쾌했다.
전이당한 고블린들을 모두 죽였을 때, 비틀린 공간은 다시금 고블린을 내뱉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수십 마리나 되잖아. 난 웃음을 지었다.
‘삼백한 마리, 두 마리.’
시체로 산을 이루다.
참극을 표현하는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그러나 지금 펼쳐진 광경은 표현 따위가 아니다. 고블린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놈들은 죽여도 계속 나타났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비틀린 공간은 더 많은 고블린들을 내뱉었다. 조금은 지쳤으나 이 순간이 끝나길 바라지는 않았다.
‘천백두 마리, 천백…….’
이해할 수 없다.
죽이는 것에 느끼는 순수한 기쁨을.
‘삼천…….’
이해할 수 없다.
생명이 꺼지는 그 순간이 어찌 이렇게 즐거운지.
“칠천.”
정신을 차려 보니 난 시체로 이루어진 도로를 걷고 있었다. 공장을 벗어나 밀려드는 고블린들을 죽이다 보니 폐허에도 시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족해.
더 많은 기쁨을.
쉬이이이-!
이상하지. 마치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것처럼 공간의 구멍이 더 커지더니 더 많은 고블린들을 쏟아 냈다.
“어?”
피로 진득한 두 팔을 벌려 기쁘게 맞이할 때였다. 갑자기 전이로 쏟아지던 고블린들이 도로 시커먼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허공에 난 구멍도 닫히고 말았다. 수많은 고블린 시체들도 사라졌다. 체액과 피로 더러워진 몸도 깨끗해졌다. 그리고 날 안아 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아, 원장님?”
어디선가 나타난 원장님이 품으로 날 안아 줬다. 봄날 꽃밭과 따사로운 햇빛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고 그 순간, 부족함이 채워졌다.
고블린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기묘하게 공허해졌던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져서, 고블린 따위를 죽이는 것을 즐겁게 여기던 방금 전의 내가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야. 난 알고 있어. 젠장, 고블린처럼 굴었던 거야. 죽이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놈들처럼.
“원장님…….”
내가 진정이 되자 원장님이 품에서 날 놓아 줬다. 그러곤 따뜻한 붉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따뜻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다정 씨가 계속해서 불러들인 거예요. 고블린들을 저편의 구렁덩이로부터 이곳으로. 마치… 그때처럼.”
그때?
떠올랐다.
이 따듯함.
젠장, 어린 날 안아 주던 그 따뜻함!
어릴 때도 원장님은 날 이렇게 안아 줬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시큰둥한 대답이 들려오더라도 괜찮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원장님은 그날을 기억하기나 할까?
“고블린들이 언제 처음 지구로 전이했는지… 혹시 아시나요?”
“20년 전쯤에 의도치 않은 전이로 발생했었죠.”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죠. 20년 전, 고블린들이 인간 아이들을 학살할 때 제가 막았는걸요. 너무 늦고 말았지만.”
“아이들은 다 죽었나요?”
“한 아이가 살아남았어요.”
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떠올렸던 건 고블린들로부터 날 구해 준 날개 달린 도마뱀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것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의 은인, 원장님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날 기억하지는 못했다.
*
관리실로 돌아왔다.
원장님이 커피를 타 준다.
뜨거운 머그잔을 손에 들고 있던 난, 대뜸 일어나 잔을 바닥에 내려치며 소리쳤다.
“내가 그 아이!”
바닥이 엉망이 되었지만 원장님은 손짓 한 번으로 정리했다. 다행히 화는 나지 않은 모양이다. 대신 어이가 없는지 찡그린 눈으로 날 보며 합당한 대답을 내놓길 기다렸다.
“원장님이 구해 줬던 그 살아남은 아이가 나라니까요?”
어때. 놀랍지.
이런 인연이!
“아, 그래요?”
아무리 용이라고 하더라도 살짝 놀란 기색은 내비칠 줄 알았다. 그러나 원장님은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오늘 날씨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싱거웠다.
괜히 열 받아 따지듯 외쳤다.
“아니, 드래곤은 망각을 안 한다면서 여태까지 왜 몰랐던 겁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러자 원장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짜증 난 표정으로 날 쏘아붙였다.
“어이없는 건 바로 나라고요. 나조차도 후유증 때문에 그날을 떠올린 건 얼마 되지 않는데. 다정 씨는 대체 언제부터! 그날에 대해서 모두 기억해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날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그러자 원장님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상한 말을 하였다.
“그렇단 말이죠. 이상하군요. 완전히 지워 버린 줄 알았는데 왜곡되었다니.”
“지워요? 왜곡? 무슨 말입니까?”
원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입을 맞출 만큼 가깝게 다가와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으나 원장님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인간은 너무 약해요. 특히 어린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당하지 못해.”
“네?”
원장님이 가까운 거리에서 말해서 숨결이 다 느껴졌다.
“전이는 때론 사소한 충격으로 발생해. 이대로 잊는 게 좋아.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이고, 굳이 떠올릴 필요 없는 불필요한 일이니까.”
그제야 난 원장님이 그날 어린 내게 무언가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원장님이 제 기억을 잊게… 제가 기억하는 그날에 다른 비밀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날 내 기억을 잊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용인 자신은 기억 마법에 익숙하지 않았다며 기억을 잊게 하는 것도 실패하고 수천 년을 기억하는 용의 기억장치조차 아주 약간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사실 원장님도 그날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세이렌’들 덕분에 떠올린 것이었다.
난 입술을 깨물며 원장님을 쳐다봤다. 어떤 기억이든 강제로 기억하지 못하는 건 엄청 꺼림칙한 일이었다.
“돌려줘요.”
원장님은 뒤늦게 대답했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괜찮아요.”
“오, 내 가디언.”
그토록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원장님이 지금까지 날 불쌍하게 여긴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날 동정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모든 기억을 돌려드릴게요.”
원장님이 손을 내 머리에 얹었고, 이내 난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대화를 나눈다.
공간 너머의, 구렁텅이에서 살아가는 괴물들에게.
그러나 아이는 괴물인지 모른다.
그러니 손짓한다. 이곳으로 오라며 초대한다.
‘안 돼.’
아이의 손이 허공을 향해 인사한다. 그러자 시커먼 구멍이 생겨나 녹색 피부를 가진 난쟁이들이 나타난다. 아이는 반갑게 맞이했다. 곧 난쟁이들이 아이를 따라 향한다.
유치원 새싹반의 교실로.
“내가 그랬던 거야.”
내가 그랬던 것이다.
내가 작은 악마들을 불러 참극을 일으켜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래 놓고 나만 살았다. 이 병신 머저리 같은 새끼는 몇십 명의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 놓고선 혼자 불행한 척, 슬픈 척을 했었던 것이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날 이후로 울지 않았다.
고아인 내가 울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견딜 수가 없었다.
날 위해 우는 게 아니야.
고개를 들지 못하겠어. 무슨 낯짝으로. 젠장. 어린 내가 무지했다고 용서될 리가 없잖아. 차라리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그들이 날 원망하기라도 했다면 좋을 텐데.
*
원장님의 도움으로 그들의 무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얀 국화를 묘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마음은 더 무거워질 뿐이다.
관리실로 돌아온 난 원장님에게 물었다.
“원장님. 만약 솔로몬의 탑을 없앨 수는 없을까요?”
대답을 바라고 던진 게 아니라 넌지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원장님은 무시하지 않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해 줬다.
“없어요. 적어도 용의 지식으론. 그러나 탑의 정상에 오른다면 답을 얻을지도 모르죠.”
*
울적한 나날들이다.
마음이 울적하니 몸도 피곤하다.
모든 게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내일 중요한 손님이 오니까 일찍 출근해요.”
그래서 평소 같으면 질색하고 기겁할 ‘손님’이란 단어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죽을 만큼 힘들고 뇌의 주름들이 모두 펴질 만큼 깜짝 놀라는 일들이 필요해.
다음 날, 원장님이 말한 대로 손님이 왔다. 아주 뜻밖의 손님이었다.
‘와칸다?